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死生)결단’… 범죄로 치닫는 사생(私生)팬의 어긋난 ‘팬심’

방법도 가지가지…도 넘은 사생팬에 멍들어가는 연예인
업무방해·주거침입·개인정보법 위반 등 엄연한 범법행위
달래보고, 화내봐도 개선의 여지 없어…소속사도 “답답”
美 스토커ㆍ日 야라카시 등 나라마다 스토킹하는 광팬 있어
미국 1990년 ‘스토킹 방지법’ 제정…독일과 일본은 2000년대 시행
우리나라 스토킹, 경범죄 처벌법으로 벌금 10만 원 부과할 뿐
도 넘은 사생팬 위험한 행위


“누누이 얘기했습니다. 개인적인 공간을 침해하는 행위는 절 학대하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절대 팬 사랑이 아니에요.”

지난 8월 11일 보이그룹 블락비 멤버 지코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사생팬들에게 언급한 내용이다. 지코 외에도 JYJ 김재중ㆍ빅뱅 지드래곤ㆍ씨엔블루 정용화ㆍ비스트 양요섭 등 수많은 아이돌들이 사생팬들의 사랑을 빙자한 집착에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사생팬은 특정 인기연예인의 사생활, 일거수일투족까지 알아내려고 밤낮없이 해당 연예인의 일상생활을 쫓아다니며 생활하는 극성팬을 지칭한다. 이들은 학업이나 직장생활까지 뒷전으로 미룬 채 해당 연예인을 집요하게 따라다니는 경우가 많고, 특히 광적인 스토커 수준으로 변하는 사례도 있어 최근 들어 심각한 사회문제로까지 대두되고 있다.

실제 지난달 30일 서울 송파경찰서에 따르면 배우 조인성이 거주 중인 송파구 방이동 자택에 31살 중국인 여성 A씨가 무단 침입해 붙잡혔다. A씨는 2년 전부터 배우 조인성의 팬으로 활동했으며, 두 달 전 여행비자로 입국해 이날 0시 20분 쯤 귀가하는 조인성을 보고 자택 문을 수차례 두드리며 “나오라”며 고성을 지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견디다 못한 조인성의 가족이 문을 열고 나온 틈을 타 A씨는 조인성 자택으로 무단 침입했다. 수차례 가족들이 나가라고 경고했지만 A씨는 이에 굴복하지 않고 집안에 머물다 출동한 경찰에 의해 체포됐다.

또 HOT 멤버였던 토니안은 “H.O.T. 숙소 생활 시절, 팬들이 현관문 렌즈를 깨서 우리가 목욕하는 모습을 보곤 했다”며 “어느 날 렌즈를 통해 밖을 보는데 투명해야 할 렌즈가 검은색이었다. 숙소 안을 보고 있는 팬의 눈동자였던 것”이라고 말했다.

동방신기 최강창민은 “장난 전화가 많이 와서 번호를 바꿨는데 바꾼지 5분 만에 ‘번호 바꿨네요’라는 문자가 왔다”고 전했다. 유노윤호도 “그래서 번호를 또 바꿨더니 ‘자주 바꾸는 건 안 좋아요’라고 문자가 왔다”면서 “심지어는 숙소에만 있는 물건을 찍은 사진을 휴대전화로 보낸 적이 있어 정말 깜짝 놀랐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이밖에 JYJ 멤버 김준수는 과거 한 방송을 통해 “(사생팬들이) 자고 있을 때 다가와 키스를 시도하기도 하고, 얼굴을 보기 위해 일부러 사생 택시로 접촉사고를 내기도 했다”고 충격적인 사례를 털어놓기도 했다. 또 연예인이 타는 벤에 도청장치를 붙이고 차로 가까이 접근해 멤버들이 차 안에서 나누는 대화를 몰래 듣고 녹음한다.

목격되는 사생팬의 연령대는 대개 20~30대지만, 경제력이 높은 40대도 종종 볼 수 있다. 사생팬 특성상 비교적 많은 시간과 비용을 연예인에 할애해야 하기 때문에 사생팬은 대부분 숙소 앞이나 소속사 앞에서 새벽 2~3시까지 무작정 기다리기 일쑤다.

