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관행개선 노력에도 내사단계 ‘수사권 남용’ 사례는 여전

SAT 문제유출 사건수사, ‘내사 중 압수수색’ 한 사실 명백

검찰이 제시한 압수수색 안내문 등, 사건번호에 ‘내사번호’가…

법조인들 “내사, 수사 상 필요하지만 균형이 이뤄져야”

검찰의 현행 내사 관행에 대한 문제점이 꾸준히 제기돼오고 있다. 과거 대검찰청이 내사에 대한 관행을 개선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내사에 대한 규칙이 형사소송법이 아닌 행정규칙에 불과한 법무부령에서만 다뤄지는 등 개선책이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주간한국>이 지난 제2647호 ‘SAT 문제유출 사건 재판, 초유의 사태 되나’ 제하의 기사 등 3차례에 걸쳐 보도한 미국대학수학능력시험(SAT) 문제유출 사건도 이 한계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주간한국>의 SAT 문제유출 사건 관련 기사를 접한 법률전문가들과 독자들은 본지에 연락을 해오거나 이메일을 보내 앞서 언급한 한계를 의미하는 이 사건의 ‘내사단계 중 압수수색’에 대해 보다 자세히 보도해 줄 것을 요청했다. 법률전문가들은 “내사단계에서는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받을 수 없는데 압수수색이 정말 가능했던 것이 맞는가”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내사’란 ‘입건’의 전 단계로 범죄혐의를 밝힐 수 없어 이를 입증하기 위한 기초자료 수집의 과정이다. 사실 내사단계는 제한 시일이 없고, 상부기관으로부터 제재를 받지 않아 수사 기간과 범위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이뤄진다.

때문에 내사단계는 피내사자의 주변 사항과 접촉인물 등 간접사항에 대한 정보수집을 중심으로 ‘은밀히’ 진행돼야 한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 압수수색과 같은 강제처분이 행해지는 등 검찰 측의 수사권 남용의 사례는 여러번 지적돼왔다.

이에 대검찰청은 지난 2011년 12월 보도자료 ‘검찰 내사 관행 획기적 개선’에서 체포ㆍ구속, 주거지 압수수색 등 인권침해 소지가 큰 수사 활동은 입건(혐의 사실이 인정돼 사건이 성립된 것) 후에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내사 관행과 이 단계에서 수사권 남용에 대한 문제점을 바로잡겠다는 취지였다.

검찰 측이 ‘인권준수수사’를 표방하며 검찰사건사무규칙에는 검사가 피의자 신문조서를 작성할 때, 긴급체포를 할 때, 체포ㆍ구속영장을 청구할 때 그리고 사람의 신체ㆍ주거 등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할 때 반드시 입건절차를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다. 입건을 위해서는 검찰사건사무규칙에 따라야 하며, 지방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아야만 압수수색이 가능하다는 규정은 형사소송법 제215조에도 명시돼 있다.

때문에 검찰이 공표한 대로 내사 중에는 압수수색 등 강제처분을 할 수 없다. 또 수사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법원에 영장을 청구할 수 없다. 입건이 진행돼야지만 혐의자(피내사자)는 형사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되고 사건번호 역시 수제번호에서 형제번호로 바뀌게 된다.

그러나 이후에도 검찰의 내사 관행에서 나오는 문제점이 개선되지 못해 정치권으로부터 지적을 받았다. 지난 2013년 11월에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형제번호를 부여받는 시점 이전에도 압수수색이 여전히 이뤄지고 있는 부분을 질타했다. 또 내사단계 중 법원에 영장청구를 할 수 있는 관행에 대한 문제점도 지적했다.

당시 김진태 의원은 내사번호와 수제번호, 형제번호를 부여하는 복잡한 단계가 입건 전 압수수색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비켜가기 위해 편법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황교안 당시 법무부장관은 김 의원의 질의에 “입건한 뒤에 압수수색을 하는 것이 원칙적이고 또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라고 알고 있다”라고 답했다.

당시 검찰총장의 답변과는 달리 2013년 국정감사의 약 9개월 전이던 2월에 발생한 SAT 문제유출 사건 수사과정은 이런 문제가 개선되지 않아 3년이 지난 현재까지 논란으로까지 이어오고 있다.

