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장난이 학부형 싸움으로, 피해 아동 등교 막아… 부친에 의해 살해

숨진 최 군이 다녔던 부천시 원미구의 모 초등학교.
피해 아동 초등학교 입학 후 두 달만에 등교 않고 집에서 생활
아버지에게 1주일 2∼3차례 폭행당해…어머니 폭행 알고도 방관
사고 당일 술취한 아버지 2시간 가량 폭행…방치 끝에 숨져
부모, 시신 훼손해 일부 버리고 머리 등 냉장고에 보관
장기결석생 전수조사 과정서 피해 아동 드러나 경찰 부모 체포
"막을 수 있었던 사건"… 무관심한 이웃, 무책임한 행정ㆍ안일한 학교 책임 커

지난 1월 15일 인천시 계양구의 한 아파트에서 남자 아이의 토막 난 시신이 든 가방이 발견됐다. 범인은 피해 아동의 친아버지 최 모(34세)씨였다. 최 씨는 일곱 살 난 아들 최 군이 죽기 전날인 2012년 11월 7일 술에 취해 최 군을 두 시간 넘게 무차별 폭행했다. 다음날 아이가 죽어있는 것을 발견하자 최씨는 아내인 한 모(34세)씨와 함께 자신의 집 화장실에서 날카로운 흉기로 시신을 훼손했다. 장기와 손, 발 등은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리거나 부천 시민회관의 공공화장실 변기에 버렸다. 머리 등 나머지 시신은 집 냉장고의 냉동실에 보관했다. 2013년 3월 인천으로 이사를 갈 때에도 시신을 챙겨갔다. 이후 부부는 딸 하나를 가진 단란한 가족 행세를 하며 살아갔지만 결국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엽기적인 행각이 벌어진 부천시 원미구 심곡3동과 인천시 부평구 부개동을 찾아가 이들의 행적을 추적했다.

이번 '부천 초등생 시신훼손' 사건은 어쩌면 영원히 묻힐 뻔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최 군의 행적을 캐게 만드는 사건이 벌어졌다. 인천에서 열한 살짜리 여아가 부모의 학대를 피해 집 가스배관을 타고 탈출한 것이다. 학대를 당하는 동안 아이는 학교에 장기간 결석한 것으로 확인됐다. 교육 당국은 부랴부랴 전국의 장기결석생에 대한 전수조사에 들어갔다. 오랫동안 학교에 나오지 않은 학생들 중에 또 다른 학대의 피해자들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지난 1월 13일 최 군의 집에도 최군이 다닌 학교 교무부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받은 최 군의 어머니 한씨는 '아이가 가출해 내가 실종 신고를 했다'고 했다가 '삼촌이 신고했다' '남편 지인이 신고했다'라고 하는 등 말을 바꿨다. 이를 수상히 여긴 학교 관계자가 경찰에 수사 요청을 했고 경찰은 한씨를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다음날인 14일에는 집 주위를 배회하던 최 군의 아버지 최씨를 붙잡아'아들이 죽어 훼손해 냉동실에 넣었다'는 자백을 받았다. 경찰은 인천시 계양구 소재의 최씨 친구 집에서 시신을 발견했고 부부는 구속됐다. 최씨는 수사를 받던 처음 며칠간은 아이가 목욕하던 중에 미끄러지는 바람에 숨진 것이라며 살해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그러다 결국 아이가 숨지기 전날에 두 시간 가량 아이를 때린 사실을 진술했다.

아이들 장난이 어른들 싸움으로

지난주 최 군이 숨지고 시신마저 훼손당한 곳, 부천시 원미구 심곡3동을 방문했다. 충격적 사건의 여파 때문인지 마을의 분위기는 다소 가라앉아 있었다. 몇몇 동네주민들은 취재를 요청하자 손사래를 치며 인터뷰를 꺼렸다. 그러다 마을 귀퉁이의 한 가게에서 숨진 최 군과 같은 반이었던 학생의 학부모 A씨와 어렵사리 접촉할 수 있었다. A씨는 당시 학부모 임원으로 한씨와 최 군의 사정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A씨는 2012년 3월 초등학교 입학식에서 최 군과 어머니 한씨를 처음 봤다고 했다. 한씨는 말수가 적고 내성적이었을 뿐 여느 학부모와 다름없었다. 최 군은 굉장히 왜소하고 얼굴빛이 다소 어두운 아이였다. 키도 반에서 가장 작았다. A씨는 "아이 발육 상태를 볼 때 최 군은 5∼6세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최 군이 학부모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 건 입학한지 채 보름이 되지 않았을 때였다. 최 군이 장난을 치다 같은 반 여학생의 얼굴을 연필로 찌르고 옷에 낙서를 한 것이다. 피해 여학생의 어머니는 학교에 항의했고 다음날 한씨에 전화해 최 군 문제를 따졌다. 이 과정에서 피해학생의 어머니와 최 군 어머니 한 씨는 치료비와 사과 문제 등으로 고성이 오갔다. A씨는 "두 사람이 통화하면서 싸웠고 서로 녹취를 해서 맞고소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고 했다. 결국 이 일은 며칠 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에 회부됐다.