사생팬에도 종류가 있다. 10대 사생팬처럼 숙소 앞에서 스타를 무작정 기다리는 ‘숙소파’, 사생택시 등을 타고 연예인의 모든 스케줄을 따라다니는 ‘택시파’, 주변 인맥 등을 통해 스타와 한 공간에서 직접 마주하는 ‘빽파’ 등이다. 사생팬의 일과는 조직적으로 이뤄지는데 처음부터 삼삼오오 모여서 시작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숙소 앞에 혼자 무작정 찾아가서 기다리다가 알게 된 사생팬 무리에 자연스럽게 합류하게 되면서 무리로 이어진다. 그렇게 연예인이 다니는 미용실, 단골 술집 등의 순방을 함께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사생팬은 단순한 ‘열혈 팬’이나 ‘광팬’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이들은 폐쇄적인 커뮤니티 내에서 수집한 정보를 공유한다. 일반 팬들은 접근할 수 없는 폐쇄 커뮤니티나 그룹 채팅창을 통해 실시간으로 연예인의 위치를 전송한다. 이 과정에서 정보가 거래되기도 한다. IT 관련 기술이 발달하면서 팬들의 ‘정보수집능력’도 상당한 수준이 됐고, 이 능력을 바탕으로 해킹과 복제, 합성 등 최신식 기술로 중무장한 사생팬들은 하드웨어 해킹까지 감행한다. 이렇게 알아낸 정보를 통해 “오늘은 OOO가 인터넷으로 무엇을 했고, 어떤 음악을 들었다”며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사생팬들은 연예인의 해외 스케줄에도 함께하는데 비행기 좌석 정보를 사전에 알아내 연예인의 좌석과 근접한 위치의 좌석을 예약하여 탑승한 후, 연예인의 비행기 내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까지 낱낱이 사진에 담는다. 우여곡절 끝에 호텔에 도착해도 연예인들은 방심할 수 없다. 이미 특정 연예인이 머무는 호텔 같은 층 객실은 사생팬들로 점령된 상태다. 이에 한류스타들이 호텔 한 층을 전부 예약하거나, 경호팀을 배치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행동은 허세가 아닌 모두 ‘신변보호’를 위한 것이다.

이밖에도 사생팬들이 연예인의 자동차에 위치 추적 장치를 몰래 장착하여 개인 스케줄을 파악하고, 집 비밀번호를 알아내 연예인의 자택에 무단 침입한 후 개인 물건들을 촬영한 사례도 있다.

사생팬 대비 법안 미비… ‘양날의 ‘칼’ 기획사 고민

이에 따라 팬들 사이에서는 사생팬의 범죄 행위는 반드시 엄단해야 한다며 2013년 10월 9일 법제처 국민신문고에 ‘사생활 침해하는 사생팬 관련 법제화’를 내용으로 하는 국민제안을 게재했다. 제안에는 도청 장치 사용이나 숙소 비밀번호, 연예인 핸드폰 번호와 주민등록번호를 유출하는 행위를 문제삼으며 형사처벌이 가능한 이유가 설명돼 있다. 한달 사이에 2만8000여 명이 추천했을 정도로 반응은 뜨거웠으나, 2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관련 법안은 마련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관련해 이돈필 변호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사생팬들의 불법위치 추적과 미행 등은 ‘위치정보의 보호와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이 직접 적용될 수 있다”며 “스케줄 도중 미행하는 경우 업무방해죄에 해당될 수 있으며, 주거침입 등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불법으로 주민등록번호 등이 수집, 유통될 경우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라며 “정보주체를 소송까지 할 수 있는 벌칙 규정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렇지만 스타와 소속사측은 이처럼 위험천만한 행동도 불사하고 달려드는 ‘사생결단’ 사생팬들을 막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팬들의 구매력은 곧 연예인과 스타성과 연결되기 때문에 인기의 척도가 되는 팬덤 중 하나인 이들의 심기를 거스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일반 팬들도 ‘정보 우위’에 있는 사생팬들의 정보력을 이미 신뢰하고 있어 자칫 심기가 불편한 사생팬들이 루머를 퍼뜨리거나, 연예인의 사생활을 폭로할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연예인에게 간다. 이에 대형 기획사 어느 곳에서도 범죄행각을 저지르는 사생팬을 고소ㆍ고발한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생팬은 말 그대로 양날의 검이다.

