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이지 않는 '고객 갑질'에 감정 노동자 상처… '산재' 인정 보호

지난달 16일 신세계백화점 인천점 1층 스와로브스키 매장에서 점원 2명이 고객에게 무릎 꿇고 사과를 하고 있다. 이고객은 귀금속 무상수리 여부를 놓고 점원들에게 1시간가량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금근로자10명 중 3~4명 감정노동자… 전국 560만~740만 명 추산
감정노동자 58.3% 우울증… 이 중 8%는 자살을 시도하거나 생각
'손님은 왕이다' 과도한 고객 중심주의 '고객 갑질' 부추겨
고용노동부 '산재' 인정… 감정노동자 위로할 수 있을까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땅콩 회항 사건', '라면 상무', '백화점 폭행 사건'이 이어지며 감정노동자들의 피해 사례가 꾸준히 전해지고 있다. 감정노동자는 전체 임금근로자 10명 중 3∼4명에 달하는 560만∼74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안전보건공단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감정노동자 2652명 중 58.3%가 우울증을 겪고 있었고 이 중 8%는 자살을 시도하거나 생각한 적이 있었다.

'고객은 왕'이라는 생각으로 하는 폭언, 폭행, 성희롱 등의 횡포가 이어지자 정부가 감정노동자 보호 대책을 내놓았다. 고용노동부는 이를 산업재해로 인정하는 개정안을 2일 입법 예고했다. 고용노동부는 고객의 폭언개정안은 산재보험의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에 '적응장애'와 '우울병'을 추가해 감정노동자가 고객으로부터 장시간 폭언을 듣는 등의 '고객 갑질'로 정신적 충격과 스트레스를 받아 우울병이 발생하면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됐다.

끊이지 않는 '고객 갑질'

짜증과 폭언,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음료를 집어 던지는 등 고객의 '갑질' 행위에 이유도 모른 채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해야 하는 감정노동자들이 있다. '고객 갑질'에 대한 들끓는 여론에도 국민의 공분을 일으키는 감정노동자들의 피해 사례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16일 신세계백화점 인천점에 입점해 있는 귀금속 매장 스와로브스키 직원이 고객 갑질로 인해 무릎 사죄를 한 영상이 공개돼 파장을 일으켰다. 영상 속 고객은 직원들에게 "야 너희 둘 다 똑바로 해. 지나가다 마주치면 나보고 죄송하다고 하게 내 얼굴 외워"라며 다그쳤다. 사건은 지난달 10일 고객의 어머니가 해당 백화점의 스와로브스키 매장을 방문해 7년 전 구입한 목걸이와 팔찌의 무상 수리를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데서 시작됐다. 매장 직원은 고객의 어머니에게 품질 보증서가 없고 서비스 기간이 지나 수리비의 80%는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고객은 사흘 뒤인 13일 스와로브스키 한국 본사에 전화를 걸어 따졌고, 스와로브스키 측은 예외적인 무상 수선을 약속했다. 그럼에도 고객은 다음 날 매장을 재방문해 어머니가 왔을 때는 안 되더니 내가 오니 되느냐고 큰소리를 친 것으로 알려졌다. 1시간 동안 직원들에게 항의했고 매니저가 착용하고 있던 제품을 무상으로 달라고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1월에는 고객이 롯데백화점의 매장 관리자의 뺨을 때려 폭행 혐의로 불구속 입건되기도 했고 지난해 12월 27일에는 '부천 백화점 모녀' 사건이 사회적 이슈로 확대되며 전 국민의 공분을 샀다. 현대백화점 부천 중동점을 방문한 모녀는 지하 4층 주차장에서 해당 백화점의 주차요원 4명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강요하며 이 중 한 명의 뺨을 때린 혐의를 받았다. 지난 3일에는 보험회사 콜센터에 130여 차례 전화를 걸어 여성상담원을 성희롱하고 업무를 방해한 50대가 실형을 선고받는 등 '고객 갑질'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손님은 왕' 과도한 고객 중심주의

