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불 붙은 밀양성폭행사건… 피해자는 숨고 가해자는 평범한 생활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을 모티프로 한 tvN '시그널’의 한 장면.
'한공주' 이어 '시그널'까지… 국민적 관심 되살려
44명이 여중생 1년간 성폭행… 형사처벌 한 명도 없어
형사 "네가 밀양 물 다 흐려놨다" 등 발언 국민 공분 불러
피해여학생 입원 치료, 학교생활 못해…현재 행적 묘연
가해자들은 평범한 삶…일부 신상 유포돼 시달리기도

최근 tvn에서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시그널'은 밀양여중생성폭행사건을 모티프로 해 화제가 되고 있다. 시그널이 방영되자마자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로 밀양사건이 1위에 오르는 등 다시 한 번 이 사건에 국민적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12년 전 밀양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를 분노와 충격에 휩싸이게 했던 이 사건을 다시 짚어보고 사건 이후 피해자 최양과 가해자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알아봤다.

12년 전 밀양에선 무슨 일이?

2003년 6월 당시 만 14세이던 피해자 최모양은 인터넷 채팅으로 가해자 중 한 명인 고등학교3학년 김모(당시 17세)군을 알게 돼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러던 중 김군은 최양에게 "한번 만나자"고 제의했고 울산에 살던 최양을 밀양으로 불러냈다. 2004년 1월이었다. 최양은 홀로 울산에서 1시간 거리인 밀양을 찾았고 김군은 쇠파이프로 최양을 때리고 위협해 가곡동에 있는 한 여인숙으로 끌고 갔다. 그곳에서 첫 번째 성폭행이 일어났다. 김군은 자신의 친구들까지 끌어들였다. 모두 12명이었다. 이들은 최양을 집단 성폭행하는 장면을 캠코더나 휴대전화로 촬영해 "발설하면 동영상을 인터넷에 유포시키겠다"고 협박했다. 겁이 난 최양은 누구에게도 피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최양은 합리적인 상황판단을 하기에는 너무 어렸다. 도움을 요청하거나 기댈 사람도 없었다. 최양이 중학교 2학년 때던 2003년에는 부모님이 이혼해 엄마와 떨어져 살았다. 집안에서는 1남2녀 중 장녀였고 알코올중독자 아버지는 유독 최양에게만 매일 같이 폭력을 휘둘렀다.

밀양사건 가해자의 친구인 황모 경장을 비난하는 글이 가득한 의령경찰서 자유게시판.
최양은 이후에도 총 11차례에 걸쳐 성폭행 당했다. 최양은 김군이 부를 때마다 순순히 나갈 수밖에 없었다. 김군 등 가해자들이 최양에게 "나오지 않으면 학교에 소문을 내겠다"고 하는 등 으름장을 놓았기 때문이다. 최양의 친 여동생 최양(당시 13세)과 고종사촌 노모(당시 16세)도 꾀어내 금품을 갈취하고 폭행했다. 당시 대다수의 언론에서 이들도 성폭행 피해자인 것처럼 보도됐으나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최양의 성폭행에 가담하는 가해자들의 숫자는 점점 늘어갔다. 이들은 최양을 밀양 일대의 여관, 학교 놀이터, 공원 등으로 끌고 다니며 유린했다. 급기야 이들은 성(性) 기구까지 구해와 성고문에 가까운 폭력을 자행했다. 가해자들의 친구인 여학생들도 망을 보거나 촬영을 위해 동원됐다.

계속되는 모진 성폭행에 몸과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한 최양은 수면제 20알을 삼키기도 했다. 이후 2004년 11월 이모를 만난 최양은 자신이 1년 간 성폭행 당한 사실을 털어놨다. 최양의 이모는 곧바로 사실을 최양의 어머니에게 말했다. 소식을 접한 최양의 어머니는 경찰에 신고했고 울산남부경찰은 다음달인 12월 6일 가해자인 10대 고교생 41명을 무더기로 체포했다.

