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번호로 노력 없이 부자 되자

1970년 태어나 벌써 45세가 된 우편번호. 우편물 구분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태어난 우편번호는 손편지의 자리를 이메일이 대체하게 되면서 점차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있다. 그러나 잊혀가는 우편번호를 이용, 새로운 사업을 준비 중인 사람이 있다. 감사원 내부고발자로 우리나라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현준희씨가 그 주인공이다. 내부고발자 1세대이자 국내 최초의 게스트하우스 운영자이기도 한 현씨가 그동안 밟아온 궤적은 어떠했으며, 우편번호를 이용해 시작한다는 사업은 무엇일까. 4일 서울시 계동의 '서울 게스트하우스'에서 현씨를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오랫동안 '거악'과 싸워

1996년 당시 감사원 6급 직원이었던 현준희씨는 "효산그룹이 수도권정비심의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경기도 행정심판위의 결정으로 콘도사업 허가를 받아 수백억원대의 부당이득을 얻었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했다. 현씨의 고발로 촉발된 검찰 수사 결과 장학로 전 청와대 부속실장이 6,000만원을 받은 것과 김영삼 전 대통령 측근들이 연루돼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결과적으로 YS정권의 도덕성에 큰 흠집이 났다.

이후 현씨는 허위사실을 폭로해 공직자 품위와 감사원 명예를 손상시켰으며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외부에 누설했다는 이유로 19년간 몸담았던 직장에서 파면당했다. 또한 현씨는 감사원 간부에 의해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했고, 2008년 무죄가 선고될 때까지 12년간의 법정투쟁을 벌여야만 했다. 1세대 내부고발자로 오랫동안 국가의 폭력에 시달렸던 그가 되찾은 것은 명예뿐이었다.

이와 관련, 현씨는 "국가라는 거대한 조직과 오랫동안 싸워오면서 쉽지 않은 나날을 보냈다"며 "'거악(巨惡)'과 싸우기 위해 결과적으로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깨닫게 됐다"고 밝혔다.

자신이 운영 중인 '서울 게스트하우스'에서 인터뷰한 현준희씨. 이혜영기자
국내 최초의 게스트하우스 차려

현준희씨는 국내 최초의 게스트하우스인 '서울 게스트하우스'의 운영자이기도 하다. 서울 게스트하우스는 현씨가 내부고발로 직업을 잃고 건강식품, 학습지 방문판매, 휴대폰 영업사원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던 2000년 초, 부인의 제안으로 만들어졌다.

처음 두 달 동안 손님이 하나도 오지 않는 등 게스트하우스 설립 초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러나 점차 입소문을 타며 외국인 관광객들의 필수코스가 된 현씨의 게스트하우스는 세계 배낭여행족들의 교과서 <론리플래닛>에 '한국에서 꼭 들러봐야 할 숙소'로 소개되는 등 국제적인 명소가 됐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한옥임대차 기간 조정 및 사업자 공모 문제로 서울시, SH공사와 소송을 벌이며 피로감이 쌓인 데다 홍대에 게스트하우스가 대거 조성되며 사업 자체를 유지하기 어려운 지경까지 몰린 것이다. 현씨는 "게스트하우스 운영만으로는 더 이상 생활을 영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우편번호를 이용한 사업을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구 무한창조로 창조경제 달성

현준희씨가 새로운 사업 아이템으로 우편번호를 떠올린 것은 2000년 초부터였다고 한다. 미국의 우편번호 격인 Zipcode가 슈퍼마켓, 주유소 등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용되는 것을 보고 이를 활용한 사업모델을 오래도록 고민했다는 것이다.

현씨가 새로 시작하는 사업 'Ziptto'는 기존 온라인 사업 운영에 따라 발생하는 수익을 우편번호를 이용해 배분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우선 인터넷을 이용한 온라인 사업자가 특정 우편번호에 대응하는 가상의 지역을 수혜자에게 불하하고,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소비자가 물품 구매 등으로 매출을 발생시킬 경우 그에 해당하는 수익의 일부를 수혜자에게 배분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보면 더욱 간단하다. 우선 온라인 쇼핑몰 A사가 자사의 기준대로 135-534(서울시 강남구 도곡동 467번지 타워팰리스)의 우편번호를 수혜자인 B씨에게 나눠준다. 이후 해당 타워팰리스의 거주자인 C씨가 A사의 물품을 주문하면 그에 해당하는 마일리지가 B씨 명의로 쌓인다. 다시 말해 A사가 임의로 불하한 우편번호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면 해당 우편번호의 지역에서 발생하는 수익의 일부를 '아무런 노력 없이' 가져가는 셈이다. 물론 온라인상 우편번호 불하 기준이나 기간은 A사가 임의로 정할 수 있다.

이 같은 방식의 흥미로운 점은 발생하는 수익이 지역에 따라 급격하게 차이 나는 만큼 온라인상 우편번호의 가치도 천차만별로 달라진다는 점이다. 온라인 쇼핑몰을 자주 이용하는 강남지역의 우편번호와 한 달에 한 번 이용할까 말까 한 강원도 두메산골의 우편번호의 가치는 '하늘과 땅 차이'이다. 이는 좀 더 좋은 우편번호를 불하받기 위해 수혜자 간 경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후죽순 난립하며 비슷한 방식으로 경쟁하는 온라인 사업자들에게 현씨의 사업모델은 기존 고객의 충성도를 높이고 신규 고객을 유인하는 획기적인 마케팅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를테면 연간 거래액수가 크거나 거래횟수가 많은 고객들을 대상으로 주요 지역을 불하, 그에 해당하는 수익을 나눠주겠다고 하며 더 많은 고객들을 유치하는 식이다. 새로운 방식이니만큼 흥미를 느끼는 신규 고객 유치도 수월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온라인 사업자의 선택에 따라 현재의 마일리지 방식을 아예 대체할 수도 기존 방식과 공존할 수도 있다.

수익이 많이 발생하는 주요 지역 우편번호의 경우 아예 추첨을 통한 경품으로 제공할 수도 있다. 해당 지역에서 향후 발생하는 수익의 일부를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으니만큼 자동차 등 기존 경품들보다 높은 참여도가 예상된다.

사회환원의 형태로도 활용 가능하다. 수익이 많이 나는 지역의 우편번호를 고아원, 양로원, 복지관 등 사회적 돌봄이 필요한 기관에 불하해 지속적으로 수익의 일부를 가져갈 수 있게 한다면 기존처럼 일회성에 그치는 사회환원보다 더욱 의미있는 일이 될 수 있다. 이는 해당 우편번호에 거주하는 지역민들에게도 좋은 이미지로 비춰져, 더욱 많은 매출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현씨는 "과거 인터넷으로 물건을 살 수 있다고 하면 아무도 믿지 않았겠지만 그것이 현실로 이뤄졌다"며 "앞으로 온라인 사업자들이 영업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우편번호를 이용해 공돈을 주는 마케팅을 펼쳐야 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어 현씨는 "특정 지역의 우편번호를 온라인 사업자마다 각각의 기준대로 불하할 수 있으니 지구를 무한창조하는 셈이 아니냐"라며 "현재 IT업계 전문가들과 사업의 타당성, 향후 진행방향 등을 논의하고 있는 만큼 빠른 시일 안에 가시적인 형태로 나타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현준기자 realpe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