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근절 넘어 범법행위로 변질… 영세상인 사냥 ‘역풍’ 부르기도

파파라치 ‘원조’ 카파라치, 수많은 파생상품 만들어

제도 취지 벗어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 ‘피해’ 양산

몰래카메라 동원해 촬영 후 신고하거나 주인 협박하기도

“파파라치 장려해야” VS “부작용 크고 영세상인 피해 커”

문화체육관광부가 이달부터 중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한 바가지요금 등 불법행위를 추방하기 위해 신고자에게 최대 300만원 포상금을 주는 일명 ‘관광 파파라치’ 제도를 시행하겠다고 지난달 8일 밝혔다. 포상금을 노리고 슈퍼마켓, 금은방, 도로, 식당 등을 돌던 파파라치들에게는 또 다른 ‘사업장’이 생긴 셈이다.

정부 입장에서도 불법행위 근절에 도움이 되는데다 포상금으로 나가는 돈보다 과태료나 벌금으로 거두는 돈이 더 많으니 효율적이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파파라치 제도로 인해 영세상인들이 생계의 위협을 받고 일부 파파라치들은 영세상인들을 협박까지 한다며 회의적인 시각을 보내고 있다.

‘카(car)파라치’ 부작용 남발에 역사 속으로

‘파파라치’라는 말은 원래 연예인 등 유명인들의 뒤를 따라다니며 그들의 사진을 찍고 이를 신문사 등에 파는 전문 사진사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일반인들의 범법행위를 포착해 행정기관 등에 신고한 후 포상금을 타내는 사람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포상금 사냥꾼’ 파파라치의 원조는 ‘카파라치’다. 카파라치는 자동차(car)와 파파라치의 합성어로, 교통위반 차량을 몰래 촬영해 보상금을 타내는 전문 신고자를 일컫는 말이다. 2001년 3월부터 교통법규 위반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사진을 찍어 신고하면 1건당 3000원의 보상금을 지급하는 ‘교통법규위반 신고보상금제도’가 시행됐고, 이때 전문 카파라치가 등장했다.

카파라치의 효과는 톡톡히 봤다. 2001년 3월부터 2002년 8월까지 카파라치들이 신고한 교통법규 위반 건수는 427만9000여 건에 이르고 이에 지급된 포상금은 112억4000만원이 넘었다. 당시 운전자들 사이에서 교통경찰보다 카파라치를 조심해야 한다는 볼멘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그 덕에 교통사고 사망자가 감소하고 교통질서가 확립되는 등 효과를 톡톡히 봤다.

그러나 교통법규위반이 잦은 곳에서 자리를 잡고 며칠 만에 수천 건의 법규위반을 잡아내거나, 법규위반자와 카파라치 간에 폭행이 오가는 등 부작용이 일면서 결국 2003년에 포상금 지급을 중단했다.

‘식파라치’에 떨었던 슈퍼마켓ㆍ식당

카파라치는 이후 수많은 ‘파생상품’을 만들어냈다. 그 중 가장 최근에 논란이 됐던 것이 불량식품이나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판매하는 업체를 신고해 포상금을 타내는 ‘식(食)파라치’ 행위다. 식파라치 수법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방법 중 하나가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판 슈퍼마켓이나 마트 등을 식품의약품안전처 혹은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하는 것이다.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유통기한이 경과된 제품 또는 원재료를 판매목적으로 제조ㆍ가공ㆍ조리ㆍ저장ㆍ운반하거나 판매하는 행위’를 신고를 하면 포상금으로 7만원을 지급한다. 대형마트나 편의점에 비해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의 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기 힘든 동네 슈퍼 혹은 중소형 식당이 식파라치들의 먹잇감이 된다.

수법은 간단하다. 먼저 동네 마트를 돌며 타깃을 물색한 뒤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발견하면 이를 구매하는 과정을 동영상으로 촬영하고 이것을 증거물로 식약처에 신고를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안경형 몰래카메라, 가방으로 위장한 몰래카메라 등 최신기기가 동원되기도 한다.

슈퍼뿐만이 아니라 식당도 식파라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경북의 A시에서 식당을 운영했던 김모(53ㆍ여)씨도 식파라치 때문에 영업정지를 당했다고 했다.

