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이영복에 유리한 ‘지구단위계획’ 제안… 토지용도 상향 정황도

국방부, 도하부대 철수하며 금천구에 ‘지구단위계획’ 조건 내걸어

국방부 제시안, 10년 뒤 이영복 회사 구상과 정확히 일치

이영복, 국토해양부에 입김 넣은 정황 드러나


부산시 해운대관광리조트 ‘엘시티(LCT)’ 개발 비리로 구속된 이영복(66) 청안건설 회장이 독산동 징발토지의 용도변경을 위해 국방부와 중앙부처에 입김을 넣었다는 의혹의 정황 증거가 드러났다.

이는 지난 2003년 11월 군이 독산동 도하부대 철수와 함께 금천구청에 제안한 징발토지의 ‘지구단위계획’에서 비롯됐다. 특히 2004년 국방부가 서울시에 제출한 독산동 부지의 지구단위계획 도면과 2013년 이영복 회장의 실소유사인 제이피홀딩스PFV가 내놓은 사업계획에 따라 고시된 용도변경 도면의 내용이 정확히 일치한 점 등을 통해 이 의혹을 풀어볼 수 있었다. 또 지난 2010년 이영복 회장이 국토해양부를 통해 자신의 독산동 토지를 한 단계 더 높여 용도변경하려 하면서 타인의 권리까지 침해하려다 실패했던 정황도 포착했다.

이영복 회장은 지난 1998년 10월 국회 건설교통위원회 부산광역시 국정감사장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당시 이 회장은 김영삼 정부시절 다대ㆍ만덕지구 자연녹지 2만평을 아파트 용지로 변경했다는 의혹을 받고 의원들로부터 강한 질타를 받았지만, 전혀 주눅이 든 기색이 없었다.

제보자 A씨는 “원래 이영복은 김영삼 정부 때 이미 정관계 로비를 활발하게 펼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김대중 정부 들어서도 법무부장관 등 정권 실세들이 자신의 뒤를 봐주고 있다고 말하고 다니는 등 여전히 건재했다”며 “그러다 1999년 이른바 ‘옷로비 사건’으로 자신의 뒤를 봐주던 정권 실세가 낙마하자 이영복은 한동안 잠적했다”고 설명했다.

옷로비 사건은 한 재벌 부인이 정권실세 부인들에게 디자이너 고 앙드레 김의 옷을 로비한 사실이 세간에 밝혀지며 한동안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일이다.

당시 검찰은 이 정권 실세들의 뇌물수수 의혹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에 들어갔고, 이영복 회장도 자신이 이들에게 로비를 했다는 사실이 밝혀질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2년간 도피생활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던 이영복 회장이 2년간 도피생활 끝에 2001년 12월 세밑에 갑자기 자수해 정관계는 이번 엘씨티 사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바짝 긴장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 자수배경에 대해 각종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 회장은 부산주택공제조합에 약 800억원 대의 손해를 입히고 각종 세금을 포탈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당시 그는 특혜와 로비 의혹을 부정하거나 모르쇠로 일관했고, 이듬해 12월 집행유예로 출소했다.

A씨는 “정확히 기억하지만 당시 이영복은 나의 삼촌에게 1년 후 출소할 수 있을 것이라 자신 있게 말했고, 출소 후에 자신을 기소한 검사와 친구가 됐다고 자랑까지 했었다”고 회상했다.

이영복 회장은 출소 후인 2003년 4월, 엘시티의 시행사로 알려진 ‘청안건설’과 독산동 도하부대 토지 개발을 위한 ‘제이피엔터프라이즈’를 설립했다. 이 제이피엔터프라이즈는 향후 제이피홀딩스 그리고 금천 롯데캐슬 골드파크의 시행사인 제이피홀딩스PFV로 이름이 차례대로 변경됐다.

그런데 당시 이 회장에게는 골칫거리가 있었다. 그는 아직 부산주택공제조합에 대한 채무를 한 푼도 갚지 않은 상태였고, 만약 자신이 법인을 설립해 개발 사업을 벌인다는 사실이 퍼진다면 금융권으로부터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방법이 전혀 없었다.

