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사제지간 '막장' 다툼으로… 결국 돈으로 얼룩진 소송

서울시 종로구 가회동에 위치한 김영사 출판사 전경과 박은주 전 김영사 사장(작은 사진) 사진=장동규 기자
지난해 5월 사퇴한 박 前사장 1년 2개월 만에 입 열고 소송전 돌입
박 전 사장, 현 대표 상대로 350억대 배임·횡령·사기 혐의 고소
김영사 측 "박 전 사장 불의한 방법으로 회사에 막대한 손해 끼쳐"
30년 사제지간 소송전으로 얼룩… '김영사 미스터리' 터지나 관심

박은주(58) 전 김영사 사장이 지난달 23일 김강유(68) 현 김영사 대표이사 회장을 350억원대 횡령ㆍ배임ㆍ사기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지난해 5월 31일 사장직에서 사퇴한 뒤 잠적했던 박씨가 1년 2개월만에 등장해 송사를 벌이자 출판계는 물론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일었다. 국내 '빅3'로 통하던 출판사의 추문인데다 '출판계 미다스의 손'으로 알려진 박씨가 뒤늦게 모습을 나타내 사제지간으로 알려진 김 회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데 따른 것이다.

박씨는 김 회장을 고소한 이유로 그의 사기극을 막고 미지급된 금액을 돌려받기 위해 법적인 대응을 한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김 회장은 박씨가 불의한 방법으로 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끼쳐 감사를 벌이자 퇴사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박씨와 김 회장 간에 350억대 소송이 벌어지면서 그간 김영사를 둘러싼 미스터리와 소문들도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다.

30년 사제의 연이 수백억대 돈싸움으로 변질된 '막장'의 김영사 소송 전말을 추적했다.

사제지간에서 소송까지 간 배경

박은주 전 사장과 김강유(김정섭에서 개명) 회장의 만남은 1982년 박씨가 김영사에 입사하면서 시작됐다. 1979년 이화여대 수학과를 졸업한 박씨는 같은 해 평화출판사에 입사했다. 그는 출판계에 입문한지 3년 만에 김영사의 창업주이자 당시 사장이었던 김 회장에게 편집자로서 실력을 인정받아 스카우트됐다.

불교에 깊은 관심이 있던 박씨는 김영사 입사 직후부터 불교 지도자로 명망 높은 백성욱 박사의 제자였던 김 회장에 의해 '금강경'을 배우게 됐고, 스승과 제자의 연을 맺었다.

박씨는 2011년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1984년 어느 날 김씨가 그의 책상 위에 금강경을 두고 가며 두 사람이 아침저녁으로 금강경을 읽게 됐다고 회고했다.

편집장으로 입사 후에는 금강경 수행을 하며 불교수행처를 이끌던 김 회장을 따라 법당으로 들어가 살며 공부에 정진했다. 월급과 상여금 전액을 법당에 기부하며 금강경 공부를 해왔다고 박씨는 전했다.

1989년 1월 4일 김 회장은 김영사 신년식에서 편집장이던 박씨를 대표이사 사장으로 세우고, 일선에서 물러나 불교 수행에만 전념해왔다. 이는 아직까지도 업계의 미담으로 전해지고 있다.

당시 김 회장은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책이 밀리언셀러가 되며 가진 많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불교에 더욱 정진하기 위해 김영사를 박씨에게 물려주고 지방으로 간다고 밝혔다. 이후 박씨는 김영사에서 많은 성과를 거뒀고, 실제로 그 뒤 김 회장은 경영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출판계는 32세의 젊은 여성 편집장에 대한 파격적인 인사로 떠들썩했다. 무엇보다 김 회장과 아무런 연고도 없는 박씨를 사장 자리에 앉힌 것은 그간 전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젊은 여성 사장을 향한 출판업계의 우려가 있었지만 박씨는 '경영자'로서 놀라운 성과를 보이며 '출판계 미다스의 손'으로 불렸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1994년), <먼나라 이웃나라>(1998년), <정의란 무엇인가>(2010년), <안철수의 생각>(2012년) 등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출간하며 '김영사'라는 브랜드를 키웠다. 한때 연매출 526억원, 당기순이익 166억원을 달성하는 등 연매출 1억~2억 수준의 군소 단행본 출판사였던 김영사는 국내 출판업계의 큰손으로 성장했다.

