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ㆍ병원ㆍ지자체 상대 손배소 제기 경실련, 메르스 책임 기관에 법적 조치 주도건양대ㆍ강동경희대ㆍ강동성심 병원 대상재판 결과 따라 삼성의료원 타깃 될 수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9일 오후 중동호흡기증후군(이하 메르스) 사망자 유가족들과 격리자들을 대리해 손해배상청구소송 2건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기했다. 이들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의료기관을 상대로 소송에 들어갔다.

이번 소송은 지난달 19일 문정구 변호사가 메르스 확산에 정부의 책임을 묻는 부작위 위법 확인 소송 이후 제기된 첫 의료기관 상대 소송이자 손해배상소송이다. 이번 소송을 계기로 의료기관을 상대로 책임을 묻는 소송이 봇물을 이룰 것으로 예상돼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메르스 관련 첫 손배소 출격

경실련은 9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경실련 강당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메르스 피해자들을 대신해 손해배상청구소송 3건을 서울중앙지법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피해자인 원고는 건양대병원에서 사망한 45번 환자의 유가족 6명, 강동경희대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뒤 격리된 가족 3명, 강동성심병원을 거친 뒤 사망한 173번 환자의 유가족 6명이다.

이번 병원 상대 소송은 메르스 의심자 및 감염자로 분류돼 격리 또는 사망한 원고 측이 의료기관인 피고 측의 부적절한 감염병 관리 및 치료에 책임을 묻고자 하는 취지다. 의료법 제47조에 의하면 의료기관은 병원감염 예방을 위해 감염관리위원회와 감염관리실을 설치, 운영하고 감염관리 업무를 수행하는 전담 인력을 두는 등 조취를 취해야 한다.

이를 근거로 메르스소송 원고들은 해당 병원에 신체적ㆍ정신적 피해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피고로 지목된 건양대병원, 강동경희대병원, 강동성심병원은 의료법을 준수해 환자의 질환을 진단하고 진료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않아 피해를 확대시켰다는 점이 메르스 피해 사례자 및 경실련의 주장이다.

사망자의 청구액은 일실소득을 기준으로 책정됐다. 유가족의 청구액은 망인의 일실소득에 망인의 부인 경우 사망위자료 2,000만원, 자녀 경우 사망위자료 1,000만원을 포함한다. 격리자 경우에는 일실소득과 위자료 100만원, 비격리자는 위자료 100만원이다.

이에 따라 45번 환자의 유가족들은 정부, 대전시, 대전 소재의 건양대병원에 2억 9천여만 원을 청구했다. 165번 환자와 함께 진료를 받아 감염위험에 노출됐던 격리자들은 정부, 시흥시, 서울 소재의 강동경희대병원에 669만 원을 청구했다. 173번 환자의 유가족들은 서울 소재의 강동성심병원과의 치료비 문제가 해결된 후 소장을 제출할 계획이다.

유가족ㆍ격리자 신체적 정신적 피해

45번 메르스 감염 사망자의 유가족은 건양대병원 측에 메르스 감염에 노출시킨 과실을 물었다. 고인이 된 45번 환자는 지난 5월 28일 부인의 폐암 치료차 방문한 대전 소재의 건양대병원 응급실에서 16번 환자로부터 감염된 것으로 파악된다. 건양대병원 의료진은 같은 응급실에서 진료를 받던 16번 환자를 사흘이 지난 5월 31일이 돼서야 확진판정을 내렸다.

4 5번 환자는 지난달 2일 발열증상을 호소해 건양대병원으로 옮겨졌다. 이틀 후 혈액 검사 결과 메르스 환자로 판정돼 경기 평택시에 소재한 성모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상태가 악화돼 지난달 7일 감염병 관리 지역거점병원인 충남 천안시의 단국대병원으로 또 다시 옮겨졌다. 이후 지속된 치료에도 불구하고 45번 환자는 지난달 24일 사망했다.