이에 그는 청안건설과 제이피엔터프라이즈의 대표이사를 포함한 임원, 주주까지 철저히 차명으로 설정한 채 법인 운영을 개시했다.

같은 해 8월, 독산동 도하부대 철수 문제는 군이 도하단을 해체해 분산 배치하는 획기적 방법을 채택함에 따라 급물살을 탔다. 이어 11월 군은 금천구청에 구청사 건설에 필요한 토지 일부를 우선 내주는 조건으로 해당 징발토지에 ‘지구단위계획’을 하도록 요구했다.


이는 같은 달인 2003년 11월에 작성된 국방부와 금천구청 사이의 합의서에도 나타나있었다. 당시 군은 금천구청과 ‘육군도하단 토지 매매 기본 합의서’를 작성하며 지구단위계획 합의 내용을 실었고, 시흥대로변에 접한 토지는 상업ㆍ업무기능 그리고 나머지 토지는 주거기능으로 지정하며 학교와 공원 및 공공문화시설 등은 법에서 정한 최소로 할 것을 요구했다.

도하단 부지 관련 합의서 체결(안) 보고서 내용에 따르면, 지구단위계획을 통해 기존의 준공업지역을 상업·업무 및 주거기능 용지로 용도변경 하면 기존의 공시지가 1556억원(평당 266만원)을 3516억원(평당 600만원)으로 크게 올릴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해 제보자 A씨는 “이는 보고서 작성자가 국방장관을 속여 결재받은 것이거나 엘씨티의 경우처럼 군이 지구단위계획에 불법적으로 개입하기 위해 합법을 가장해 해당 문서를 작성한 것인지도 의심된다”며 “‘징발 재산정리에 관한 특별 조치법(이하 징특법) 제20조의2항’에 따르면 징발토지를 매각할 때 토지가격은 공시가격이 아닌 시가로 매각해야 하며, 보고서에 제시된 공시지가 평당 266만원은 주변 시세에 비해 터무니없이 싸게 책정된 가격”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당시 징발토지는 국유지로 세금부과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국가가 수년 동안 징발토지에 대한 공시지가를 조정하지 않고 방치했던 것에 불과한데, 징발토지가 매각된다면 국가가 잘못된 공시지가부터 바로잡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는 설명이다.

A씨는 이에 대한 증거로 독산동 441-6 번지에 대한 연도별 공시지가를 제시했다.

그는 “국방부 보고서가 작성한 2003년 공시지가는 평당 264만원이었고 서울시가 지구단위계획을 고시를 한 2006년 공시지가는 평당 578만원이었다”라며 “토지용도가 변경된 2014년 공시지가는 평당 1400만원이었으니 용도변경으로 토지가격을 평당 600만원에 매각할 수 있다는 국방부 문서는 크게 잘못된 것이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006년 6월 고시된 지구단위계획에 의하면, 토지의 용도는 개발주체가 세부개발계획 수립 시 한다는 단서를 제시하였을 뿐 국방부 보고서처럼 토지의 용도변경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 부분에 대해 A씨는 “용도변경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도로와 공원 등의 기부체납이 선행돼야 하는데 국방부는 기부채납 부지를 제외한 나머지 토지를 피징발자에게 매각하겠다는 의미”라며 “그런데 ‘징특법 제20조 2항’ 어디에도 이런 규정은 없다”고 말했다.

당시 국방부의 이런 요구는 상당한 의문과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군이 전시에 한강에 다리를 놓는 역할을 하는 육군 도하부대를 한강과 떨어진 서울 외곽으로 철수시킨다는 결정은 군 내부에서도 이견이 분분했다. 또 당시 군에게는 부대 철수 이후의 일인 해당 토지의 개발에 까지 관여하는 지구단위계획을 굳이 조건으로 내걸 이유가 없었다.

