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측근 검거, 사망 의혹 재점화… 검·경 로비도 도마 위에의료기 다단계 사기로 투자자 5만 명에게 4조 사기검찰 "조희팔 생존 전제로 수사 중"은닉 재산 현금 등 수천억대 추정로비 실체 밝혀지나… 수사 담당자들 뇌물로 잇단 구속

14일 대구지방검찰청 청사 앞을 검찰 관계자가 지나고 있다. 대구지검은 수조원대의 조희팔(58) 유사수신 사기 사건을 재수사하고 있다.
4조 원대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58)의 최측근 강태용(54)이 중국에서 검거되며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사기 사건으로 불리는 조희팔 사건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조희팔의 사망 의혹에 대한 실마리를 풀 수 있을지도 관심을 끌고 있다. 12일 대구지검은 강태용이 중국에서 송환되는 대로 조희팔 사기 사건 전반에 대한 수사를 다시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씨의 생사 여부, 뇌물 공여, 유사 수신 등 조희팔 사건의 전체적 흐름과 100억 원대에 이르는 강태용의 회사 자금 횡령 의혹 등이 핵심 수사 대상이 될 전망이다.

피해 규모 4조 원대

조희팔은 경북 영천의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유통업계 등을 전전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대구로 온 그는 막노동, 도박판 허드렛일 등으로 생계를 잇다가 형이 근무하던 한 다단계 업체에 들어가 일을 배운 것으로 알려졌다.

'조희팔 사건'은 그가 48세이던 2004년 유사수신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대구에 본사를 둔 BMC라는 의료 기구 임대사업에서 시작됐다. 터무니없는 고수익을 약속하는 대신 저금리 시대 재테크 사업으로 포장해 연 35%의 확정 금리를 주겠다며 투자자를 유혹했다. 경남, 서울, 인천 등지로 사업을 확장하며 엘틴, 벤스밴, 씨엔, 리브, 티투, 리젠 등 업체 이름을 수차례 바꿔가며 당국의 감시를 피했다.

강태용은 조씨와 다단계 사기 행각을 벌이기 전인 10여 년 전부터 측근이었다. 조씨가 사업을 확장하는데 강씨가 사실상 브레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씨는 대구와 인천, 부산에 기반을 둔 유사수신 업체 중 하나인 리브 법인 부사장을 맡았다. 업체의 자금과 로비를 담당하고 새 사업을 기획하는 등 최고 핵심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4조원대 유사수신 사기범 조희팔(왼쪽)과 강태용의 모습. 중국으로 밀항해 도주한 조희팔은 2011년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확인되지는 않았다. 조씨의 측근인 강태용은 지난 10일 중국에서 붙잡혔다.
투자자가 돈을 내고 모아 골반 교정기, 안마기, 공기청정기 등을 사면 조씨가 운영하는 회사가 이를 찜질방 등에 빌려준 후 이자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매일 소액씩 수익금이 통장에 들어오는 것을 본 투자자들은 사기라고 의심하지 않았다. 과거 대다수의 다단계 사기 업체처럼 직접 상품 구매를 강요하거나 사재기를 조장하는 방식이 아닌 돈만 투자하면 이자를 주는 방식에 안심한 것이다. 이들은 조씨의 '대여 마케팅'을 믿고 원리금을 재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자 대부분은 지인들에게까지 '괜찮은 투자처'로 알리는 전도사가 됐다. 삽시간에 전국 조직망을 갖춘 금융 피라미드 구조가 결성된 배경이다.

이런 허황된 금융 피라미드 사기극이 5년간 계속된 이유는 조씨 일당이 투자자를 끌어들이며 수익배당금 명목으로 매일 소액의 이자를 지속적해서 지급했다는 데 있다. 이를 본 투자자들은 주변 지인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물론 대출까지 받아가며 앞다퉈 재투자 대열에 합류했다. 그러나 이는 실제 수익금이 아닌 몰려든 후발 피해자들의 투자금을 앞순위 투자자들에게 돌린 '아랫돌을 빼 윗돌을 괸' 형태였다.