A씨는 "나도 아이를 키우니까 아는데, 가끔씩 아이들이 그런 장난을 친다. 이 일이 학폭위까지 열릴 사안이었는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피해 어머니도 예민하게 굴었고 최 군의 어머니 또한 가해 학생의 보호자로서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는 바람에 일을 키웠다는 것이다.

한씨는 급기야 4월 30일부터 최 군을 아예 등교시키지 않았다. 피해 학생의 어머니와 만나는 자리에도 나오지 않았다. 5월 1일 학폭위가 최 군 측에 서면 사과 처분을 내리자 한씨는 전화로 학교측에 "이미 사과를 했으니 하지 않겠다" 고 말하며 또 고집을 부렸다. 그러면서 "아이는 집에서 교육시키겠다" 고 통보했다. 이후 최 군은 학교에 가지 못했다.

A씨는 최 군이 폭력적인 아이는 아니었다고 했다. 최 군이 말썽은 좀 부렸을지언정 친구를 악의적으로 괴롭히고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최 군이 폭력성이 짙었다는 언론의 보도는 과장된 것이라 생각한다" 고 꼬집었다. 또 "양가 학부모가 잘 협의해 풀 수도 있었는데 이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누가 알았겠느냐" 고 반문했다. A씨의 말에 의하면 아이들의 사소한 장난이 어른들 싸움으로 번지게 됐고, 결국 최 군이 어머니에 의해 학교를 떠나게 된 것이다.

아버지 최씨는 '은둔형 외톨이'

최 군의 아버지 최 모씨는 최 군이 5세이던 해부터 아들이 어린이집에 적응을 못한다는 이유로 아들을 손찌검하기 시작했다. 손찌검은 날로 심해졌다. 최 군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인 2012년부터는 일주일에 2~3차례에 걸쳐 한 시간이 넘도록 구타했다. 아이가 거짓말을 하고 말을 잘 듣지 않으며 씻는 것을 싫어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경찰에 따르면 최 군이 숨지기 전날인 11월 7일에도 오후 여덟 시 반부터 두 시간 동안 권투 하듯이 아들의 얼굴에 주먹질을 하고 엎드린 자세를 시켜 발길질 하는 등 무자비하게 폭행했다. 다음날에도 폭행이 이어졌고 최 군은 결국 숨졌다. 당시 최 군은 뼈만 남은 앙상한 상태였다고 최씨는 말했다.

기자가 사건이 발생한 부천시 심곡동 동네를 찾아갔을 때 주민들 중 최씨를 기억하는 이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가 예전에 살던 집인 심곡3동의 빌라 근처 미용실에서 만난 주민들은 "아이 엄마는 종종 봤지만 아이 아버지는 모르겠다. 미스터리 한 사람이다"고 했다. 학부모 A씨도 "입학식에 어머니만 오고 아버지는 안 왔다. 얼굴을 본 적도 없다. 하는 일이 없다 보니 거의 집에만 있었던 걸로 안다"고 말했다.

최씨가 이사간 동네인 인천시 부평구 부개동 빌라 앞에 있는 편의점 직원 김 모 씨가 그나마 최씨와 안면이 있는 정도였다. 김 씨는 최 씨가 종종 밤 10시에서 11시경 사이에 술을 몇 병씩 사갔다고 했다. 그는 "술을 자주 사가지도 않았고 많이 사가지도 않았다. 소주 1~2병 정도만 사갔다" 고 했다. 빌라 옆에 있는 공원 근처에서 만난 또 다른 동네 주민도 최 씨를 알지 못했다. 이따금씩 한 씨가 딸의 손을 잡고 가는 것을 봤을 뿐 최 씨는 얼굴도 모른다고 했다.

이처럼 최 씨는 가깝게 지내는 이웃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자주 연락하는 친구도 없었다. 경찰 조사결과 최씨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게임을 하며 보냈다. 최 씨는 사회적 관계를 거의 맺지 않고 살아왔다. 지속적으로 연락하는 지인들도 몇 없었다.