특히 ‘징발 재산정리에 관한 특별 조치법’ 제20조의 2 규정에 따르면, 징발토지는 군사상 목적으로 징발된 것으로 군사상 필요가 없을 경우 피징발자에게 수의계약으로 매각하도록 돼있다. 군이 수의계약으로 매각하기 이전에 지구단위계획을 통해 토지의 용도를 변경한다면, 위법 가능성이 높고 매각대금의 인상을 조장할 소지가 있었다.

이에 당시 일부 언론은 군이 이런 논란과 위법의 소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구단위계획을 추진하려는 목적에 대해 군이 용도를 변경시킨 군부대 부지를 통해 ‘땅장사’로 이득을 보려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제보자 A씨는 이 지구단위계획도 이영복이 군에 입김을 불어넣은 결과라고 주장했다. A씨는 “이영복은 군을 이용해 군 철수는 물론 독산동 도하부대 부지의 용도변경과 함께 해당 토지의 지구단위계획을 요청까지 이끌어 냈다”라며 “당시 군의 계획에 이영복이 연관돼있다는 정황상 명백한 증거가 여러 가지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A씨는 <주간한국>에 그 증거 중 하나로 3장의 도면을 제시했다. 하나는 지난 2004년 4월 군이 해당 독산동 부지의 지구단위계획 구역을 지정하며 요구사항을 담아 서울시에 제출한 안건이었다. 또 다른 도면은 지난 2006년 6월 서울시가 고시한 해당 부지의 지구단위계획(안) 그리고 2013년 8월 이영복의 실소유사인 제이피홀딩스PFV가 롯데캐슬 시행에 참여하며 내놓은 안건에 따라 확정 고시된 용도변경 도면이었다.

놀랍게도 2004년 4월 군이 제출한 도면과 2013년 8월 도면은 세부사항마저 똑같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2004년에 군이 제시한 도면에는 공공용지 비율을 43% 이하로 하며, 학교지역을 공동주택지로 그리고 시흥역전도로에 접한 준주거지역을 업무ㆍ상업지역으로 변경해달라는 요청(안) 등이 담겨 있었다.

이에 서울시는 국방부의 해당 요청을 거절했다. 대로변(전면도로)이 아닌 이면도로(후면도로)에 업무ㆍ상업지의 조성은 서울시가 고지하고 있는 도시계획 기본사항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결국 2006년 6월 공공용지 비율을 47.5%로 하며, 업무·상업지역 설정을 배제한 지구단위계획(안)을 확정 고시했다.

그러나 해당 부지에 금천 롯데캐슬 골드파크의 사업 승인이 내려졌고, 시행사인 제이피홀딩스PFV가 2013년 8월 확정한 용도변경 도면에는 2004년 국방부가 제시한 계획이 그대로 반영돼 있었다. 공동주택지에 공원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면도로인 시흥역전도로에 업무ㆍ상업지역이 자리잡고 있었다.

A씨는 “2004년 국방부가 제시한 지구단위계획 안건은 공문서로 군과 서울시 그리고 금천구만 알 수 있던 사항”이라며 “약 10년 후 이영복의 회사가 이를 그대로 반영해 도면을 만들었다는 점은 2004년 국방부 안건이 결국 국방부의 계획이 아닌 이영복의 계획이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또 이영복 회장이 독산동 부지의 지구단위계획 합의를 위해 관련 부처와 상당한 접촉있었다는 사실은 과거 이영복 회장이 민사소송 중 진술한 내용을 통해서도 밝힐 수 있었다.

제보자가 서울의 D법무법인으로부터 제출받은 소송내용 서류에 따르면 이 회장은 ‘이 사건 수의계약 대상인 전체 토지는 사업주체(제이피홀딩스 등)가 토지를 취득한 후 엄청난 노력과 비용을 들여 개발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관계관청에 제출했다’고 진술했다.

또 ‘관계관청을 설득하고, 자료를 제출해 관계관청이 장시간의 검토를 거쳐 현지의 택지 및 도시개발사업을 입안했다’고도 설명했다.