조씨는 사기를 치고 번 돈을 골프, 도박 등에 썼다. 조씨 일당은 지역별로 회사 이름을 바꿔가며 운영했기 때문에 불법행위를 단속해야 할 경찰과 검찰도 이들이 전국 단위의 피라미드 조직을 운영한 사실을 포착하지 못했다. 하지만 후발 회원의 돈을 기존 가입자에게 이자로 주는 사업구조가 한계에 다다르자 사기 행각은 탄로 났다. 충남 서산경찰서에 경인지부의 일부 피해자들의 진정서가 접수되며 사건은 알려졌다. 서산에서 수사가 시작되자 조씨 일당의 윤곽이 드러났고 이들은 곧 대구 본사에 있는 전국 전산망을 파기한 채 투자자로부터 끌어모은 금융 계좌를 인출한 뒤 도피했다.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사기행각에 모집된 회원은 5만여 명에 이르렀다. 피해 규모는 4조 원가량인 것으로 파악됐으며 일부 피해자 단체는 피해 규모가 최대 8조 원에 이른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2008년 10월 경찰이 사기 혐의로 조씨와 핵심 측근들을 수배하자 두 달 뒤 조씨는 수사망을 뚫고 강씨와 함께 중국에 밀항으로 달아났다. 충남 태안군 마검포항에서 양식업자 박 모(42) 씨 배를 타고 서해 공해상으로 나가 미리 대기하고 있던 중국 측 배에 옮겨 탔다. 조씨는 자신의 은닉재산 관리자에게 도피자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에 도착한 조씨는 현지에서 타인 명의로 공장, 식당 등을 운영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씨의 오른팔인 강씨는 10일 중국 장쑤성 우시시의 한 아파트에서 잠복 중이던 중국 공안에 체포됐다. 강씨가 중국에서 검거되는 데는 현지 공안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당국은 한국 검찰의 강씨 검거 요청을 받은 직후 10여 명의 특별검거팀을 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한국 당국과의 핫라인 구축으로 정보를 교류해 검거 의뢰 4일 만에 강씨를 붙잡았다. 대구지검 관계자는 "이번 검거 사례를 한ㆍ중 공조수사의 개가"라고 전했다.

조희팔 '위장 사망' 진위가 1차 관문

이 사건을 수사하는 대구지검은 조씨 사건 수사 전망에 대해 "강태용을 조사하면 (조희팔에 대한 것도) 커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2008년 12월 조씨와 함께 밀항한 강씨를 조사하면 조씨의 생사 등을 규명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대구지검은 지난달 18일 국정감사에서 "조씨가 살아 있는 것을 전제로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씨는 중요 범죄인으로 현재 인터폴을 통해 적색 수배가 내려진 상태다.

검찰 수사의 첫 관문은 조씨의 사망 여부를 밝히는 일이다. 2008년 중국으로 밀항한 조씨의 은닉 자금을 수사하던 경찰은 2012년 5월 21일 "조씨가 약 5개월 전인 2011년 12월 중국에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경찰 발표 후에도 조씨가 사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혹 제기가 잇따랐다.

당시 경찰이 조씨의 사망 근거로 삼은 것은 조씨의 응급 진료 기록과 사망진단서, 화장증, 장례식 동영상이었다. 조씨 사망에 대해 반신반의하던 경찰은 중국 당국에 진위여부를 확인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경찰에 따르면 조씨는 2011년 12월 18일 중국의 한 고급호텔 근처 식당에서 지인들과 함께 식사하고 술을 마셨다. 오후 8시부터 2시간가량 음주를 하다 호텔 방에 온 뒤 갑자기 급체 증상을 보이며 쓰러진 조씨가 급성심근경색으로 숨졌다는 것이다. 조씨의 응급진료기록과 사망진단서에는 조씨가 구급차 안에서 사망선고를 받은 것으로 돼 있었다. 해당 문서 등이 진본이라고 통보받은 경찰은 "결정적 물증은 없지만 정황상 죽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중국 현지에서 발급된 사망진단서에서 파출소 확인 도장이 없고, 화장증 발급 날짜가 화장보다 열흘 빠르다는 점 등을 들어 경찰의 발표가 성급했던 것이라는 의구심이 일었다. 또한 조희팔 사건의 피해자 모임인 '바른 가정경제 실천을 위한 시민연대(바실련)' 측은 조씨가 심근경색을 일으켰을 때 호텔 근처 병원으로 데려가지 않은 점, 한국 정서와 맞지 않는 장례식 동영상을 촬영한 점, 조씨가 중국에서 자신의 신분을 위장한 채 살았던 점 등을 들며 사망 위조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조희팔 살아있다는 증언 이어져

바실련은 추적단을 구성해 지금도 조씨의 흔적을 좇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중국, 동남아 등에서 조씨를 목격했다는 제보가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조씨가 사망했다고 알려진 때부터 약 1년 뒤까지 인근 골프장에서 11번 골프를 쳤다"는 증언이 나왔고 웨이하이 단골 식당에서 조씨가 올 초까지 식사하고 갔다는 종업원의 목격담도 있었다.