SAT 문제유출 사건의 근본적 문제는 <주간한국>의 지난 보도에서 언급한 대로 피의자가 고소를 원치 않았던 사건이라는 점이다. 또 다른 문제는 검찰이 수사과정 중 적법한 절차를 위반한 것이 명백하며, 그것은 내사단계 중 피내사자에 대해 피의자를 전제로 하는 무리한 압수수색을 벌였다는 사실이다.

지난 2013년 당시 검찰은 일부 학원가에서 SAT 시험문제에 대한 부정행위가 이뤄지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고, 그해 2월 18일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부는 SAT 문제유출 의혹이 있는 서울 강남일대 어학원 6곳을 압수수색했다. 이어 같은 달 27일에는 같은 의혹이 있는 어학원 2곳을 추가로 압수수색했고, 이 일이 곧바로 언론에 공개되며 마치 SAT 부정시험이 있었던 것처럼 왜곡돼 큰 파장을 일으켰다.

검찰 측이 내사 초기 피내사자들에게 적용한 혐의는 ‘업무방해죄’다. 사건의 피내사자이자 SAT 수험생 김 모씨도 업무방해 혐의로 같은 해 4월 3일 검찰로부터 압수수색 영장을 통해 자택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그런데 당시 ‘법률적 지식이 부족했던’ 김씨는 자신이 내사단계도 거치지 않은 채 압수수색의 대상됐고, 이것이 적법절차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실제로 김씨의 압수수색 영장 집행일은 4월 3일이었지만, 그가 최초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출석해 피내사자 신분으로 진술한 날짜는 같은 달 11일이었다. 이후에도 그는 10여 차례나 검찰에 출석해 진술서를 작성했지만, 이때도 피내사자 신분은 변함이 없었다.

특히 다음달 SAT 시험문제의 운영사인 미국 ETS의 관계자 N씨가 입국해 검찰 측에 참고인 진술을 받았지만, N씨의 참고인 진술서에도 이 사건에 대해 ‘내사사건’으로 기록하고 있었다. 때문에 김씨가 내사 중 압수수색을 받은 것을 명백한 사실이자 검찰사건사무규칙 및 적법한 절차에 어긋나는 부분이었다.

문서에 ‘내사번호’ 달고 압수수색에 나서

현행 검찰사건사무규칙의 규정으로 정식 입건절차 즉 내사단계가 완료되지 않았다면 법원에 영장을 청구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상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김씨가 겪은 일이 과연 어떻게 가능했는지 의문이 생기고, 압수수색 절차에 쓰인 공식문서 내용에 위법성이 없었는지 의혹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 사건의 수사와 재판과정을 지켜봐 온 한국NGO연합 사법감시배심원단(이하 사법감시배심원단)은 “사건번호에서부터 법원으로부터의 영장발급과 압수수색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명백히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사법감시배심원단 측은 이에 대한 증거로 당시 담당 검찰수사관이 압수수색을 집행하기 위한 관련서류인 ‘압수수색 안내문’과 ‘압수목록교부서’ 그리고 이들이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부터 발부받은 ‘압수수색검증영장’의 사본을 <주간한국>에 제시했다.

압수수색집행일시가 2013년 4월 3일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이 발행한 이 압수수색 안내문은 서두에서부터 사건번호를 제시하고 있었다. 또 압수목록교부서에도 같은 일시와 사건번호가 나타나 있었다.

압수수색안내문의 내용에 따르면 본건의 압수수색은 당청 ‘2013 내사 XX호’ 사건과 관련된 것으로 검사의 지휘에 따라 법원에서 발부받은 적법한 영장으로 집행하는 것임을 명시했다. 압수목록교부서에는 ‘피의자에 대한 당청 2013 내사 XX호 피의사건에 관하여 다음 물건을 압수하였으므로 이에 압수목록을 교부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런데 본래 압수수색에 대한 사건번호는 형제번호를 부여하게 돼있다. 이 형제번호는 ‘연도 형제 호수’의 형식으로 표시한다. 때문에 검찰 측이 김씨를 압수수색하며 제시했던 문서들에는 ‘2013 내사 XX호’가 아닌 ‘2013 형제 XX호’라는 사건번호가 올라있어야만 했다.

‘2013 내사 XX호’라는 것은 내사 중 부여하는 내사번호로 이는 김진태 의원이 국정감사에 지적했던 것처럼 내사사건에 의한 압수수색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 그리고 형제번호를 부여받기 이전인 내사단계에도 압수수색이 이뤄지는 관행을 개선하지 못했다는 문제가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이렇게 내사 중인 것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법원 측은 영장번호를 붙인 압수수색검증영장을 발급해 압수수색이 가능하게 했다.