서울에 위치한 강동경희대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건 원고는 남편, 부인, 아들로 구성된 일가족 3명이다. 원고 측은 지난달 9일 만성신부전증을 앓는 남편의 신장 투석을 위해 강동경희대병원 투석실을 방문했다. 당시 이곳에는 확진 판정 전인 165번 메르스 환자가 투석 치료 중이었고, 165번 환자의 기침 증세에 원고 측은 그의 별도 치료를 요구했으나 거부당했다.

이후 원고 측은 165번 환자가 치료받던 투석실을 지난달 11일, 13일, 16일 총 3회를 추가 방문했다. 165번 환자는 지난달 18일이 돼서야 확진판정을 받았고, 이날도 투석실을 다녀간 원고 측은 다음날 자가 격리 조치에 취해졌다. 음성 판정을 받은 원고 측은 지난달 30일 부인과 아들, 지난 5일에는 남편이 격리 해제됐지만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았다는 주장이다.

173번 감염 사망자의 유가족은 강동성심병원의 오진으로 인해 망인이 사망했다는 견해다. 요양보호사로 일했던 173번 환자는 지난달 5일 자신이 돌보던 시각장애인과 함께 강동성심병원을 방문했고, 이 과정에서 76번 메르스 환자와 접촉한 바 있다. 이후 몸에 이상을 느낀 173번 망인은 여러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으며 지난달 17일 강동성심병원을 다시 찾았다.

이때 타액, 혈액, 유전자 검사 의무를 소홀히 한 강동성심병원은 173번 환자에게 정형외과 치료를 처방했다. 고열에 시달린 그는 뒤늦은 22일 확정판정을 받았으나 이틀 만에 사망했다. 지난 9일 기자회견에서 망인의 장남 김형지씨는 “의료진이 ‘무슨 메르스냐’며 제대로 진단하지 않았다”며 “강동성심병원은 의사로서 밝혀야 할 부분을 밝히고 본분을 다하라”고 입장을 밝혔다.

삼성의료원 손배소 가능성은

이번 소송에서 눈여겨 볼 부분은 삼성의료원이 포함되지 않은 점이다. 삼성의료원은 허술한 대응으로 현재의 참사를 야기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지난 5월18일 1번 환자가 삼성의료원을 찾았을 당시 음성판정을 받았다. 이틀 뒤 양성으로 밝혀져 국립의료원으로 이송된 상황에서 삼성의료원은 메르스 첫 환자 발생을 담당 의료진 선에서 마무리 지으려 했다.

지난 5월 7일 삼성의료원은 14번 환자를 폐렴 환자로 오진했다. 이 과정에서 14번 환자는 삼성의료원 응급실에 이틀 동안 방치돼 ‘슈퍼전자파’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 이와 관련 삼성의료원 송재훈 원장은 지난달 7일 기자회견에서 “14번 환자는 중동 여행력이나 메르스 환자 노출력이 없어서 의심할 근거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삼성의료원 측은 확진 판정을 받은 40여명을 격리 대상 리스트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공공장소를 방문하는 등 비감염자와 끊임없이 접촉했다. 삼성의료원의 의사도 35번, 138번 환자가 됐지만 확진 판정 이전까지 진료를 계속 진행했던 것으로 뒤늦게 드러났다.

이런 가운데 의료기관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삼성의료원과 메르스 감염자 및 의심자 간의 손해배상소송이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현재 경실련은 삼성의료원 사례를 검토하고 있다. 남은경 경실련 사회정책팀장은 “삼성의료원을 상대로 소송을 하고 싶다는 문의가 몇 차례 있었다”며 “피해자의 적극 의사와 함께 소송 요건이 충족된다면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승소가능성에 대해 경실련의 메르스 소송 대리인 신현호 변호사는 “모든 의료 사고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며 “피해자마다 과실과 책임이 다르므로 언제 확진받았고, 어떤 조치를 받았는지에 따라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삼성의료원 측은 “이번 메르스 소송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변호사를 통해 소송 대상을 예측하고 있지만 정식으로 소송이 제기되면 상황에 따라 대응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윤소영 기자 ysy@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