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코 수술받다가 날벼락 맞아… 의료사고 가능성, 인과관계 밝혀져야

여고생 장모(18)양이 성형수술을 받고 중태에 빠진 가운데, 지난 11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G성형외과 앞에서 장양의 친구들이 사고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장양 부모 제공
수능 후 성형외과 찾았는데 눈코 수술 후 '의식불명'
수술 집도의는 병원 퇴사

가족 "동의 없이 전신마취"… '위험성' 설명엔 불친절
의료사고 인식 수준 높여야

'성형 1번지' 서울 강남구. 이곳엔 성형외과 간판을 내건 병의원만 무려 366개가 있다. 한국 성형수술 시장은 연간 5조원 규모의 거대 산업이다. 청소년들이 가장 받고 싶은 선물로 '성형수술'을 꼽을 정도로 성형수술은 사실상 대세로 자리를 잡았다. 성형외과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나면 여고생의 환심을 사기 위한 각종 할인 이벤트를 벌이느라 분주하다. 하지만 성형수술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병원은 없다. 이제 갓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은 앳된 여고생이 좀 더 예뻐지려고 성형외과를 찾았다가 두 달 넘도록 뇌사에 빠져 있는 안타까운 사연도 그래서 발생했다.

여고생에게 닥친 비극

지난해 11월 20일 강원도 삼척에 사는 장미선(18)양은 어머니 조성란(50)씨의 손을 잡고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G성형외과를 방문했다. 평소 어머니를 졸라 대학교에 들어가기 전 성형수술을 하기로 약속한 터였다. 장양은 인터넷에서 광고를 보고 G성형외과를 선택했다. 유명 연예인이 직접 광고를 하는 데다 성형 후기도 많아 망설임 없이 골랐다.

우리나라는 인구 대비 성형수술 비율 세계 1위인‘성형공화국’이다. 사건이 발생한 G성형외과는 서울 강남 중심가에 21층(지상15층, 지하6층) 전체를 병원으로 사용하는 대형 병원이다. 이혜영기자
첫 상담을 받는 날, 모녀는 병원 안내 직원의 친절한 설명에 따라 간단한 사항을 체크했다. 개인 신상정보를 비롯해 원하는 수술 부위, 과거 병력, 알레르기 여부, 복용 약물 등을 적었다. 장양은 눈과 코를 수술하려고 했다. 병원 코디네이터가 약 10여분간 눈은 어떻게 만드는 게 예쁜지, 코는 어떻게 높이는 게 예쁜지 설명한 후 조모 원장을 연결해줬다. 모녀는 조 원장을 만나 약 5분간 수술에 대해 설명을 들었고, 수술 날짜를 잡았다.

12월 9일 오후 3시30분, 모녀는 수술을 위해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성형외과를 찾았다. G성형외과가 신사옥 문을 연 날이었다. 본래 이날 오전 11시 압구정점에서 수술을 받으려고 했지만, 사나흘 전 수술 장소와 시간이 변경됐다는 문자를 받았다. 병원에 도착한 모녀는 떨리는 마음으로 수술받을 준비를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장양은 어머니와 함께 대학생활에 대한 얘기를 나누며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예정된 수술 시간은 세 시간 남짓이지만, 날이 어둑어둑해져도 수술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예정 시간을 넘자 초조해진 조씨는 병원 안내데스크를 찾아 딸의 수술 경과를 물었다. 병원에서는 "마취가 잘 되지 않아 수술이 좀 더 걸린다"며 "기다려 달라"고만 했다.

조씨는 밤 10시 50분께 강남성모병원 응급실에서 딸을 만날 수 있었다. 장양은 이미 20~30분 전에 의료진, 병원관계자와 함께 응급실에 실려 온 뒤였다. 조씨는 "병원에 도착하니까 온몸이 딱딱하게 굳은 딸이 누워 있었는데,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았다"면서 "딸은 이미 의식이 없었고 조 원장은 내게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고 했다.

"미선이를 살려 주세요"

두 달이 지났지만 장양의 의식은 돌아오지 않고 있다. 그나마 입술을 살짝 움직인다거나 얼굴을 찡그릴 정도의 움직임을 보인다는 게 위안이다. 속을 새까맣게 태운 아버지 장대영(50)씨는 생업을 마다하고 서울과 삼척을 오가며 동분서주하고 있다. 장씨는 "처음 병원에 왔을 땐 딸아이가 금방 깨어날 것 같아서 주변에 알리지 않았다. 평소 감기몸살도 앓는 법이 없을 정도로 튼튼한 아이였다. 시간이 흐르고 의료진이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을 했을 땐 눈앞이 캄캄했다. 지금까지 잘 버텨주는 미선이가 얼른 의식을 차리는 게 유일한 소원"이라고 말했다.

