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연파' vs '비혈연파' 갈등… '분파' 가능성, 구원파 앞날 불투명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가 8월 31일 제공한 경기도 안성 금수원에서 이뤄진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장례식 모습.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사후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가 혈연파와 비혈연파로 나뉘어 혼전을 거듭하면서 구원파의 앞날과 후계구도를 두고 다양한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구회동(51) 신도 의료인협회장이 구원파 최고 지위인 '총회장'에 선출되면서 혈연파가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혈연파와 비혈연파가 서로 '협의체'를 구성하고 교회 내 일을 나눠서 하고 있다는 전언도 나왔다. 뿐만 아니라 유 전 회장의 비리가 폭로되면서 이에 배신감을 느낀 몇몇 신도들이 사업의 수단이 된 종교를 비판하고 투명한 헌금 관리를 요구하며 따로 분파돼 나갔다는 얘기도 들리고 있다.

유 전 회장의 장례식이 거행된 직후인 지난 1일 구원파 측은 구회동(51) 신도 의료인협회장을 총회장으로 선출했다고 밝혔다. 구씨는 구원파의 자금과 재산을 실질적으로 관리하는 사무국장까지 겸직했다고 공식 발표됐다. 그는 유 전 회장의 장례식 당시 이용화 안성교회 대표, 김성일 전 총회장 등 5인의 공동위원장을 대표해 장례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구 총회장은 항문외과 전문의로 강남 역삼동에 위치한 '더편한몸의원' 원장으로 재직한 바 있다. 해당 병원엔 구원파 창시자 권신찬 목사의 셋째 며느리인 윤두화(60)씨도 산부인과와 소아과를 맡아 재직 중이다. 그가 맡은 총회장이라는 직위는 집회와 성경 공부 등을 주도하며 신도들을 상대로 설교를 하는 직책이다.

혈연파 주도권 잡았나

구씨의 총회장 선출을 두고 구원파의 후계 구도가 혈연파를 중심으로 형성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유 전 회장의 여동생 경희씨와 처남댁 윤두화(60)씨, 매제인 오갑렬 전 체코대사 등 혈연파 그룹이 기존의 기득권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 전 회장의 최측근으로 있다가 지난 2010년 구원파를 탈퇴한 최모씨는 <주간한국>에 "구 총회장은 차남인 유혁기와 친하다"며 "유혁기 쪽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성품이 온화하고 사람들 간의 갈등을 조율하는 역할을 잘 한다"고 평했다. 실제로 구 총회장은 구원파 내 의료인협회를 이끌며 유 전 회장과 함께 건강식품 개발을 논의해온 측근으로 알려졌다. 현재 행방이 불분명한 혁기씨를 대신해 대외적으로 구원파를 대표하며 안팎을 정리하고 아우르는 역할로 총회장에 지명된 것으로, 혁기씨가 전면에 나설 수 있을 때까지 그를 대신하는 역할을 맡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유병언의 차남 혁기씨.
차남 혁기씨는 현재 프랑스, 멕시코, 브라질 등 행방에 대한 예측이 난무하고 있다. 미국내 탐정 자격증을 보유한 한인들이 그의 행방을 수소문하며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에 의하면, 멕시코는 혁기씨가 첫 해외 설교를 시작한 나라로 구원파 신도들이 다수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일각에선 혁기씨가 "멕시코시티에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으나 최근 주멕시코대사관은 "현재까지 멕시코시티에서 혁기씨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았다"고 발표한 바 있다. 혁기씨는 1999년께부터 후계자 수업을 받았으며 지난 2008년에 금수원에서 첫 설교를 하며 후계자로 공식화 됐다.

집단 지도체제로 가닥…지도부도 설교 시작

한편 구원파 측 조계웅 전 대변인은 "지금은 마땅한 분이 없어 여러 사람이 나와 성경 말씀을 얘기하는 패널 형태로 예배가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후계자 1순위로 거론되는 혁기씨에 대해선 "우리와 함께 성경 말씀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라고 선을 그었다.