전말은 이렇다. 김씨의 가게는 칼국수와 파전 등과 함께 막걸리ㆍ동동주 등을 파는 한식당이었는데, 혼자 찾아온 50대 남자 손님이 막걸리를 주문했다. 몇 분 후 그 손님은 막걸리의 유통기한이 지났다며 따지기 시작했다. 김씨 식당의 홀을 담당하는 직원이 유통기한 확인을 깜박하고 냉장고에 그대로 보관해 놓은 것이 화근이 됐다. 해당 손님은 막걸리를 주문하는 것부터 유통기한을 확인하는 장면까지 모두 촬영된 동영상을 김씨에게 보여줬다. 그리고는 김씨에게 ‘거래’를 제안했다. 김씨는 “(해당 남성이)신고하지 않는 대신 100만원을 달라고 요구했다”고 하면서 “일주일 동안 가게를 닫으면 손해가 이만저만 아닐 텐데 그냥 싸게 처리하자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씨는 괘씸한 생각에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씨는 “홀 담당 직원의 실수지만 어쨌든 내가 사장이니 내 책임이 가장 크다”고 하면서도 “포상금에 몇 배에 달하는 돈을 요구하는 게 협박범과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그 사람에게 돈을 주느니 차라리 영업정지를 당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 신고하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또 “결국에 파파라치들에게 당하는 건 서민들이나 영세상민이다”면서 “법을 어긴 사람도 문제지만 이를 이용해 주머니를 불리는 파파라치들이 더 악의적이다”고 덧붙였다.

주인에게 ‘딜’제안하거나 사기… ‘철퇴’

식파라치에게 거래를 제안 받은 슈퍼나 식당의 주인은 김씨뿐만이 아니다. 실제로 작년 수원 등 경기권의 마트를 돌며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포착, 주인에게 돈을 요구한 홍모(42)씨 등 3명이 지난달 법원의 철퇴를 맞았다.

이들은 포상금을 수령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활동에 비용이 많이 들어 포상금을 받아도 남는 게 없다는 생각에 가게 주인과의 ‘딜’을 통해 돈을 받는 묘수를 떠올렸다. 이후 홍씨 일당은 유통기한이 지난 콩국물 등의 식품을 구매한 뒤, 마트 측에 “신고하면 200만원 이상의 과징금을 내야하고 15일 정도 영업정지 처분을 받을 수 있다. 돈을 주면 신고하지 않겠다”며 협박해 지난 8월 한달 동안만 1400만원의 돈을 갈취했다. 결국 덜미가 잡힌 홍씨에게 법원은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식품에 이물질이 나왔다고 아예 사기를 치는 ‘올드한’ 수법인 블랙컨슈머 행위도 식파라치의 수법 중 하나다. 지난해에는 중소 식품업체 175곳을 상대로 “식품에 이물질이 나왔으니 보상을 하라”며 협박해 2000만원을 뜯은 김모(34)씨가 구속됐고 올 1월에는 한 중국집에서 짬뽕에 일부러 닭뼈를 넣고 돈을 요구한 한 50대 남성이 벌금 200만원을 선고 받기도 했다.

이처럼 중소 식품업체나 영세상인이 전문 식파라치 행위의 가장 큰 피해자로 몰리자 서울시가 구제에 나섰다. 지난해 한 명의 식파라치가 서울시 성북구 일대의 마트 11곳을 유통기한 경과 제품 판매를 명목으로 신고한 것이 발단이 됐다. 이후 과징금을 받게 된 11개 마트 중 8개가 성북구청장을 상대로 낸 ‘과징금 부과처분 취소 청구’를 냈고 행정심판위원회 측이 이를 받아들였다. 마트 업주 측이 “신고자(식파라치)가 마트 내 CCTV 보관 기일인 30일이 지난 후에 신고해 일부러 사전계획이 있었는지 알 길이 없다”고 주장했고, 행심위도 “통상적인 구매행위 과정에서 신고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며 마트 측의 주장을 인정한 것이다.

세파라치, 탈세 처단자?

일각에서는 공익신고포상금제도를 오히려 활성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특히 각종 탈세를 제보해 포상금을 타내는 ‘세파라치’ 제도는 더욱더 장려해야 한다는 시각도 나온다. 각종 방법으로 세금 납부를 회피하는 탈세자들을 처단해 사회 규범을 바로 세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탈세자로부터 추징금까지 거둬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국세청이 공개한 국세통계 자료를 보면 탈세신고 붐이 일었던 2014년에만 1만9442건의 탈세신고가 접수돼, 8945건의 신고가 들어온 2010년과 비교해 2배 이상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추징금은 2010년 4778억원에서 4년 만에 1조5301억원으로 세 배 가량 증가했다. 신고자들에게는 총 87억원의 포상금이 지급됐다. 정부 입장에선 87억원을 들여 1조5000억원이 넘는 돈을 추징했으니 남는 장사인 셈이다.

그러나 세파라치의 효율성에도 불구하고, 식파라치와 마찬가지로 피해를 입는 것은 영세상인뿐이라는 성토가 나온다. 고액체납자들의 세금문제는 건드리지도 못하면서 애먼 서민들만 세파라치의 덫에 걸린다는 것이다.

B광역시에서 시계방을 운영하는 오모(66)씨도 세파라치의 사냥감 중 한 명이었다. 오씨는 “현금영수증 발급이 시행된 지 얼마 안 됐을 때 이를 발급하지 않았다가 과태료를 내야 했다”면서 “처음에는 내 실수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후에 알고 보니 이 일대의 귀금속매장을 모두 들러 신고한 전문 세파라치였다”고 목청을 높였다.

