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ㆍ폭행 등 가족 간 '반인륜 범죄' 증가… 사회 전반에 악영향 살인 사건의 약 30% 가족관계에서 발생… 살해 유형도 다양가정이 폭력에 물들어… 배우자 폭행 70%로 가장 많아가정 파괴 사회에 악영향… 특별법 한계, 가족범죄 인식 전환 필요

삶의 기본 공동체이자 정서적 유대, 치유와 휴식 공간이 되어야 할 가정이 살인, 폭행 등 강력범죄로 물들고 있다. 국내에서 발생하는 살인 사건의 28.4%가 가족관계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살인사건은 해마다 줄지만, 가족 간 살인은 증가하고 있다.

사회의 가장 기초적 단위인 가족이 각종 범죄로 얼룩지며 사회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가족 간 유대감이 유독 강한 한국에서 일어나는 '가족 범죄'에 대해 살펴봤다.

전체 살인 중 약 30%가 가족 간 살인

주식 투자 실패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비관해 가족을 살해한 박모(50)씨가 지난 6일 징역 35년을 선고받았다. 박씨는 지난해 12월 대전 자신의 집에서 아내와 딸을 목 졸라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박씨는 "주식 투자에 실패한 것이 괴로워 가족을 살해하고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고 검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지난달 7일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일가족 3명의 시신이 발견됐다. 경찰 조사 결과 남편 이모(58)씨가 부인과 딸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의 휴대전화 녹음파일에는 사망 전 이씨가 아내에게 "음료수에 수면제가 있으니 이걸 먹으면 편안하게 죽여주겠다"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또한 이씨의 유언장에는 돈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아내의 경제관념에 대한 비관이 담겨 있었다.

'일가족 사망' 또는 '일가족 동반 자살'로 알려지는 사건들은 '사망' 사건이 아닌 '살해' 사건으로 여겨야 한다. 부모가 자식을 죽이는 비속살해뿐만 아니라 부모를 살인하는 존속살해 사건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경찰서에서 살인죄로 입건된 447명 중 29.8%인 133명이 가족을 상대로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지난 2013년 살인죄 입건자 377명 중 28.4%인 107명이 가족을 상대로 살인을 저지른 것에 비해 1.4% 높아진 수치다.

살인을 계획했지만 미수에 그치는 등 실제로 살인을 저지르지 않은 경우는 575명으로, 이들 중 17.9%에 달하는 103명은 가족을 살해하려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 2013년 살인미수 등의 혐의로 입건된 620명 중 16.9%인 105명이 가족을 살해하려 한 것에 비해 1% 높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살인죄로 입건된 이들 중 가정불화를 이유로 살인을 저지른 경우는 총 447명 중 37명(8.3%)으로, 우발적 이유로 살인을 저지른 경우(133명, 29.8%)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살인미수 등의 경우 입건자 575명 중 7.5%인 43명이 가정불화를 범행 동기로 꼽았다. 이는 우발적 범행(213명, 37.0%), 기타(192명, 33.4%)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수치다.

가족 살해의 다양한 유형들

가족 간 살인을 저지른 범행의 유형도 다양하다. 분노에 의한 범죄, 금전으로 인한 범죄, 정신질환으로 인한 범죄 등이 있다. 또한 앞서 박씨와 이씨의 경우처럼 가장이 가족구성원들을 살해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내가 남편을 살해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6월 외도 문제로 다투다 아내 이모(48)씨가 남편을 흉기로 찔러 살해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한편 지난달에는 서울 양천구에서 부부싸움 끝에 13년 만에 얻은 생후 53일 된 딸을 익사시킨 어머니 김모(40)씨가 체포되기도 했다.