사회적으로 비난받는 갑질 고객이 사라지지 않는 가장 큰 원인은 소비자의 권리의식 신장을 꼽을 수 있다. '손님은 왕이다'라는 과도한 고객 중심주의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녹색소비자연대에 따르면 '감정노동을 생각하는 기업 및 소비문화조성 전국협의회'가 전국 대도시 남녀 1115명을 대상으로 지난 8~10월 불만 이유를 조사한 결과 '분명히 기업이 잘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책임지지 않고 소비자 탓으로 돌려서'라고 응답한 비율은 전체의 78%로 가장 많았다. '내가 필요한 정보를 제대로 주지 않아서'(73.5%), '나를 오래 기다리게 해서'(70.6%) 등이 뒤를 이었다. 서비스 업종에서는 기업이 상품 판매량을 늘려 이윤을 높이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고객의 입장을 과도하게 중시해 종속을 강요하는 경향이 있어 도를 넘는 고객 중심주의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국내 감정노동자는 560만∼740만 명으로 전체 임금근로자 10명 중 3∼4명에 달하는 것으로 정부는 추산하고 있다. 이러한 감정노동자들의 속앓이는 심각한 정신질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서비스업 비중이 점차 커지며 앞으로 감정노동자는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안전보건공단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감정노동자 2652명 중 58.3%가 우울증을 겪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중 8%는 자살을 시도하거나 생각한 적이 있었다. 또한 한명숙 전 총리가 2013년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 백화점 직원, 콜센터 상담원, 승무원 등 감정노동자 2259명을 상대로 실시한 심리조사 결과에서는 감정노동자의 81.1%가 고객으로부터 모욕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감정노동자의 30%는 자살 충동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전체 국민 평균 16%보다 두 배 가까이 높은 수치다. 전국민간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이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노동자 3096명을 대상으로 감정노동 실태를 조사한 결과, 26.6%가 심리상담이나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우울증 증세를 겪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기업의 '공정 서비스' 확대될까

감정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고객에게서 1차 피해를 입은 감정노동자들이 기업의 소극적인 대처로 2차적으로 피해를 입는 상황으로 기업 차원의 적극적인 노동자 보호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고객 갑질' 논란이 이슈가 되고 있는 가운데 네티즌들에게 큰 호응을 얻으며 '반격'에 나서는 기업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최근 국내 도시락업체 '스노우폭스'가 직원에게 모욕적 언행을 하거나 타인을 불편하게 하는 행동을 하는 고객에 대한 서비스 거부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혀 화제가 됐다. 스노우폭스는 매장과 홈페이지에 '공정 서비스 권리 안내'를 내걸었다. 이 안내문은 "상품과 대가는 동등한 교환이다. 우리 직원이 고객에게 무례한 행동을 했다면 해당 직원을 내보내겠지만, 고객이 우리 직원에게 무례한 행동을 한다면 그 고객을 내보내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어 "직원에게 인격적 모욕을 느낄 언어나 행동, 큰 소리로 떠들거나 아이들을 방치해 다른 고객을 불편하게 하는 행동을 할 경우에는 정중하게 서비스를 거부할 수 있음을 알려드린다"고 덧붙였다.

또한 한 화장품 업체가 비상식적인 행동으로 영업을 방해하는 고객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글을 올려 화제가 됐다. 온라인커뮤니티에는 지난 2일 '영업방해 형태로 하는 모든 행위는 법적으로 대응하겠습니다'라는 한 화장품 업체의 공지사항이 올라왔다. 업체는 "모 회원분께서 제품을 받으셨는데 포장박스가 찌그러져서 왔다는 문의와 함께 본인은 3만 원 이상 구매를 했는데 시트 마스크가 안 왔다는 문의를 하셨다. 하지만 확인 결과 3만 원 이상이 되지 않으셔서 시트 마스크를 받지 못하신 것이었다"라며 사건의 경위를 설명했다. 이어 "이 부분을 전화로 전달해 드리니 욕을 하고 끊으신 후 게시판에 '합성폐기물 같다', '비추천한다' 등의 후기를 남겼다"라며 "오늘 내로 수정이 없으실 때는 저희와 연결되어 있는 법무사를 통해 처리하도록 하겠다"라고 고객의 무분별한 행동에 대한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속칭 '진상'을 부리는 고객에 대해 강경책을 내놓는 사례들이 생겨나지만, 대다수 기업에선 진상 고객이더라도 노동자 보호보다 고객 만족을 우선하는 문화가 만연하고 있어 강제규정 도입의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서 산재 인정돼

