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 출제 규정 이용… 시차&외국시험 혼합한 신종 수법

제보자 A씨, 건당 1000만원에 불법 유출된 SAT 문제 제안받아

시차 방식에 외국에서 시험 치르는 새로운 방식… “기존보다 ‘더욱 효율적’” 지적

전문가들 “SAT 문제유출, 사기 가능성 높고 엄연한 불법… 피해 구제받기 힘들어”

한민철 기자


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SAT) 문제유출이 국내 학원가에서 여전히 행해지고 있다는 정황이 밝혀져 논란이 될 전망이다. SAT 문제유출 사건은 지난 2013년 세상에 알려지며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이후 약 3년여 간 국내에서 뿌리 뽑힌 줄로만 알았던 SAT 문제유출은 ‘새로운 방식’을 통해 서울 강남 학원가에서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간한국>은 SAT 문제유출에 대한 제안을 받았다는 제보자들의 폭로와 SAT 문제유출 실태와 방식 등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학원 관계자의 증언 그리고 과거 SAT 문제유출 사건의 수사와 재판을 지켜봐 왔던 시민단체 등을 통해 ‘강남 학원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SAT 문제유출’에 대해 집중적으로 파헤쳐 보고자 한다.

<주간한국>의 취재에 응해준 제보자 A씨는 최근 불법 유출한 SAT 문제의 구매 제의를 받았다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는 혹시라도 자신의 폭로가 파장이 커져, 제보 속 SAT 브로커로 등으로부터 보복을 당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휩싸인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곧 “부정한 방법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선량한 학생들이 더 이상 없어야 한다”라며 그날의 충격적인 기억을 떠올렸다.

해외에 체류 중이었던 A씨는 자녀의 입시를 한 해 앞두고 IB 시험 준비와 함께 SAT 점수 향상을 위해 지난해 12월 국내에 입국해 서울시 강남구 주변 SAT 전문학원을 알아봤다.

A씨는 전부터 봐왔던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SAT 고득점 보장반’ 모집글을 접하고 해당 학원의 관계자와 전화 상담을 마쳤다.

그는 해당 학원의 원장과 자녀의 희망전공과 목표 SAT 점수 등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SAT 문제풀이반 추천을 받아 수강료를 결재했다.

A씨는 “아이가 몇 번의 수업을 다녀오고 도저히 수업 분위기가 자신과 맞지 않다고 해서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고, 즉시 학원에 연락해 수강료를 환불받았다”라며 “얼마 뒤 학원장으로부터 전화가 왔고 ‘만점을 맞을 수 있는 SAT 문제’에 대해 소개받았다”라고 설명했다.

당시 A씨는 학원장으로부터 다음달(1월) 해외에서 시행할 SAT 문제를 미리 받아볼 수 있고, 시험 시행 하루 전 유출한 해당 SAT 문제의 정답을 외워 시험장에 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A씨는 “학원장은 중동 모래바람을 타고 온 SAT 문제를 동남아 지역에 가서 미리 받을 수 있고, 시험 전날 밤 같이 모여 문제를 풀고 답을 외운 뒤 정식 시험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라며 “자신은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런 제안도 하지 않고 비밀은 반드시 보장하겠다고 당부했고, 여름 10주의 학원 수강료를 미리 내는 셈 치라고 설득했다”라고 밝혔다.

동시에 학원장은 A씨에게 유출한 SAT 문제의 대가로 1000만원을 제안했다. 또 그는 같은 문제를 받아볼 학부형을 소개시켜주면 100만원씩 할인해 주겠다는 ‘특별한 혜택’까지 마련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 학원장은 아시아 한 지역에서 해당 SAT 시험을 응시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계약서를 작성해야지만 국가명과 시험 장소 등 구체적 사항을 설명하겠다’라는 치밀함도 보였다. A씨는 그의 황당한 제안에 불안해했고, 며칠 후 걸려온 학원장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제보자 A씨는 “출국 후 얼마가 지나 해당 학원의 커뮤니티를 접속해 봤는데, 7명이 단체로 비행기 타고 동남아 한 지역에 원정시험 간다고 올린 사진을 봤다”라며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부정한 일을 했는지 또 그로 인해 상대적으로 입시에 피해를 본 학생은 얼마나 될까라는 생각에 답답하고 화가 났다”라고 호소했다.

“국내가 막혔다면, 외국에서” 진화한 SAT 문제유출 수법

SAT는 미국 칼리지보드(College Board)가 문제를 출제하며 미국교육평가원(ETS)이 시험에 대한 관리·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이 SAT 기출문제는 두 주관사의 허락 없이 복제ㆍ배포할 수 없다.

그런데 지난 2013년 일부 학원 강사들이 수강생과 지인 그리고 브로커 등을 통해 불법으로 SAT 기출문제를 구입한 사실이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지며, 소문으로만 들려오던 SAT 문제유출의 실상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당시 해당 사건의 수사 및 재판에서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국회와 시민단체들로부터 상당수 제기됐지만, 40차례 넘게 벌어진 대대적 압수수색으로 국내의 SAT 시험에 대한 부정행위는 뿌리가 뽑혔다는 목소리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본지의 취재에 응해준 학원업계 관계자 K씨는 아직 국내 주요 학원가를 중심으로 SAT 문제유출이 ‘기존과 다른 경로’를 통해 여전히 행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SAT 시험이 NEW SAT로 바뀌면서 (문제유출을) 국내에서는 하지 못할지라도 외국에서라면 가능하다”라며 “현재 일부 학부형들 사이에서 9월 SAT 문제 소식까지 떠돌고 있다”며 고개를 저었다.

