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정체성' 회복하고 상응한 정책 펼쳐야

지난 7월 초 메르스 사태로 관광객이 급감한 인사동을 찾은 박원순 서울시장(왼쪽에서 세 번째),정세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왼쪽에서 두 번째), 윤용철 인사존통문화보존회 회장이 '인사동 살리기' 방안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지난 몇 달간 한국 사회에 충격을 준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진정되면서 일상이 다시 활기를 찾고 있다. 국내 민간 소비가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고 외국 관광객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관광업계는 상처를 추스르며 '한국 알리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중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서울 인사동은 어느 때보다 손님맞이 준비에 분주하다. 인사동 사람들뿐만 아니라 시ㆍ구 관계자들도 관광 활성화에 앞장서는 모습이다.

이에 인사동을 되살려 고유의 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단순한 관광을 넘어 '문화 한국'을 알릴 필요가 있다는 여론이 인사동 사람들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 지금의 인사동은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어 이를 회복하고 다른 관광 명소와는 차별화된 방식으로 '한류'의 본질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관광 이상의 한국 국격도 높일 수 있고 인사동 본래의 가치를 고양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한국 관광의 명소이자 문화의 메카인 인사동을 살리기 위한 방안과 활동을 살펴봤다.

지금으로부터 230여년전쯤 실학자 연암 박지원은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등과 교우하며 시를 짓고 경세를 논했다. 이들이 자주 어울린 곳은 지금의 인사동 근방이다.

그와 비슷한 시기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은 인사동에 있는 조선 최고의 예술 관청인 도화서(圖畵署) 화원으로 인사동의 삶을 이어갔다.

조선의 많은 양반들이 인사동에서 가까운 북촌 등에 거주해 인사동에선 학자들이 빈번하게 교류하고 예술도 풍성하게 피어났다.

인사동은 1930년대 도자기, 고서화 및 고가구 등 골동품 거리로 유명했고, 1960년대 후반기부터 고미술, 화랑, 표구점, 지필묵, 전통공예, 전통음식 등이 주종을 이뤘으며, 1970년경에는 최초의 근대적 상업적 화랑이 모여들어 화랑가를 형성하는 등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룬 문화의 거리로 자리잡았다. 인사동은 1988년 전통문화거리로 지정된 데 이어 2002년에는 한국 최초의 문화지구로 지정되면서 골동품점, 화랑, 표구, 지필묵, 전통공예를 5대 권장업종으로 지정하여 전통문화 거리로 변모를 꾀했다. 이후 인사동은 하루 평균 5만명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국내 대표적인 문화관광 명소로 자리매김 했다.

하지만 전통의 문화 명소인 인사동은 오늘날 위기를 맞고 있다. 인사동 본래의 모습을 잃어가면서 인사동을 지켜 온 사람들이 떠나가고 단순한 눈요기의 관광지로 위축되고 있어서다. 요즘 인사동은 현대인의 눈높이와 입맛에 맞춘 볼거리, 즐길거리, 먹거리가 넘쳐나고 국적 불명에다 편의성만 갖춘 비(반) 전통적인 것들이 자본의 힘을 앞세워 위세를 보이고 있다.

인사동의 쇠락은 한국 문화 관광의 쇠퇴를 의미한다. 국내 관광지 중 인사동 만큼 전통과 현대, 그에 따른 스토리를 종합적으로 갖춘 곳은 드물다. 명동이나 대학로, 지역의 명소들도 있지만 대부분 그곳만의 특색을 갖춘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사동은 그곳들과 다르고 그래서 보존하고 발전시켜야 할 나름의 가치가 있다.

이러한 인사동을 가꾸고 되살리는 데 앞장서는 이들은 단연 '인사동 사람들'이다. 인사동에 터잡고 살아온 일반인, 인사동에서 문화의 명맥을 잇고 있는 예술인, 골동품점, 화랑, 표구, 지필묵, 전통공예 등을 운영하는 사람들이다. 여기에 서울시와 관할 종로구청도 '인사동 살리기'에 적극적이다.

관건은 인사동을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살리느냐 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여러 이해가 상충하고, 가치 기준이 다르고, 법령 등의 문제까지 겹치면서 '인사동 살리기' 는 더딘 걸음을 하고 있다.

인사동을 가장 잘 아는 인사동 사람들은 "인사동이 인사동 다워야 인사동을 되살릴 수 있다"고 말한다.

인사동 사람들은 1987년 주민 협의체 형식으로'인사전통문화보존회'를 창설한 이후 2002년에는 사단법인으로 새로운 출발을 통해 보다 체계적이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최근 인사동이 본래의 모습을 잃어가며 위기감이 점증함에 따라 이에 대한 대책과 발전 전략을 마련하는데 전력하고 있다.

