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정치 브랜드는 있지만 공장(정당)도 제품(후보자)도 없어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지난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정치추진위원회 사무실에서 열린 비공개 위원장단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새인물 영입 분주하지만 성과 없어 정당의 색깔·노선·비전 없이
새정치 구호만… 창당 작업에 난항 윤여준 전장관 합류로 새정추 활기
일각에선 '철새 정치' 비판 창당 시기 지방선거 이후 관측도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주도하는 신당 창당 작업 속도가 어딘가 더디다는 느낌이다. 안 의원은 호남을 중심으로 참신한 인물을 수혈하느라 분주히 뛰고 있지만 아직 이렇다 할 성과는 보이지 않고 있다. 정당의 색깔을 정하는 노선과 비전도 뚜렷이 정해진 게 없다. 새정치를 구현한다는 구호만 있을 뿐 그에 걸맞은 세부적인 각론이 뒷받침되고 있지 않다. 그러다 보니 내부적으로 창당 작업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새로운 정치적 노선이나 비전은 제시되지 않은 채 안 의원의 개인 이미지를 앞세운 바람몰이가 진행되는 데다, 합류하는 인사들도 새로운 인물 대신 기존 여야 정당에서 몸담았던 구 정치인들이 대부분이어서 신당에 잔뜩 기대를 걸었던 지지층 사이에선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를 놓고 일각에선 '안철수'라는 훌륭한 정치 브랜드는 있지만 공장(정당)도 없고 제품(후보자)도 없다는 비아냥이 나온다.

이 때문에 무게감 있는 인물을 합류시키거나 누구나 인정할 만한 제3세력으로서의 노선 설정을 서두르지 않고서는 자칫 지방선거에서의 큰 도약이 어려울 것이란 어두운 전망도 나돈다. 또는 아예 창당 시기를 이번 선거 이후로 미루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선거가 4개월 여 앞으로 다가온 시점임을 감안하면 이 같은 해석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물론 호남권에서는 민주당의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있는데다 수권정당으로서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당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아직 정치집단으로 세력화하는 모양새는 부족한 듯 보이지만 그래도 미래를 기약해 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점 때문이다.

안철수 의원과 윤여준 전 장관, 새정치추진위원회 위원장단은 지난 8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찾아 참배했다.
하지만 대권을 염두에 두고 있는 안 의원 입장에서는 이 정도로 성에 찰 리가 없다. 적어도 이번 지방선거부터 호남을 기반으로 수도권과 중부권에서 새누리당과 어깨를 견줄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하는 게 목표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만일 호남에서도 민주당에게 밀리면 세종시를 포함한 17개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단 한 석도 건지지 못할 수도 있다. 지방선거의 참패 가능성이다.

신당으로 지방선거에 참여, 정치개혁의 돌풍을 이끈 뒤 이를 기반으로 차기 대권에 도전하겠다는 것이 안 의원의 포부라면 1차 관문부터 통과가 수월치 않은 상황이다. 안 의원과 신당 입장에서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윤여준 간판' 성공할까

신당의 인재 영입이 지지부진하던 차에 모처럼 중진 인사가 합류해 화제가 됐다. 주인공은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안 의원은 윤 전 장관을 신당 창당 준비기구인 '새정치추진위원회'(새정추)의 5번째 공동위원장으로 선임하면서 가장 중심 자리인 새정추 의장직을 맡겼다. 사실상 신당 창당 준비위원장이다.

윤 전 장관은 안 의원과의 재결합 이유에 대해 "안 의원과 결별했었다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당시 안 의원이 서울시장 출마를 생각했다가 안 하게 되니 하는 일이 중단된 것"이라고 말했다.