경찰ㆍ사법부 불신 여전

당시 사건의 보도를 접한 국민들은 분노했다. 분노의 대상에는 가해학생들뿐만 아니라 경찰과 법원도 포함됐다.

경찰은 첫 단추부터 잘못 뀄다. 비공개로 수사하겠다던 경찰의 약속은 돌연 가해학생들을 일제 검거하며 허언으로 돌아갔다. 당시 최양의 어머니는 경찰의 '보여주기식'수사를 지적하며 "경찰이 마치 한 건 한 것처럼 행동했다"고 성토했다. 사건이 발생하고 얼마 후 경찰 진급심사가 있었다는 사실이 의심을 더 키웠다. 뿐만 아니라 피해학생인 최양에 대한 보호를 허술히 해 가해학생 부모들이 경찰서로 들어가는 최양에게 "신고해놓고 잘 사나 보자, 몸조심해라" 등의 협박을 듣게 만들었다.

수사과정에도 문제가 많았다. 대면조사에서 여경(女警)을 원했던 최양의 의견은 묵살됐고 남성 수사관이 조사를 맡았다. 최양은 수치심을 무릅쓰고 남성 수사관에게 성폭행을 당한 과정을 세세히 설명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담당 수사관 김모 경장은 최양에게 "내가 밀양이 고향인데 네가 밀양 물을 다 흐려놓았다" "네가 먼저 꼬리 친 것 아니냐"고 하는 등 막말을 쏟아냈다. 또 체포된 피의자들 중 진짜 가해자들을 찾기 위해 해당 남학생들을 일렬로 세워두고, 최양에게 "성폭행에 가담한 가해자들을 고르라"고 요구하는 등 원시적인 수사방법을 썼다. 최양은 보복을 당할까 두려운 마음이 들었지만 경찰의 말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또 사건을 담당한 형사 4명이 노래방에서 만취한 채로 도우미로 나온 여성에게 "최양과 닮아 밥맛 떨어진다"며 최양의 실명을 거론하며 폭언을 한 사실도 해당 도우미의 고백으로 알려졌다. 이와 같이 경찰의 수사과정에서 끊임없이 잡음이 나오자 결국 수사팀은 교체됐다.

피의자 44명 중 기소된 사람은 단 10명. 나머지 34명 중 20명은 소년부로 송치됐고 13명은 '합의' 등으로 인한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렸다. 당시에는 성폭행이 친고죄에 해당돼 피해자와 합의만 하면 처벌할 수 없었다. 최양이 아버지의 강요로 가해자와 합의해 준 것이 발목을 잡은 것이다. 1명은 다른 사건에 연루돼 다른 검찰청으로 이송됐다. 이후 울산지방법원은 기소된 10명도 전원 부산가정지원법원 소년부로 송치해 최종적으로 소년원 보호처분을 내리면서 사건을 종결했다. 전과기록이 남는 형사처벌을 받은 가해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당시 담당 재판부는 사안의 중대성과 심각성을 인정하면서도 "(피고들의)진학이나 취업이 결정된 상태이고, 청소년들로 성적 호기심이나 충동적 집단심리로 인해 저지른 우발적인 측면이 있는 점을 참작한다"고 밝혔다. 판결이 나던 2005년 당시에도 '안 하느니만 못한 처벌'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국민들 사이에선 청소년범죄에 지나치게 관대한 법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사건 이후에도 고통 받는 최양

최양은 지속적인 성폭행으로 산부인과에서 오랫동안 치료를 받아야 했다. 이후 수사과정에서는 경찰에게 폭언을 듣고 가해자 부모 측으로부터 협박에 시달려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상태였다. 최양은 서울로 가 치료를 받기로 한다. 인구 15만 남짓의 소도시인 밀양에서 '성폭행 피해자'라는 꼬리표를 끊어낼 수 없을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최양의 무료 변론을 맡은 강지원 변호사와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이 적극적으로 힘을 보탰다.