자녀가 부모를 살해하거나, 범행을 공모해 가족 중 한 명을 살해하려는 일도 종종 세간에 오르내린다. 지난 5월 창원에서 가장을 상대로 아내 A씨(61)와 딸 C(35), 아들B(33)이 상속재산을 노리고 범행을 공모한 뒤 가장을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쳐 화제가 됐었다. 또한 부부 중 한 명이 시부모나 장인·장모를 살해하는 사건도 있었다. 지난달 7일 금전 문제로 장모를 살해한 혐의로 사위 D씨(45)가 상고심에서 징역 18년을 받았다. 2008년 재혼한 D씨는 2013년 김밥가게를 운영한다는 말로 장모에게 5000만 원을 빌리는 등 총 9900만 원을 빌린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D씨는 이 돈의 대부분을 도박자금으로 썼고 돈을 쓴 곳을 장모에게 추궁당할까 두려워 지난해 1월 장모를 흉기로 때리고 살해한 것으로 전해졌다.

존속 살인·비속 살인 해마다 증가

가족 간 살인범죄가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존속ㆍ비속 살인 사건도 매년 늘어나고 잇는 추세다. 경찰청의 존속살해 통계에 따르면 경제가 어려울 때 존속살해가 증가했다. 친족살해사건은 매년 200건 전후였으나 외환위기에 직면했던 1997년부터 1999년까지 218건에서 279건, 300건으로 늘어났다. 카드 대란이 일어났던 2003년부터 2005년까지는 265건에서 291건, 299건으로 증가했다. 또한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던 2008년부터 2010년까지는 228건에서 261건, 280건으로 증가세를 보였다.

또한 서울지방경찰청에 따르면 2006년 1월부터 2013년 3월까지 발생한 존속살해 건수는 총 381건으로 해마다 50~60건이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살해 동기는 가정불화가 188건(49.3%)으로 가장 많았고 정신질환 130건(34.1%), 경제문제 58건(15.2%)으로 나타났다.

비속살해 사건은 같은 기간 동안 총 230건이 발생했다. 이는 매년 30~40건이 발생하는 수치이다. 살해 동기는 가정불화가 102건(44.6%)으로 가장 높게 나타났고 경제 문제 62건(27.0%), 정신질환 55건(23.9%) 순으로 드러났다. 자식을 살해한 후 부모가 자살한 경우는 102건(44.4%)으로 조사됐다. 가해자 연령은 30, 40대(77%)가 대부분이었고, 피해자 연령은 9세 이하가 123명(59.1%)으로 저항하기 힘든 어린아이가 과반수 이상이었다.

살인죄를 저지른 사람은 형법 제250조에 따라 사형이나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을 받게 된다. 존속살인은 최저형량이 7년 이상으로 늘어난다. 반면 자식을 죽인 비속살인은 가중처벌이 규정에 없다. 영아살해는 최고형량이 징역 10년으로 일반 살인보다 형량이 가벼운 편이며 최저형량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가정 폭력 피해자 70% 배우자 '현실에 대한 불만'

지난해 5월 생후 40일 된 친아들을 학대해 숨지게 한 뒤 이를 2년간 숨겨온 아버지가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A(32)씨는 아들이 울자 침대 머리맡 쪽에 아들을 수차례 던진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아들이 더 크게 울자 종이상자에 눕힌 뒤 상자 뚜껑을 닫아 내버려둬 사망했다. 이는 A씨의 외도에 배신감을 느낀 동거녀 B 씨가 모든 사실을 폭로하며 뒤늦게 드러났다.

지난달 8일 청주에서는 잔소리가 듣기 싫다며 자신의 어머니를 폭행한 혐의로 박모(39)씨가 체포됐다. 박씨는 어머니(60)집에서 어머니의 머리를 둔기로 때린 혐의를 받고 있다. 사건 발생 전날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박씨는 "어머니가 잔소리해 그랬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정이 폭력으로 물들고 있다. 부모가 자녀를 상습적으로 폭행하거나, 부모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자식 등 혈연관계를 파괴하는 반인륜적 가정폭력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청이 가정폭력으로 검거한 건수는 2011년 6848건, 2012년 8762건, 2013년 1만6785건, 2014년 1만7557건, 2015년 8월 2만 5653건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정부는 1990년대 가정폭력이 사회문제로 논의되자 가정폭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지난 1998년부터 '가정폭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과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시행해 가정폭력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정부의 개입에도 지난해 가정폭력 신고 건수는 총 22만7608건으로 2013년 16만272건과 비교해 6만 건 이상 증가했다. 지난달 말 기준으로는 16만8088건이 접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가정폭력의 원인은 분노와 우발적인 이유, 가정불화, 경제적 이유 등이 대표적이다. 3일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가정폭력 행위자를 원인별로 분류한 결과 전체 1264명 중 347명(27.5%)이 현실에 대한 불만으로 폭력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분노와 우발적인 이유로 폭력을 한 사람이 266명(21%), 부당한 대우·학대가 117명(9.3%), 술에 취해 폭력을 저지른 사람이 59명(4.7%)으로 나타났다.

