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부모' 연평균 30여 명 자녀 살해

자녀 살해하는 '괴물 부모' 늘어…젊은 엄마 두드러져
살해 동기는 가정불화, 경제적 어려움, 정신질환 순
비속 살해 형량 일반 살인보다 낮아…"가중 처벌돼야"

지난 1일 서울시 양천구에서 남편과의 불화로 인해 결혼 13년 만에 얻은 생후 53일 된 딸을 살해한 친엄마가 체포됐다. 남편 유 모(41) 씨가 "이혼한 후 딸을 내가 키우겠다. 만약 못 키우게 되면 보육원에 보내겠다"고 하자 이를 맘에 두고 있던 아내 김 모(40) 씨가 남편이 출근한 후 본인 집 화장실에서 딸을 익사시켰다. 김씨는 경찰에서 "딸을 보육원에 보내느니 애를 죽이고 나도 죽어 모든 것을 끝내겠다는 생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이처럼 부모가 자식을 살해하는 사건들이 급증하고 있다. 지난 8월 제주에서는 남편이 처자식을 살해한 뒤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했고, 7월 충북 청주에서는 남편과의 다툼으로 분노한 아내가 아들을 목 졸라 살해한 뒤 경찰에 자수했다.

친자식을 살해해 '괴물 부모'라는 수식어가 생길 정도로 급증하고 있는 자녀 살해 사건의 여러 측면을 살펴봤다.

자녀살해 동기 45% '가정불화'

지난 7월 충북 청주시 청원경찰서 앞에서 6세 남아 살해 사건의 유력 용의자인 아이의 어머니 양모(34)씨가 고개를 숙인 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경찰청이 작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6년 1월부터 2013년 3월까지 모두 230건의 자녀 살해가 발생했다. 이는 연간 30~40건에 해당하는 수치다.

자녀를 살해한 동기는 '가정불화'가 45%로 가장 높았다. 지난 7월 충북 청주에서 6살 아들을 이불로 덮어 살해한 양 모(34) 씨는 남편이 부부싸움 도중 막말을 하고 집을 나가자 홧김에 아들을 살해한 뒤 자신도 목숨을 끊으려 했다. 양씨는 "원래는 혼자 죽으려고 계획했었는데, 혼자 두고 죽으면 천덕꾸러기가 될 것 같아 혼자 남겨두고 갈 수 없었다"고 말했다.

경제적 어려움이 살해의 두 번째 이유가 됐다. 27%는 생활고 등 열악한 살림살이를 고민하다 자녀의 목숨까지 빼앗은 것이다. 지난 6월 숨진 신생아의 시신을 "아이를 좋은 곳으로 보내달라"며 친정에 보낸 이 모(35) 씨가 긴급 체포돼 구속됐다. 서울의 한 고시텔에서 혼자 아이를 출산한 뒤 입을 막아 숨지게 한 것이다. 이씨는 휴대전화요금을 내지 못해 통화 정지가 될 정도로 생활고를 겪었다. 또한 아이를 키울 능력이 없어 출산 사실이 알려질까 우는 아이의 입을 막았다고 진술했다. 지난 4월 서울에서는 태어난 지 나흘 된 딸을 숨지게 한 뒤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린 혐의로 손 모(33) 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손씨는 직장이 없어 아이를 키울 수 없는 탓에 유기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처럼 경제적 이유로 아이를 버리는 10대 미혼모도 증가하고 있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영아 유기는 2010년 69건에서 2012년 139건, 2013년 225건으로 증가했다. 대부분의 미혼모가 경제적, 사회적으로 아기를 양육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9세 이하 자녀살해 비율이 59%

부모에 의해 희생된 아이들의 59%는 물리적으로 저항하기 힘든 9세 이하였다. 27.9%는 10살에서 19살 사이의 미성년이었다. 20세 미만의 자녀가 전체의 87%를 차지한 것이다. 가해자인 부모의 연령대는 30∼40대가 전체의 약 77%였다.

자녀 살해 사건을 분석한 결과 아버지가 아들을 살해하는 사건이 전체의 30%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아버지가 딸을 살해하거나 어머니가 아들을 살해하는 사건이 각각 20%를 기록했다.

피의자의 46%가 어머니인 여성으로 나타난 점은 주목할 만하다. 2013년 절도ㆍ폭력 등 전체 범죄의 피의자 가운데 82%가 남성이고 여성은 18%에 불과한 것과 비교해도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특히 자녀를 살해한 후 가해자인 부모가 자살한 경우가 102건(44.4%)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한 전문가들은 자녀를 소유물로 생각하는 가부장적 사회문화가 자녀 살해의 주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부모들이 자녀를 독립적 인격체로 보지 못하고 소유물로 생각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부모 스스로 '내가 돌보지 못하면 아이가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 자신에게 위기가 닥치면 자녀를 살해하고 목숨을 끊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하고 있다.

영아살해 형량 일반 살인보다 낮아

자녀가 부모나 조부모를 살해하는 '존속살해'는 일반 살인 범죄보다 더욱 엄하게 처벌받고 있다. 하지만 부모가 자식을 살해하는 '비속살인'은 형량이 너무 가볍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지난 3월 갓 태어난 딸을 살해한 뒤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린 A씨는 법원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11월 산후우울증을 앓던 B씨는 자살 시도 중 두 살배기 딸이 울며 보채자 남편과 닮았다는 이유로 딸을 흉기로 찔러 살해했고,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반면 지난해 7월 빚 문제로 다투던 박 모 씨는 부모를 살해하고 집에 불을 질러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현행 형법에서 존속 살인의 경우 일반 살인보다 높은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하지만 비속 살인의 경우 별도의 가중처벌 규정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분만 중이거나 분만 직후 갓난아기를 살해할 경우에는 영아 살해에 해당한다. 이 경우에는 최고 형량이 징역 10년 이하로 일반적 살인죄보다 낮은 처벌 수위로 나타났다.

이처럼 처벌규정이 비속살해에 대해 너그러운 이유는 가부장적인 가족문화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가족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부모가 자식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살인을 '동반자살'로 미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자녀는 부모가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소유물이 아니므로 부모의 처지가 절망스럽다고 자녀를 죽일 권리는 없다"고 말한다. 또한 비속살해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한 의원은 "현행 형법이 존속살인에 대해 일반살인 형량보다 높은 형량을 적용한 데 반해 비속살해는 별도의 가중처벌이 없다"며 "신중하게 가중처벌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민정 인턴기자 mj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