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태블릿PC, 풀리지 않는 의혹 남겨둔 말씀자료 파일명 실체는?

대통령 말씀자료 파일명 ‘downloadfile.bin.hwp’, 태블릿PC 내 한글 프로그램 없었다는 증거

2015년 10월에 설치된 것으로 추정되는 제2태블릿PC 한글 프로그램, 이전 자료들의 열람은?

제2태블릿PC 개통 절차에 이해할 수 없는 의혹 많아

한민철 기자

국정농단 사태의 주역 최순실(61ㆍ구속기소)씨의 정체를 세상에 밝히는 계기가 됐던 태블릿PC를 둘러싼 의혹이 여전히 풀리고 있지 않다.

최씨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면서 조카 장시호(38ㆍ구속기소)씨가 지난 1월 박영수(65ㆍ사법연수원 10기) 특별검사 측에 제출한 제2태블릿PC 내에 저장돼 있던 대통령 말씀자료의 파일명을 두고 석연치 않은 점이 발견됐다.

최씨와 이재용(49ㆍ구속기소) 삼성전자 부회장 측 변호인들로부터 ‘정황상 증거 말고 확증’의 요구를 받고 있는 특검 측이 제2태블릿PC에 대한 보다 명확한 규명이 필요해질 전망이다.

지난 1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 심리로 진행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14회 공판에서는 정호성(48ㆍ구속기소)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이 증인으로 참석했다.

특검 측은 정호성 전 비서관에게 지난 2015년 10월 13일 개최된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사용됐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말씀자료 중간수정본을 제시했다.

여기에는 기존에 연기됐던 방미 일정에 대한 의의와 당부 말씀 그리고 FTA 비준 관련 협조요청, 역사교육의 정상화 관련된 대통령 메시지와 함께 최순실씨가 수정한 부분도 제시돼 있었다.

정 전 비서관은 이 말씀자료의 초안에 대해 최순실씨에게 이메일을 통해 자신이 직접 보낸 것이 맞고, 수정본도 돌려받은 적이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또 그는 지난 2013년 1월경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출범한 이후부터 최씨에게 국무회의 자료와 정부 주요인사 파일, 대통령 연설문 및 말씀자료 등의 문건을 수차례 이메일이나 인편 등을 통해 전달했고, 수정본까지 받아왔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특검 측은 2015년 10월 13일 수석비서관 회의 말씀자료 문건의 입수 경위에 대해서도 언급하면서, 이를 최순실씨의 조카 장시호씨로부터 제출받은 최씨 소유로 알려진 태블릿PC에서 얻게된 것이라고 밝혔다.

<주간한국> 제2677호 ‘태블릿PC 향한 최순실의 반격’ 제목의 보도에서 이미 다뤘듯이 소위 ‘최순실의 제2태블릿PC’로도 불리는 이 기기는 장씨가 지난 1월 특검에 제출해 같은 달 11일 이규철 전 특검보의 정례 브리핑을 통해 최초로 등장했다.

당시 특검 측의 발표에 따르면 기존 JTBC가 확보해 검찰에 제출한 태블릿PC는 최씨가 지난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사용한 것으로, 장씨가 제출한 제2태블릿PC는 최씨가 지난 2015년 7월부터 11월까지 쓴 것으로 전해졌다.

제2태블릿PC는 삼성전자 제품 갤럭시탭 SMT-815 기종으로 연락처 이름에는 최순실씨가 개명한 이름인 최서원이 나타나 있었다.

특히 이 제2태블릿PC에는 노승일 전 K스포츠재단 부장 그리고 최씨 모녀의 독일 정착을 도운 측근으로 알려진 데이비드윤,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전 승마협회 부회장),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 등과 최씨가 주고 받은 이메일 및 첨부 파일 등이 담겨있었다.

또 최씨의 독일 회사인 코어스포츠에 대한 삼성전자의 지원금 수수 관련 자료, 부동산 구매를 위해 최씨가 변호사들과 주고받은 문건 그리고 앞서 언급한 2015년 10월 13일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 당시 대통령 말씀자료 중간수정본도 저장돼 있었다.