이처럼 세파라치들이 가장 손쉽게 포상금을 타내는 분야가 바로 ‘현금영수증 발급 거부’ 신고다. 소득세법 시행령에는 피부관리실, 금은방, 예식장, 펜션, 자동차 운전학원 등의 업체에서 현금거래 시 소비자가 요구하지 않더라도 현금영수증을 의무적으로 발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만약 이것을 어긴 업체를 적발하면 제3자라도 국세청으로 신고가 가능하다.

특히 현금영수증발행 의무업체로 새롭게 지정된 업체가 이를 인지하지 못해 현금영수증을 물건구매자에게 발행하지 않았다가 큰 코를 다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2014년에 현금영수증 미발행 신고로 지급된 포상금 30억원 중 27억원이 새롭게 현금영수증발행 의무업체로 선정된 곳인 금은방, 다이어트센터, 숙박업소 등에서 나왔다.

그 중에서도 금은방이 세파라치들의 집중타깃이 됐다. 업체 특성상 현금거래가 많은데다 목돈이 오고 가는 까닭이다. 수법은 식파라치들이 쓰는 방법과 다르지 않다. 우선 금은방에 가 각종 귀금속을 구매한 후 해당 금은방이 현금영수증 발행을 하지 않으면 국세청에 신고를 한다. 구입한 귀금속은 되파는데, 귀금속 특성상 중고라 해도 제값을 받을 수 있다. 포상금을 받는 데 실패해도 세파라치들에겐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다.

한창 세파라치들이 현금영수증 미발행 업체를 노렸을 때 국세청은 신고금액의 20%를 신고자에게 포상금으로 지급했었다. 반면 금은방 입장에선 ‘과태료 폭탄’을 받았다. 신고금액의 절반을 과태료로 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세파라치가 귀금속 1000만원어치를 구매했을 때 업체에서 현금영수증을 발급하지 않아 신고를 하면, 200만원의 포상금이 세파라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는 말이다. 국세청이 정한 1인당 포상금 지급 한도는 연간 1500만원이나 됐었다. 그러나 세파라치가 가족을 동원할 경우 수익은 수천 만원까지 올랐다. 세파라치들이 종로 귀금속 상가를 휘젓고 다녔던 이유다.

파파라치 제도의 딜레마

이렇듯 파파라치가 많은 돈을 단기간에 벌자 몇 년 전부터는 ‘파파라치 전문 양성소’들도 등장했다. 한 파파라치 학원은 “포상금을 받을 수 있는 분야가 1000여 가지가 넘어 수익성이 좋고, 학벌 등 별다른 조건이 없어도 돈을 벌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소개하면서 “최소 시간에 최대 수익을 얻기 위해 학원을 다니며 노하우를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처럼 파파라치의 종류는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쓰레기 무단투기를 신고하는 쓰파라치, 담배꽁초 무단투기를 신고하는 담파라치, 신용카드 불법 모집을 신고하는 카파라치, 무면허 약사의 약국 운영을 신고하는 팜파라치까지 포상금이 걸린 범죄는 모두 파파라치들의 블루오션이다.

일부 공익신고 분야가 파파라치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계속해서 나오자 국민권익위원회는 무면허 약국 운영, 폐기물 불법매립, 유사석유판매 등을 신고한 외부 공익신고자에게 포상금을 지급하기 전 심사를 하도록 했다. 공익신고자보호법은 공익신고 포상금 지급과 관련해 ‘현저히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에 재산상 이익을 가져오거나 손실을 방지한 경우 또는 공익의 증진을 가져온 경우에는 포상금을 지급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건별 포상금 지급 한도와 연간 포상금 수령액 한도도 낮췄다.

앞서 언급한 시계방 주인 오씨도 “올해에는 현금영수증을 발행하지 않아 과태료를 냈다는 주변 상인을 보지 못했다”면서 “주인들이 (현금영수증 발행에) 신경을 쓰기도 하지만 포상금 액수가 줄어들어 세파차리들이 덜 몰리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포상금 지급에 제한을 두고 포상금액까지 하향조정하면 신고율이 바닥을 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파파라치가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지만 범죄율을 낮추고 국고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필요악’이라는 입장이다. 또 이로 인해 외부신고자가게 주인에게 직접 돈을 뜯는 등의 ‘식파라치 음성화’가 가속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관련 전문가들은 포상금의 문을 아예 닫는다면 신고율이 떨어지고 포상금액을 너무 높게 책정하면 파파라치들이 판칠 수 있다며 제도의 취지와 효율성을 최대로 살릴 수 있는 적정한 포상금 규모를 찾아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오보람 인턴기자 boram3428@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