윤용철 (사)인사전통문화보존회 회장은 "'인사동 살리기'는 인사동 위기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면서 "인사동의 위기는 정체성의 위기"라고 규정했다. 인사동이 고유의 모습을 잃어감에 따라 국내외인들이 외면하는 것이 위기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윤 회장은 "인사동이 인사동 다워야 사람들이 찾는데 정체성 없이 당장 보기 좋고 즐길거리, 먹거리만 추구하다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등을 돌리게 됐다"고 말했다. 본래의 인사동 정체성과 관계없는 대기업 체인점, 커피숍, 화장품 상업적 업소가 증가하고 전통 문화상품 구매보다 관광목적 방문객을 대상으로 한 저가 기념품, 국적불명 상품 등이 넘쳐나면서 문화예술가들의 활동공간이 위축되고 인사동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열정도 빼앗아갔다는 것이다.

윤 회장은 인사동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인사들의 그릇된 시각도 지적했다. 그는 "인사동의 정체성, 본질은 외면한 채 국내외인이 많이 찾으면 되고, 그런 시설ㆍ공간을 마련하는 게 급선무라는 주장은 문제"라며 "가령 인사동이라는 축구장에선 축구가 이뤄져야 하는데 스포츠면 되니까 야구도 되고 골프도 된다고 하는 식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인사전통문화보존회를 비롯해 '인사동 지킴이'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위기의 인사동을 살리기 위해서는 인사동 정체성을 강화하고 새로운 관광수요를 창출할 시설을 도입해 인사동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세계속의 인사동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제도적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사전통문화보존회는 인사동 발전 계획으로 △인사동 발전을 선도할 핵심시설 조성 △인사동 전통문화 상품 거래 시스템 구축 △이야기와 문화가 있는 인사동 만들기 △주민이 자율적으로 관리하고 발전하는 인사동 재탄생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중 한국의 전통문화를 국내외인에게 제대로 알리고 전통상품 거래와도 연계된 인사동 핵심시설 조성이 중점 과제로 진행되고 있다. 핵심시설은 인사동을 종합적으로 홍보하고 전시, 체험, 교육하는 복합문화시설과 문화 관련 국제회의 및 전시를 하는 컨벤션센터, 인사동 예술가들이 활동하고 창작하는 창작팩토리, 전통상품 쇼핑몰인 문화상담판매장, 매일 야외행사ㆍ공연이 이뤄지는 공연장 등이다.

윤용철 회장은 "현재 인사동을 전통문화의 거리라고 하지만 단 몇시간 관광하고 떠나는게 대부분이어서 우리 문화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서 "큰 규모의 문화행사가 주로 강남 코엑스 등에서 열리는데 행사 외에 더 머물만한 문화요소가 드물다"고 말했다. 우리 문화를 체험하고 즐기고 인사동을 다시 찾을 수 있게 하고 대규모 문화행사를 인사동에서 열어 인사동의 다른 문화도 경험할 수 있게 할 필요가 있다는 게 윤 회장의 설명이다.

현재 중국의 경우 베이징구완청, 시안 대당서시는 중국 전통문화를 집합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전시, 공연, 전통상품 거래가 한꺼번에 이뤄지고, 대규모 문화행사를 할 수 있는 컨벤션센타도 마련돼 있다. 중국은 베이징구완청 같은 시설을 전국 곳곳에 설립해 내국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 관광객을 불러모으고 있다.

국내에서도 전통문화를 알리고 전통상품도 거래되는 복합문화시설과 컨벤션센타 등이 요구되는데 인사동 인근에서 그와 같은 시설의 신축이 진행되고 있다. 특히 현재 건립 중인 옛 대성산업부지 호텔에는 국제회의장과 전시장이 가능한 컨벤션센터가 마련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인사동 사람들의 꾸준한 요구과 그러한 시설의 필요성에 공감한 서울시와 관할 종로 구청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난 7월 초 박원순 서울시장은 메르스 사태로 빈사 상태에 있는 인사동을 방문해 인사동 사람들과 '인사동 살리기' 방안에 대해 여러 얘기를 나눴다. 인사동 사람들은 박 시장이 인사동에 관심과 애정이 많은 것을 확인했다며 박 시장이 독자적으로 추진해 시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청책(聽策) 토론회'에서 인사동 살리는 방안이 진지하게 논의되길 기대하고 있다.

인사동 사람들은 2002년 인사동이 문화지구로 지정됐음에도 전통문화와 관계없는 시설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 인사동이 황폐하게 된 데는 서울시 조례에 앞선 상위 법령이 작용하기 때문이라며 이에 대한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인사동이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되는 데는 인사동을 지키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 시ㆍ구, 정책 당국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홍우 기자 lhw@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