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증인 발언으로 판세 어려워져

조세포탈 및 배임·횡령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실형 선고 가능성이 높게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2013년12월30일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3차공판에 참석하는 이재현 회장. 연합뉴스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구자원 LIG그룹 회장….`현재 상고심과 파기환송심, 그리고 항소심을 받고 있는 재계 총수들의 이름이다. 지난해 이어졌던 총수들의 철창행이 올해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1심 공판이 진행 중인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향후 거취가 주목된다.

이 회장이 구속기소된지 5개월 만인 지난해 12월 중순 처음으로 법원에 출두한 이후 매주 공판을 진행해온 재판부는 7일 결심 공판과 2월 중 열릴 선고공판만을 남겨두고 있다. 신장 이식 수술로 몸이 급격히 안 좋아진 이 회장으로서는 어떻게든 좋은 결과를 기대하겠지만 공판이 진행될수록 수렁에 빠지는 형국이라 전망은 불투명하다.

2개월 만에 수사 완료

검찰이 이재현 회장의 비자금 사건을 본격적으로 수사하기 시작한 것은 CJ그룹 본사, 제일제당센터 및 임직원 자택 등의 압수수색에 나선 지난해 5월21부터였다. 이후 검찰은 CJ그룹 세무조사 자료, 주식거래자료, 주주명부, 해외대출 및 부동산매매 관련 금융거래 자료 등을 차례로 확보하고 CJ그룹 회장실 재무담당인 신동기 부사장을 구속기소 하는 등 일사천리로 수사를 진행했다. 이 회장 또한 6월22일과 25일 두 차례에 걸쳐 각각 17시간, 11시간의 소환조사를 받았다.

수사에 나선지 41일 만인 지난해 7월1일 이 회장을 구속수감한 검찰은 2주간의 보강 수사를 거친 후 이 회장을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 및 횡령ㆍ배임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국내 3,600억원, 국외 2,600억원 등 총 6,200억원에 달하는 이 회장의 비자금에는 선대로부터 상속한 재산과 횡령한 회사 자금, 차명주식을 매입ㆍ관리하면서 불린 자금 등이 혼재돼 있었다. 이 회장은 회장실 산하에 총수의 개인 재산을 관리하는 '재무2팀'을 운영하며 비자금 조성을 맡겨왔고 해외 법인에도 전담 직원을 두고 비자금을 관리했다.

특히, 해외 비자금의 경우 전부 회사 자금 횡령을 통해 조성된 것이 눈에 띈다. 해외 비자금 조성을 위해 이 회장은 총 19개의 페이퍼컴퍼니를 조세피난처에 설립하고 싱가포르와 홍콩 등에 소재한 7개 외국 금융기관에 차명계좌를 개설하는 방식으로 546억원의 세금을 포탈했다. 검찰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해당 계좌 중에는 이익의 귀속자가 이 회장으로 적시된 경우도 있었다.

또한 이 회장은 인도네시아 법인 등에 근무하지도 않았던 임원의 급여를 지급한 것처럼 꾸며 해외법인자금 115억원을 횡령했고, 개인 소유의 건물 2채를 일본에서 구입하면서 현지법인을 담보로 제공하고 연대보증을 세워 각각 244억원, 569억원의 횡령과 배임을 저지르기도 했다.

한 달간 철창신세를 지던 이 회장은 만성 신부전증으로 인한 신장이식 수술을 받기 위해 구속집행정지를 받고 현재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재판을 진행 중이다.

재판 진행될수록 상황 나빠져

지난해 12월30일까지 세 차례의 공판을 거치며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지만 상황은 이재현 회장에게 점점 불리하게 흘러가고 있다. 전 재무2팀장으로 이 회장의 개인재산을 관리한 것으로 알려진 핵심증인 이 모씨의 증언과 제반 증거가 너무 확실한 까닭이다.

이씨는 검찰이 재계 총수 관련 수사로는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인 2개월 만에 수사를 종결지을 수 있게 만든 장본인이다. 수사 초기 이씨가 검찰에 넘긴 USB에는 이 회장의 일본 빌딩 구입과 횡령액, 국내 차명재산 관리 내용 등이 담겨 수사의 단초이자 주요 증거로 작용됐다. 이후에도 이씨는 허병익 전 국세청 차장이 돈을 요구한 정황, 이 회장과 전군표 전 국세청장, 신동기 CJ글로벌홀딩스 부사장 등이 회동했던 사실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진술하는 등 적극적인 협조를 통해 검찰의 빠른 수사를 도왔다.

재판 과정에서도 이씨의 역할은 지대했다. 2013년 12월17일 열린 첫 공판부터 검찰은 'CJ는 저에게 조국이었습니다'로 시작하는 이씨의 편지를 증거로 제시했다. 해당 편지는 이씨가 이 회장에게 복직을 요구하며 2007년 보낸 것으로 비자금 조성 및 세금 포탈, 해외 특수목적법인(SPC) 설립 등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었다. 또한 검찰에 따르면 이씨는 "이재현 회장이 자신이 보유한 차명주식을 불리는 것을 재무2팀의 업무가치평가(KPI) 기준으로 삼겠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30일 열린 3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씨는 이 회장의 비자금 조성 및 보관 수법에 대해 상세히 밝혔다. 이씨에 따르면 비자금은 CJ그룹 본사 14층에 위치한 비밀금고에 1만원권으로 1억 단위씩 보관, 필요할 때마다 회장실에 전달됐다. 재무2팀만 다닐 수 있는 계단과 회의실을 거쳐야만 나타나는 비밀금고는 쇠창살과 철제 방화문으로 둘러싸인 가로ㆍ세로 3m 크기로 여기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별도의 잠금장치를 거쳐야만 했다.

이씨는 "돈이 어디서 어떻게 들어왔는지 구분하라는 업무지침은 없었다"며 "비밀금고 안에 들어있는 현금 중 회사자금으로 사용된 돈은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일단 비밀금고에 들어가면 모두 이 회장의 개인재산으로 바뀌어 자택 보수비, 차량ㆍ의복 구입비, 미술품ㆍ와인 구입비, 카드대금 지불 등으로 이용됐다는 것이다. 이어 이씨는 "그룹 임원들에게 상여금 명목으로 돈을 지급했다가 돌려받는 수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며 "법적 위험성을 인식한 행위"라고 증언하기도 했다.

이에 이 회장 측 변호인은 이씨가 실제로 재무2팀 업무를 진행한 시간이 짧아 업무에 대한 이해가 없었을 뿐 아니라 퇴사 후 금전을 요구하는 등 불순한 의도가 있었다며 반박했다. 그러나 이씨가 내놓은 증거와 증언들이 워낙 확고해 혐의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일각에서는 이 회장에게 선고될 실형 수준이 최태원, 김승연 회장이 받은 것보다 결코 적지 않으리라는 얘기도 나온다. 죄질의 정도가 두 회장보다 가볍지 않은 데다 사회적 분위기상 쉽사리 넘어가지는 않으리라는 예상이다. 다만, 건강상의 문제와 플리바게닝 시도 가능성 등이 남아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hankooki.com



김현준기자 realpe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