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 - 국방부 ‘진실 공방’ 18년…4대 국가기관 ‘결론’ 국방부 외면

국회ㆍ대법원ㆍ대통령 소속 기관ㆍ권익위 ‘자살’ 부인

초기 수사 부실, 증거 조작 의혹, 대법원 판결 왜곡 논란

초기 사건 담당 군 수사관 국회 입성…유족 “자격 미달”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사회 전반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일부 볼멘소리가 들리고 피해를 보는 이들도 있지만 크게 봐선 입법 취지대로 부정청탁과 금품수수 사례가 줄고 그런 분위기가 확산되는 양상이다.

‘김영란법’은 2012년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추진했던 법안으로 김 전 권익위원장은 이 법 외에 매우 의미있는 판결과 권익위 활동으로 주목받았다. 군 의문사의 ‘상징’으로 돼 있는 고(故) 김훈 중위 사망사건(1998년)이 대표적이다.

김 전 권익위원장은 대법관 시절 국방부가 여러 의문에도 ‘자살’로 결론지은 것을 인정하지 않았고, 권익위원장 때는 진상규명 불능 결정에 따른 순직처리를 군(軍)에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군은 대법원 판결도, 권익위의 권고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심지어 대법원 판결을 왜곡하는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김훈 중위 유족은 군이 김 중위 사망사건을 잘못 처리하고 이를 그대로 유지하는 원인이 초기 수사의 문제에 있다고 본다. 유족은 최근 초기 수사에 직접 관여한 군 인사가 국회의원 선거와 당선된 이후에도 김훈 중위 의문사를 왜곡ㆍ홍보한다며 크게 분노하면서 모든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했다.

김훈 중위 의문사는 비단 김 중위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또 다른 의문사와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의문사, 나아가 ‘국방’의 근본을 다시 생각하는 잣대가 되고 있다.

18년간 은폐된 진실에 갇혀 있는 김훈 중위 의문사 사건을 짚어봤다.

‘진실 공방’, 김훈 중위 유족은 왜 분노하나

국군의날인 10월 1일, 고 김훈 중위 부친인 김척(72ㆍ육사21기) 예비역 중장은 행사장면을 보면서 헛헛하고 씁쓸한 감회에 젖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건군 제68주년 국군의날 기념식에 참석해 “국민의 신뢰를 받는 정예강군이 되어주길 바란다”는 말도 일부 공허하게 들렸다.

김척씨는 ‘국민의 신뢰를 받는 정예강군’이란 부분에 선뜻 동의하지 못했다. 최근까지 군과 국방부가 김훈 중위 의문사에 대한 보여온 태도는 국민의 신뢰는커녕 불신만 가중시키고 국방력을 약화시킨다는 판단에서다.

김훈 중위(당시 25세, 육사52기)는 1998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경비초소(241GP)에서 의문의 총상을 입고 사망했다. 제15대 대통령(김대중) 취임식 하루 전인 그해 2월 24일이었다.

그런데 한국군과 미군 수사관이 수사를 하기도 전에 ‘자살’로 결론지어졌고, 곧바로 보도됐다. 당시 김훈 중위는 12시 20분 경 소속 부대 박모 일병에 의해 발견됐고, 미군수사관(CID)은 오후 3시 30분에 사건현장에 도착했다. 한국군 수사관은 그보다 늦게 오후 4시 40분쯤 부대에 당도했다.

그런 와중에 김훈 중위 사망(자살) 소식이 오후 4시43분에 연합뉴스를 통해 1보가 나갔고 이어 YTN 등 방송사와 신문에 보도됐다. 김훈 중위 유족과 관계자 등에 따르면 국방부는 김 중위 사인에 대한 수사도 하기 전에 국방부 출입기자들에게 ‘자살’로 브리핑했다.

미군 또한 김훈 중위 사건을 왜곡하는데 동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미연합군사령부의 사고 당일 ‘상황보고’ 및 ‘JSA 경비 소대장 사망 관련 상황조치’ 문건에 따르면 미군 역시 군수사관(CID)이 도착하기도 전에 ‘자살’로 상황보고를 했다. 미군이 자살로 보고를 한 때는 오후 2시20분으로, 미군 수사관은 그보다 1시간 뒤인 오후 3시30분에 현장에 도착했다.