윤 전 장관은 그러면서 "아무리 늦게 잡아도 3월 중에는 창당을 해야 된다고 본다"고 창당 로드맵의 일단을 밝혔다. 하지만 인재 영입과 관련해서는 "한국 사회가 새인물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막상 새인물을 한번 찾아보라"며 새인물 찾기가 난항에 봉착해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민주당과의 연대에 대해 윤 전 장관은 "정당들이 선거 때 이것저것 다 무릅쓰고 선거에서 이길 목적 하나로만 연대하는 것도 좋게 보지 않는 것 같다"며 "또 연대한다고 반드시 이기는 것도 아니다"라고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어쨌든 윤 전 장관의 합류로 새정추는 신당 창당 작업에 활기를 띠는 모습이다. 더구나 2011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직전 안 의원의 불출마 과정에서 "윤 전 장관만 정치적 멘토가 아니다"라는 발언 등으로 인해 결별한 지 2년 3개월 만에 다시 손을 맞잡은 것이라서 과거처럼 금방 호흡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윤 전 장관의 신당 참여를 두고 새정치에 합당한 인선이냐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윤 전 장관은 안 의원과 헤어진 뒤 "확실하지 않은 생각이나 태도가 불확실성이라는 불안감을 국민에게 준다"고 비판했다. 또 "(안 의원이) 러브콜을 보내올 리도 없다고 생각하고, 내가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랬던 윤 전 장관이 다시 합류한 것을 놓고 '오락가락 행보의 전형', '철새 정치인의 귀환'이란 비판이 나온다. 윤 전 장관은 전두환 정부와 노태우 정부 때는 청와대 비서관, 김영삼 정부에서는 청와대 공보수석비서관 겸 대변인을 지낸 데 이어 환경부 장관에 올랐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책사로 활약했고, 2004년 총선을 전후해서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오른팔로 불렸다.

이후 안 의원과 함께 했던 윤 전 장관은 결별 뒤 민주당 문재인 대선 후보 캠프로 갔다. 이번에 다시 안철수 신당에 합류한 것까지 전두환-노태우-김영삼-이회창-박근혜-안철수-문재인을 돌고 돌아온 셈이다. 윤 전 장관의 합류로 안 의원의 '새 정치'가 '철새 정치'가 됐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를 놓고 새누리당은 물론 민주당 박용진 대변인마저 "안철수의 새 정치가 윤여준이라는 건지 국민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지 않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협공

안철수 신당의 위기는 내부적인 작업 부진에서 비롯됐지만 이보다 더 걱정인 것은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협공이다. 내우외환 격이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연일 안철수 신당 비판에 여념이 없다. 대척점에 있는 새누리당의 공격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한 때 동지적 관계였던 민주당의 공세는 뼈아프다. 더구나 신당과 치열한 쟁투가 예상되는 호남 광역단체장 자리를 놓고 민주당은 당내 스타급 거물 정치인을 내세워 신당의 돌풍 가능성을 잠재울 태세다. 신당으로선 이만저만한 고민이 아니다.

민주당은 호남의 정당 지지도에서 신당에 밀린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잇따르자 당에 기대지 않고 승리할 수 있는 후보를 내세워야 한다는 인물론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전북지사 후보에 정동영 상임고문, 전남지사 후보는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본인 의사와는 무관하게 거론되고 있다. 새누리당 소속인 염홍철 현 시장의 불출마 선언으로 무주공산이 된 대전에서는 4선의 박병석 국회 부의장이 나서야 한다는 여론도 있다.

물론 차출론의 당사자들은 일제히 손사래를 치면서 출마할 생각이 없다며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정치 흐름이 어떻게 변하느냐에 따라 차출론 목소리가 더 커질 수도 있어 이들 중진들의 생각이 바뀔 수도 있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앞으로 전남지사에 출마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정치는 생물"이라고 여지를 열어놓은 것도 미묘한 대목이다.