자신의 배우자를 상대로 폭력을 행사한 사람은 전체의 71.6%로 가장 많았고 부모와 자녀 간의 폭력 행위도 전체의 12.8%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관련해 새누리당 류지영 의원은 "가정폭력을 가정 내 문제로 인식하는 경향이 여전하다"며 "가정폭력을 범죄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친족 성폭력 '위험수위'… '증거' 구제에 도움


10년 새 3배 가량 증가…3건 중 1건은 불기소 처분

김민정 인턴기자

자신의 의붓딸과 같이 살고 있는 처조카에게 몹쓸 짓을 한 30대 A씨(38)가 체포됐었다. A씨는 2013년 12월 자신의 집에서 의붓딸(16)을 두 차례 추행한 혐의로 기소됐었다. 또한 같은 해 5~6월 자신의 집에서 같이 살고 있는 처조카(17)를 추행하는 등 수차례 강제 추행한 혐의를 받았으나 부인에게 용서를 받아 큰 벌을 면하게 됐다고 알려졌다.

지난 6월에는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해 피해자 지원센터에서 생활하다가 명절을 보내려 집을 찾은 10대 조카를 수차례 성폭행한 삼촌 B씨(36)에게 징역 15년이 내려지기도 했다. B씨는 2009년 5~6월 자신의 집에서 당시 9살이던 조카를 성추행했다. IQ가 49 이하로 정신지체 수준이었던 조카 C씨는 친부에게 이미 수차례 성폭행당한 상황이었다. 1·2심은 아버지에게 성폭행당한 사실을 알면서도 조카가 9살에서 13살에 이르기까지 성폭행·성추행 한 것은 "인격 살인이나 다름없는 행위"라고 말했다.

최근 친족 간 성폭력 사건이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함께 살고 있는 가족을 신고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과 신고로 인해 가정이 망가질 수 있다는 두려움 등으로 신고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발생한 친족 성폭력 사범은 총 3794명이다. 친족 성폭력 사범은 2005년 191명에서 2008년 284명, 2010년 350명, 2012년 460명, 지난해 568명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10년 새 3배 가량 늘어난 셈이다. 이와 함께 친족 성폭력 사건의 3건 중 1건은 불기소 처분이 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최근 10년간 법무부 처분이 내려진 3794건 중 1060건(27.9%)은 불기소됐다. 2005년 191건 중 48건만이 불기소였던데 비해 지난해에는 568건 중 200건이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기소율도 2005년 66.4%에서 지난해 48.6%로 감소세를 보였다. 한 경찰관은 친족 성폭력 증가에 대해 "경찰에 신고하면 오히려 어머니에게 회유를 받게 될까 우려하는 시각과 아버지가 범죄자가 되는 것이 부담스러운 가족들이 압박할 수 있다"며 "시민단체나 복지기관 등이 다 같이 나서 사회적으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친족 성폭력 사건이 10년간 3배 이상 늘 정도로 피해자가 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대책은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가족이기 때문에 신고하지 못하고 어머니나 친가족들의 설득에 성폭력 가해자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어릴 때 성폭력을 당했을 경우 당시에는 피해자인지 인지하지 못하다가 성장 후 신고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경과됐고, 기억이 불확실하다는 점 등으로 구제받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 경찰 관계자는 "친족 성폭력 사건 중에서도 어렸을 때부터 성폭력을 당해오다 성장한 뒤 고소한 경우 수사가 어렵다"며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진술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증거가 있으면 수사에 도움이 된다. 당시의 상황과 감정이 담긴 일기도 좋은 증거물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김민정 인턴기자 mj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