경찰은 이런 최씨를 사이코패스는 아니지만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은둔형 외톨이'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최씨가 변변한 직장도 없이 사회에서 격리된 채 아내에게만 의존해 살아왔기 때문에 자기중심적이고 방어적인 성향을 보인다고 했다. 이것이 아이에 대한 학대로까지 이어졌다는 추측이다.

한편 최씨가 자신도 어렸을 적 체벌을 받아왔다고 주장해 다시 한번 학대의 대물림 현상에 대한 지적이 나왔다. 수사도중 최씨는 왜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냐는 프로파일러의 질문에 "나도 어렸을 때 체벌을 받았지만 병원에 간 적이 없다" 고 대답했다. 범행의 합리화를 위한 방패로 이 같은 진술을 했을 가능성도 있으나 폭력이 대를 잇는 것은 흔한 일이라고 학계는 말한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4년 전국 아동학대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아동학대 가해자 1만여 명 중 어릴 적 학대를 당한 적 있는 사람은 536명이었다. 아동학대의 피해자였던 이들이 가해자로 돌아선 것이다. 전문가들은 숨진 최 군의 경우 ADHD(주의력 결핍장애) 증세로 인해 산만하게 행동하는 등 아버지를 짜증나게 했고 아버지는 자신이 어릴 적 받은 유일한 훈육 방법인 폭력을 자식에게 똑같이 행사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최씨가 친 아들을 상습폭행 한 이유로 게임중독이 지적되기도 했다. 최씨의 한 지인이 "최씨가 20대 초반부터 게임 중독 증세를 보였다"고 말했고 또 그가 2012년 PC방에서 일을 하며 틈틈이 게임을 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씨가 "가끔씩 집에서 게임을 하는 정도였다"라고 진술한 점 등을 고려할 때 경찰은 게임중독에 의해 현실과 가상세계를 구분 못 해 아이를 구타했을 가능성은 낮게 보고 있다. 오히려 최씨가 어릴 적 학대를 당한 트라우마와 극단적 이기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최 군을 살해한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다.

두 얼굴의 어머니 한씨

최군의 어머니 한씨도 남편이 시신을 훼손하고 유기하는 것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2012년 11월 8일 콜센터에서 근무 중이던 한씨는 "아이가 이상하니 집으로 빨리 오라"는 남편의 전화를 받았다. 조퇴해 집으로 돌아온 한씨는 거실 컴퓨터 앞 의자에 엎드린 채 숨져있는 아들을 발견했다. 한씨는 급히 짐을 챙겨 딸을 친정 집에 데려다 주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배가 고프다는 남편의 말에 치킨을 배달시켜 먹고 다음날 자신의 집 화장실에서 남편과 함께 아이의 사체를 훼손하고 유기했다.

최씨와 한씨는 22세 때인 2003년 만나 동거를 하다 3년 뒤 최 군을 낳고 혼인신고를 했다. 당시 최씨는 변변한 직업이 없었고 한씨는 콜센터에 근무했다.

최씨는 최 군이 5살 때부터 폭행을 하고 한씨도 묵인했지만 딸에게만큼은 다정한 부모였다. 한씨는 최 군이 죽기 전 날 남편이 아들을 구타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팔짱만 끼고 있었다. 이전에도 아들이 지속적인 폭행에 시달린다는 것을 알고도 모른 척했다. 또 그는 아들이 죽은 것을 알고도 왜 신고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남은 딸의 양육이 걱정돼서"라고 대답했다. 아버지 최씨 또한 "딸과 아내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해달라"며 아내에 대한 선처를 요청했다. 최 군에게만 그악하고 모질게 대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최씨의 부개동 집 앞 편의점 직원 김 모씨는 "딸은 혼자 가게에 온 적이 한 번도 없다. 항상 엄마 손 잡고 같이 왔다"면서 "나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라 아이들이 오면 유심히 지켜보는 편이다. 구김살 같은 것은 전혀 없는 밝은 아이였다"고 했다. 부개동의 한 주민은"겉보기에는 단란한 가정이었다. 딸아이는 항상 엄마 손을 잡고 다녔다"고 말했다. 이는 부천시 심곡동 주민이 숨진 최 군은 항상 어머니와 떨어져 걸었다고 말한 것과는 비교된다.

최 군이 생존해 있던 당시에도 한씨는 아들을 늘 못마땅해 했다. 한씨는 육아카페에 '아들이 극성맞아 둘째가 딸 인 것을 알고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중이염에 걸린 아들을 돌보느라 힘들어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는 등의 글을 올렸다.