한 유명 연예기획사 S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사생팬 때문에 소속사도 이만저만 힘든 게 아니다”라며 속마음을 토로했다. 그는 “연예인의 부모님과 친한 친구의 스케줄까지 파악해 매일 찾아가는 경우도 있고, 자신이 먹던 걸 포장해서 연예인에게 먹으라고 보내는 경우도 있다. 또 연예인의 집의 안방 불이 켜졌는지, 꺼졌는지도 (사생팬끼리) 공유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털어놨다.

이 관계자는 “증거와 정황이 있어야 법적 대응도 가능한데 서너번 사생팬 행위가 발견됐다고 해서 무작정 고소ㆍ고발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답답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많은 회사에서 사생팬을 만났을 때 해서는 안 되는 조항을 마련해 소속 연예인들에게 사생팬 관련 교육을 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강력한 처벌 부르는 해외 '사생팬'들

“스토커가 나치보다 싫다.’ 2013년 10월 8일 할리우드 팝스타 리한나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몸에 이불을 걸친 채 호텔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의 사진과 함께 게재한 말이다. 당시 리한나는 스토커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리한나의 스토커인 남성은 2012년 12월, 리한나 주변을 서성거리다 체포된 전력이 있는데, 당시 경찰로부터 ‘접근 금지’ 명령을 받고 훈방됐다.

그러나 또다시 리한나 앞에 나타난 이 남성은 2013년 9월 29일에는 의자로 리한나의 집 유리문을 부수는 등의 만행을 저질렀다. 심지어 본인이 리한나의 미래의 남편이라고 주장하며 끈질기게 리한나에게 집착했고, 결국 2013년 10월 4일 경찰에 체포됐다.

이처럼 해외 연예인들도 도를 넘은 팬들로 인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생팬(私生fan)'이라 불려지는 이들을 영어권에서는 스토커라 부르고, 일본에서는 ‘야라카시’(ヤラカシ·’저지른다’라는 뜻의 ‘야라카스’에서 온 말) 라 한다.

세계적인 팝스타 비틀즈의 존 레논은 광팬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 존 레논을 살해한 마크 채프먼은 존 레논을 죽이면 자신이 유명해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범죄를 저질렀다고 고백했다. 이 밖에도 린제이 로한, 기네스 펠트로, 샌드로 블록, 크리스 브라운 등 수많은 팝스타들은 스토커로 인해 일상 생활에서 불편함을 겪고 있음을 호소했다.

린제이 로한은 지난해 7월, 자신이 머물고 있는 런던 호텔 바깥에서 텐트를 치고 기다리는 한 남성을 경찰에 신고했다. 이 스토커 남성은 로한이 묵고 있는 호텔 레스토랑 메모지로 로한에게 결혼 신청을 하고, 사인까지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크리스 브라운은 광팬을 상대로 적극적으로 대응한 케이스다. 스토커의 이상 행동에 경찰에 신고한 뒤 온라인에 이같은 사실을 공개하며 대대적인 망신을 주면서 여타의 스토커들에게 간접적인 경고 메시지를 날린 것이다.

지난 5월 7일(현지시각) 새벽 로스앤젤레스(LA) 인근에 있는 집으로 들어온 크리스 브라운은 자신의 집 주방에서 한 흑인 여성이 나체로 요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됐다. 이 여성은 벽에 ‘브라운을 사랑한다’는 낙서를 했고, 크리스 브라운 자동차에는 페인트로 자신의 이름까지 적어 놓았다. 또 브라운의 딸 옷들과 애완견이 쓰던 도구들도 밖으로 버리자 분노한 크리스 브라운은 이 여성의 모습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SNS에 올렸다.