또한 바실련 측은 "조씨가 현재 산둥성 웨이하이, 칭다오 등에서 폭력조직 비호 아래 생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 도피와 사망 발표 이후에도 한국에서보다 더 나은 황제 도피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조씨 최측근 최 모(47) 씨가 2013년 말에 조씨와 통화를 했다는 증언이 이어짐에 따라 조씨의 사망설이 거짓으로 판명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최씨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조씨가) 죽었다고 한 후에도 삼촌(조씨를 지칭)과 몇 차례 전화 통화했고, 마지막으로 2013년 말에는 (조씨가)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 조희팔은 죽지 않았다"고 전했다.

최씨는 조씨의 중국 도피 생활에 대해 "중국에 도착하자마자 성형 수술로 얼굴을 바꿨고 지문까지 없애려고 했지만 잘 안 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어 "조씨는 한국에 여러 명의 내연녀가 있는데 이들이 도피 자금을 운반하는 것으로 알고 있고, 주로 골프 치고 술 마시며 일상을 보냈다"며 "수시로 거처를 옮겼고, 권총을 품에 지니고 다녔다"고 전했다.

검·경 로비도 수사되나

조희팔 사건은 조씨와 강씨 등 사건 핵심 인물들이 사법당국의 수사가 본격화된 2008년 말 중국으로 달아나 그동안 수사가 진전되지 못했다. 이에 대구지검은 사건 수사에 수사팀을 대거 보강하기로 했다. 또한 대검찰청으로부터 전문 수사 인력을 지원받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조씨는 중국으로 도피하기 전까지 수사 무마를 위해 검ㆍ경에 뇌물을 뿌렸던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조씨 측이 수사 무마 등을 위해 검ㆍ경을 포함한 정ㆍ관계 인사를 상대로 벌인 로비 의혹도 면밀하게 들여다볼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조씨의 '비호세력'이 추가로 드러날지 주목되고 있다.

조씨의 자금 관리를 총괄한 강씨는 각종 인맥을 동원해 조씨 대신 로비활동을 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조희팔 측의 2억4000여만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7년을 확정 선고받은 김광준 전 서울고검 부장검사(54)는 강씨와 고교 동문이다. 또한 수사 무마 부탁으로 15억8000여만 원의 뇌물을 받아 재판을 받는 대구지검 서부지청 오모(54) 전 서기관도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권모(51) 전 총경은 대구지방경찰청 강력계장으로 근무하던 2008년 조씨로부터 9억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수사2계에 근무하며 조씨 수배 담당자였던 전직 경찰 정모(40) 전 경사도 구속됐다. 조희팔 사건 이후 지금까지 6명의 검찰, 경찰 전ㆍ현직 관계자가 처벌받아 '비호세력'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수사를 무마하기 위해 사망 조작을 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는 가운데 조씨의 사망을 발표한 경찰청 지능수사대장은 작년 말 정국을 뜨겁게 달군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의 박관천 전 경정이었다. 그러나 당시 수사 라인에 있던 경찰 간부는 "의도를 가지고 조씨 사망 발표를 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전했다. 박 경정은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 외에도 2007년 유흥주점 업주로부터 수사 무마 청탁과 함께 1억7000여만 원대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지난 2월 추가 기소됐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13일 기자 간담회에서 2012년 당시 박 경정이 조씨 사망이 거의 확실하다는 취지의 표현을 쓴 점에 대해 "박 경정은 본인의 소신이 강한 사람"이라며 "자신의 상사에게도 그렇게 보고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바실련 측은 "조씨 생존 여부와 은닉재산 수사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기대한다"며 "조씨나 강씨의 차명계좌 등을 통해 검찰, 경찰, 정관계 인사 등으로 뇌물이 건네졌을 가능성도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대구지검은 지난해 7월 조희팔의 은닉재산 흐름에 대한 재수사에 착수해 지금까지 1200억 원대의 자금을 확인하고 추징 보전 절차를 진행했다. 또한 조씨의 은닉재산을 빼돌린 조씨 조력자 12명을 검거해 법정에 세웠다. 대구지검 관계자는 "조씨의 최측근 인물인 강태용이 국내로 송환되는 대로 그동안 확인에 어려움을 겪었던 은닉재산 흐름을 다시 파악하고 면밀하게 확인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검찰은 강씨의 국내 송환 일정과 관련해서는 이번 주말께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다만 과거 사례를 볼 때 송환 일정이 한두 달 지연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검찰 관계자는 "중국 정부와 송환 일정 협의를 마무리하는 대로 수사관을 중국에 보내 신병을 넘겨받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민정 인턴기자 mj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