한씨는 반면 딸의 학교생활에 상당히 신경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학부모 상담이나 회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빠듯한 살림에도 피아노학원에 보냈다. 아들이 말썽을 부린다고 학교에 아예 보내지 않은 것과는 상반된다.

경찰의 수사결과 한씨는 어린 시절 부모의 방임 속에 자랐으며 의사소통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남편에 대한 분리불안 심리와 의존성향을 보였다. 남편을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시신 훼손과 유기를 도왔다는 것이다.

기자가 만난 한씨의 집 근처 빌라에 살고 있는 한 주민은 "자기 아들은 냉동실에 넣어 놓고서 자기 딸만 예쁘다고 키운 것 아니냐 냉동실에다 음식 보관해놓고 그걸로 요리해먹고 자기 딸 줬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왜 하필 매일 쓰는 냉동실에 넣어 놓은 것인가"하고 분노했다.

이 주민의 말처럼 사건의 가장 큰 의문은 도대체 왜 시신을 매일 열고 닫는 집 냉장고에 냉동보관 했냐는 것이다. 피의자 부부의 심리분석을 담당한 프로파일러 권일용 경감은 피의자들이 시신을 냉동보관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은폐방법이라고 생각하는 비합리적 사고를 한 것으로 해석했다. 권 경감은 피의자들이 냉동실에 있는 시신을 보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 보다는 '다른 사람은 못 봤구나'하는 안도감을 느끼면서 동시에 불안해하는 '양가감정'이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무관심한 이웃ㆍ무책임한 행정ㆍ안일한 학교 3박자가 만들어낸 참극

앞서 말한 학부모 A씨는 최 군이 어느 날부터 갑자기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 그는 "애가 학교에 나오지 않기 시작하고부터 한 일년 정도 보이지 않기에 이상하게 생각했다.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봤다는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아이가 1년이나 보이지 않았는데 의심을 하거나 신고를 한 사람은 없었냐는 질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것 같다. 애가 학대 받고, 죽었을 거라 누가 생각했겠느냐"고 반문했다. 다른 이웃들도 마찬가지였다. 각자 일을 하고 바쁘게 사느라 이웃간에 교류가 없다고 했다.

한편 부천시는 심곡3동 주민센터의 직무유기 여부를 조사했다. 18일에 만난 주민센터 행정팀장 박 모씨는 "그 때 (최군의 출석 독촉 요청)공문을 받고 직원들이 답변을 했는지도 잘 모르겠다"면서"해당 직원들이 지금 감사를 받고 있으니 끝나봐야 알지 않겠느냐"고 했다. 감사 결과, 주민센터의 직원 3명은 학교측의 요청을 깡그리 무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2012년 5월 30일과 6월 1일 두 차례나 공문을 받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다. 원래라면 센터 직원들은 초ㆍ중등교육법 시행령 제26조에 따라 보호자에게 학생을 출석시키도록 독촉해야 하고, 2회 이상 결석 상태가 계속되면 그 경과를 교육장에게 보고해야 한다.

학교 측의 안일함도 지탄받고 있다. 최 군의 담임교사인 김 모씨는 최 군의 어머니와 수 차례 통화를 시도하고 집으로 두 번 방문하는 등 접촉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그 해 학기를 채 마치지 못하고 돌연 휴직했다. 취재 결과 최 군의 반은 9월부터 다른 교사가 담임을 맡게 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학교는 최 군의 행방을 찾기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 최 군이 학교에 결석하기 시작한 뒤 최소 6개월은 생존해있었을 것으로 확인되면서 학교측의 대응이 더욱 아쉽게 여겨졌다. 18일 감사를 기다리던 학교의 한 관계자는 "주민센터 측이 감사를 받으니 우리도 받아야 하지 않겠나"면서 "형식적인 거다"며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그러나 학교가 최 군을 4년 가까이 방치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부천의 한 교사에 따르면 현재 부천시 소재의 초등학교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결석을 몇 번이라도 한 학생들의 가정을 부장교사가 직접 가정방문 하고 있다. 전국의 주민센터도 장기결석생들의 확인 및 출석 독촉에 관한 업무지침을 받았다. 경찰 또한 장기 결석을 방임한 학부모들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국민들 사이에서도 학대 의심이 되는 아이를 보면 신고에 나서자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일사불란함이 '인천 11세 여아 탈출 사건'과 이번 '최 군 시신 훼손 사건'전에 있었다면 비극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다수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글ㆍ사진=오보람 인턴기자 boram3428@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