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풀고 나누는 교육인 지향”

교육당국의 수강료 일률조정 ‘개선’에 일조해

‘오후 시간이 없는’ 강사들 처우개선 위해 노력

새정부의 교육정책 공약에 “여전히 문제가 뭔지 몰라” 지적

한민철 기자

사교육 일번지 강남구 대치동 일대 학원가의 등대 같은 존재가 있다. 바로 강남구학원연합회의 허헌 전 회장이다. 허헌 전 회장은 ‘수강료 조정위원회’와 ‘자율정화위원회’ 등을 이뤄내는 데 힘쓰며 강남 학원가 발전의 역사를 지켜봐 온 당사자다. <주간한국>은 허헌 전 회장과 만나 강남구학원연합회에서의 활동과 강남 학원 운영의 경험 그리고 새정부의 교육정책 공약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 강남구학원연합회라고 하니 굉장히 규모가 크고, ‘부자 원장’과 ‘일타 강사’들만이 가입돼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주로 역삼동과 대치동 일대 입시학원들이 속한 우리 협회에는 약 75개 업체 250여명의 원장들이 가입돼 있다. 이중에는 말씀하신 것처럼 돈을 잘 버는 원장들도 있고, 학생들과 학부형들에게 인기있는 강사들을 보유한 학원들도 있다. 그러나 역시 입시학원업이란 교육업이기 이전에 서비스업이기 때문에 그만큼 경쟁 또한 치열하다. 원장들이 학원 운영의 보다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써야 함은 물론, 강사들도 학생들의 실력 향상에 실질적 도움이 되도록 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 강남구학원연합회 전 회장으로서 주로 어떤 역할을 했는가.

“회장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달았지만, 하는 일은 권위적인 일이 절대 아니다. 평소 제가 운영하는 학원의 원장으로서 성실하게 임하면서, 강남구 일대 학원들의 다양한 민원과 고충을 해결하는 데 앞장섰다. 학원들의 민원과 고충을 처음으로 해결한 것이 제가 강남구학원연합회 회장을 맡기 시작했던 계기이기도 하다. 2000년대 초반 강남 학원가 내에서 가장 큰 이슈는 바로 수강료 문제였다. 당시 교육 당국에서는 서울시 내 학원들의 수강료를 분당 약 120원이라는 금액으로 제한을 뒀다. 정부에서는 이렇게 일률적으로 학원비를 정해놓는 것이 공정하다 판단했는지 모르겠지만, 결국 부작용을 낳았다.”

- 부작용이라면 어떤 것이었나.

“상식적으로 판단하더라도 강남에서 학원을 차리려면 상당한 임대료를 부담해야 한다. 심지어 대치동 학원들은 같은 필지에 있더라도 도로변과 비도로변에 위치한 학원들의 임대료가 3배 이상 차이가 난다. 임대료는 비싸고, 사교육 일번지라는 강남 학원가에서 일타 강사 영입과 교재 연구 그리고 기타 학원 시설 마련에 소극적 투자를 하는 것도 말이 안 됐다. 수강료라는 것은 지역의 특수성이 반영된 임대료뿐만 아니라, 강사들의 수준과 학원의 규모 및 시설의 정도, 수강생들의 만족도와 평판 등을 고려해 책정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에서는 다른 지역 학원들과 분당 수강료를 120원 가량으로 제한하다 보니, 강남 학원들이 상대적으로 적자가 날 수밖에 없었고 각종 편법·불법이 생겼다. 학부형들에게 수강료를 소위 ‘뻥튀기’해서 받거나, 지나치게 특강을 많이 개설하는 등 옳지 못한 모양새가 펼쳐졌었다. 때문에 교육청에서도 매번 단속에 나오며 학원들과 공무원들 간 얼굴을 붉히는 일이 많았다.”

- 그렇다면 허헌 전 회장은 당시 그런 문제점을 어떻게 해결했는가.

