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ㆍ고직급자 위해 유연근무제, 직무급제 활용해야

한국 사회의 고령화 속도가 점차 빨라지고 있다.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7% 이상이 되면 고령화 사회, 14% 이상이 되면 고령 사회, 20% 이상이 되면 초고령 사회로 구분한다. 고령화 사회에서 고령 사회로 넘어가는 데 걸린 시간이 프랑스가 115년, 미국은 73년, 일본이 24년이 걸린 반면, 한국은 18년밖에 걸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2026년에는 8년 만에 초고령 사회로 진입할 것이란 예상까지 나오고 있다.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많은 것들이 변하고 있다. 정년 60세 의무화 법안이 통과됐고 개인들의 인식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기업은 어떨까? 한국 사회 고령화의 가장 큰 문제가 노인들의 경제활동 참가가 줄어든다는 점이라면 기업 차원에서 준비해야 할 것들이 더욱 많지 않을까. 이에 최나은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고령화, 기업의 대비도 빨라야’보고서를 통해 “기업들은 교육을 통한 역량 강화, 근무 환경 개선, 유연 근무제 등의 방안을 통해 고령화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고령화 현상 진행되며 기업들 긴장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집단은 기업일 수밖에 없다. 정년 60세 의무화 법안이 통과되며 조직 내에 고령ㆍ고직급 인력이 증가하는 까닭이다.

지난해 4월 ‘정년 60세 연장법(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2016년부터 종업원 300인 이상의 대기업과 공공기관이, 2017년에는 모든 사업장이 60세 정년 제도를 반드시 적용해야 한다. 현재 기업들이 개별적으로 제도화해 놓은 평균적인 정년이 57세이고 실제 퇴직 연령은 약 53세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기업 내의 고령ㆍ고직급 인력의 비중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정년 연장의 마지노선이 60세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해 가까운 미래에 정년이 더 연장될 수 있다. 실제로 1994년 60세 정년 의무화 법안을 도입했던 일본은 2013년 4월부터는 ‘고령자 고용안정법’ 시행을 통해 65세까지 의무적 고용을 제도화 한 바 있다.

정년이 늘어날수록 기업 내에 고령ㆍ고직급 인력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최근 급격하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신규 채용은 감소하면서 고령ㆍ고직급자 비중이 늘어나 인력 구조가 전통적인 피라미드 형태에서 역(逆)피라미드로 빠르게 바뀌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이 진행될수록 조직의 활력이 약화되거나 변화ㆍ혁신 수용의 속도가 늦어질 수 있다. 인력 구성이 달라지는 만큼, 기존의 직무 구분, 직급 체계, 조직 관리 방안 등이 새로이 수립돼야 하는 것이다.

기업들의 발 빠른 대처 필요해

고령화 현상에 직면한 기업들이 현명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안들을 모색해야 할까. 최나은 선임연구원은 ▦교육ㆍ훈련을 통한 지속적 역량 강화, ▦고령화 시대에 맞는 근무 환경 조성, ▦유연 근무제의 활용, ▦직무급제 도입 고려, ▦고령자에 대한 인식 전환 등을 꼽았다.

우선 교육ㆍ훈련은 고령 인력에 대한 체계적인 역량개발프로그램을 통해 변화하는 트렌드, 새로 등장하는 지식 등을 지속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이를 통해 고령 인력의 취약점으로 지적되는 변화에 대한 대응력이 늦고 역량에 큰 발전이 없이 정체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 등을 고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실제로 독일의 지멘스는 구성원의 고령화 및 시니어 인력의 역량 개발에 대한 필요를 인지, ‘컴퍼스 프로세스(Compass Process)’라는 역량 개발 프로그램을 도입해 고령ㆍ고직급자가 자신의 능력과 위치를 재발견할 수 있도록 해줬다.

젊은 세대보다 신체적 활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고령ㆍ고직급자를 위해 새로운 근무 환경을 조성할 필요도 있다. 구성원의 고령화가 반드시 생산성 저하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고령ㆍ고직급 인력에 적합한 작업 환경 구축을 통해 생산성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향상시키도록 해줘야 한다. 2007년 독일의 딘골핑(Dingolfing)에 위치한 BMW 제조공장에서는 고령화가 진행된 상황에 맞추어 조립 라인과 프로세스를 재설계하고 2017년에 예상되는 평균 연령별 인력 비율로 직원들을 구성, 연간 생산성을 7%나 향상시킬 수 있었다.

기업 차원에서는 고령ㆍ고직급자의 임금 등 비용 증가를 줄이기 위해, 직원 차원에서는 체력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유연 근무제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유연근무제도는 기존의 정해진 장소, 시간에 근무하던 제약을 없애고 좀 더 탄력적으로 구성원의 필요에 맞게 근무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기업은 고령 인력의 숙련된 기술과 경험을 필요할 때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고 개인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직업을 유지하면서 정신적 만족과 금전적 소득을 함께 얻을 수 있다.

장기적 관점에서 직무급제로의 전환도 고려해 봐야 한다. 직무급제란 직무의 상대적 가치에 따라 직무 등급을 도출하고 그에 기반하여 기본 급여 수준을 결정하는 임금체계이다. 국내 기업의 대부분이 연공급제에 기반한 직능급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터라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기업에게는 비용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고령화가 향후 지속될 현상임을 감안할 때 연차와 임금의 분리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또한 달라진 인력구성에 맞추어 구성원의 역할을 재정립해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소수였던 고령ㆍ고직급자가 상층부에서 조직을 관리하는 역할을 수행했지만 이제 인원수가 늘어나면서 모두가 관리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는 없게 됐다. 이런 현상이 증가하면서 관리자 역할을 맡지 못하는 경우 낙심하거나 수동적으로 주어진 업무만을 수행하려고 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담당하는 직무의 가치에 따라 임금을 달리하는 직무급 제도로의 전환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최 선임연구원은 “우리 사회는 최근 급속한 환경적 변화를 경험하고 있으며 고령화 역시 그 중 하나”라며 “단기적인 현상이 아니니만큼 기업이 업종, 근무 환경, 인력 자원의 특성 등을 고려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속 가능한 대안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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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준기자 realpe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