때문에 법원도 국방부의 그러한 행태를 질타했다. 김훈 중위 사건과 관련한 재판에서 고등법원은 “김훈이 사망하자마자 이 사건 사고가 미군측과 대대장 등 부대원을 통하여 자살로 성급히 판단되었고, 그에 따라 당일 언론을 통하여 김훈이 자살하였다는 보도가 나왔으며, 부검을 담당한 군의관은 부검 직후 자살로 예단한 사체검안서를 작성하다가 이를 삭제하는 등 사건 발생의 초기부터 제대로 된 조사나 수사 없이 김훈이 자살한 것이라는 예단이 부대 내외부에 지배적이었고, 그러한 정황이 수사기관의 수사에 어떠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20004년 2월17일)

그럼에도 군과 국방부는 1~3차 수사 및 최근에 이르기까지 자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국방부는 육군이 미군 범죄수사대(CID)와 합동으로 진행한 1차 수사(1998년 2월 24일-4월 29일)는 물론, 육군본부 검찰부의 2차 수사(1998년 6월 1일∼11월 29일), 국방부장관의 지시로 설치된 특별합동조사단의 3차 수사(1998년 12월 9일∼1999년 4월 14일), 그리고 2012년 3월 22일 총기 격발실험 등에서 김훈 중위가 자신의 권총을 이용해 자살한 것으로 일관된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국방부와는 달리 국회(국방위원회), 대법원, 대통령 소속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등 3개 최고 국가기관과 국가권익위원회는 자살 결론을 수용하지 않았다.

1999년 국회 국방위원회에 설치되었던 ‘김훈 중위 사건 진상규명소위원회’는 그해 5월 31일 부실 수사에 대한 의문 15가지를 제기하며 ‘김훈 중위가 타살됐을 수 있다’는 취지의 의정 활동 보고서를 펴냈다. 대법원도 2006년 12월 김훈 중위 사건 관련 판결을 통해 “초동수사가 잘못돼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게 만들었다”라고 판시했다. 3년간 사건을 조사했던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2009년 11월 ‘진상규명 불능’ 결정을 내렸다.

권익위도 국방부와 합의해 2012년 3월22일 총기 격발실험 등 쟁점 사안들에 대해 재조사를 진행한 후 김훈 중위의 사인을 자살로 보기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권익위는 그해 8월 6일 김훈 중위 사건에 대해 ‘진상규명 불능 결정에 따른 순직처리 권고안’을 육군본부에 보냈으나 국방부는 3개월 뒤인 11월26일 유족에게 김 중위 사건을 타살로 결론지을 수 없다고 통보했다.

김훈 중위 부친 김척씨는 “국가기관의 조사 결과를 무시하는 군은 정직한 군대라 할 수 없고,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없다”며 “군 의문사 사건에 대해서도 군보다 국민의 입장에서 접근해야 국민이 신뢰하는 군대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방부 증거 조작 의혹, 그리고 ‘거짓말’

김훈 중위 사망사건은 18년째 유족과 국방부 간에 ‘진실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유족 측은 군의 초동수사가 잘못된데다 진실을 밝힐 증거를 조작하고, 국가기관의 판단에 거짓말까지 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국방부는 객관적 검증과 전문가들의 견해를 토대로 ‘자살’로 결론지었다고 반박한다.

김훈 중위 사망의 진실을 밝혀 줄 최대 관건은 총을 발사할 때 반드시 분출되는 화약이다. 그런데 김 중위가 총을 쐈다는 오른손에서 뇌관화약이 검출되지 않았다. 김 중위의 왼손바닥에 나타난 뇌관 화약과 어깨 부위의 무연화약 성분으로는 ‘자살’로 단정할 수 없다고 국내외 전문기관은 판단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화약 검출과 관련해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채 ‘자살’로 결론지었고, 유족 측은 서류를 조작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국방부가 2011년 10월 17일 당시 민주당 서종표원에게 김훈 중위의 자살 판단 근거 자료로 제출한 뇌관화약감정서(손에 대한 뇌관화약 검출여부 확인) 사본 일체, 국방부 과학수사연구소 화약감정결과(99년 2월 6일) 및 미국 군수사연구소 증적(證跡)과 보고(98년 3월 25일)는 자살 결론과는 상반된 내용을 담고 있다.