2005년 1월 최양은 서울로 갔지만 그곳에서도 최양의 삶은 평탄치 못했다. 최양이 연세세브란스병원에서 입원해 치료를 받던 당시 담당의사였던 신의진 교수(현 새누리당 의원)는 최양이 정서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신 의원은 "자살 시도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밖에서도 지하철에 뛰어들겠다고 시늉까지 했다"고 설명했다. 신의원은 또 최양의 불우한 환경을 지적했다. 최양이 알콜중독자에 폭력까지 일삼는 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방치된 채 자랐다는 것이다.

최양의 심각한 우울증 증세와 정서불안이 이어지자 최양의 가족은 최양을 폐쇄병동에 입원시키기에 이른다. 최양이 또 다시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 염려해서였다. 그러나 이후 최양의 아버지가 최양을 찾아와 "가해자들과 합의하라"고 강제했다. 돈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기세에 눌린 최양은 결국 단돈 5000만원에 몇몇 가해자들과 합의해줬다. '엄한 처벌을 원치 않으니 선처를 바란다'는 내용의 탄원서까지 썼다. 그러나 최양은 그 돈을 만져보지도 못하고 모두 아버지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퇴원한 최양은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가출했다가 어머니를 만나 서울에 정착했다. 이 와중에 최양의 아버지까지 알코올중독으로 사망했다.

최양은 서울에서 다닐 학교를 찾기 위해 사방팔방 뛰어다녔다. 그러나 '밀양사건의 그 여학생'이라는 주홍글씨 탓에 받아주는 학교를 찾는 데 애를 먹었다. 학교 측은 빈 자리가 없다고 둘러댔다. 당시 서울의 한 고등학교 관계자가 "그런 애들을 받기는 좀 그렇다. 사실 받아야 하는 게 옳은 것이지만, 저희(해당 학교)뿐만 아니라 다 그렇다"고 말한 것으로 밝혀져 뭇매를 맞았다.

겨우겨우 전학 가게 된 서울의 모 고등학교에서도 최양은 가해학생 부모들의 괴롭힘을 당해야 했다. 부모들이 최양의 학교에 무작정 찾아와 합의를 해달라고 떼쓰거나 탄원서를 써달라고 윽박질렀기 때문이다. 최양의 어머니는 "(최양이) 교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가해학생 부모가 무서워 화장실에 숨어서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최양은 결국 학교를 중도에 그만둬야 했다.

이후 2008년 수사과정에서 받은 정신적 피해로 낸 국가상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승소해 받은 돈 5000만원 남짓은 전셋집 마련에 보탰다. 이 돈으로 월세방살이를 겨우 면했다. 최양은 이곳 저곳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냈다. 그러나 고정적인 직장은 갖지 못했다. 늘 우울증과 트라우마가 최양을 괴롭혔다. PC방을 전전하기도 하고 거식증과 폭식증으로 고생하기도 했다. 최양은 자신을 돕던 강지원 변호사와도 2011년부터 연락을 끊었다. 강 변호사는 "내가 언론에 주목을 받다 보니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했다. 이후 최양의 행적은 묘연한 상태다.

반성 없는 가해자들

최근 의령경찰서는 항의 전화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이곳에 근무하는 황모(30ㆍ여)경장 때문이다. 황 경장은 과거 밀양사건 가해자의 학교 친구였다. 그는 사건 수사 직후 해당 가해자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잘 해결됐나? X도 못생겼다더만 그X들"이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이후 2010년 황씨는 경찰공무원시험에 합격해 경찰이 됐다. 이 사실이 2012년 누리꾼들 사이로 퍼져나가면서 경남경찰청에는 "황씨는 경찰 자격이 없으니 당장 자르라"는 항의가 쏟아졌다. 황씨는 경남경찰청 홈페이지에 "철모르고 올린 글로 피해자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당시 행동을 깊이 반성한다"며 사과문을 게재했으나 들끓는 여론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경남경찰청은 결국 백기를 들고 황씨를 대기발령 시켰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논란이 수그러들자 황씨는 의령경찰서로 발령이 났고 이후 경장으로 진급까지 했다.

