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난제 도하부대 이전 1년여 만에 해결… 이영복 로비 정황 나타나

“이영복 , 로비 자금 명목으로 20억 조달 요구” 주장 나와

국방부ㆍ국유지 움직인 이영복의 로비 능력… 숨겨진 리스트 공개

이영복 동업자의 국방부 투서…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정치권ㆍ군 실세 이름 다수 올라


부산시 해운대관광리조트 ‘엘시티(LCT)’ 개발 비리로 구속된 이영복(66) 청안건설 회장의 서울시 독산동 군부대 부지의 용도변경 로비 의혹이 사실이라는 증언ㆍ증거가 나왔다.

이는 <주간한국> 제2657호 ‘엘시티 이영복의 숨겨진 법인ㆍ부동산 찾았다’ 등 이영복 회장의 비리 등을 다룬 본지의 5차례 보도를 접한 복수의 제보자들에 의해 밝혀졌다. 제보자들은 해당 독산동 부지와 관련해 이영복 회장과 8년째 소송 중에 있는 A씨 등이다. A씨는 이영복 회장의 과거 행적과 그동안 언론을 통해 수차례 제기된 그의 비리 의혹에 대한 증거 그리고 관련자들과의 계약서 및 녹취 자료 등을 모아왔다. 특히 이 자료 중 과거 이영복 회장과 동업을 했던 이가 A씨 등에 공개한 지난 2005년 국방부에 보낸 육군 도하부대 이전 로비에 대한 투서 내용에는 그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당시 정치권 핵심인사들과 국방부 고위직의 이름이 올라있었다.

현재 금천 롯데캐슬 골드파크의 부지인 독산동 일대는 과거 경성방직이 소유의 땅이었다. 경성방직은 일제시대가 한창이던 지난 1919년, 김성수 동아일보 창업주와 김연수 삼양사 창업주가 민족자본을 모아 설립한 회사다.

독산동 부지는 삼양사 일가 김상준 12인의 공동 소유로, 경성방직에 채소를 공급하기 위한 채소밭으로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던 지난 1970년경 이 독산동 부지는 정부에서 ‘군사상 목적으로 징발하겠다’며 국유지로 바뀌게 됐고, 이후 이곳에 육군 도하부대가 세워졌다.

도하부대는 한자명칭 그대로 강을 건너기 위한 시설을 만드는 부대로 전쟁이 발발하면 서울 주요 강 유역 등에 다리를 만들고, 아군과 피난민들의 이동을 원활히 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비록 개인 소유의 토지가 군부대로 바뀌었다고 할지라도 해당 부지는 여전히 금전적 가치가 남아있는 땅이었다.

‘징발 재산정리에 관한 특별 조치법(이하 징특법)’의 제20조 내용에 따르면 국가로부터 받은 유가증권의 상환이 종결되기 이전 또는 그 종료일로부터 5년이 경과되기 이전에 징발 토지가 군사상 필요가 없게 될 경우 환매권이 발생함에 따라 피징발자 또는 그 상속인이 이를 우선적으로 매수할 수 있게 된다. 또 이후의 경우에는 국가가 국유재산법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수의계약에 의해 매각 당시의 시가’로 피징발자 또는 그 상속인에게 매각을 할 수 있게 되는데 여기서 ‘시가’는 공시지가의 수준의 가격을 말한다.

때문에 만약 향후 도하부대가 다른 곳으로 이전해 해당 부지를 매각하게 될 경우, 수의계약권이 있는 매수자인 피징발자 또는 그 상속인이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으며 해당 부지를 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으로 매입할 수 있다.

제보자 A씨의 삼촌인 송 모씨와 그의 지인 이 모씨는 이 같은 사실을 파악하고, 지난 1983년 4월 해당 징발 토지에 대한 환매권을 삼양사로부터 양수받아 군의 철수를 기다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징발 당시 받은 유가증권의 상환기간이 5년이 지나 토지에 대한 환매권은 ‘수의계약권’으로 바뀌었다.

A씨는 “삼촌과 이씨가 독산동 부지를 매입한 뒤 도하부대의 이전을 위해 10년 넘게 노력했지만, 군부대를 철수시킨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며 “금천구 주민들이 도하부대로 인해 지역 개발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 이전에 대한 요구는 끊이지 않았고, 금천구청장들도 군부대 이전을 매번 공약으로 내걸 정도였음에도 도하부대는 꿈적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렇게 13년이 지난 1996년 11월, 이영복 회장은 송씨와 이씨에게 나타났다. A씨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이영복 회장은 송씨 측에 자신이 김영삼 정권의 실세들에 로비해 다대ㆍ만덕지구의 자연녹지 20만평을 주거지역을 변경했다고 소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이 회장은 육군 도하부대를 2년 만에 철수시킬 수 있다고 약속하며, 자신에게 해당 부지의 일부를 팔 것을 요구했다. 두 사람은 이영복 회장의 요구를 받아들였고, 징발 토지 5만 7000평에 대한 수의계약권 중 3만 5000평에 대한 권리를 이 회장에게 넘겼다.