국방부는 김훈 중위의 자살 근거로 미국 군 수사연구소 증적 자료(98년 3월 25일)에 나타난 왼손 손바닥의 화약 잔재를 제시했다. 그러나 미 보고서는 ‘왼손 손바닥에 화약 잔재가 있다는 것만으로 자살자로 귀결되어져서는 안된다는 사항에 유의할 것’이라고 명기하고 있다.

또한 ‘자살’이라면 발사한 오른손에 100 % 뇌관 화약성분이 검출돼야 하지만 미 증적보고서에는 그러한 내용이 없다. 즉 김훈 중위가 자살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김훈 중위의 오른쪽 손에 화약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자 국방부는 발사자의 38%만이 뇌관화약이 검출된다는 논문 통계를 근거로 제시하며 ‘자살’ 결론을 유지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를 뿐더러 통계를 조작했다는 게 유족 측의 주장이다. 즉 38% 통계는 김훈 중위의 ‘타살’을 입증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인 오른쪽 손에 화약이 없는 것을 의도적으로 불식시키기 위해 자료를 왜곡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38% 논문 통계를 적용하려면 권총의 종류, 화약량, 발사 장소와 위치(실내, 실외), 기상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데 이를 무시한 일반적인 통계로 자살과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유족 측은 1998년 10월 2일자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시험결과도 조작됐다고 주장한다. 즉,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제시된 증거물의 시험결과만으로는 발사자가 변사자 자신인지 논단할 수 없음”이라고 적시돼 있음에도 특조단 수사발표문에는 “국과수 이00 등 3명의 재감정결과 김훈 중위의 야전잠바 좌우측 어깨에서 화약성분이 검출되었으며 이는 김훈 중위가 사격하였음을 의미한다”고 기록을 조작했다는 것이다.

국회, 권익위, 유족 측의 요구로 김훈 중위 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벌여온 국방부 조사본부는 직접 ‘진실’을 밝히기 위해 2012년 3월 22일 서울 강서구 소재 특전사 공수여단 실내사격장에서 김훈 중위가 사망하던 당시 판문점 241GP의 제반 조건을 그대로 재현한 가운데 총기실험을 실시했다. 김훈 중위 사인을 둘러싸고 최대 쟁점이던 ‘누가 권총을 발사했는가’를 과학적으로 가리기 위해서였다. 오른손잡이인 김훈 중위가 스스로 피스톨 권총(M9 베레타)을 격발했다면 그의 오른손에 뇌관화약 잔재물이 남아 있어야만 자살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다.

실험은 4개 그룹으로 구분해 정상적인 권총 자살 자세(오른손 검지손가락 격발)를 취한 5명과 비정상적인 자세(오른손 엄지손가락 격발)로 행한 5명에게서 각각 격발 4시간 후 시료를 채취했고 정상자세, 비정상 자세로 실험한 각 1명에게서는 격발 후 즉시 시료를 채취했다. 또 김훈 중위 사망 초기 미군 군의관 등이 현장을 오고 간 주변 정황을 재현하기 위해 발사자가 4시간 동안 김 중위의 발견 당시와 유사한 자세로 대기하도록 했다. 각 실험자의 왼손 손등 및 손바닥, 오른손 손등 및 손바닥에서 채취한 시료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졌다. 그리고 실험자 전원의 오른손 및 왼손 손등과 손바닥에서 뇌관화약 잔사인 납, 바륨 및 안티몬이 검출됐다.

그런데 김훈 중위의 오른손에서는 뇌관화약이 검출되지 않았다. 또 3월 22일 실험결과에 의하면 그동안 김훈 중위 자살론자들이 법의학적 자살 근거로 내세웠던 “김훈 중위가 왼손으로 총열을 잡고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방아쇠를 당겨서 격발(비정상적인 자세)했기 때문에 오른손에서 뇌관화약 잔재가 검출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한다”라는 논거도 무너지게 된다. 다시말해 김훈 중위는 스스로 M9 베레타 권총을 격발(자살)하지 않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러한 과학적 근거와 합리적 논거에도 불구하고 국방부는 여전히 ‘자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유족 측은 무엇보다 국방부가 대법원 판결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김훈 중위 사인을 ‘자살’로 결론짓고 이를 대외적으로 강변하고 알리는 데 활용한 것에 분노하고 있다.

