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해체에 순위 하락까지… IMF 외환위기 이후 사상 최대 전망공정위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STX, 동양, 웅진 순위권 밖 예상'한진도 10위권 밖으로 밀릴 가능성… "자산 중요치 않아" 지적도 커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할 올해 재계 순위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STX, 동양 등 굵직한 그룹들이 2013년을 거치며 산산조각난 데다 구조조정으로 계열사나 보유 자산을 매각하는 곳도 그 어느 때보다 많았던 까닭이다. 특히, 지난 몇 년간 큰 변함이 없었던 10대 그룹도 적지 않은 자리바꿈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라 결과가 더욱 주목된다.

순위에서 밀릴까 노심초사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2014년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관련 자료를 공개하는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 공정위는 매년 4월 1일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인 기업집단을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으로 지정ㆍ발표한다.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에 선정될 경우 계열사 간 상호출자 및 채무보증이 금지되고 소속 금융ㆍ보험사의 의결권 행사가 제한되며 공시의무를 부담하게 된다.

공정위가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을 발표하는 이유는 해당 기업집단들에 관한 정보의 공개를 강화, 시장의 감시시스템을 활성화하기 위함이다. 자연히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들의 자산 및 부채 현황, 매출과 당기순이익 규모 등이 발표의 주된 내용이 된다. 그러나 본래의 목적만큼이나 주목되는 사안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자산총액을 기준으로 한 재계 순위다.

공정위가 공개하는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관련 자료는 소위 말하는 10대 그룹, 20대 그룹, 30대 그룹을 나누는 기준이 된다. 같은 회사라도 10대 그룹에 속했을 때와 20대 그룹으로 밀려났을 때의 위상은 큰 차이를 보이게 마련이다. 주요 그룹 관계자들이 "회사의 덩치가 중요한 때는 지났다"고 하면서도 매년 이맘때가 되면 신경을 쓰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 어느 해보다도 부침이 많았던 2013년이었던 까닭에 재계 순위의 변동폭도 IMF외환위기 이후 사상 최대치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해체수순을 밟은 STXㆍ동양그룹은 물론, 재무건전성 위기를 겪고 있는 한진ㆍ동부ㆍ현대그룹 등의 순위가 크게 하락할 예정이다.

그룹 해체로 순위권 밖으로 밀려

2013년 재계를 강타한 가장 충격적인 소식은 STX그룹의 해체였다. STX그룹은 지난해 공정위 발표까지만 해도 24조3,000억원의 자산을 보유 재계 13위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었다. 2007년 세계 최대의 크루즈선 건조사인 아커야즈(STX유럽)을 인수하며 2008년 재계 15위로 수직상승했던 STX그룹은 이후 13위까지 꾸준히 순위를 올린 뒤 자리를 지켜왔다.

그러나 무리한 M&A와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조선ㆍ해운 업황 악화에 시달리던 STX그룹은 지난해 자산 8조원을 웃도는 핵심 계열사인 STX조선해양을 비롯해 STX중공업, STX엔진, STX팬오션 등 주력 계열사들이 채권단 자율협약 또는 법정관리행을 택하며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았다.

지주사인 ㈜STX와 STX엔진 등 남은 계열사의 자산을 모두 더해도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의 기준인 5조원에는 못 미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STX, STX중공업 등이 완전 자본잠식상태로 상장폐지 위험에 처한 데다 강덕수 STX그룹 회장의 재판까지 겹친 상태라 부활조차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지난해 재계순위 38위에 올라있던 동양그룹도 '순위권 밖'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만기를 앞둔 기업어음(CP)과 회사채를 상환하지 못하고 ㈜동양을 비롯해 동양레저, 동양시멘트, 동양인터내셔널, 동양네트웍스 등이 법정관리를 신청, 주요 계열사 및 보유자산을 서둘러 처분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양그룹은 지난해 12월 동양생명과 동양자산운용을 계열분리했고 동양증권도 대만의 유안타증권에 매각을 결정한 상태다.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또한 사기성 CP 발행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터라 동양그룹의 공중분해가 멀지 않았다는 얘기까지 비중있게 나오고 있다.

2012년부터 계열사를 매각하고 있는 웅진그룹도 올해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웅진코웨이, 웅진케미칼, 웅진식품 등을 잇달아 팔아치운 웅진그룹은 지난해 재계순위가 31위에서 48위로 떨어졌다. 웅진홀딩스, 웅진씽크빅, 북센 등만 남아 수익성, 재무건전성은 오히려 나아졌다고도 볼 수 있는 상황이지만 올해부터는 아예 순위에도 오르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구조조정으로 순위 밀릴 예정

구조조정 및 자산 매각을 추진, 내년에는 재계순위가 대폭 하락할 것으로 보이는 그룹들도 있다. 동부그룹, 현대그룹, 포스코 등이 그 주인공이다.

