뻔한 수입·지출에 미래 '막막'돈 안 모이는 건 어디선가 샌다… 소비 지출, 월급의 50%로 줄여야직장인 월급관리는 곧 '통장관리'… 지출 흐름 읽고 엄격히 관리해야

연말이면 텅 빈 통장을 보며 미래를 불안해 하는 직장인이 많다. 전문가는 돈을 모으려면 유일한 수입인 월급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혜영 기자
새해 계획을 세우려고 올 한 해를 돌아보던 김영숙(가명ㆍ32)씨는 문득 두려워졌다. 월급 통장에 찍힌 돈의 액수를 바라보다 얼마 전 읽었던 책의 내용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이 배경인 책은 당시 30대의 잿빛 미래를 그렸는데, 현재 30대의 상황과 다르지 않았다. 책에서 다루는 세대는 스펙을 쌓느라 늦게 취업이 늦고, 낮은 임금으로 저축을 못하고, 결혼 자금을 모으지 못해 가정을 이룰 꿈도 못 꾼다. 행여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육아와 교육이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다 노후 대비 없이 나이를 먹는다.김씨는 텅 빈 월급 통장에서 책이 경고한 암울한 미래를 읽었다. 눈앞이 아찔해진 김씨는 새해부턴 차곡차곡 돈을 모으겠다고 다짐한다.

낮은 월급·필요 지출 '암울'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4년간 쳇바퀴 굴리듯 평범한 생활을 한 김씨에게 왜 모은 돈이 없을까. 뭣 모르는 지인들은 '지금쯤 돈 좀 모았겠다'고들 하지만 김씨는 '월급이 통장을 스쳐갔다'는 말의 의미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김씨는 "월급이 적으니 사치와는 거리가 멀다"고 했다. 스펙을 쌓으려고 어학연수와 학원에 많은 돈을 들인 김씨는 취업하면 연봉 3,000만원, 4,000만원은 거뜬하게 받을 줄 알았다. 그러나 언감생심이었다. 일부 금융권과 대기업 말고는 신입 사원에게 그런 연봉을 주는 회사는 없었다.

김씨는 이것저것 하느라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다음에야 겨우 취직했다. 4년 전 김씨 연봉은 2,200만원. 지금은 3,000만원을 받는다. 실수령액은 166만원에서 225만원으로 올랐다.

김씨는 "생각보다 돈 쓸 일이 많았다. 특히 사회 초년생일 땐 정말 힘들었다"고 푸념했다. 예전과 달리 외모도 경쟁력이 된 사회. 직장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옷, 구두, 가방, 화장품 등을 사고 나면 통신비 내기도 빠듯했다는 것이다. 월세 등 생활비를 제하니 모자라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김씨가 월급 200만원을 넘기고 나서야 저축이라는 걸 할 수 있었다.

김씨집은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35만원짜리다. 4년 전 부모에게 1,500만원을 빌려 겨우 마련한 집인데 1년 만에 보증금이1,500만원이나 올랐다.월세를 더 낼 형편이 안 돼 대출을 받았다. 저축 금액은 여전히 매달 30만원이다. 월급이 오르면 저축을 늘리려고 했다는 김씨는 "대출받은 돈을 모은 돈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며 "직장생활 동안 1,500만원을 모은 셈이다"고 말했다.

김씨의 여가는 황량하다. 용돈이 부족하다 보니 꼭 보고 싶은 공연을 관람할 때도 신용카드 할인 제도나 이벤트 응모를 최대한 이용했다. 가장 손쉽고 값싼 문화생활인 영화 관람도 자제했다. 대신 '어둠의 경로'로 불리는 P2P사이트를 이용했다. 가끔 사보던 책도 끊었다. 올 여름 휴가 때 해외여행을 다녀오느라 '거액'을 쓴 게 가장 큰 사치였다. 여행을 떠나는 동료들을 부러워하다 30만원씩 저축하던 통장에서 300만원을 빼 썼다.

