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복 로비의혹’ 전 국방부 고위 장교 연루 정황… “청안건설도 거쳐 갔다”

이영복 도하부대 이전 로비 의혹 동업자 투서로 실체 수면 위로

국방부 시설국ㆍ도하부대 고위장교 이영복과 막역한 관계 이어가

한민철 기자


서울시 금천구 독산동 도하부대 이전 로비 의혹에 이영복(67ㆍ구속기소) 청안건설 회장이 연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 회장 로비 의혹의 중심에 서 있던 국방부 관계자의 과거 행적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주간한국>은 지난해 12월 24일(제2658호) ‘엘시티 이영복, 독산동 도하부대 이전 로비 의혹 실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과거 독산동에 위치했던 육군 도하단부대(이하 도하부대)의 이전이 이영복 회장의 로비에 의해 이뤄진 정황을 다뤘다.

당시 본지는 30여년 동안 국가 징발토지로 묶여 있던 독산동 도하부대 부지가 이영복 회장이 등장한 지 1년 반 만에 ‘놀라운 용도변경’이 이뤄졌다고 보도했다. 특히 그 이면에 정치권과 검찰 유명인사뿐만 아니라 군 관계자들에 대한 이 회장의 로비 의혹을 제기했다. 이후 약 2개월에 걸쳐 ‘이영복의 로비로 군부대를 이전시켰다’는 의혹을 추적해 그와 관련된 군 핵심인물에 다가갈 수 있었다.

<주간한국>의 지난 보도대로 현재 금천 롯데캐슬 골드파크가 위치한 서울시 독산동 일대는 본래 육군 도하부대가 위치해 있었다.


도하부대 부지는 군 징발 토지였지만, 징발 재산정리에 관한 특별 조치법 제20조 ‘징발 토지가 군사상 필요가 없게 될 경우 환매권이 발생함에 따라 피징발자 또는 그 상속인이 이를 우선적으로 매수할 수 있게 된다’라는 규정처럼 여전히 금전적 가치가 남아 있었다.

만약 향후 도하부대가 이전을 결정해 징발이 해제될 경우, 환매권(향후 수의계약권으로 변경)을 소유한 매수자(피징발자) 또는 그 상속인은 부지를 일반 공매가 아닌 수의계약 형식으로 토지를 매입할 수 있으므로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다.

제보자 A씨의 삼촌인 송 모씨와 그의 지인 이 모씨는 이 사실을 알고, 지난 1983년 4월 23일 당시 독산동 징발토지의 원소유주로부터 해당 징발토지 5만 7033평에 대한 환매권을 양수받았다.

그러나 군부대 철수는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었다. 송씨와 이씨는 도하부대의 이전을 위해 10년이 넘게 노력했고, 군부대 이전이 금천구 주민들의 주요 희망사항이자 구청장 후보들의 ‘단골 공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군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13년이 지난 1996년 11월, 이영복 회장은 송씨와 이씨에게 나타났다.

A씨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이영복 회장은 송씨 측에 자신은 부산 동방주택의 사장으로 김영삼 정권의 실세들에 로비해 부산 다대ㆍ만덕지구의 자연녹지 20만평을 주거지역을 변경했다고 소개했다.

이 회장은 육군 도하부대를 2년 만에 철수시킬 수 있다고 약속하며, 송씨와 이씨가 가지고 있던 독산동 징발토지 수의계약권의 일부를 팔 것을 요구했다. 두 사람은 이영복 회장의 요구를 받아들였고, 징발 토지 5만 7033평에 대한 수의계약권 중 3만 5000평에 대한 권리를 이 회장에게 넘겼다.


그런데 계약서에 세 사람이 서명을 한 당일, 송씨와 이씨는 이영복 회장 측에 한 가지 약정서를 작성해 전달했다. 이는 이 회장이 도하부대 이전을 위해 사용할 ‘로비자금’의 일부를 두 사람이 분담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당시 이영복 회장이 송씨 등에 요구했던 로비자금의 최초 금액은 20억원이었다. 이는 두 사람에게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지만, 13년 동안 이루지 못했던 도하부대 철수를 이 회장이 확신하면서 결국 약정서를 써준 것으로 전해졌다.

송씨 등은 이 로비자금을 이영복 회장에게 직접 건네지 않았고, 이 회장의 대리인이자 자금을 담당하던 임 모씨라는 인물에게 직접 또는 그의 계좌에 돈을 보냈다.