그는 평(3.3㎡)당 40만원에 해당 부지에 대한 수의계약권을 양도받았고, 총 매매대금 140억원 중 30억원을 먼저 넘기고 나머지 110억원에 대해서는 향후 수의계약이 체결됐을 때 넘긴다는 조건을 붙였다.

이 계약 사실은 세 사람의 직인과 수의계약권 양도증서 등을 첨부한 1996년 11월 4일자 공식 계약서에도 명백히 나타나 있었다. 이들은 계약서 제15조의 ‘어떠한 경우에도 쌍방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할 수 없다’는 내용처럼 한배를 탄 사이가 됐다.

그런데 계약서에 세 사람이 서명을 한 당일, 송씨와 이씨는 이영복 회장 측에 한 가지 약정서를 작성해 전달했다. 이는 이 회장이 도하부대 이전을 위해 사용할 ‘로비 자금’의 일부를 두 사람이 분담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A씨는 “이영복이 다대ㆍ만덕지구 사례에 대해 소개하면서, 당시 로비를 통해 용도변경을 성공했다는 설명과 함께 삼촌 등에게 일부 로비자금을 분담할 것을 요구했다”며 “13년 동안 하지 못했던 도하부대 철수를 이영복이 할 수 있다고 확신하다 보니, 두 사람은 결국 약정서를 써줬고 이영복의 대리인이 자신의 명의로 대금 일부를 받아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두 사람의 직인이 찍힌 이면 약정서에는 ‘독산동 관련사업을 원활히 하기 위해 기 계약 중 잔금 수령과 동시에 무영수(비자금조)로 임○○에게 지급할 것을 약정함’이라는 내용과 함께 계약금 20억원의 표시가 명확히 나타나 있었다.

해당 계약이 성사된 지 정확히 1년 6개월 후 A씨를 비롯한 그의 삼촌과 이씨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1998년 5월 국방부는 독산동 징발토지에 위치한 도하부대를 2002년까지 이전시킨다는 계획을 서울시와 금천구에 통보한 것이다.

‘국방부도 두 손 든’ 이영복의 로비 실력 정황

A씨가 밝힌 이영복 회장이 독산동 도하부대의 용도변경을 이뤄낸 방법은 기발했다. 왜 이영복을 ‘토지 용도변경의 달인’이라고 부르는 것인지 충분히 알 수 있을 정도였다.

A씨에 따르면 ‘토지개발 전문가’인 이 회장은 이미 징특법뿐만 아니라 국토법의 이용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이영복은 96년 11월에 계약을 할 때 이미 구청사가 없는 금천구청으로 하여금 징발 토지에 구청사 부지를 도시계획시설로 고시하게 했다”며 “이를 통해 군에 압박을 가해 행정관청 간 싸움을 붙이면 마지못해 (도하부대의) 조기 철수를 할 수밖에 없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영복 회장이 용도변경을 이뤄내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또 다른 방법은 바로 ‘로비’였다. 그동안 이영복 회장이 정관계 로비를 했다는 의혹은 언론보도를 통해 주로 추측성으로 다뤄지거나 검찰 조사에서도 이 회장과 기타 관계자들의 자백에 의존해 밝힐 수 있었다.

이에 A씨는 이영복 회장이 독산동 도하부대 부지를 로비를 통해 이전시켰다는 의혹을 사실이라고 밝힐 객관적 증거는 여러 가지가 있다며 해당 자료를 제시했다.

이는 20억원의 이면약정서와 송씨와 이영복 회장이 지난 2005년 10월 주고받은 질의ㆍ답변서 그리고 20억원의 이면약정서에 나타난 이영복 회장의 대리인 임 모씨를 통해 얻게 된 자료였다.

임씨는 지난 2001년 송씨와 이씨로부터 로비자금 1억원을 수령하며 영수증 등을 남겼다. 때문에 이 시기까지만 하더라도 그는 이영복 회장과의 관계가 나쁘지 않았다.

A씨는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2000년대 초부터 임씨와 이영복의 사이가 틀어졌다”며 “2005년에 임씨는 독산동 도하부대 이전과 용도변경에 숨겨진 비밀을 폭로하는 투서를 국방부에 냈다”고 말했다.

A씨는 임씨가 2005년 10월에 국방부에 제출한 투서의 사본과 이영복 회장이 자신을 통해 관리했던 비자금 계좌의 통장사본을 제시했다.

임씨는 해당 투서의 서두에서 금천구 독산동에 위치한 육군 도하단부대 이전은 자의가 아닌, 당시 동방주택 사장이었던 이영복이 국회 및 국방부에 전방위로 로비한 결과라고 밝혔다.

그는 “이영복 사장의 전방위 로비에는 국방부도 손을 들었다”라며 “그 당시 도장을 찍었던 국방부 실무 국장도 현재 이영복 사장 곁에 있다”고 기술했다.