스승과 제자, 창업주와 경영인으로서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오던 두 사람의 인연이 어긋나기 시작한 배경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박씨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김 회장으로부터 그의 형이 운영하는 빚더미 회사'한국리더십센터' 인수를 제안받았고, 이를 수락하지 않으면서 마찰이 시작됐다고 밝혔다.

김영사 폭로사태…갈라선 이유는

박씨의 말대로라면 김 회장과의 갈등은 그의 형 김경섭씨가 운영하던 회사 '한국리더십센터'인수 문제에서 비롯됐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한국리더십센터는 1993년 창립된 리더십 교육 회사로 김경섭씨가 대표이사로 있다. 김영사는 한국리더십센터에서 사용하는 책을 출간해 상호 협력해 온 바 있다. 2000년 초 경기도 안성 보개면에 1만평 땅의 부동산을 개발하면서 분양이 어려워지자 100억원이 넘는 빚을 지게 됐는데, 이를 인수하라는 김 회장의 제안을 거절했다는 게 박씨 측 주장이다. 김영사도 출판시장의 침체로 2012과 2013년 연이어 적자를 기록하고 있던 상황에서 빚더미에 앉은 회사를 인수하면 김영사도 동반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유였다.

박씨와 김 회장의 갈등은 결국 박씨의 사장직 중도사퇴로 이어졌다. 박씨 등에 따르면 2013년 12월 김 회장은 박씨를 불러 회사를 반으로 축소하고 박씨의 소유였던 가회동 김영사 건물을 팔자고 제안했다. 출판사도 파주로 옮기자는 김 회장의 말에 반발한 박씨에게 크게 화를 낸 이후, 2014년 3월 주총에서 김 회장이 대표이사 회장이 되고, 김 회장의 형이 감사로, 법당에서 파견한 신도 C를 부사장으로 임명했다. 새 경영진의 엄포와 협박이 있었다는 것이 박씨의 주장이다. 용인법당으로 오라는 김 회장의 말에 10년 만에 찾아간 박씨에게 미리 만들어 두었던 김영사 주식 포기각서와 가회동 사옥 재산 포기각서를 꺼내며 서명을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포기 서명을 하면 박은주의 김영사를 만들어 주겠다는 말을 하고, 며칠 간격으로 거짓으로 꾸며진 13가지 배임횡령 리스트를 가져와 강제 서명을 시키고 상황을 연출해 잘못을 시인하는 녹음도 시켰다고 말했다. 이후 시간이 갈수록 박씨와 직원들을 모욕적으로 대하며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김 회장의 행동에 결국 박씨는 5월 31일자로 사직서를 내고 소송준비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박씨는 "김영사에 들어간 직후인 1984년부터 2003년까지 20년 동안 부모님도 버리고 법당에서 숙식을 하며 출퇴근했다"며 20년 동안 월급, 보너스, 주식배당금 전액 등 모든 돈 총 28억원을 김 회장에게 바쳤다고 주장했다.

이후 2003년 5월 김 회장이 유부녀 B와 동거를 시작하며 법당이 깨졌고, 박씨는 20년 만에 법당을 나와 부모님 집으로 돌아갔다고 전했다.

반면 김 회장은 유부녀 B와의 염문설에 대해 "우리는 박 사장이 주장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다"며 "나는 3년 전 다른 사람과 결혼했고, B는 지금 우리 용인 건물에서 카페 주인을 하고 있는데, 박 사장이 말하는 그런 관계라면 이렇게 함께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2003년 법당을 나온 박씨는 법당에 지원하던 지원금을 중단하고, 회사에서 나오는 급여를 통장에 저축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2006년 김 회장은 6년 만에 다시 법당으로 돌아와 박씨에게 비자금을 보내라고 강요해 2008년 매월 1,000만원씩 송금했다는 것이 박씨의 주장이다. 송금은 김영사를 사직하던 2014년 5월까지 계속됐으며, 김 회장은 돈이 필요할 때마다 김영사를 통해 2007년부터 수시로 개인 대여를 반복했다.