A씨는 이 도면뿐만 아니라 국토해양부 고시(안)을 제시하며 이영복 회장이 여러 공공기관에 연루돼 있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이영복, ‘타인의 권리 침해하며’ 용도변경 꾀했나

일각에서는 ‘이영복의 불법행위는 잘못됐지만, 엘시티는 문제없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엘시티 공사가 끝나고 분양이 완료되면 부산 지역 경제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며, 로비와 특혜 의혹은 이영복 회장이 개인의 부정일뿐 다른 사람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끼치면서까지 엘시티를 계획한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독산동 부지는 엘시티의 경우와 정반대였다. 이영복 회장은 지난 2007년 12월 삼양사를 내세워 군과의 수의계약으로 취득한 해당 독산동 부지의 용도를 한 단계 더 상향시키려 했다. 그러면서 중앙부처에 입김을 넣음과 동시에 다른 토지의 소유주들의 권리까지 침해하며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 했던 정황이 드러났다.

A씨는 이 회장이 당시 국토해양부(현 국토교통부) 단계에서 토지용도를 상향시키기 위해 지구단위계획 고시에 사업방식을 ‘도시개발사업’으로 한다는 내용을 뒀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지난 2010년 6월 28일 국토해양부가 고시한 ‘금천구심 도시개발구역 지정(개발계획수립) 및 지형도면 고시’에 따르면 도시개발사업 구역 내에는 도하부대 부지 인근의 공군부대 4만 5000평 등을 포함돼 있었다. 때문에 해당 부지의 면적도 기존 22만 5598㎡에서 68만 4420㎡로 크게 늘어났다.

구체적으로 서울시 지구단위계획에서 기존 준주거지역으로 지정돼 있던 독산동 산221-3 일대 4만 3710㎡는 국토해양부 지형고시로 인해 일반상업지역으로 상향 변경됐다. 또 기존 제3종 일반주거지역(준공업지역)으로 지정돼 있던 독산동 468-1 일대 7만 5151㎡도 국토해양부 지형고시로 준주거지역으로 상향돼 바뀌었다.

즉 이영복 회장 소유의 토지인 도로와 공원 등을 제외한 사업부지인 독산동 산221-3과 468-1 일대는 모두 한 단계 높은 토지로 용도변경이 제시된 것이다.

물론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조건이 필요했다. 이영복 회장 소유의 토지를 한 단계 높게 변경돼준공업용도의 토지가 줄어든다면, 서울시 준공업지역 총량비율을 맞추기 위해 다른 토지의 용도를 변경시킬 수밖에 없었다.

A씨는 “2010년 6월 국토해양부가 고시한 ‘용도지역 결정(변경) 사유서’를 보면, 이영복은 자신이 매매권리를 가지고 있던 독산동 산221-3과 468-1 일대를 기존 준공업지역에서 준주거지역과 일반상업지역으로 변경하려 했다”며 “반대로 시흥동 113-16 일대 5374㎡ 등은 서울시 준공업지역 총량비율을 위해 기존 준주거지역에서 2단계 강등해 준공업지역으로 바뀔 수밖에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이는 명백히 자신이 소유한 토지의 용도를 상향시키기 위해 타인의 권리를 침탈하려는 목적이 강했다는 게 A씨의 설명이다. 만약 이 지형고시(안)가 통과가 된다면 시흥동 113-16 일대 토지 가치는 하락하고, 그 소유주들로부터 강력한 반발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이에 해당 국토해양부 지형고시(안)가 심의에서 부결됐다. 공무원이 아닌 민간인들로 구성된 서울중앙부처 도시계획 심의위원들이 이 사실을 파악하고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이영복의 구미에 맞았던’ 해당 안건을 통과시켰다면 다른 토지 소유주들로부터 후폭풍이 생길 것이 뻔했고, 민간 심위위원들도 이를 예측해 부결시켰다”라며 “국토해양부가 이영복을 위해 이런 위험한 결정을 했다는 것은 로비의 달인인 그가 기업인과 정치인뿐만 아니라 중앙부처 곳곳에 입김을 불어넣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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