최근 황씨의 근황이 알려지자 의령경찰서는 또 다시 항의전화가 빗발치고 있으며 홈페이지에는 황씨를 비난하는 글이 쇄도하고 있다. 자유게시판에는 "피해자를 조롱하는 사람이 경찰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경찰 뽑을 때도 인성검사가 이뤄져야 한다" "경찰 시험만 잘 보면 다 경찰될 수 있는 건가?"등이 그것이다. 자칫 황모경장으로 인해 경찰 전체에 대한 불신을 낳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한편 자신을 소년원 6개월 간 수감돼 있다 나온 가해자 중 한 명이라고 밝힌 A씨가 지난 2005년 인터넷에 올린 글이 최근 다시 알려지면서 공분을 사고 있다. A씨는 해당 글에서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점을 인정한다고는 했지만 피해자 최양에 대한 사과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최양은 평범한 학생이 아니다.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면서 "우리에게 (죄를)다 뒤집어 씌운 것 같다"고 주장했다. A씨는 "성관계를 가지려고 했지만 피해자가 나를 좋지 않게 생각할까봐 (친구들은 했지만)나는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우리들도 남자이고 호기심 때문에 사건이 난 것 같다"며 합리화하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또 다른 가해자들은 누리꾼들로부터 '신상털이'를 당하고 있다. 가해자 중 한 명은 지방의 모 국립대를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고 있고 또 다른 한 명은 호프집을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가해학생들도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는 등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가해자로 알려진 이들은 몇몇을 빼고는 모두 페이스북 계정을 폐쇄한 상태다.

가해학생들 부모들의 비상식적인 행동도 도마에 올랐다. 당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가해학생의 부모는 "왜 피해자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야 하느냐. 우리가 피해 입은 건 생각도 하지 않느냐"며 따졌다. 뿐만 아니라 그는 "딸 자식을 잘못 키워 이런 일이 생긴 게 아니냐"면서 "여자애가 와서 꼬리치는데 넘어가지 않는 남자애들이 어디 있느냐"는 등 어처구니 없는 발언을 해 국민적 공분을 샀다.

■ '신상 털린'A씨 "강간범 아니야" 주장에 누리꾼 의견 분분


"합의했다고 유죄가 무죄 되진 않아"vs "사건 기록으로 합의 알 수 없어"


밀양여중생성폭행사건의 가해자들의 신상정보가 인터넷을 통해 유포되고 있다. 그런 와중에 밀양사건의 가해자 중 한 명으로 지목돼 신상이 털린 A씨가 '억울하다'는 취지의 글을 올려 논란이 되고 있다.

A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혐의가 없다는 판결을 받았으므로 강간범이 아니다"며 범죄사실을 부인했다. A씨는 글과 함께 사건기록까지 함께 공개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가 공개한 사건기록을 보면 특수강간, 특수강도강간, 야간ㆍ공동공갈, 청소년강간 등 네 가지 범죄 중 세 가지 범죄에서 증거불충분으로 '혐의 없음'판결을 받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나머지 죄명인 '청소년 강간'부분이다. 사건기록에는 이 부분에서 '공소원 없음'결정을 내린 것으로 명시돼있다. A씨의 해명글을 본 누리꾼들은 "공소권 없음 결정은 보통 가해자가 피해자와 합의했을 경우 내리는 결정"이라며 합의했다고 해서 유죄가 무죄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나 또 다른 누리꾼은 "사건기록만 봐서는 A씨가 무혐의처분을 받은 것인지 합의를 한 것인지 알 수 없다"며 맞섰다.

이에 A씨는 "밀양사건에 대해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알려주겠다"면서 자신의 카카오톡 아이디를 공개하는 듯 소명의 의지를 밝혔다.



오보람 인턴기자 boram3428@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