전ㆍ현직 대표 '돈 문제'로 진흙탕 싸움

수백억대 횡령을 둘러싼 김영사 내분의 실체가 점차 드러나고 있다. 사제지간이었던 박씨와 김 회장은 결국 돈 문제가 발단이 됐고 돈을 놓고 등을 돌린 채 싸우고 있다. 김영사 측에서는 박씨가, 박씨 측에서는 김 회장이 횡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씨는 지난해 5월 김영사 사장직과 한국출판인회의 회장직을 갑자기 사퇴했다. 당시 김영사는 "사재기 의혹과 유통 관련 회사 내부 문제에 도의적 책임을 지고 박씨가 대표 자리에서 물러난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박씨는 지난달 23일 김 회장을 350억원 규모의 배임, 횡령,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면서 "김영사 경영진이 바뀌고 나서 작년 10월 직원 세 명을 208억원을 횡령했다며 형사고소한 일이 있다. 올해 4월 그 사건이 무혐의 판결을 받았다. 그러자 김영사 측에서 내가 그들 편을 들어 그렇게 됐다며 항고하겠다고 협박 문자가 왔다. 주식, 김영사 건물, 퇴직금 등 모든 것을 포기하면 보상금을 주겠다고 약속해서 합의서를 썼는데, 이마저도 지키지 않았다"고 했다.

고소장에서 박씨는 경영권 분쟁이 벌어진 뒤 회사 경영권을 모두 포기하고 주식과 김영사 건물 지분 등 자산 285억 원어치를 넘기는 조건으로 출판사 측이 보상금 45억원을 지급하기로 약정했지만, 이를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 김 회장 측도 박씨를 배임과 횡령 등 혐의로 맞고소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사 측은 "박 전 대표가 불의한 방법으로 회사에 큰 손해를 끼쳐 지난해 3월부터 감사를 벌였다"며 "이 과정에서 지난해 5월 말 퇴사했으나 20년 넘게 일해온 전임 대표에 대한 예우와 사회적 실망 등을 고려해 이 같은 사실을 대외적으로 밝히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이와 관련해 박씨는 김영사 측이 배임ㆍ횡령이라고 거론하는 사항들이 계략이라고 주장했다. 즉 기증한 반품도서들도 정가로 계산해 배임ㆍ횡령 금액으로 덧씌웠고, 명절 경조사 때 직원에게 나누어준 상품권과 10여년 동안 46차례 다녔던 해외출장도 배임ㆍ횡령이라는 죄목을 씌워서 배임횡령금액을 거짓으로 꾸미고 부풀렸다고 주장했다. 배임과 횡령으로 선언한 200억원의 금액은 가회동 사옥과 김영사 주식 내 재산을 강탈하기 위한 것이라고 전했다.

박씨는 사임 직전인 지난해 4월 김 회장이 주주 총회를 소집해 회계경리 부분 권한을 박탈하고, 배임횡령죄 자술서에 서명을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김 회장은 지난달 27일 보도자료를 통해 "박은주 전 사장이 고소했다는 것 자체가 믿어지지 않는다. 저는 어떤 방식으로도 회사에 손해를 입히지 않았음을 떳떳하게 밝힌다"며 "이미 고소가 접수됐으니 성실히 대처하겠다"고 전했다. 박씨를 고소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미 그러지 않기로 합의를 했거니와, 스승으로서 피하고 싶은 일이기에 현재로서는 판단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 소송전 벌이는 김영사는?

1983년 출범… '빅3' 출판사로 성장, 숱한 베스트셀러 발행

김영사는 김강유 회장에 의해 1983년 출범했다. 김영사의 모체는 필라델피아에 거주하는 몇 명의 한국인이 만든 회사로, 대표 성인 '김'과 젊다는 뜻의 '영'(young)을 합해서 김영사로 명명됐다. 1994년 주식회사로 법인 전환했고, 국내 문학 전문 출판사인 미학사를 인수 합병했다.

