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의 제2법칙'에 남은 직원들 덜덜

KT 사옥과 황창규 KT 회장(작은 사진).
KT 명예퇴직 대상자로 분류된 김정근(가명)씨의 자리 부근에는 언제부턴가 물품보관용 종이박스가 놓여 있다. 어차피 떠날 것인데 짐을 쌀 때 쓰라고 준비한 사측 나름의 배려인 듯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사장을 비롯한 상급자들은 번갈아 김씨를 불러내 명예퇴직 신청서를 내지 않는 이유를 물어보고 "계속 이러면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며 압박한다. 비슷한 과정을 겪은 지사 내 명예퇴직 대상자들은 이제 한 명도 남지 않았다. 김씨 또한 보복성 발령으로 인해 얼마 안 있어 지방으로 내려가야만 한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전 국민이 비통에 빠져있는 요즘, KT가 역대 최대 규모의 구조조정을 단행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전 직원의 3분의 2 수준의 직원들을 특별 명예퇴직 대상자 명단에 올려놓고 그중 절반으로부터 신청서를 받아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단일기업으로는 역대 재계 최고 수준의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동안 KT가 명예퇴직 대상자들에 대해 저지른 만행들이 하나둘씩 드러나며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 황창규 KT 회장의 전적을 감안, "매년 직원을 절반으로 줄이는 '황의 제2법칙'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비용 줄이기 위해 구조조정 강행

KT가 특별 명예퇴직 희망자를 받는 등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나선 것은 지난 10일부터다. KT에 따르면 원래의 접수 마감일인 21일까지 총 8,320명이 명예퇴직 신청서를 제출했다. 지난해 말 기준, KT의 직원 수가 3만2,451명인 점을 감안하면 불과 열흘 만에 전체의 25.6%가 명예퇴직을 신청한 셈이다. 이는 1998년(5,184명), 2003년(5,505명), 2009년(5,992명) 있었던 대규모 구조조정과 비교해도 월등한 수준이다. 접수 마감일을 연기한 까닭에 명예퇴직자의 최종 인원수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21일 집계된 수와 큰 차이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KT 측은 이번 구조조정에 대해 고비용 저효율의 인력구조를 효율화하고, 젊고 가벼운 조직으로 체질 개선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본래 공기업으로 출발했던 KT는 SK텔레콤, LG유플러스 등 경쟁사들과 비교해 큰 덩치 때문에 골치를 썩여왔다.

지난해 말 기준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의 직원수는 각각 4,192명, 6,780명에 불과하다. 단순비교하기는 어렵지만 KT의 직원수가 경쟁사를 합친 것보다 3배 가까이 됐던 셈이다. 직원들의 급여 수준도 상대적으로 높아 경쟁사들보다 매년 1조5,000억원 가량의 인건비가 더 들었다고 전해진다. KT 측의 예상대로 이번 구조조정으로 매년 약 7,000억원의 인건비가 절감된다면 신임 회장으로서는 한 번 해볼 만한 도전이었던 셈이다.

폭력적인 방식으로 사실상 권고사직

문제는 회사 차원에서 필요한 구조조정이었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이 더없이 폭력적이었다는 점이다.

KT 측은 "황창규 회장의 구조조정은 이석채 전 회장 때와 달리 직원들이 명예퇴직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며 "신청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불이익은 전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특별 명예퇴직 대상자에 오른 이들의 설명은 이와 달랐다. 한 KT 직원은 "명예퇴직 대상자가 신청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지사장부터 팀장까지 상급자들이 돌아가면서 호출해 그만둘 것을 강요했다"며 "계속 버틸 경우 지방으로 발령 나서 평생 안 해본 일을 하게 될 텐데 그보다는 조건이 괜찮은 지금 나가는 게 낫지 않겠냐고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은 "명예퇴직 대상자 옆자리에 아예 물품보관용 종이박스를 놔두고 나갈 것을 종용했다"며 "책상, 사물함 속의 짐을 정리하고 차량, 장비 등도 반납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일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KT가 명예퇴직 유인책으로 내세운 자회사들에 대한 재취업 보장에 대해서도 논란이 크다. KT에 따르면 명예퇴직자들은 원할 경우 KT M&S, ITS(고객서비스법인)에 2년간 재취업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최대 연봉 2,500만원의 비정규직인 데다 만약 재취업을 선택할 경우 명예퇴직금 가운데 4,000만원 가량이 삭감되는 터라 사실상 큰 의미가 없다. KT새노조 측에서 "언론플레이에 불과할 뿐 실효성은 전무하다"고 지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KT 명예퇴직자 중 재취업을 선택한 인원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 큰 문제는 이번 구조조정이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KT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KT는 적정 직원수를 8,000명 이하로 판단, 상시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할 전망이다. 성과에 따라 임금을 삭감하거나 면직 및 퇴직을 종용하는 것이 계속될 예정이다.

'황의 제2법칙' 시작될까

이와 관련, KT 내부에서는 "삼성 출신의 신임 회장이 가장 악랄한 방식으로 삼성 DNA를 이식하려는 것"이라는 얘기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철저한 성과주의 체제로 운영되는 삼성의 문화에 익숙한 황창규 회장이 삼성식 구조조정을 통해 직원들을 내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황 회장이 최근 몇 달간 삼성 출신 관리자들을 불러모은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특히 김인회 전 삼성전자 상무를 재무실장(전무)으로 영입, KT의 곳간열쇠를 맡긴 점이나 최성식 전 삼성생명 전무에게 구조조정 전략을 주도하는 경영진단센터를 이끌게 한 점이 주목된다. '명예퇴직을 통해 인건비를 줄인다'는 이번의 구조조정 또한 두 사람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 결과로 해석된다.

KT 직원들 사이에서는 황 회장이 KT에서 '황의 제2법칙'을 만드는 것 아니냐는 씁쓸한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황 회장이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겸 메모리사업부장(사장)으로 있던 시절 반도체 메모리의 용량이 1년 마다 2배씩 증가했던 것처럼 앞으로 KT 직원수가 1년 마다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내용이다. 취임 석 달 만에 전체 직원의 4분의 1을 덜어낸 데다 앞으로도 상시적인 구조조정이 있을 것을 감안한다면 가능성은 충분하다.

특별 명예퇴직 신청을 받은 이후 KT 본사의 옥상 입구는 철사로 묶인 채 잠겨 있다. 혹시라도 있을 자살자에 대비한 조치다. 황 회장의 강력한 드라이브에 '비용'으로 처리, 회사를 떠나게 된 직원들이 더욱 분노하는 이유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