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경, 담철곤 회장과의 재산 분쟁 “부담되지만 과오 인정하길 원해”

상속재산 ‘아이팩 주식’… 이혜경 전 부회장, 상속자라는 사실 뒤늦게 알게 돼

이혜경 변호인, 담철곤 회장의 아이팩 ‘2억 7000만원 차명인수’ 해명에 반박

이혜경, 아이팩 지분에 “본래 상속인에게 돌아가야 할 재산” …조속한 환원 촉구

한민철 기자


이혜경 전 동양그룹 부회장이 자신의 제부이자 오리온 오너인 담철곤 회장을 특정경제범죄처벌에 관한 특별법위반(횡령) 혐의로 지난달 24일 고소했다. 이혜경 전 부회장은 담철곤 회장이 과거 자신의 상속재산 ‘아이팩 주식’을 횡령했다고 주장하며, 이에 대한 조속한 환원 및 동양그룹 채권피해자들의 구제에 보탬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담철곤 회장은 동양그룹 채권피해자 모임과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지난해 11월 경찰 고발 및 지난달 검찰 고발을 당한데 이어 이번에는 자신의 처형으로부터 ‘고소’를 당하게 됐다. <주간한국>은 지난 3일 오후 이혜경 전 부회장의 고소대리인 법률사무소 지언(知言)의 김종률 대표변호사를 만나 이번 고소 건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 이혜경 전 부회장이 담철곤 회장을 지난달 24일 고소했다. 동양그룹 채권피해자 등이 이 전 부회장을 강제집행면탈죄로 고발한지 약 일주일만의 일인데, 어떠한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던 것인가.

“나도 이혜경 전 부회장의 구체적 근황조차 잘 모르고 있기 때문에 심경의 변화까지 알 수는 없다. 단지 이 전 부회장이 변호사를 선임할 수임료가 부족하다는 등의 이유가 있어 담철곤 회장에 대한 고소가 지연된 것은 사실이다. 물론 동양그룹 사건 피해자들과 일부 언론보도에서 나온 대로 이혜경 전 부회장은 담철곤 회장이 자신의 아이팩 지분을 횡령했고, 동양 피해자들의 피해 회복을 돕기 위해 강경하게 나가겠다고 한 입장은 변함이 없었다. 단지 변호사를 선임할 돈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었는데, 본인이 동양 피해자들과 시민단체로부터 고발을 당하다 보니 아마도 당황했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 이번 고소의 주요 쟁점은 이혜경 전 부회장과 이관희 여사, 이화경 오리온 부회장이 차명으로 보유하고 있던 아이팩 주식을 정말로 담철곤 회장이 이 전 부회장과 이 여사의 동의 없이 횡령했는지의 여부다. 이 전 부회장은 아이팩과 관련해 어느 정도까지 알고 있는가.

“본래 이혜경 전 부회장은 아이팩에 관해 구체적일 정도로 알고 있지는 못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단지 자신의 아버지이자 동양그룹의 선대 회장인 고 이양구 회장이 아이팩의 전신인 포장지 납품업체 ‘신영화성공업’을 어머니 이관희 여사의 노후 대책을 위해 인수했다는 정도를 알고 있었다. 그러던 중 동양그룹 채권자 비상대책위원회 수석대표 김대성 씨가 보낸 내용증명서를 통해 신영화성공업의 주식을 이양구 회장이 차명으로 소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또 이 내용증명서에 대한 답변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아이팩의 전 임직원 등을 통해 아이팩이 자신에게도 돌아가야 할 상속재산이라는 점을 뒤늦게 깨달을 수 있었다.”

김대성 수석대표 등 동양그룹 채권피해자 모임 인원들과 시민단체 사람들은 지난해 11월 29일 서울지방경찰청에 담철곤 회장을 고발한 바 있다. 당시 김 수석대표는 이혜경 전 부회장과 주고 받은 내용증명서를 읽어 내려가면서 고 이양구 회장이 아이팩의 실질 소유주로 이를 차명으로 보유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특히 이 사실을 다른 사람들이 잘 알고 있지 못했다는 점 그리고 이양구 회장의 사후 아이팩의 실명전환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담철곤 회장이 이 전 부회장의 어떠한 동의도 없이 아이팩의 지분을 사실상 자신의 소유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 담철곤 회장의 아이팩 횡령 혐의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는가.