'고객 갑질' 논란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정부가 감정노동자 보호를 위한 법 개정에 나섰다. 지난 10월 25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정부는 감정노동자를 보호하는 내용을 담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조속히 통과될 수 있도록 의원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하기로 했다. 정부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과 관련한 안을 이미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제출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안은 감정노동이라는 용어를 쓰지는 않았지만, '고객 응대 업무에 주로 종사하는 근로자'를 실질적인 감정노동자로 보고 이들의 피해를 막는 데 초점을 맞췄다. 우선 사업주들이 '고객 응대 매뉴얼'을 갖추도록 의무화했다. 이 매뉴얼에는 근로자가 고객을 응대하는 과정에서 폭언이나 폭력을 당할 때 고객 응대를 거부하거나, 고객의 행위가 지나치게 심할 때는 법적인 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내용 등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이는 감정노동자의 피해가 잇따르고 있는 것은 '고객은 왕'이라는 생각으로 매출 올리기에만 골몰하며 종업원 보호에 소홀히 한 기업들의 잘못도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고객의 요구를 무조건 수용하고 사과토록 하는 기업의 행태에 제동을 걸어 감정노동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또한 지난 2일 고용노동부는 고객의 '갑질'로 고통을 겪었던 감정노동자도 산업재해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시간제 근로자와 특수형태 근로 종사자, 감정노동자에 대한 산재보험 보호를 확대하는 내용의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시행규칙' 등의 개정안을 입법예고 한 것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산재보험의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에 '적응장애'와 '우울병'을 추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고객 응대 업무를 맡는 근로자의 정신 질병 피해 사례가 늘고 있지만, 기존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은 '외상후스트레스장애'만 규정돼 있어 산재 인정이 어려웠다. 이번 개정을 통해 텔레마케터, 판매원, 승무원 등 감정노동자가 고객으로부터 장시간 폭언을 듣거나 인천의 한 백화점에서 최근 발생한 백화점 점원이 고객의 항의로 무릎을 꿇고 사과를 하는 등의 사례처럼 '고객 갑질'로 정신적 충격과 스트레스를 받아 우울병이 발생하면 산재로 인정받는다. 개정안에 따르면 근로자와 비슷한 업무를 하지만 근로자 지위가 아닌 '특수형태업무종사자'에 대한 산재보험 적용도 확대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금까지 산재보험이 적용되는 특수형태업무종사자는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골프장캐디, 레미콘 기사, 택배 기사, 전속 퀵서비스 기사였다. 앞으로는 대출모집인, 카드모집인, 전속 대리운전기사가 추가될 예정이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대출모집인 및 신용카드모집인 5만여 명, 대리운전기사 6만여 명이 산재보험 혜택을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산재보험에 '적응장애'와 '우울병'을 추가하는 내용은 내년 1월, 시간제 근로자와 특수형태근로 종사자의 산재보험 확대는 준비 기간을 거쳐 내년 7월 시행된다. 고용부 관계자는 "이번 개정안은 감정노동자, 특수형태근로 종사자, 시간제 근로자 등 그동안 산재보험 적용에서 다소 소외됐던 근로자들의 산재보험 보호를 대폭 강화한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감정노동자에 대한 논의 계속될까

고용부는 이번 개정에 따라 우울증을 이유로 한 산재 신청이 얼마나 늘고 산재보험 기금은 얼마나 들지 면밀한 검토를 했는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고용부 측은 지금까지 우울증 등에 대한 산재 신청이 있었고 심사도 있었기에 대폭 증가할 일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전문가들은 산재 인정이 됐을 때 신청이 대폭 늘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한편 정치권도 감정노동자에 대한 정의와 피해 예방조치 등을 담은 법 제정도 검토하고 있다. 현재 국회에 제출된 감정노동자 관련 보호법은 총 9건으로 전해졌다. 이들 법안은 감정노동을 '업무수행과정에서 감정을 절제하고 실제 느끼는 감정과 다른 감정을 표현하는 노동'이라고 명시하거나 감정노동자가 극심한 스트레스로 건강상 위협을 느끼면 업무를 중지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노동계는 정부 방침을 환영하면서도 한계도 있을 것이라는 반응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노총은 "800만 명에 달하는 감정노동자들의 산재보상 기준 확대는 긍정적"이라며 "소비자, 감정노동자 그리고 정부가 감정노동 문제 해결을 위해 사회적 합의에 상당 부분 다가선 지금 기업도 함께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가길 기대하고 원한다"고 전했다.



김민정 인턴기자 mj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