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혐오 반기 든 '메갈리아' 딸들'여성혐오를 혐오한다'는 슬로건으로 시작'… '미러링'으로 남성 비판초기 페미니즘적 의미 퇴색, 단순 남성혐오로 전락… 일반인들에 거부감위안부 모욕 발언·소아성애 글 등으로 '여자판 일베' 오명도

메갈리아의 로고
'여성혐오를 혐오한다'는 슬로건으로 시작'…'미러링'으로 남성 비판
초기 페미니즘적 의미 퇴색, 단순 남성혐오로 전락… 일반인들에 거부감
위안부 모욕 발언ㆍ소아성애 글 등으로 '여자판 일베'오명도

한남충, 김치남, 밥줘충… 작년과 올해 초까지를 관통해 유행하고 있는 이 신조어들은 모두 한국남자를 조롱하는 말이다. 최근 들어 20~30대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한국남성에 대한 혐오현상이 빠르게 번지고 있다. '일베(일간베스트)'를 중심으로 한 남성의 여성혐오가 몇 년 전의 화두였다면 지금은 여성들에 의한 남성혐오가 새로운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이들은 '메갈리아(메갈)'라는 커뮤니티를 무대로 공론장(場)을 형성, 그간 쌓인 남성에 대한 증오와 한을 분출하고 있다. 이에 질세라 남성 누리꾼들도 이들을 폄하하면서 남녀가 무의미한'혐오 경쟁'에 돌입했다.

유례없는 남성혐오 커뮤니티

이러한 현상은 뜬금없게도 작년 우리나리를 덮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에서 발단했다. 인기 커뮤니티인 '디시 인사이드'는 메스르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메르스 갤러리'를 만들었다. 이곳에 지난해 6월 메르스에 감염된 채 홍콩에 입국했다 당국에 의해 격리 조치 요청을 받은 두 여대생에 대한 글이 올라왔다. 해당 여대생들에 대해 디시의 누리꾼들은 "이러니 김치녀 소리를 듣는다", "원정(원정 성매매)가는 거 아니냐", "명품백 멘 것이 딱 한국 된장녀", "쇼핑에 환장했다"라며 성적 모욕감을 주는 발언은 물론 한국 여성 전체를 싸잡아 비아냥거렸다. 이 일을 도화선으로 여성 누리꾼들은 그간 자신들이 받아온 비난의 화살을 남성들에게 그대로 돌려주기에 이른다. 수년간 들었던 '김치녀'라는 조롱을 '김치남'이라는 말로 바꿔 한국남성들을 폄하하는 식의'미러링'(상대방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으로 대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디시 운영자는 해당 갤러리에 남성비하적인 단어를 금지어로 설정하고 글 게시에 제한을 두는 등 편향적 자세를 취했다.

결국 여성들은 두 달 뒤인 8월 디시를 떠나 자신들만의 커뮤니티를 만드는데, 그것이 바로 '메갈리아'다. 이 이름은 논란의 진원지이자 처음으로 '여혐혐'(여성혐오를 혐오하는 것) 활동을 한 곳인 '메르스 갤러리'와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남녀의 성체계가 완전히 바뀐 가상세계를 그린 소설로 성차별을 비판함)을 합쳐 만들어졌다.

메갈리아 홈페이지 메인 화면.
가는 방망이에 오는 홍두깨 ' 미러링'

메갈 유저들이 남성을 헐뜯는 방법으로 쓰는 것이 '미러링(mirroring)'이다. 미러링은 말 그대로 '거울로 비추는 것'을 의미하는데,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한 모욕적 발언이나 행동을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그대로 되돌려주는 것을 말한다. 가령 남성들이 여성들의 가슴 크기를 가지고 조롱했다면 여성들은 남성의 성기 크기를 가지고 조롱하는 식이다. 또 이들은 그간 남성들이 사용했던 여성혐오적 단어들을 한 글자씩만 바꾸고 이를 남성들에게 사용하기도 한다. 김치녀는 김치남으로, 된장녀는 된장남으로 바꿔 사용하는 식이다.