“당시 저는 강남구 학원 지역장에서 출발해 회원사들로부터 과반수 이상의 득표를 얻어 강남구학원연합회 회장에 취임했다. 이후 먼저 협회에 가입된 학원들 모두가 학부형과 학생들을 속여가며 수강료를 올려 받지 말자는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 노력했다. 동시에 75개 학원들을 모아 일률적 기준금액 제시하던 교육 당국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것이 불씨가 돼서 협회 차원이 아닌, 학원 원장 개인이 법률대리인을 고용해 같은 소송을 내면서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하는 우리들의 호소에 힘을 보태줬다. 결국 법원에서도 교육 당국이 학원들의 수강료를 일률적으로 조정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려줬다.”

- 하지만 이렇다 보니, 무분별하게 수강료를 올려받는 학원도 생기지 않았는가.

“이후 강남구학원연합회와 학부모 단체 등 시민단체가 모여 ‘수강료 조정위원회’를 설립하면서 학원마다 수강료 책정이 보다 투명하게 이뤄지게 됐다. 때문에 그동안 수강료에 대한 교육 당국의 단속에 크게 문제된 적이 없었다. 또 교육청과도 협의해 일종의 신문고 역할을 하는 ‘자율정화위원회’를 둬서 현재까지도 공정하고 불법요소 없는 강남구 학원들을 만들고 있다. 개인적으로 저희 학원은 홈페이지에 수강료를 정확히 기재하면서 본보기를 보이려 노력하고 있다.”

- 허헌 전 회장님은 강남구학원연합회에 소속돼있기 이전에 개인 학원을 운영하시기도 한다. 학원 원장으로서 자신만의 특별한 고충은 무엇이 있었는가.

“여러 가지 시행착오가 있었다. 제 성격이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에 맞다 보니, 학원업에 몸 담으면서 개인적 고충은 크게 없었다. 그러나 역시 운영자 측면에서 강사들에 대한 걱정과 안타까운 부분들이 있다.”

- 혹시 강사들과 근무환경과 급여 관련 갈등이 있던 것인가.

“그것은 아니다. 어떻게 받아들이실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강사들의 결혼이 심각하게 걱정된다. 대부분의 입시학원 강사들은 방학을 제외하고는 오후에 출근해 밤 늦은 시간까지 근무하는 경우가 많다. 보통 사람들이 아침에 출근해 저녁 6시에 일이 끝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 우리 강사들이 그들과 연애할 기회가 많지 않고, 저에게 직접적으로 말해주지는 않지만 보통 사람들과의 연애와 결혼에 대해 걱정하고 있는 것도 알고 있다. 아무리 급여를 올려주고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하더라도 이런 기본적 부분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일부 학원들의 강사 이직률이 잦은 것이 사실이다. 수업시간을 보다 탄력적으로 조정하고, 강사들의 기타 처우개선에 보다 세밀한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대선후보들의 교육정책 공약에 주목하고 계실 것이다. 특히 유력 후보들은 대입 논술 등 사교육을 유발하는 전형을 없애거나 심지어 외고와 자사고를 폐지하는 공약을 내놓고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대선 후보들의 교육관련 정책 공약이 전부 사교육을 축소하는 방향이기 때문에, 사교육업 종사자로서 유쾌한 기분만이 드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전국 학원 원장 및 교육전문가들이 모인 모임에서 새정부의 교육 공약에 대한 다양한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학생들이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공정하게 들어가도록 공교육이 충분한 역할을 해준다면, 자동적으로 사교육이 줄어들고 도태되기 때문에 이 부분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정치권은 문제가 대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여전히 모르고 있다. 학생들이 원하는 대학을 가지 못하고 학부형들의 사교육비 부담이 늘어나는 것이 모두 사교육 때문으로만 판단한다. 간단하게 생각해보면 되는데 학교에서 학생들의 원하는 바를 충족시켜줬다면, 이들도 학원문을 두드릴 이유가 없다. 학교에 문제에 있어 이들의 욕구를 들어주지 못하기 때문에 학원에 오는 것인데, 왜 이것을 사교육 탓으로 돌리는지 납득할 수 없다. ‘공교육을 개선시킬 의지는 없고, 오로지 사교육에만 칼을 댈 의지는 넘쳐난다.’ 이는 아주 오래 전부터 지적해온 주장이었다. 그러나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 그렇지만, 어쩌면 허헌 전 회장님의 제자일지도 모르는 소수의 강남구 부잣집 아이들만이 특별한 사교육의 혜택을 받고 있고, 학부형들이 자녀들의 외고와 자사고 입학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데 문제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새정부에서 학생들의 부담을 줄이고 사교육 평등을 이루기 위해 새로운 교육 공약을 내놨다고도 볼 수 있을 텐데.