대법원(김영란 전 대법관 주심, 김황식 전 총리, 안대희 전 대법관 배석)은 김훈 중위 사건에 대한 판결문(2006년 12월 7일)에서 “초동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졌더라면 실체적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이를 소홀히 하여 사건의 실체를 불분명하게 만들었고 현재까지도 이 사건 사고가 자살인지 타살인지 명확히 결론을 내릴 수 없도록 하였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김태영 국방장관과 조정환 육군참모차장(2010년 10월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 김흥석 법무실장(2010년 11월 9일 육사총동창회), 승장래 전 국방부조사본부장(2012년 10월 국회 국정감사) 등 군 수뇌부 인사는 한결같이 “대법원은 ‘자살’로 판결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대법원 판결을 두고 논란이 계속되자 대법원은 2014년 3월 31일 기존 판결에 대해 “자살인지 타살인지는 현재 알 수 없는 상황이라는 원심을 수긍하였기에 대법원의 입장은 자살 타살 여부에 대하여 중립(현재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고 밝혔다. 국방부의 ‘자살 판결’이라는 자의적 해석이 잘못된 것임을 분명히 한 셈이다.

“정의 외면한 의원 국민 대표 자격 없어”

김훈 중위 유족 측은 김훈 중위 의문사가 진실과 다르게 진행된 데는 초기 수사의 잘못이 크다고 지적한다. 김 중위 부친인 김척씨는 그러한 수사에 책임있는 당사자가 국민의 대표라는 국회의원에 출마하고 당선된 것에 대해 부당함을 강조한다.

김척씨는 더불어민주당 민홍철 의원(55ㆍ경남 김해시갑)이 육군고등검찰부장 때 김훈 중위 사망사건을 수사하면서 미군수사연구소의 감정서(98년 3월 25일) 내용(스스로 쏘지 않았다. 권총에 지문이 없다 등)을 부정하고 김훈 중위를 권총자살자로 조작, 발표(98년 11월 27일)했다고 주장했다.

김척씨는 민 의원이 4ㆍ13 총선 당시 선거 블로그와 현재 의원 홈페이지에 김훈중위사건을 명쾌하게 결론지었다고 허위사실을 알린 것은 김훈 중위 유족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했다.

민 의원의 홈페이지 중 ‘걸어온 길’ 중 ‘군생활’ 부분에는 “육군본부 검찰부장(중령) 시절에는 대표적 군 의문사 사건인 김훈 중위 사망사건을 수사해 주목을 끌었다. 사망자의 부친이 중장 출신의 선배 장성이었고 언론에서도 주요 사건으로 다뤄 부담감이 컸지만 그는 차분하고 명쾌하게 결론지었다”고 돼 있다.

김척씨는 “군의 사건 조작은 안보를 해치는 범죄행위”라며 “민 의원은 김훈 중위 유족과 전국민, 전장병에게 공개적으로 사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 의원은 지난 6일 기자와 만나 김훈중위 수사에 대해 ‘자살’이라는 말 대신 “타살을 입증할 수 없었다”고 우회적으로 말했다. 민 의원은 증거조작을 부인하면서 현재도 같은 입장(자살)이라고 답했다.

김척씨는 민 의원 등이 수사 당시 사병과 증거물에 대해 충분한 조사를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로 인해 유력한 범인으로 지목된 김모 중사가 컴퓨터 파일을 없앨 수 있게 방치했고, 군은 김 중사를 다른 부대로 전출시키는 등 조직적으로 진실 추적을 회피했다는 것이다.

김척씨는 ‘정의가 없는 국가는 강도떼와 같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로마가 정의로운 국가였을 때 번성했던 것처럼, 정의가 사라지면 국가도 무너진다”면서 “정의를 외면한 민 의원은 국민을 대표할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박종진 기자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