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도 팽목항에서의 1박2일

'세월호'여객선 침몰 사고 발생 열흘째인 지난 25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실종자 가족이 휴대전화를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장례라도 제대로 치르고 싶은데 DNA 검사다 뭐다 또 시간 허비
목놓아 외쳐 보지만 힘이 없어…

○○가 4층 숙소서 우리 애를 봤대… 우리 딸은 구명조끼도 안 입어…
차가운 스티로폼 위에 '풀썩'… 열흘째 체육관엔 하염없이 눈물만

"내 아들이 맞아요. 생김새도 키도 체형도 딱 내 아들이에요. 아침에 신고 나간 운동화도 그대로고 양말짝도 똑같은데 무슨 확인이 더 필요합니까. 이제 시신이 썩어 가. 내 아들놈도 이제 냄새가 난다고. 그런데 이 차가운 바닥에 다시 새끼를 두고 가라는 게 말이 돼요? DNA 검사 다 됐다더니 아직도 시간이 더 필요해? 자식이 썩고 있는데 눈 안 뒤집힐 부모가 어디 있어. 내 마음도 이렇게 문드러지는데."

'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 8일째로 접어든 23일 오후 5시께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의 임시 시신안치소 앞. 한 50대 아버지가 목청을 높여 소리를 질렀다. 무거운 적막만 감돌던 팽목항의 시선이 일제히 아버지에게 쏠렸다. 그는 "이제 애들이 살아 돌아올 거라 믿는 엄마아빠는 없다"면서 "그저 시신이 썩어 문드러지기 전에 장례라도 제대로 치르고 싶은데 그것도 욕심이냐"고 허공을 향해 물음을 던졌다.

이날 이곳의 부둣가는 시신을 실어 나르느라 온종일 분주했다. 오전에만 25구의 시신이 추가 수습됐고, 오후 2시 반 상황실 게시판에는 '사망자수 152명' 안내장이 붙었다. 아버지는 '1○○번. 남학생 추정. 아디다스 청바지 착용. 키 172cm. 보통체형. 긴팔 라운드 자주색 줄무늬 티셔츠. 아디다스 트레이닝복'이라고 적힌 신원 미상의 주검을 이제 막 확인하고 나서는 길이었다.

진도 팽목항에서 119 구조대원들이 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의 시신을 운구하고 있다. 중앙대4 박성수 제공
검게 그을려 버석버석해진 아버지의 얼굴은 슬픔도 분노도 가늠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저 마른 입술만 물어 뜯길 여러 번. 아버지의 고함을 듣고 기자들이 몰리자 그는 다시 힘겹게 입을 뗐다.

"새끼 찾으면 뭐해. 데려가질 못하는데. 정부 말이 맞는 게 하나도 없어. DNA 검사 몇 시간이면 충분하다더니 오늘은 또 며칠 걸릴지 모르겠대. 방송에서는 시신 안치할 병원도 마련해 놓고 헬기도 마련됐다고 하더니 엊그제 찾은 애들도 팽목항에 그대로 있어. 애들이 물에서 나와서도 갈 곳이 없다고. 오늘 못 데려가면 또 며칠을 붙잡아 놓을지 어떻게 알아. 내 새끼 이제서야 건져 놓고 뭘 잘했다고 또 시간을 잡아먹어. 또 얼마나 기다리라고."

목이 메는지, 그의 마지막 외침은 힘이 없었다. 주위에선 "그만해, 말해 봤자 뭐해 입만 아프지. 기자들이 제대로 쓰지도 않는다"면서 아버지의 축 처진 등을 두드렸다. 달려드는 기자들의 물음에 아버지는 "됐어, 그만합니다"라고 말한 뒤 가족대책본부를 향해 힘겨운 발걸음을 옮겼다.

이날 밤 10시께. 하루 종일 팽목항 부둣가에서 딸을 기다리던 박모(46)씨 부부도 두 손을 맞잡고 진도체육관으로 돌아왔다. 부부는 오늘 들어온 38구의 시신 중 딸이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졌지만 만나지 못했다.