장양의 안타까운 사연은 친구들이 나서면서 알려졌다. 지난 11일 삼척의 고등학교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졸업식을 치러야 할 장양의 친구들과 담임교사, 장양 부모의 지인 등 80여 명이 고속버스 두 대를 대절해 강남 신사동 가로수길 앞에 모였다. 이들은 G성형외과 앞에서 이번 사건 해결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장양의 졸업사진이 붙어 있는 피켓에는 '미선이를 살려주세요'라는 절절한 호소가 적혀 있었다. 집회 소식이 SNS와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병원 측은 두 달 간의 병원비를 대납했다.

의식불명 상태… 왜?

장양의 가족들은 '전신마취로 인한 의료사고'를 주장하면서 의료진과 병원을 검찰에 고발했다. 장씨는 "병원이 부분마취 동의만 받은 상태에서 수술 중 전신마취를 했는데 응급실에 실려 올 때까지 딸은 마취에서 깨지 못했다"면서 "사고 당시 일곱 시간이 넘도록 병원에 있었지만, 그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직도 모르겠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통상 세 시간 안에 끝날 수술이 일곱 시간을 끌 만큼 심각한 상황이 벌어졌지만, 병원 측의 미흡한 조처로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시기를 놓쳤다는 얘기다.

한 업계 관계자는 "담당 의사는 페이닥터(월급의사)였다. 의료사고가 처음이라 몹시 괴로워하다 사표를 제출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조 원장 측 변호인은 "전문의 자격증은 2009년에 취득했다"면서 "G성형외과에 근무한 게 1년 4개월 정도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장양의 수술을 담당한 조 원장이 급작스럽게 퇴사하면서 의혹이 커졌다. 장씨는 "조 원장은 수술 직후 일주일 가까이 밤낮으로 병실을 찾아왔지만 지금은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G성형외과 관계자는 "조 원장은 1월 초 퇴사했다"면서 "잠적설은 사실이 아니며 현재 변호사를 선임해 향후 있을 소송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각종 의혹에 대해 G성형외과 측은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이 관계자는 "경찰조사가 진행 중이어서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집도의나 마취과 원장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얘기하고 있다. 현재 장양이 입원한 강남성모병원에서도 소견서가 나오지 않았다. 인과관계를 알 수 없어서 병원으로선 답답한 면이 있다. 장양의 치료가 우선이므로 부모님과 이 부분을 상의하고 있다. 앞으로 있을 조사에는 성실히 임하겠다"고 답했다.

'목숨 건' 성형수술


수술사고 가장 많이 발생

김지현기자

성형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지만 가장 많은 수술 사고가 발생하는 분야다. 한국소비자보호원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3년 8월 사이에 접수된 의료분쟁 328건 중 성형수술은 71건으로 의료사고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실제로 조금 더 예뻐지려다 목숨을 잃거나 위협받는 일이 종종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3월, 충북 청주의 한 성형외과에서 눈과 코 성형 수술을 받았던 여대생 김모(당시 22)씨가 의식불명에 빠진 지 8일 만에 목숨을 잃었다. 마취를 받던 중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이상증세를 보이다가 혼수상태에 빠졌고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 40대 여교수가 수면마취 상태에서 모발이식 수술을 받다가 사지가 마비되고 의식불명에 빠져 11개월째 병상에 누워 있는 사연도 있다. 지난해 12월 가족들이 사전에 수면마취 위험성을 자세히 알리지 않았다며 의료진을 고소하면서 알려졌다.

'성형사고' 경각심 키워야

성형사고가 끊이지 않는 이유가 뭘까. 성형외과 전문의가 아니어도 의사 면허증만 있으면 누구나 성형수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돈이 된다는 이유로 전문성이 턱없이 부족한 의사들이 너도나도 성형수술에 뛰어들고 있다. 마취 전문의를 두지 않거나 응급 의료 장비를 갖추지 않은 성형외과도 많다. 미(美)를 다루는 수술인 탓에 일반 수술에 비해 부작용이나 수술 위험성을 고지하는 데 병원이 소홀한 측면도 있다.

전문가들은 성형외과 내에 마취가 전문의가 상주하는지, 응급 상황에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수술 동의서를 작성하기 전에 약관을 꼼꼼하게 읽은 뒤 수술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해 의료진에게 충분히 질문하고 답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불친절한 성형외과 대신 환자 스스로 의료사고에 대한 인식 수준을 높이는 게 필요한 셈이다.



김지현기자 hyun1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