김씨는 "연차가 오를수록 돈 쓰는 일이 많아졌다"고 했다. 나이가 들면서 지방에 있는 가족을 비롯해 주변 사람을 챙길 일이 많아졌다는 것. 그는 "결혼한 선배들이 지갑을 닫는 이유를 알 것 같다"며 "'후배들이 밥 먹자고 할 때 공포스럽다'던 선배의 말을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월세 식비 공과금 교통비 통신비 보험비등 고정지출에 더해 밥값 술값이 더해지니 왠지 월급이 많아진 지금이 더 빠듯한 것 같다"고 했다.

김씨는 그 나이 때 싱글녀의 평범한 생활을 보여준다. '선택 받은 직장'을 못 다녀서월급이많지 않다. 집안 도움을 받을 수 없어 거주비용이 많다. 자잘한 곳에 돈이 새나가는 것 같아 불안하지만 계획적으로 돈을 모으는 방법을 모른다. 때문에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고 권유하는 광고 문구가 마음에 들어도 좋아하는 공연 한 번 제대로 보지 못한다. 경제적으로 비참한 '88만원 세대'보단 많은 돈을 벌고 있지만 김씨 말을 들으면 정말 모을 돈이 없어 보인다.

체계적인 월급관리 중요해

그간 부동산은 한국에서 직장인이 가장 손쉽게 돈을 불릴 수 있는 수단이었다. 그러나 부동산 투자 시대는 사실상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금리 시대가 길어지고 부동산 경기는 침체기를 넘어 쇠퇴기를 걷고 있다. 재테크에 대한 기대가 없어진 현재 직장인이 돈을 모으는 방법은 유일한 수입인 월급을 아끼는 것이다. 김씨가 월급 관리의 필요성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기도 하다. 전문가도 김씨 같은 직장인이 느끼는 불안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욱 월급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신윤정 포도재무설계 수석 상담사는 "비단 김씨만이 아니라 모든 직장인의 수입은 뻔하다"며 "돈을 모으려면 본인의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돈이 모이지 않는다는 건 어디선가 돈이 새고 있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신 상담사는 월급이라는 한 달 수입에 대한 지출 패턴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보험과 금융상품 등 비소비성 지출을 제외하고 생활비를 포함한 소비성 지출 예산을 월급의 50%로 묶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출 순위를 정해 우선순위부터 지출하되 돈이 떨어지면 낮은 순위 지출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월급 관리 예산을 명확히 한 뒤엔 체계적인 통장관리가 뒤따라야 한다. 그렇다고 유행처럼 번지는 '통장 쪼개기'에 목매다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했다. 신 상담사는 "김씨의 경우 월급 225만원 중 110만원의 예산만 넣어두는 통장과 나머지 돈을 넣어두는 통장을 분리해서 110만원의 통장으로 한 달 버티기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신 상담사는 "직장인에게 월급관리란 곧 통장관리"라며 "최소한의 지출 예산으로 한 달을 보내고 나머지 돈은 보험이나 저축을 하면 더디더라도 돈이 차곡차곡 모일 것"이라고 말했다.

신 상담사는 신용카드도과감하게 없애라고 말했다. 신용카드가 월급 관리의 흐름을 제대로 읽을 수 없게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가령 25일이 급여일이라면 매달 25일쯤에는 소비성지출예산 통장의 바닥이 보여야 한다"며 "그래야 지출의 흐름을 읽고 관리가 완성된다"고 말했다.

신 상담사는 "신용카드가 각종 혜택을 제시하며 돈을 아낄 수 있다고 하지만 체크카드를 쓰며 월급을 관리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강조했다. 신 상담사는 "'쓸 돈이 없기 때문에, 정말 쓸 곳만 쓰고 있기 때문에'라는 직장인들의 하소연은 정말 이해된다"면서도 "긴장하지 않으면 김씨는 내년에도 한숨을 쉴 것이다. 소비성 지출 예산을 줄이는 게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옥희 기자 behermes@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