조 전 대변인이 지칭한 패널 형태는 구원파 내 집단 지도체제로 알려진 '성경포럼'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성경포럼은 유 전 회장 생존 당시 구성된 것으로 원래는 성경을 공부하며 연구한 내용을 매주 발표하는 모임이었으나 유 전 회장의 사후 매주일 돌아가면서 설교를 담당하게 됐다.

앞서의 최씨에 의하면, 구원파 교회에선 성경말씀을 전하는 '설교'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보통 교회와는 달리 구원파 목사는 1시간 30분~2시간에 이르는 긴 설교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누가 어떤 내용으로 설교를 담당하느냐가 중요하고 설교를 맡는 사람이 곧 '실세'로 통한다. 구원파 창시자인 권 목사가 1996년 유명을 달리한 후 유 전 회장은 자신 외엔 아무도 설교를 할 수 없도록 금지했다. 타 기독교 분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로, 권사, 집사 등의 직책도 구원파에선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이러한 조치로 인해 당시 설교를 담당했던 수많은 '전도인'들이 모두 퇴출됐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유 전 회장이 죽고 후계자인 혁기씨가 도주생활을 시작하면서 포럼 멤버들이 돌아가면서 설교를 하게 됐다. 18년만에 전도인의 설교가 부활된 것이다. 현재까지 성경포럼의 멤버는 오갑렬 전 대사, 구회동 총회장, 차덕준 군산대 교수, 최병국 전주 성인회 회장, 이태종 대변인, 구속된 이재옥 헤마토센트릭라이프 이사장, 이봉우 금수원 관리부장 등 7인으로 알려졌다.

오갑렬 전 체코 대사. /연합뉴스
주도권 누구에게

이렇듯 유 전 회장의 사후 힘의 공백이 생기면서 몇몇 이들이 전면에 나서고 있다. 특히 이용화 안성교회 대표는 유 전 회장의 생존 당시에도 전국 신도들의 헌금을 관리하는 사무국장으로 재직하며 높은 영향력을 가졌던 인물로 평가됐다. 앞서의 최모씨에 의하면 이 대표는 극동방송 아나운서 출신으로, 권 목사 생전엔 설교도 자주 했으며 구원파 행사가 열릴 때마다 사회를 담당했다고 한다. 최씨는 이 대표에 대해 "80대 초반으로 명석하고 말을 잘한다. 구원파가 생긴 때부터 현재까지 수양회 등 교회 내의 일을 거의 다 해왔다"면서도 "이 대표를 주축으로 움직일 가능성도 크지만 교회를 이끌어갈 만한 카리스마와 리더십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자금줄이 없다"고 견해를 밝혔다. 최씨에 의하면 이용화 대표는 평소 강직한 성격으로 교회 내 사업이나 자금에 일체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 구원파가 처한 경제적 위기를 해결할만한 금력은 갖고 있지 않다고 봤다.

오갑렬 전 대사의 경우도 오랜 외국 생활로 국내에 기반이 없고, 현재 범인도피교사 혐의로 인천지법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점을 들어 후계구도에서 비켜나 있다고 봤다. 최씨는 오 전 대사에 대해 "주로 외국에서 생활했고 작년까지도 해외서 근무하던 사람"이라며 "국내에 기반이 없어서 (지지) 그룹이 형성돼 있지는 않은 것 같다"고 피력했다.

오 전 대사는 유 전 회장의 도피를 막후에서 총지휘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 됐다. 지난 3일첫 재판이 인천지방법원에서 열렸다. 오 전 대사는 지난 1978년 외무고시에 합격한 후 외교부에서 근무하다가 유경희 씨를 만나 결혼했다. 그는 외교통상부 경제협력2과장, 주선양 총영사, 재외동포영사대사, 체코 대사 등을 역임한 후 지난 2013년 6월 퇴직했다.

혈연파 내에선 '유병언 주치의'로 알려진 윤두화씨도 조심스럽게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씨는 권 목사의 셋째 며느리로 권오광 박사의 부인이다. 세모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는 아이원아이홀딩스, 세모, 국제영상 이사를 겸임하고 있으며 유 전 회장의 측근 5인방 중 한 명이다. 청담동의 일명 '세모 타운'에서 유기농 설렁탕집을 운영하기도 했다. 윤씨는 구원파 최대 행사로 알려진 지난 7월말 열린 하계수양회 당시 구회동씨 등과 더불어 강단에 올라 설교를 하기도 했다. 2008년 유 전 회장이 혁기씨를 후계자로 공식 발표한 이후로 혁기씨 외에 다른 이가 신도들을 대상으로 설교를 한 것은 지난 하계수양회가 처음이다.