실제로 두 사람의 직인이 찍힌 이면 약정서에는 ‘독산동 관련사업을 원활히 하기 위해 기 계약 중 잔금 수령과 동시에 무영수(비자금조)로 임○○에게 지급할 것을 약정함’이라는 내용과 함께 계약금 20억원의 표시가 명확히 나타나 있었다. 또 이 로비 자금을 받아간 임 모씨의 통장 사본에도 당시 이영복 회장과 그가 운영하던 동방주택 명의로 수십억원의 자금이 오고 간 기록이 남아있었다.

송씨ㆍ이씨 그리고 이영복 회장과 계약이 성사된 지 정확히 1년 6개월 후, 두 사람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1998년 5월 국방부는 독산동 징발토지에 위치한 도하부대를 2002년까지 이전시킨다는 계획을 서울시와 금천구에 통보한 것이다. 두 사람의 13년 간 노력이 이영복 회장에게는 2년도 걸리지 않았던 셈이었다.

그런데 이 놀라운 일을 현실화하기까지 두 명의 군 관계자가 이영복 회장의 군 로비 의혹에 관련된정황이 나타났다.

도하부대 철수 발표한 시기, 독산동 징발토지 수의계약권 매입한 B씨

임 모씨는 이영복 회장과의 사업관계가 끝나 시간이 흐른 지난 2005년 10월, 국방부에 한통의 투서를 제출했다. 육군 도하부대 이전은 자의에 의해서가 아닌, 이영복 회장이 국방부 등에 전방위로 로비한 결과라는 내용의 투서였다.

임씨는 해당 투서에서 “이영복 동방주택 사장의 전방위 로비에는 국방부도 손을 들었다”라며 “그 당시 도장을 찍었던 ‘국방부 전 시설국 장교도 현재 이영복 사장의 곁에 있다’고 하고, 나 역시 그 당시 이영복 밑에서 군부대 이전에 일조했음을 첨언한다”고 고백했다.

이어 임씨는 “이영복 사장은 군부대를 옮기고, 그 위치에 아파트를 건축ㆍ분양했을 때 수천억원의 이익 효과가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며 “내가 알고 있는 내용 중 약 30%만 공개한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투서 말미에 ‘이영복 회장으로부터 로비를 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인물’ 중 자신이 알고 있는 해당 국방부 관계자의 이름과 당시 소속 및 직책에 대해 상세히 명시해 놨다.

임씨가 밝힌 국방부 관계자는 총 세 명이었다. <주간한국>은 투서 중 언급됐던 국방부 관계자를 추적해 당시 국방부 군사시설국 소속의 B씨, 전 도하부대 장교 C씨가 이영복 회장의 로비 의혹에 관련된 정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B씨가 속해있던 국방부 군사시설국은 군이 보유하고 있는 토지와 건물 등 각종 국유시설의 관리를 담당한다. 과거 군사시설국은 부대시설 공사 그리고 민간 건설업체의 사업과 관련된 비리 리스트에 자주 거론됐던 부서다.

B씨는 이영복 회장의 로비가 한창 이뤄졌을 때, 국방부 시설국 장교로 있있던 인물이다. 그런데 B씨는 시설국 장교 시기 단순한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쉽게 납득하기 힘든 부동산 계약을 했다. 정확히 도하부대 이전이 최초로 발표됐던 지난 1998년 5월, B씨는 이영복 회장의 소개로 송씨가 보유하고 있던 독산동 징발토지의 권리 중 100평의 수의계약권을 자신의 아내 이씨의 명의로 샀다.


본지는 당시 송씨와 B씨의 아내 이씨가 맺은 도하부대 징발토지 수의계약권 매매 계약서를 확보했다. 이어 이씨가 B씨의 아내가 맞는지의 여부를 규명하기 위해 양수인 항목에 명시된 이씨 주소의 등기부등본 내용을 확인한 결과, B씨가 지난 2016년 2월까지 소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제보자 A씨는 “당시 국방부 시설국 장교이던 B씨는 이영복 로비의 핵심인물 중 한 명으로 알고 있다”며 “이영복과 함께 도하부대의 철수를 성공시키자 서둘러서 아내(이씨)의 명의로 삼촌(송씨)이 가지고 있던 징발토지 1만 9000여평의 수의계약권 중 100평의 권리를 샀다”고 말했다.