"○○이가 마지막에 4층 숙소에서 우리 애를 봤대. 우리애가 식당에 있던 게 아니라 4층에 있었나봐. 근데 구명조끼 입은 건 기억이 안 난다는데 어쩌지? 난 지금까지 얘가 조끼 입고 있는 줄 알았는데 미치겠네."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정문 앞에 조문객들이 찾아와 기적을 바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아내는 딸의 친구가 보내온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며 심각해졌다. 박씨는 "내일 4층 수색 시작한다고 했으니깐 내일은 오겠네"라면서 "기다리면 내일 올 텐데 까짓 거 하루 더 못 있나"라면서 아내를 다독였다. 아내는 "구명조끼 안 입으면 시신이 안 떠오른다며. 그래서 못 건져준다며. 지금도 찾기 어려운데 조끼도 안 챙겨 입으면 어떻게 해. 얜 정말 어떻게 내 속을 이렇게 썩이니"라고 울상을 짓더니 차가운 스티로폼과 까슬까슬한 모포 석장 위에 풀썩 주저 앉았다.

다음날인 24일 새벽 6시, 과묵하게 앉아 아내를 다독이던 박씨가 주섬주섬 옷가지를 챙겨 입었다. 메마른 입으로 담배 한 개피를 피워 물며 팽목항으로 향하는 셔틀버스에 올라탔다. 박씨는 "어제 시신을 찾은 부모들 얘기를 들어보니 이제 부패가 시작됐다고 하는데 마음을 추스르기가 힘들다"면서 "그래도 애 엄마가 딸(시신)을 보는 것 보단 내가 보는 게 나을 테니 일찍 나가서 기다려야지"라고 말했다.

박씨는 정부도 언론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사고 첫날부터 사망자, 실종자 파악도 제대로 못해 우왕좌왕하던 정부의 사고대책본부. 그 사고대책본부의 발표를 그대로 옮겨 적는 언론에 진절머리가 난다고 표현했다.

박씨는 "아침부터 방송에선 소조기 마지막 날이라고 구조인력을 최대로 투입한다고 하는데 잠수사가 500명인지 600명인지 난 이런 말은 하나도 믿지 않는다"면서 "엊그제 찾은 애들은 장례 치르러 안산까지 갔다가 시신이 뒤바뀌질 않나, 장례식장이 없어서 떠돌지 않나, 다 준비됐다는 얘기 중에 맞은 이야기가 하나라도 있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앞에 나와서 거짓말 할 시간에 그저 애나 빨리 꺼내줬으면 좋겠다"면서 휴대전화 속 딸의 사진을 만지작거렸다. 이야기 내내 단호한 그의 표정은 분노보다 슬픔에 가까웠다.

세월호가 침몰한지 열흘에 가까워 오면서 실종자 가족들의 몸과 마음은 점점 지쳐가고 있다. 집을 떠나 차가운 체육관에 몸을 뉘인지 수일. 사고 이후 가족들은 사방이 훤히 뚫린 체육관 바닥에서 수십대의 카메라 플래시를 받으며 자신들의 고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세월호 침몰 사고'실종자 가족들이 머물고 있는 진도체육관의 모습. 중앙대4 박성수 제공
사고 첫날부터 실종자 가족들의 식사를 담당한 자원봉사자 강윤정(38)씨는 "이곳에선 제대로 끼니를 때우는 가족을 본 적이 없어서 내 배가 고프면 죄를 짓는 기분이 든다"면서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데 산 사람마저 송장처럼 만드는 곳이 이곳"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틀 째 자원봉사 활동 중인 약사는 "가족들은 이곳 게시판에 신원미확인 시신이 발견됐다는 안내장이 붙을 때마다 청심환을 꺼내 가곤 한다"면서 "마음에 난 생채기는 어느 약도 치료를 할 수가 없어서 마음이 무겁다"고 고개를 떨궜다.

하지만 실종자 가족들을 더 힘들고 지치게 하는 건 어느 하나 믿을 구석이 없다는 것. 사건과 관련된 정부기관, 지자체, 해경, 해군 등이 대책본부와 상황실을 설치했지만 아직도 가족들의 민원이 들어오면 관할을 두고 우왕좌왕할 뿐이다.