김영사는 1983년 설립돼 현재까지 3,000여 종의 책을 출간했다. 1990년대 10년간(1989~1998) 김영사의 베스트셀러는 139종으로 부동의 1위였다. 1989년에 나온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자서전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한국 최초의 밀리언셀러였고, 6개월 만에 100만부를 넘어 최단 기간 최다 판매라는 기록도 세웠다. 이후 김 회장은 32세의 박은주 편집장을 사장으로 세우고 일선에서 물러났다.

김영사가 1994년 미학사를 인수한 뒤 선보인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은 100만부 넘게 팔리면서 리더십과 성공 열풍을 몰고 왔다. <먼나라 이웃나라> <식객>과 같은 만화 시리즈는 김영사의 대표적인 베스트셀러다. 1998년 고려원미디어의 부도로 출판권이 김영사로 넘어간 이원복 덕성여대 총장의 <먼나라 이웃나라>는 누적 판매 부수 1700만부, 누적 발행 2000쇄를 기록했다. 2003년부터 출간한 허영만 작가의 <식객> 누적 판매 부수는 350만부가 넘는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개된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매출은 475억이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전자책도 발간하고 있다.

1983년 군소 단행본 출판사로 출범한 김영사는 한때 연 526억원 매출에 당기순익 166억원을 기록하기도 했고, 매년 150권쯤 책을 출간한다.

최근 김영사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전ㆍ현 대표 간 소송은 출판인과 문화계에 충격과 실망을 주고 있다. <먼나라 이웃나라>의 저자인 이원복 총장은 "김영사 내부에서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탄식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독자들의 실망이 더 커지기 전에 출판사의 지적 이미지 쇄신이 시급해 보인다"고 전했다.

■김영사 대표 고소한 박은주 전 사장은 누구?

숱한 베스트셀러 발행 '출판계 미다스 손'으로 불려

김영사 변화 모색 중 돌연 잠적…현 대표 고소해 파장

이화여대 수학과에서 컴퓨터를 전공, 1979년 공채로 평화출판사에 입사했다가 1982년 김 회장의 스카우트로 김영사로 회사를 옮겼다. '금강경'을 읽고 108배와 명상 후 회사로 출근할 정도로 불심이 깊은 그는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진학을 꿈꿀 만큼 불교 공부에 관심이 많았다. 금강경을 배우며 김강유 회장과 인연을 쌓았다.

박씨는 32세에 대표로 발탁돼 지난해까지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먼나라 이웃나라> <정의란 무엇인가> 등 숱한 베스트셀러를 내 '출판계의 미다스 손', '출판 여왕'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박씨가 입사할 당시 김영사는 연매출 1억~2억원 수준이었으나 2009년에는 연매출 526억, 당기순이익 166억을 달성했다. 하지만 2010년 이후 김영사 매출과 순이익은 출판계 불황, 히트작 감소 등으로 큰 폭 감소했다.

미국 뉴욕대학원에서 그래픽 커뮤니케이션으로 석사과정을 마친 그는 99년부터 디지털 경영을 선언하며 종이책과 전자책의 경계를 없앴다. 미국의 선진출판시스템을 배우기 위해 랜덤하우스 계열사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며 직접 체험하며 많은 것을 익혔다. 한국으로 돌아와 김영사에 접목하여 회계시스템과 출판 프로세스를 혁신적으로 정비했다. 이후 21세기형 첨단기업을 표방하며 '디지털 김영사'를 설립했다.

2007년에는 '세계로 미래로 책으로'라는 슬로건으로 종이책 출판사 이미지를 벗고 막힌 내수시장을 돌파하기 위해 해외진출을 과감히 모색했다. 중국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 후 국내 최초의 유일무이한 문화법인을 만들었다. 인터넷사업에도 적극 진출하여 30만 회원을 보유한 부모2.0이라는 학부모포털도 성공적으로 론칭했다.

2014년에 돌연 김영사와 자신이 회장을 맡고 있는 단행본 출판사 연합체인 한국출판인회의에 사퇴했다. 무성한 소문에도 1년 2개월간 별 다른 행보가 없다가 최근 자신이 몸담았던 김영사 대표를 상대를 소송을 제기해 이런저런 화제와 뒷말을 낳고 있다.



윤소영기자 ysy@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