“강남구 부잣집 자녀들만이 사교육 일번지의 혜택을 받고 있다는 것은 인터넷 동영상 강의가 보편화되기 전인 2000년대 초반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현재 소위 강남구 일타 강사들의 교육 콘텐츠를 각종 인강 사이트에서 접할 수 있어, 전국 학생들의 교육 기회는 사실상 평등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한다. 특히 아무리 정부에서 개혁을 위해 노력한다고 할지라도 공교육 개선과 학부형들의 교육열이 가라앉지 않는 이상, 제도적 제재는 반발을 불러일으킬 뿐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오히려 정부에서 ‘교육제도로 인한 역차별’에 대해 생각을 해봤는지 묻고 싶다. 현재 대치동 인근에 위치한 일반 명문고등학교의 재수생 비율은 무려 70%에 달한다. 대부분이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교 4년’을 교육과정으로 여기고 있다. 수시전형이 지방학교 학생들의 학생부에 전적으로 유리하다 보니, 역으로 강남구 학생들은 정시전형의 비율이 줄어든 상황에서 1년 재수를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보고 있는 현실이다. 대선 후보들이 수시전형 축소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수시전형의 부작용을 일으킨 쪽이 강남 부잣집 학생들이라며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오해의 목소리가 안타깝다.”

- 최근 강남구 대치동에 위치한 한 학원에서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경쟁 학원의 원장을 악의적으로 음해하는 글을 올려 물의를 빚었다. 피해 학원의 원장님은 자신을 비방한 학원 원장을 명예훼손으로 형사 고소한 상태인데 혹시 이 소식을 접한 적이 있는가.

“관련 소식을 들었다. 서로가 선의의 경쟁을 하지는 못할망정 그런 비상식적인 행동은 절대 납득할 수 없으며, 이는 피해 학원의 원장님뿐만 아니라 학생들과 학부형들에게도 피해라고 생각한다. 협회 차원에서 진상 파악을 할 것이며, 회장직은 내려놓은 상태지만 앞으로도 협회사들의 민원 처리와 갈등의 원만한 해결을 위해 힘쓰겠다.”

- 현재는 강남구학원연합회 회장직을 내려놨지만 협회와 개인을 위한 특별한 계획이 있는가.

“외국에 봉사활동을 자주 간다. 얼마 전에는 케냐에 갔었는데, 그곳에 우리 청년들과 함께 학교를 설립하는 데 큰 힘을 쏟고 왔다. 10월에는 네팔에 가서 교육봉사를 할 예정이다. 또 지방의 학생들과 학부형들을 위해 무료 수시컨설팅 강연을 펼치고 있는데, 이 역시 꾸준히 활동해 나갈 것이다. 단순히 이익만을 추구하는 학원인이 아닌, 누군가에게 베풀고 나누는 교육인이 되고 싶다. 그래야 강남학원협회 역시 물질적 가치만을 추구하는 이익집단이 아닌, 교육을 보다 우선시 하는 훈훈한 이들이 모인 곳으로 알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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