실제로 전날 아들을 찾고도 데려가지 못한 아버지는 인양된 시신을 확인하는 데만 수 차례의 절차를 거쳤다. 이 아버지는 "DNA 샘플은 벌써 며칠 전에 채취했으면서 지금까지 밟아야 할 절차가 또 남은 게 있다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 "내 자식이 죽은 게 맞냐고 돌아가면서 물으러 다녀야 되는 게 기가 막히다"고 말했다. 임시 시신안치소 앞에서 서성이던 한 학부모는 "대통령이 다녀가면 뭐해, 시스템이 후진데"라고 중얼거렸다.

더딘 수색작업은 실종자 가족들을 더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다. 사망자 수는 실종자 수를 훌쩍 뛰어 넘었고 여전히 100여명이 넘는 실종자가 남아 있다. 진도를 떠나는 가족이 많아질수록 남아있는 가족들의 초조함은 더해진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가족들은 이제 '구조'대신 '수색'이라는 단어를 쓴다. 그저 온전한 시신이라도 마지막으로 품어보고 싶다는 부모의 바람이건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세월호 사고가 국가적 재난으로 번진데 대해 정부는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당초 '전원구조'발표를 통해 실종자 가족을 우롱한 것도 정부였다. 사고 초기 '발 빠른 구조'를 강조했지만 거센 조류 탓에 구조 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궁색한 해명만 늘어 놓은 것도 정부다. 그러면서 조류가 가장 약해진다는 소조기(22~24일)에는 구조작업이 원활할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이마저도 가족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안산시 올림픽기념관에 마련된 합동 임시분향소를 찾은 여고생들이 조문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이제 팽목항의 가족들 사이에서는 시신이 부패하기 전에 찾아야 한다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그런 와중에 구조작업을 둘러싸고 각종 의혹이 터져 나왔다. 구조 지휘를 총괄하던 해경과 군 당국이 자신들의 주도권을 놓지 않기 위해 민간잠수사들을 배제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또한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측과 계약한 구조 업체 '언딘'이 구조 작업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들이 폭발했다. 체육관에 앉아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던 엄마들이 자리를 박차고 팽목항으로 달려온 것이다. 이날 오후 실종자 가족들은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과 김석교 해영경찰청장 등을 7시간 넘게 붙잡고 분통을 터뜨렸다. 지지부진한 구조작업을 둘러싸곤 터져 나온 각종 의혹을 하나씩 캐물었지만, 장관도 경찰청장도 침통한 표정만 지을 뿐 어느 누구 하나 속 시원한 답을 해주진 않았다.

"언제 구해 줄 거야. 내 새끼 물고기 밥 되고 나면 그제서야 할 거야"

한 엄마가 자리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내 애가 저 찬물에 열흘이 넘도록 불어 있어. 이제 얼굴도 못 알아보게 생겼는데 아직까지도 안 꺼내주고 뭐하느냐고."

"해경이야 해군이야 해수부야. 똑바로 정하란 말이야."

"야 기자! 여기서 말한 그대로 받아 써. 딴 말 하지 말고."

실종자 가족들은 여기저기서 저마다의 불만을 쏟아냈지만 어느 누구 하나 쉽게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엄마들의 울분을 지켜보던 한 아빠는 더 이상 자리를 지킬 수 없다는 듯 뒤돌아 서기도 했다. 멀리서 이들을 바라보던 자원봉사자들은 때때로 눈물을 훔쳤고, 바다를 바라보며 내내 기도를 드리던 스님의 목탁 소리도 잦아들었다.

그리고 사태가 커지자 정부는 부랴부랴 대책마련에 나섰다. 가족들의 요구를 반영해 수색작업엔 민간잠수사들을 적극 활용하고 '다이빙벨'도 투입하기로 했다. 세월호 실종자 수색작업을 총괄하는 구조지휘본부가 해양경찰에서 해군으로 이관하겠다는 소식이 들렸다. 하지만 어느 하나 환호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시 무거운 침묵이 팽목항을 감쌌다. 팽목항을 나서는 길. 노란 유채꽃 사이로 교복을 입은 여학생 서너명이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이 돌아오길 간절히 바랍니다'는 글귀가 적힌 노란색 리본을 달고 있었다.



진도=김지현기자 hyun1620@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