신당이 호남에서는 민주당보다 정당 지지도가 높게 나오는 결과가 많지만 막상 출마가 예상되는 후보를 대입해 조사하면 뒤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인물 경쟁에서 크게 밀리고 있다는 방증이다. 만일 이 같은 조사 양상대로 지방선거가 치러질 경우 신당은 호남을 제외한 수도권과 중부권에서는 야권 분열 요소만 만들어 새누리당만 이롭게 했다는 지탄을 야권 지지층으로부터 받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민주당과의 어설픈 선거연대를 하기에도 어렵다. 윤 전 장관도 선거연대에 부정적 입장을 밝힌 바 있는데다 새정치를 표방하면서 구정치를 답습한다는 비판에 시달릴 수도 있다. 득보다 실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신당으로선 여러모로 걱정되는 나날이 계속되는 양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재미있는 정치공학 시나리오가 정치권을 떠돌고 있다. 안철수 의원의 잠재적 대권 라이벌은 기존의 민주당 문재인 의원을 제외하면 같은 당 소속의 박원순 서울시장이다. 지금은 둘 간에 큰 앙금은 없지만 대선 가도를 함께 걷다 보면 언젠가는 한번 진검 승부를 벌여야 할 처지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서울시장에서 박 시장이 재선에 성공하는 것이 안 의원에게는 그리 좋을 것이 없다는 이야기가 가능해진다. 차제에 박 시장이 선거에서 낙선하는 것이 차기 대선을 위해선 안 의원에게 유리할 수 있다는 분석이 제법 그럴 듯하게 정가를 떠돈다. 서울시장 선거와 경기지사 선거를 민주당과 나눠 공천하기 보다 신당에서도 유력 후보를 끝까지 완주시킬 것이란 전망이 더 설득력 있게 나도는 이유이기도 하다.

'안철수식 정치'로 승부한다

신당을 창당해 지방선거에서 교두보를 만든 뒤 이를 통해 2년 후 총선에서 적어도 제1야당의 자리까지는 차지, 이듬해 대선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안 의원의 정치 구상이 아직까지는 안개 속이다.

하지만 정치권에 진출하면서 "건너온 다리를 불살랐다"고 말한 안철수 의원이다. 그의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었고, 중단 없는 전진을 통해 뜻을 이루곤 했다. 그의 과거 경험이 정치판에서도 통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현재로서는 인생의 가장 큰 벽을 만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그는 웬만한 시련에 멈추는 스타일도 아니다. 아마 지방선거 결과와는 상관없이 꾸준히 정치인의 길을 걸어갈 태세다.

전문가들은 안 의원에 대해 "길게 보고 안철수식 정치를 펼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호흡을 길게 가져가란 의미다.

1962년생인 안 의원은 이제 52세다. 대선이 있는 2017년은 55세이다. 야권의 경쟁 후보라고 볼 수 있는 손학규 민주당 고문은 대선 때 70세, 문재인 의원은 64세, 박원순 서울시장은 61세가 된다. 이중에서는 가장 젊은 나이이고 가장 오래 정치판에 남아 있을 수 있다. 실제 나이상으로만 따지면 안 의원은 19대 대선은 55세, 20대 대선은 60세, 21대 대선은 65세이다. 꾸준히 정치권에서 활동한다면 대권의 도전 기회는 얼마든지 잡을 수 있다.

때문에 이번 지방선거부터 '안철수식 정치'를 고집해야 미래를 기약해 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기점으로 형성된 이른바 '안철수현상'은 정쟁에 함몰된 구태 정치를 넘어서보자는 적잖은 국민의 열망이었다. 하지만 이미 지난 대선 과정에서 문재인 의원과의 어설픈 후보 단일화를 통해 이미지에 상처를 입었다. 지금도 이를 회복하는 과정이라고 본다면 국민에게 이전과는 다른 특별한 모습을 보여야 빠른 치유가 가능하다.

만일 현재의 제도권 정치와 대동소이한 과정을 밟아나간다면 국민 머리 속엔 '안철수현상'만 남게 되고 대권 주자로서의 안철수 의원은 거리가 멀어진다. 큰 꿈을 그리는 정치인 안철수의 출발점은 지금이다.



최세훈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