메갈리안(메갈리아의 유저)들은 미러링이 여성혐오의 가해자였던 남성들을 남성혐오의 피해자로 만듦으로써 반성하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온다 주장한다. 그러나 문제는 제3자들이 봤을 때 일베나 메갈이나 '도긴개긴'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란 것이다. 실제로 메갈의 표현방식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다수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메갈리안들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안티가 많다는 커뮤니티인'일베'유저들이 사용하는 말투나 용어들까지 따라 쓴다. 예를 들어 '~노''~이기'등이 그것이다.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다.

일반화와 지나친 성적(性的) 폄하

일베의 여성혐오와 메갈리아의 남성혐오에는 '일반화 시키기'라는 또 다른 교집합이 존재한다. 한 게시물에서는 "직모(直毛)인 남자는 폭력성이 있으니 만나지 말라"는 다소 신빙성이 떨어지는 주장을 펼치면서 "역시 갓양남"(서양남자를 신에 빗댄 말)이라며 서양 남자들을 치켜세웠다. 서양남자들은 대부분 곱슬머리이니 폭력성이 없다는 것이다. 또 성범죄 관련 기사에는 "한남충 유전자는 어쩔 수 없다", "역시 한남충"이라는 등 모든 한국 남자를 잠재적 성범죄자 취급하는 듯한 댓글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지나친 성적(性的) 표현방식도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몇 달간 꾸준히 메갈을 이용했던 이 모씨(여ㆍ25세)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메갈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성적인 면에 집착해 이를 비판한다고 했다. 이씨는 "메갈리안들은 한국남성들의 남성중심적 사고방식이나 낮은 성평등의식 등을 지적하기도 하지만 한국남자들의 성적 능력을 놀리는 일도 다반사다"고 했다.

그는 메갈에서 남성비판을 위해 사용하는 단어들도 대부분이 성과 관련된 단어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씨는 "일반인들에게 가장 거부감이 들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런 단어의 사용이라 생각한다"면서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그 틀(언어)이 건전하지 않다면 그 알맹이(글의 의미)까지 퇴색되는 것 아니겠나"라고 반문했다.

페미니스트와 남성 혐오자 사이

메갈리아는 지금까지 소라넷 폐지 서명운동, 몰카 근절 캠페인, 아동성폭력피해자와 미혼모 시설 후원 등 여권 신장과 보호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이끌었다. 한 매체는 메갈리아가 한국 페미니즘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오직 남성들에 대한 분노 표출과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단방약으로 쓰이는 모양새라고 이씨는 말했다. 이 씨도 처음에는 메갈에서의 활동에 해방감을 느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메갈이 "초기의 페미니즘적 가치 지향과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면서 "단순한 분노풀이의 장소가 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씨는 올바른 페미니즘의 방법은 남성을 저렴한 방법으로 깎아내리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 결국 두어 달 전쯤 메갈 이용을 접었다고 했다.

메갈리아의 박제박물관(보존 가치가 있는 게시물을 영구보관 하는 게시판)과 베스트게시판의 게시물과 댓글을 보고 이씨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두 게시판에서 한국남성의 성기크기와 성적능력 조롱, 외모비하에 관한 글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작년 10월에는 누리꾼들로부터 비난의 융단폭격을 받은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남자어린이와 성관계를 갖고 싶다는 글이었다. 게다가 해당 글의 작성자는 유치원 교사로 밝혀져 메갈에 대한 반감을 부추겼다. 거기에 "한국남자들이 위안부 문제에 열 내는 이유는 자기들이 강간하고 때려야 하는 샌드백을 외국인들이 손댄 게 싫기 때문"이라는 글까지 올라와 기름을 부었다. 채팅한 남자의 성기 사진을 여과 없이 올리거나 여성혐오를 일삼는 일베 유저들의 얼굴 사진을 그대로 올리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메갈이 불법과 합법, 윤리와 비윤리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고 바라본다.

이러한 메갈에 맞서 메갈을 혐오한다는 이른바 '안티 메갈'사이트도 생겨났다. 여론도 메갈에 등을 돌렸다는 평이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미러링'은 여성혐오 문화에 반발해 나온 것으로 그 자체로 한국사회 성담론에 유의미한 메시지를 던진다"면서도 "여성혐오 문화를 비판하는 것과 남성을 혐오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인 만큼 공론장에서의 성숙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했다.



오보람 인턴기자 boram3428 @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