검찰, 수사과정 중 영장주의 원칙·적법절차 준수한 것 맞나?

당시 검찰의 압수수색이 ‘적법절차에 어긋난 수사’라는 점은 또 다른 부분에도 있었다. 압수수색 당일, 김씨 주거지의 압수수색에 나선 검찰 첨단수사부는 김씨의 노트북 본체 1대와 외장하드 1대를 압수해갔다. 이는 압수목록교부서에도 나와 있었다.

그런데 노트북의 소유자가 김씨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문제가 생겼다. 이 압수물은 김씨 누나의 소유물이었던 것.

당시 김씨의 누나는 압수수색 현장에 있지 않았다. 때문에 검찰은 압수물의 실소유주인 김씨 누나에게 영장제시를 하지도 않았고, 현장입회 하에 그의 동의도 얻지 않은 채 물품을 압수한 것이다. 검사 진술서에 따르면 김씨는 현장에서 검찰 측에 해당 노트북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백히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분명 위법성이 있는 행위였다. 형사소송법 제218조 ‘영장에 의하지 아니한 압수’에 따르면 검사와 사법경찰관은 피의자 기타인의 유류한 물건이나 소유자, 소지자 또는 보관자가 임의로 제출한 물건을 영장 없이 압수할 수 있다.

때문에 김씨의 누나는 피의자의 기타인으로 물건을 검찰 측에 ‘임의로 제출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를 영장 없이 압수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특히 당사자를 배제한 수사기관의 전자정보 등의 압수수색이 위법이라는 사실은 지난 2011년과 2015년 대법원의 판례에도 나와 있었다. 대법원은 형사소송법 제219조, 제121조의 내용을 통해 피압수자나 그 변호인에 참여기회를 보장하고 영장주의 원칙과 적법절차를 준수해야만 한다고 규정했다.

만약 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면, 피압수자 측이 참여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명시적으로 표시했거나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이상 압수수색은 적법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또 2015년 7월 대법원 판결에서는 수사기관이 압수수색한 저장매체에서 범죄혐의와 관련된 전자정보를 발견하더라도 피압수자 측의 참여권을 보장하지 않으면 적법하게 그 내용을 압수할 수 없다고 밝혔다. 특히 압수수색 과정에서 한 차례라도 정보 소유자의 참여권을 보장하지 않았다면 해당 압수수색 전체가 위법해 이 과정에서 획득한 증거는 증거능력을 인정받을 수 없다고 명시했다.

이는 SAT 문제유출 수사사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할 수 있다는 게 사법감시배심원단의 설명이다. 이에 따르면 검찰은 김씨의 것이 아닌 그의 누나의 소유물을 소유주의 참여나 동의 없이 압수해갔고, 이는 적법절차에 따라 취득한 증거가 아닌 것은 명백하다. 때문에 형사소송법 제308조의 2 ‘위법수집증거의 배제’의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할 수 없다는 내용에 따라 검찰의 압수물이 증거능력을 얻는 것도 불가능했다.

당시 검찰 측은 전자정보의 경우 압수 시 ‘봉인절차’를 거쳐야 함에도 이 또한 지키지 않았다. 또 ‘영업방해’ 혐의에 따른 수사임에도 불구하고 컴퓨터범죄 수사업무를 담당하는 첨단범죄수사부가 압수수색을 담당하는 등 수사 전 과정이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내사단계에서의 압수수색 감행은 최근에도 일부 대기업 수사과정에서 문제가 된 적이 있다. 내사단계에서 피내사자들은 피의자가 아니기 때문에 진술거부권을 비롯한 헌법상의 인권보호 등의 방어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SAT 문제유출 사건 피의자들의 경우 내사단계에서부터 계좌압류 및 출국금지 처분을 받았고, 일부 피의자들은 무리한 내사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다고 느끼고 있었다.

한 법률전문가는 “내사단계는 수사과정에서 필요한 부분이지만, 이를 통해 얻은 것과 누군가가 침해받는 문제 사이에서 균형이 이뤄져야 한다”며 “내사단계의 전 과정이 항상 진실되고 적법절차의 원칙을 지킨다면 문제가 될 것은 없지만, 아직은 피의자가 아닌 무고한 사람들에 대한 조사라는 시각을 가지고 최소한의 방법과 수단만이 동원돼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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