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스? 외국 기업에 자리 내줄라불륜이나 개인 뒷조사는 '옛말'… 기업 관련 비리 색출이 주 업무미국·영국은 탐정산업도 기업화… 외국 탐정들 국내 진출 봇물 우려

사진=이혜영기자
SBS드라마 <신의선물-14일>에서 배우 조승우(기동찬 역)는 전직 경찰 출신의 흥신소 사장이다. '묻지마 서포터즈'라는 이름의 흥신소에서는 주로 불륜 현장을 잡거나 떼어 먹은 돈을 찾아 온다. 그러던 중 이보영(김수현 역)의 의뢰를 받고 연쇄살인범과 유괴범을 쫓으면서 뛰어난 수사력을 보여준다. 조승우는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오가며 모은 각종 증거를 경찰에 제공해 범인을 잡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이 드라마에서 조승우는 셜록 홈즈나 다름없는 추리력을 과시하지만 단 한번도 '탐정'이라는 명칭이 등장하지 않는다. 현행 신용정보보호법상 '탐정' 명칭을 사용하는 일은 범법 행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국내에서도 '탐정'을 볼 수 있게 됐다. 정부는 최근 사립탐정인 '민간조사원(Private Investigator)'양성화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음성적으로 활동해온 민간 조사업이 정부 육성 산업으로 꼽히면서 관련 업계가 들썩이고 있다.

사립탐정법 '제자리 걸음'

○○행정사무소, ○○경호경비, ○○물산, ○○상사 …. 모두 자칭 타칭 '탐정'들이 운영하는 사무실이지만 '민간 조사'업무 내용을 자신 있게 알린 곳은 단 한곳도 없다. 합법적인 직업으로 인정받지 못한 탓이다. 오히려 일반인에겐 심부름센터나 흥신소라는 이름이 더 친숙하다. 간혹 기업화된 곳도 있다. 하지만 직접 사건 조사를 의뢰 받는 건 불법이므로 변호사 사무실을 통해 수임하거나 경비경호 용역을 받는 형태로 운영된다.

민간조사원 합법화 관련 법안은 15년째 제자리 걸음이다. 1999년 15대 국회에서 당시 한나라당 하순봉 의원이 '공인탐정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지만 상정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17대 국회에선 이상배 한나라당 의원과 최재천 민주당 의원이 '민간조사법안'을 발의했다. 이후 이인기, 강성천 한나라당 의원 등이 개정법률을 내놓았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19개 국회에서는 윤제옥 새누리당 의원이 '경비업법개정안', 송영근 새누리당 의원이 '민간조사업에 관한 법률'등을 제출했지만 모두 계류 중이다.

긴 세월 동안 진전이 없는 이유가 뭘까. 일단 불법과 탈법을 동원한 사생활침해 우려 등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다. 실제로 일부 흥신소나 심부름센터의 불법적인 업무 행태는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첨단기기를 이용한 도·감청과 위치추적은 물론 스마트폰 정보까지 빼내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변호사들과 인권단체들은 사생활 침해 우려를 지적하면서 민간조사원이 합법화될 경우 심부름센터의 부작용이 확산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민간조사업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하금석 대한민간조사협회 회장은 "OECD 가입 34개 국가 중 민간조사업이 불법으로 묶여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 뿐"이라면서 "민간조사원은 경찰의 만성적인 수사인력 부족을 해결할 수 있고, 합법화가 된다면 불법적으로 운영됐던 심부름센터나 흥신소를 관리 감독할 수 있게 돼 불법 행태가 오히려 크게 줄어 들 것"이라고 반박했다.

"기업에서 탐정 찾아요"

사립탐정, 즉 민간조사원이 하는 일은 뭘까. 대개 부부간의 불륜 증거를 수집하거나 개인의 뒷조사를 하는 것이 민간조사원의 주된 업무라고 예상하겠지만 이들의 업무 영역은 예상보다 넓다. 보험조사원처럼 보험사기를 조사하거나 '조상 땅 찾기' 등 부동산 전문 조사원도 있다. 정치인들이 찾기도 한다. 지방에서 활동하는 민간조사원 A씨는 "요즘처럼 지자체 단체장이나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철이면 무척 바쁘다"면서 "상대 후보가 음식을 제공하거나 돈을 뿌리는 등 선거법 행위를 포착해달라는 의뢰가 많이 들어온다"고 귀띔했다.

최근 들어 민간조사원의 업무로 각광 받는 분야는 '기업 조사'다. 같이 일하기로 한 파트너 회사가 혹시 사기꾼은 아닐까 고민이 된다면 탐정에게 '검증'을 부탁하는 형태로 이뤄진다. 기업 조사 전문으로 활동중인 민간조사원 B씨는"각종 증거 자료를 모으고 수집하는 일은 엄연한 전문 분야로 일반인은 하기 어렵다"면서 "기업 내에서 해결할 수 없는 산업스파이 조사나 내부고발자를 찾는 등의 의뢰가 들어온다"고 말했다.

외국계 기업 진출 발판?

'기업 전문' 탐정은 외국에서는 이미 일반화된 업종이다. 최고의 기업 염탐꾼으로 꼽히는 줄 크롤(Jules Kroll)dl 1972년 설립한 '크롤'은 세계 최대의 기업탐정회사다. 기업리스크 컨설팅을 주 업무로 홍보하고 있는데 기업 정보 조사를 비롯해 기업 내부 비리 색출, 보안 경비 업무까지 도맡아 기업 내부를 속속들이 궤뚫고 있다.

대표적인 탐정업체인 미국의 크롤의 장기는 기업 뒷조사다. 전직 경찰, 검찰, 금융전문가, 기업전문 변호사, 탐사보도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탄탄한 전문가들이 기업 내부 사정을 속속들이 파헤친다. 보통 인수합병을 앞두고 잠재적 사업 파트너의 뒷조사를 통해 사업 안정성을 '검증'하는 일을 주로 맡고 있다. 최근에는 기업들이 공개하는 회계자료를 믿을 수 없어 이를 검증하는 의뢰도 늘고 있다. 기업 내 직원비리나 산업스파이 색출 등도 꾸준한 업무다. 탐정을 찾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크롤을 비롯해 핑커톤, FTI 등 탐정 업체의 매출은 상당한 수준으로 알려졌지만, 정확한 공개는 꺼리고 있다.

민간조사업이 합법화되면 국내에도 외국 탐정업체들의 진출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크롤의 경우 전세계 29개국 50개 도시에 사무소를 두고 있고 2,000여명을 고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외국계 대형 로펌들이 국내 법률시장을 장악하면서 벌어지는 현상을 탐정업계도 답습할 것으로 보고 있다. 외국 탐정업체들이 외국 로펌과 손잡고 한국 시장을 장악하는 건 시간 문제라는 우려다. 이에 대해 하 회장은 "몇 조원 규모로 성장할 수 있는 탐정 산업 자체를 막아놓은 규제를 풀어야 국내 업계가 숨을 쉴 수 있지 않겠느냐"면서 "국내 전문가들이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현기자 hyun1620@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