일본의 야라카시들은 할리우드의 스토커보다는 한국의 사생팬과 비슷한 경향의 행동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들은 대개 ‘쟈니스’(일본 내 유명 기획사로, 남자 아이돌 양성을 중점으로 한다)나 일본 여자그룹에게서 많이 보이는데, 아이돌 멤버가 혼자 길을 걸어다니면 뒤따라가서 지켜보거나 몰래 사진을 찍는다. 일본은 연예인 사진도 저작권이 있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에 사생활을 찍으면 법적 조치를 받기 때문에 주변을 서성거리며 연예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일본의 사생팬 종류는 스케줄을 따라 움직이는 ‘옷카케’(追っかけㆍ뒤를 쫓는다는 뜻), 일주일에 4일 이상 따라다니는 열성 옷카케인 ‘오리키’(オリキㆍ옷카케에 힘을 더한 합성어) 그리고 매너가 나쁜 옷카케를 뜻하는 야라카시가 있다. 이들은 집단을 이뤄 따라다니기도 하는데, 연예인의 집까지 들이닥쳐 사유물을 훔치거나 다른 팬들을 공격하기도 한다. 인기 그룹 모닝구무스메 1대 리더였던 나카자와 유코는 “사생팬들은 연예인이 버린 쓰레기까지도 주시했기 때문에 쓰레기를 버리는 것조차 힘들었다”고 증언했다.

일본에서는 1980년대부터 ‘아이돌 팬덤’ 문화가 등장했고, 피해 사례는 상당하다. 이에 이와 같은 광팬을 규제하기 위해 기획사가 앞장섰다. 일본 기획사는 팬들 중 한 명을 뽑은 후 긴밀하게 연락을 하면서 팬이 지켜야 할 수칙을 알린다.

또 밤 10시 이후에는 10대 아이돌을 쫓아다니면 안 되며, 연예인과 같은 지하철 칸에 탔을 경우 다른 칸으로 갈아타는 등 연예인의 사생활을 지켜줄 것을 당부한다. 그럼에도 연예인의 숙소에 CC(폐쇄회로)TV를 설치하거나, 칼로 협박해 연예인의 휴대전화를 빼앗는 사건이 일어나자 기획사는 자정을 요청하는 성명을 직접 발표함으로써 올바른 팬문화가 형성될 수 있도록 했다.

외국 스토킹 방지법 엄격…한국은 처벌 가벼워

외국은 비교적 스토킹을 규제하기 위한 법안이 잘 마련돼 있다. 미국, 독일, 영국, 캐나다, 벨기에, 아일랜드 등은 1990년대 이미 스토킹을 범죄로 정의하고 처벌 규정을 마련했다. 스토킹 범죄화는 대부분 형법을 통해 이뤄졌으나, 영국, 일본 등은 특별법을 통해 규정하고 있다.

미국은 1990년 캘리포니아에서 처음 ‘스토킹 방지법’이 제정됐다. 주마다 스토킹을 규제하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는데, 무기를 소지하거나 신체 상해를 입히는 위험 행위를 저지르는 ‘가중적 스토킹’의 경우 중죄로 취급한다.

독일에서는 2007년 형법 개정을 통해 ‘스토킹 범죄 처벌에 관한 법률’이 시행됐다. 생명, 신체의 안전, 건강, 자유 등의 법익이 침해될 위험 범위에 대한 규정과 함께 사망에 이른 경우를 상정해 가중범으로 처벌하도록 규정했다. 다만, 일반적인 스토킹은 친고죄로 규정해 피해자의 고소에 의해서만 소추가 가능하다.

일본에서는 2000년 ‘스토커 행위 등의 규제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자택ㆍ근무지 등에서 기다리기, 도청ㆍ미행, 반복된 교제 요구, 명예훼손이나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행위 등에 대해 경찰의 경고와 공안위원회의 금지명령 등의 조치가 내려질 수 있다. 이를 위반하는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만 엔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나아가 2013년에는 스토커 행위 규제를 강화하는 '개정스토커 규제법'을 마련했다. 개정법에서는 상대가 거부했음에도 메일을 반복해서 보내는 행위가 추가됐다. 또 2014년에는 SNS의 메시지 내용도 포함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스토커에 가까운 광팬을 제한할 수 있는 법적 조치가 미비한 실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99년부터 스토킹 방지법 발의가 8건이 됐으나 아직까지 통과된 건은 없다. 주로 스토커들에게는 폭력행위 처벌법 등을 적용했고, 사이버 스토킹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처벌조항을 두고 있다. 현재는 경범죄 처벌법에 의해 처벌은 가능하나, 벌금은 10만 원 이하로, 법정형은 불가능하다. 현행법상 스토킹을 처벌할 마땅한 대안이 없는 상태다.



김소희 기자 ksh@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