이어 “자신이 도하부대 철수를 돕고, 이 징발토지의 수의계약권을 사두면 향후 부대철수 완료 후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고 토지를 팔아버릴 수 있었기 때문에 B씨 입장에서는 ‘꿩먹고 알먹기’였다”며 “국방부 시설국 장교라는 지위를 이용해 로비도 받고 국가 시설 철수에 일조한 뒤 해당 토지의 수의계약권을 사서 나중에 이 토지를 매각해 큰돈을 벌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분노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B씨는 지난 2001년 한 유명 건설사가 시공 중이던 주상복합 오피스텔의 자금지원을 결정, 이 건설사의 중역들이 참석하며 성대하게 열렸던 당시 분양설명회의 주요 참석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특히 이영복 회장의 대리인이었던 임 모씨가 국방부에 투서를 제출했던 지난 2005년, B씨는 이 회장의 실소유사이자 부산 엘시티의 시행사였던 ‘청안건설’의 고위 임원으로 등록돼있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임씨의 투서 중 ‘국방부 전 시설국 장교도 현재 이영복 사장의 곁에 있다’라는 내용의 인물이 바로 B씨였던 것이다.

제보자 A씨는 “정확히 2005년 초반에 이영복과 독산동 토지 문제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청안건설의 서울 사무소에 삼촌과 함께 찾아갔던 적이 있다”라며 “그곳에서 이영복과 B씨가 일하고 있던 것을 분명히 목격했고, 당시 이영복은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던 이들 중 전 국세청 직원과 변호사 등 다양한 사람들을 소개시켜줬다”고 회상했다.

A씨가 언급한 청안건설의 서울 사무소가 위치했던 곳은 <주간한국>이 지난해 12월 초 현장취재를 통해 밝혀낸 논현동 P건물이다. 이 건물 5층에는 청안건설 및 관계사가 사무실을 공유하고 있었다. 금천 롯데캐슬 골드파크와 신동백 롯데캐슬에코의 시행사로 각각 알려진 ‘제이피홀딩스 PFV’, ‘꾸메도시’도 같은 건물에 사무실을 두고 있었고, 두 법인 모두 이영복 회장이 지분을 가지고 있거나 실제로 소유하던 회사였다.

<주간한국>은 B씨와의 접촉을 시도했지만, 그는 지난해 2월경 이미 세상을 떠난 상태였다.

전역 후 화려한 정치인 C씨, 이영복 회사 소속 임원으로

임 모씨의 투서에 B씨와 함께 거론된 국방부 관계자는 전 도하부대 장교 C씨였다. B씨와 같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지만, 그의 행적은 B씨보다 화려했다.

C씨는 전역 후 김대중 정부 초반 영남권 한 지역의 지자체 단체장으로 활동했다. 화려한 정치인으로서의 행보를 걷고 있던 C씨는 지난 2000년 지역 내의 한 업체로부터 수천만원 상당의 금품과 향응을 받고, 개발 허가권 특혜를 준 혐의로 구속돼 이듬해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주간한국>은 선관위에서 공시한 당시 해당 지역 단체장 예비후보들을 살펴보던 중 C씨의 이력에서 낯익은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C씨는 청안건설 고위 임원, 그리고 A사의 대표로 등록돼 있었다. B씨의 경우처럼 C씨 역시 군 전역 후 청안건설의 임원급 인물로 활동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C씨의 이력 중 대표로 지정돼있던 A사의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실제로 그는 지난 2012년까지 A사의 사내이사이자 대표로 활동하고 있었다. 특히 이 등기부등본의 임원목록에서는 이영복 회장이 소유한 ‘영보건설’의 지배인으로 알려진 K씨도 C씨와 같은 시기 동안 감사를 맡아온 것을 파악했다.


더욱 놀라웠던 사실은 A사의 본점 주소는 청안건설 서울 사무소가 위치해있던 논현동 P건물 5층으로 이영복 회장이 이곳에서 회사를 꾸려나가던 시기와 A사가 입점해 있던 때가 일치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이영복 회장과 군 출신 인사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꾸준히 거론돼왔지만, ‘로비의 달인’ 이 회장의 입김이 막강하던 시기 임 모씨의 ‘이영복과 국방부 관계자의 커넥션’에 대한 투서는 막연한 추정만을 담은 의미 없는 종이쪼가리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영복이라는 이름이 엘시티 비리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고, 그가 구속된 현재 상황에서 독산동 도하부대 이전 로비 사실을 최초로 폭로한 임씨의 투서는 엄청난 의혹 해명의 과제를 국방부에 던져주고 있다.

<주간한국>은 임씨와의 접촉을 시도해봤지만, ‘(임씨가) 더 이상 이영복과 엮이지 않기를 원한다’는 제보자들의 만류에 그와 취재를 할 수 없었다.

이제 도하부대를 옮긴 국방부의 해명을 들어볼 차례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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