이어 “이영복 사장은 군부대를 옮기고, 그 위치에 아파트를 건축ㆍ분양했을 시 수천억원의 이익효과가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며 “부산 다대포 아파트 부지 이후 노린 또 하나의 로비 사건이며, 내가 알고 있는 내용 중 약 30%만 (투서에) 공개 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투서 내용 중에는 그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내용도 실려 있었다. 국방부가 1998년 5월 독산동 도하부대를 이전한다고 발표하며, 이듬해 국방부 장관이 이 부대를 성남시 금토동에 옮긴다고 결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당시 성남시에는 군부대가 상당히 많이 위치해 있었고, 금토동 주민들의 강력한 반대로 군부대 이전은 지지부진해졌다. 이 과정에서 당시 이영복 회장과 관련된 정치권 실세가 이른바 ‘옷 로비 사건’에 연루돼 물러나게 되자 다대ㆍ만덕 사건이 세간에 재점화됐다.

이에 이영복 회장은 2년간 도피했고, 지난 2001년 12월 자수해 1년 만에 집행유예로 출소했다. 이 회장이 출소하자 2003년 8월 군이 도하부대를 해체해 경기도 이천 등에 분산 배치하는 계획을 발표함에 따라 도하부대 이전 문제는 급물살을 타게 됐다. 지난 2006년 도하부대의 이전계획은 재발표됐고, 이 부대는 경기도 이천시로 2010년 이전을 완료했다.

‘도하부대 이전’ 이영복 리스트에 올라온 '이름만 대면 다 알만한' 인물들

임씨의 투서에는 ‘그 당시 내가 직간접적으로 듣고, 알고 있는 전ㆍ현직 공무원 및 관련자는 다음과 같다’며 이영복의 로비 리스트가 나타나 있었다.

국방부 인물 목록에는 전직 국방부장관과 국방부 B 전 국장, 도하부대 C 최고 지휘관의 이름이 올라있었다.

도하부대 C 최고 지휘관은 2000년대 경북의 H광업 대표로부터 향응과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전력이 있다. H광업은 이곳의 지분을 상당수 가지고 있던 박 모씨가 대표로 있는 회사의 관계사로, 박씨는 이영복 회장이 실소유주로 알려진 신부국건업의 지분도 상당수 보유한 이영복의 관계인 중 한 사람이었다.

B 전 국방부 국장은 도하부대 철수 결정 당시 국방부 책임자로 퇴역 후 이영복 회장의 청안건설에 고위 임원으로 재직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임씨가 투서에 제시한 ‘이영복 사장 곁에 있는 국방부 전 국장’이 바로 그였다.

A씨는 삼촌과 함께 이영복 회장을 만나기 위해 그의 사무실에 찾아가 B 전 국방부 국장을 직접 만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당시 그가 이영복 회장과 B 전 국장을 만난 장소는 놀랍게도 <주간한국>이 지난 보도에서 현장 취재에 나선 적이 있던 서울시 논현동에 위치한 이영복 회장의 청안건설과 이 회장의 관계사인 제이피홀딩스PFV, 꾸메도시의 사무실이었다.

A씨는 “당시 이영복을 만나러 갔던 논현동 P빌딩의 청안건설 사무실에는 B 전 국장과 비리로 퇴직한 전 국세청 직원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국회의원 목록에는 박 모 한나라당 전 의원, 김 모 전 민주당의원의 이름이 올라있었고, 이영복 회장이 이들을 통해 국회 국방위소속 의원 등에 로비를 했다고 나타나 있었다. 당시 국회 국방위원회인사가 국방부 장관에게 직접 도하부대 이전을 촉구했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한나라당 박 전 의원은 김영삼 정권 시절부터 이영복 회장과 알고 지낸 사이였고, 김 전 민주당 의원은 지난 2002년 다대ㆍ만덕지구 택지전환 사건 때도 이영복 회장과 연루돼 구설수에 오른 전력이 있다.

무엇보다도 검찰 인물 목록에는 그동안 이영복 게이트와 관련돼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는 정치권 유력인사 K씨의 이름이 올라있었다. 해당 투서가 국방부에 제출됐던 시기 K씨는 한나라당 의원으로, 검찰 고위직에 있을 때 국방부에 도하부대 이전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이 나타나 있었다. A씨가 제시한 증거를 확인하기 위해 K씨에게 직간접으로 수차례 연락을 취했으나 반응이 없었다.

임씨는 투서와 함께 이영복 회장이 자신의 명의로 관리한 비자금 계좌의 통장사본을 첨부했다. 해당 통장에는 동방주택과 이영복 회장의 이름 그리고 억대 자금이 입금된 거래내역이 제시돼 있었다.

A씨는 “도하부대 용도변경은 현재까지 이영복의 저질러온 로비 및 불법 행위 중 일부분에 불과하다”라며 “전부 밝혀내면 큰 파장을 몰고 올 사건이 많지만, 검찰이 엘시티 비리에만 초점을 맞춰 수사를 하는 것에 답답하고 안타까움을 느껴 제보를 하게 됐다”고 밝혔다.

<주간한국>은 이 제보자들의 자료를 토대로 이영복 회장의 정관재계 커넥션 의혹을 집중적으로 파헤칠 예정이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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