이용화 기독교복음침례회 안성교회 대표. /연합뉴스
경제위기 해결 못하면 분열 가능성

이렇듯 구원파 내에서 후계구도를 놓고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그간의 혈연파로 이뤄진 지도부에 배신감을 느낀 일부 신도들이 떨어져 나갈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실제로 헌금의 투명한 운영을 요구한 몇몇 신도가 구원파로부터 제명을 당했으며 이들이 서울 모처에 새로운 교회를 건설할 예정이고 '헌금 반환 소송'을 준비 중이라는 보도가 나온 바 있다. 소위 '분리파'는 구원파 초기부터 활동했던 비혈연파 원로들과 공공연히 회동하며 혈연파를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로그룹은 구원파가 사업보다는 교리와 포교 등 종교활동에 집중해야 한다는 면에서 분리파와 뜻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의 최씨는 1970년대 구원파 창시 때부터 30~40년간 구원파에 충성해온 원로그룹에 대해 언급했다. 최씨는 구원파를 떠나기 전 원로들과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고 한다. 그는 "최근 60~70대의 구원파 원로들을 만났다"며 "유씨가 죽고 다 와해되고 위축돼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비가 오면 땅이 굳어지는 것처럼 오히려 더 완강하게 굳어져 있더라"며 놀라움을 표시했다. 이어 그는 "후계 구도에서 딱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고 경제적으로도 위기지만 그렇다고 구원파가 완전히 와해된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혈연파를 중심으로 극소수는 연명해 가지 않겠나"라고 예측했다.

현재 구원파는 은행 대출 상환일이 도래하고 계열사들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등 자금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구원파는 경기 안성과 제주도, 전남 순천 일대 등 전국에 땅을 보유하고 있는데, 최근 이 땅들을 담보로 빌린 부채가 800억 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지난 8월 초 구원파 지도부는 신도들을 상대로 '60억원 모금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모금운동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구원파 지도부가 정부의 가압류나 검찰의 추징보전명령 청구가 없는 부동산을 매물로 내놓고 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검찰은 현재까지 약 1,200억원대의 부동산에 추징보전명령 청구를 한 상태이나 구원파 전 신도들의 증언을 종합해 볼 때 그룹 내 영농조합이 전국에 수천 억 원 상당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해당 부동산들은 아직 가압류 등이 걸려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일부에선 당분간 구원파 지도부가 부동산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며 연명해 갈 것이라고 보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각)엔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유 전 회장의 최측근인 김혜경씨가 체포되면서 김씨의 재산을 놓고 구원파 지도부와 김씨가 소송을 하는 등 갈등을 일으킬 소지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구원파 지도부는 김씨와 끊임없이 물밑 접촉을 시도해왔다. 이에 구원파 관련 재산에 대해 '구상권' 요청을 법제화 할 수 있는 관련 특별법 제정이 시급히 요구된다.

구원파의 당면 과제는 경제적 위기를 해결하는 것으로, 이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혈연파가 주도권을 잃고 분파가 형성돼 따로 독립하는 등 와해될 것이라는 것이 지배적인 시각이다. 약 30년간 구원파에 몸 담아온 한 신도는 구원파의 앞날에 대해 "직위에 대한 말들이 많지만 누가 어떤 직위를 맡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권력을 잡을 것"이라며 "협의체를 구성해 여러 명이 이끌어갈 수는 있겠지만 독자적으로 자기 위치를 이용해 교회를 장악할 능력을 갖춘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가까운 미래에 내분이 생겨 분파가 생기고 혈연파는 세력이 줄어들 것"이라고 진단했다.

유병언의 부인 권윤자씨. /뉴시스

장남 대균씨. /연합뉴스
동생 병호씨. /뉴시스
처남 권오균씨. /연합뉴스

신상미기자 frontpage1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