K씨는 다양한 증거자료 및 주변인들과 주고받은 메시지 기록을 통해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를 제시해줬다.

과거 SAT 문제유출 또는 부정시험은 주로 ‘시차’만을 이용한 방식이 많았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언론 등을 통해 대대적으로 폭로됐고 NEW SAT로 바뀌면서, 국내에서 시차 방식은 더 이상 소용이 없게 됐다.

단지 K씨는 기존과 다른 경로를 통한 SAT 문제유출에 대해 시차 방식에 더해 SAT 문제의 출제 규정을 교묘히 이용해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K씨와 기타 SAT 시험에 대해 능통한 제보자에 따르면 기존 SAT 시험은 국내 대학수학능력시험과는 다르게 ‘문제은행’ 방식으로 출제가 됐다.

특히 칼리지보드는 다양한 회차별 SAT 문제를 만들어 놓았는데 각 회차별 문제에서 한 문제씩 정해져 새로운 회차의 문제가 출제되는 것이 아닌, 회차별 문제가 ‘통째로’ 다시 나온다는 특징이 있었다.

K씨는 “과거 SAT의 문제은행 방식은 수십여 가지의 회차 중 하나가 반복해 그대로 나오게 되는데 심지어는 보기 순서조차 바뀌지 않은 문제가 많았다”라며 “사실상 칼리지보드는 다가오는 SAT 시험에서 새로운 문제를 출제하지 않고, 과거 치러졌던 시험 회차 중 어떤 것을 선택할지 고민하면 됐었다”고 밝혔다.

이어 “NEW SAT로 바뀌면서 이런 부분이 개선됐지만, 칼리지보드의 문제은행식 출제 방식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라며 “다음 시험이 열리기 수개월 전부터 어느 문제를 낼지 미리 정해놓는다”고 덧붙였다.

K씨 등은 제보자 A씨의 경우에 대해 과거 SAT 부정시험에 있어 활용됐던 시차 이용을 국내가 아닌 외국으로 이동해 벌이는 새로운 수법이라고 말했다. 또 이런 방법은 성공하기 힘들어 ‘사기’의 가능성도 높다고 지적했다.


특히 시차 방식이 실제 시험 바로 몇 시간 전에 문제를 접할 수 있었던 반면, 이 방법은 정식 시험이 치러지기 하루 또는 이틀 전 시험에 나올 문제를 응시자들이 미리 풀어보면서 정답 암기뿐만 아니라 실제 시험 문제를 접해 기억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점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A씨 사례에서의 ‘브로커’ 역할을 한 학원장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과연 다음 시험에서 어떤 회차의 SAT 문제가 출제될지를 미리 파악하는가에 달려 있다.

K씨 등은 이 부분 역시 브로커들 사이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알아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SAT 기출문제는 칼리지보드 등의 허락 없이 복제ㆍ배포할 수 없지만, 미국에 서버를 둔 다양한 사이트에서 이 문제들은 널리 공유되고 있다. 때문에 업계에서 SAT 기출문제 입수는 간단한 일이다.

단지 제보자들은 SAT 문제의 출제에 대한 결정권자인 칼리지보드는 보통 일부 회차의 기출문제를 다음 시험을 위해 미리 선정해 놓는다고 말했다.

K씨는 “칼리지보드를 통해 브로커들은 다가올 SAT 시험에 출제할 문제 회차가 무엇인지를 미리 알게 된다”라며 “좁혀진 회차의 문제 중 어떤 회차가 나올지는 정식 시험이 치러지기 하루 또는 이틀 전에 알 수 있고, <주간한국>이 말해준 제보자(A씨)라는 분의 사례에서 나온 ‘시험 하루 전 유출한 SAT 문제를 풀어본다’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K씨와 일부 학원 관계자들은 이런 방식도 신빙성이 높지 않기 때문에 사기를 당하기 쉽다고 경고했다. 물론 미리 풀어본 SAT 문제가 실제 시험장에서 나오지 않는 ‘사기’를 당했다고 할지라도, 학부형과 학생 역시 불법 행위에 가담한 꼴이기 때문에 구제받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SAT 문제유출 사건의 ‘저작권법 재판’ 전 과정을 모니터링 해온 한국NGO연합 사법감시배심원단 측은 이번 <주간한국>의 취재 내용을 접한 뒤, 아직도 뿌리 뽑히지 못한 SAT 문제 불법유출에 대해 ‘심각한 일’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사법감시배심원단 관계자는 “최근에도 일부 유학원 학원장들이 시차를 이용해서 SAT 문제를 빼돌릴 수 있다고 학부모들에게 말하지만, 전부 사기”라며 “SAT 문제 유출 브로커들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중국에서 흔하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아 과거 검찰도 이 브로커들을 전부 잡지 못했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주간한국>은 이번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SAT 문제유출에 대한 또 다른 제보자들의 이야기를 추가적으로 들어볼 수 있었다. 본지는 제보자들의 증언과 이들이 제공해준 객관적 자료들을 토대로 사법감시배심원단 등 시민단체 그리고 정치권 관계자들과 그동안 뿌리 뽑지 못했던 부정적 관행들을 철저히 파헤칠 예정이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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