동부그룹은 동부하이텍, 동부메탈, 동부제철 인천공장 및 당진항만 등 3조원에 달하는 자산을 매물로 내놓은 상태다. 유동성 위기설이 비중있게 회자되자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이 평생의 꿈이었던 반도체까지 내려놓게 된 것이다. 지난해 재계순위 17위에 올라있던 동부그룹의 자산은 17조1,000억원 규모였다. 주요 자산을 매각 자구노력이 성공적으로 끝날 경우 3~4계단의 순위 하락은 불가피해 보인다.

현대그룹도 3조3,000억원 규모의 고강도 자구계획을 내놓은 상황이다. 순환출자구조의 주요 연결고리이자 주력 계열사인 현대상선을 살리기 위함이다. 현대증권, 현대자산운용, 현대저축은행 등 금융3사를 매각하고 반얀트리 호텔 등 국내외 부동산은 물론 각종 유가증권과 항만, 선박까지 매물로 내놓았다. 최근에는 현대상선의 LNG 운송사업부문 매각을 추진, 본계약 성사를 코앞에 둔 상황이다. 지난해 4월 기준, 15조원의 자산을 보유한 현대그룹의 재계순위는 21위였다. 계획하고 있는 자산 매각이 진행될 경우 4계단의 순위 하락이 예상된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을 새 사령탑으로 맞은 포스코도 자산 매각과 사업 구조조정에 나선 상태다. 지난 14일에 열린 취임식에서 권 회장은 "신사업에 투자를 너무 방만하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며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이 무분별하게 시작한 사업들을 정리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바 있다. 다만 재계 순위에서 바로 아래에 위치해 있는 현대중공업그룹, GS그룹과의 자산 규모 차이가 25조원 가까이 나는 터라 순위 자체가 떨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진그룹 10위권 밖으로 밀릴까

1조원 차이로 순위가 갈리는 까닭에 수시로 자리바꿈을 하는 중ㆍ하위그룹과는 달리 10대 그룹의 경우 지난 몇 년간 각자의 자리를 고수해왔다. 롯데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이 포스코, GS그룹을 각각 제치며 한 계단 올라선 것 이외에는 별다른 변동이 없었던 것이다. 소위 빅4로 불리는 삼성ㆍ현대차ㆍSKㆍLG그룹의 경우 10년도 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룹별로 자산 규모의 차이가 적지 않은 까닭에 굵직한 M&A가 있다 해도 순위변동은 거의 없었다. 실제로 2011년 현대차그룹의 현대건설 인수와 SK그룹의 하이닉스 인수, 2012년 롯데그룹의 하이마트 인수 등이 있었지만 해당 그룹들이 순위를 올리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다를 것으로 보인다. 재계 순위 9위에 올라 있던 한진그룹이 10위권 바깥으로 밀려날 것으로 보이는 데다 GS그룹은 한 계단 올라설 것으로 보이는 까닭이다.

지난해 한진그룹은 한진해운, 대한항공 등 주요 계열사의 유동성 위기 해소를 위해 S-oil의 지분 28.41%를 포함해 3조5,000억원 수준의 자산을 매각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구조조정 계획이 이행될 경우 38조원이던 한진그룹의 자산은 34조원으로 줄어들어 한화그룹과 KT에 이어 11위로 밀려나게 된다. 최근 10여 년 간 한진그룹이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던 때는 2008년이 유일하다.

STX에너지를 인수한 GS그룹이 현대중공업그룹을 제치고 재계 순위 7위를 차지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해 4월 기준 현대중공업그룹의 자산은 56조5,000억원으로 GS그룹(55조2,000억원)을 소폭 앞섰다. 그러나 지난해 말 GS그룹이 1조6,800억원에 달하는 STX에너지를 인수한 상황이라 올해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발표 때는 현대중공업그룹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GS그룹과 현대중공업 그룹은 2008년부터 매년 엎치락뒤치락하며 7위 경쟁을 벌이고 있다.

덩치 아닌 효율성 기준돼야

재계 일각에서는 자산을 기준으로 하는 그룹별 순위 매기기에 대한 문제제기도 나오고 있다. 더 이상 그룹의 '덩치'가 중요한 시대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이는 자산이라는 비교기준이 지니는 맹점 때문이기도 하다. 회계에서 자산은 자본과 부채의 합을 의미한다. 재무건전성이 위협받을 정도까지 부채가 많아지더라도 자산 자체가 많기 때문에 재계 순위는 흔들리지 않는다. STX그룹이 무분별한 외형 확장으로 재계 순위 13위에 올랐지만 막대한 부채를 이기지 못한 나머지 결국 해제 수순을 밟은 사실은 자산 기준 줄세우기가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보여준다.

이에 대해 한 재계 관계자는 "부채비율, 유동비율 등 회사 운영에 있어서는 재무건전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들 인지하고 있다"며 "재계 순위의 기준을 자산으로 잡는 것은 양적 성장 시대의 산물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