“정확히 말해 신영화성공업의 주식은 이양구 회장의 친척인 박병정 씨를 비롯한 임직원 명의로 신탁돼 있었다. 이양구 회장은 박병정 씨에게 신영화성공업의 대표이사 자리까지 맡겼다. 그런데 지난 1989년 10월 18일 이양구 회장이 사망한 뒤 이 주식은 이관희 여사와 두 딸인 이혜경, 이화경이 상속받아 세 사람의 공동소유가 됐다. 물론 당시에도 신영화성공업 주식의 명의는 여전히 박병정 씨와 임직원들이 차명으로 관리를 해왔다. 이후 담철곤 회장이 이들의 차명주식을 자신이 홍콩에 설립한 페이퍼컴퍼니 PLI(Prime Linked Investment) 또는 자신의 명의 등으로 전환했고, 이후 이를 처분해 최소 약 226억 2082만원을 보유할 수 있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상속인 중 이관희 여사와 이혜경 전 부회장의 동의는 전혀 없었다. 담 회장도 이 차명주식이 상속재산이라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을 것으로 파악하기 때문에 이는 명백한 횡령죄에 해당한다.”

- 그런데 오리온의 공식답변에 따르면 지난 1988년 당시 담철곤 회장은 동양제과 부사장이었던 시기 외부인사로부터 신영화성공업 인수 제안을 받았고, 무상으로 회사를 담 회장에게 넘기겠다는 제안에도 불구하고 2억 7000만원에 차명으로 이 회사를 인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오리온 측의 답변이 담철곤 회장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라면, 담 회장은 이제 와서 처음부터 아이팩이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하는 전략을 마련한 것 같다. 그런데 이 답변의 내용은 기존 수사에서 나왔던 ‘담 회장 말에 따르면’ 전혀 없었던 이야기고, 핵심측근들의 진술 역시 이와 반대되고 있다. 그것이 사실이 아닌지는 담 회장 자신이 더욱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길게 언급하지 않겠다. 특히 이와 관련된 내용은 향후 소송 진행 과정에서 중요하게 쓰일 자료이기 때문에 현재는 자세하게 공개하지 않도록 하겠다.”

<주간한국>은 김종률 변호사에게 해당 자료 내용을 보도에 싣지 않겠다고 약속한 뒤,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담철곤 회장은 이 자료에서 ‘담 회장이 신영화성공업을 2억 7000만원을 주고 차명으로 인수했다’는 오리온 측의 공식답변과는 전혀 다른 사실을 말한 것으로 나타났다.


- 이 전 부회장 입장에서 담철곤 회장은 친여동생의 남편이기도 하다. 그가 가족 구성원을 향한 고소에 대해 부담은 느끼지 않았는가.

“이혜경 전 부회장도 자신의 제부를 고소하면서까지 재산 분쟁을 벌이는 현 상황이 개인적으로 굉장히 부담스럽고 사회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피고소인 담철곤 회장이 지금이라도 자신이 과거에 잘못했으며, 현재도 거짓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길 원하고 있다. 특히 본래 상속인에게 돌아가야 할 재산을 하루 빨리 환원해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이 전 부회장도 이를 통해 동양그룹 사건 피해자들의 피해 구제에 보탬이 되고, 그동안 쌓아두었던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단지 현재 담 회장은 전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할 기미가 보이지 않아 고소밖에 대응할 방법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 김 변호사님 개인에게 질문해보고 싶다. 과거 김 변호사는 굵직한 사건을 많이 맡아온 검사 출신이시지만, 재벌들과의 재산 싸움이라는 사건에서 어느 한쪽의 편을 들어준다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떤 계기로 이번 사건을 담당하기로 결심했는가.

“27년 검사 생활을 해오다 보니 많은 사건들을 ‘사회정의적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다. 개인적으로 담철곤 회장이라는 인물을 잘 몰랐지만, 과거 임직원들 등으로부터 개인 비리에 대한 제보가 쇄도했고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번 사건의 수임도 그런 사회정의적 관점의 신념에서 비롯된 것 같다. 다만 이혜경 전 부회장의 고소대리인의 입장에 있기에 속 마음을 그대로 말하기는 어려우니 이해를 부탁한다.”

- 향후 소송이 진행돼 재판에 들어간다면, 이혜경이라는 개인과 담철곤이라는 대기업 오너의 치열한 법정공방이 이뤄지게 된다. 이혜경 전 부회장이 승소할 가능성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는가.

“아직 소송의 초기 단계로 엄밀히 말해 기소 여부도 드러나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재판에 들어가면, 과거 재벌과 현 재벌과의 법적 다툼이 이뤄지게 된다. 때문에 제3자가 보기에는 승소할 가능성에 대해 크게 점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과거 검사 시절부터 굵직한 사건을 많이 맡아왔고 대부분 이겨왔다. 객관적이고 상대가 빠져나갈 수 없는 철저한 증거자료를 확보 중이고, 향후 재판이 진행된다면 우리가 옳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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