그런데 이날 재판에서 본지는 특검 측이 제시한 수석비서관 회의 말씀자료 중간수정본에서 의아한 점을 발견했다.

특검 측이 이 문건을 재판장 스크린에 비추면서 나타난 이 자료의 파일명 란에는 ‘downloadfile.bin.hwp’라는 글자가 명시돼 있었다.

실행 프로그램도 없이 10월까지 그동안의 파일을 열람했다?

지난해 10월 24일 JTBC가 최초로 보도한 최순실 소유로 알려진 태블릿PC에서는 총 185개의 청와대 문건이 발견됐다.

이중에는 공무상 비밀을 담고 있는 문건도 47개에 달했는데, JTBC 등의 전파를 탄 이 태블릿PC 내 문서들 대부분의 파일명은 각 문서의 핵심 내용과 사용 날짜를 바로 파악할 수 있도록 설정돼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컴퓨터와 같은 저장매체 사용자가 향후 문서를 쉽게 찾고 보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최씨가 저장한 대통령 말씀자료는 한글파일(확장자 hwp)이 거의 대부분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특검이 제2태블릿PC에서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2015년 10월 13일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 말씀자료의 중간수정본의 파일명은 구체적 내용물을 짐작할 수 없고, 확장자도 명확하지 않은 ‘downloadfile.bin.hwp’라는 이름으로 재판장에 증거로 제시되고 있었다.

본지는 해당 말씀자료가 downloadfile.bin.hwp라는 파일명으로 저장된 경위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삼성전자 관계자와 컴퓨터 공학 분야 관계자 등의 조언을 얻었다.

우선 이들은 downloadfile.bin.hwp는 본래 downloadfile.bin으로 저장된 파일을 이름 수정을 통해 끝에 ‘.hwp’를 붙여 한글파일로 변환시킨 것이라고 공통적으로 말했다.

downloadfile.bin이라는 이름에서 bin이라는 확장자는 바이너리 파일(binary file)이라는 뜻으로 다운로드된 파일을 실행시키기 위한 기계 언어다. 이 파일을 단독으로 실행할 수 없고, 실행 파일을 설치한 뒤 그에 맞게 확장자를 다시 변경해주거나 연결 프로그램 설정을 통해 파일을 실행할 수 있다.

그런데 downloadfile.bin이라는 파일명의 저장은 주로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 모바일 기기의 안드로이드 플랫폼에서 아주 드물게 일어나는 현상인데, 만약 어떤 파일을 다운로드받았을 때 해당 기기에 이 파일을 실행시킬 수 있는 매체가 없었다면 downloadfile.bin이라는 이름으로 저장되기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해당 파일의 실행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설치한 뒤 downloadfile.bin의 확장자를 이 프로그램에 맞는 확장자로 변경시킨다면 실행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때문에 downloadfile.bin.hwp라는 파일명은 한글파일 실행 프로그램이 설치돼 있지 않은 태블릿PC를 통해 hwp파일을 다운로드받게 됐고, 이후 한글파일 실행 프로그램을 설치한 뒤 확장자를 hwp로 변경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었다. 물론 특검의 제2태블릿PC에 대한 디지털포랜식 복구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파일명의 변환 가능성에 대해서도 downloadfile.bin으로 바뀔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만약 이 추정이 사실이라면, 최순실씨는 해당 태블릿PC의 사용을 그만두기 약 한 달 전까지도 자신이 평소 필수적으로 사용하고 있던 한글 실행 프로그램의 설치 조차 하고 있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특히 태블릿PC 내에 설치돼 있던 최씨와 노승일 전 K스포츠재단 부장, 데이비드 윤 등과 주고 받은 이메일 및 각종 첨부 자료 그리고 코어스포츠에 대한 삼성전자의 지원금 수수 관련 자료, 부동산 구매관련 문건의 교환이 모두 2015년 10월 이전에 이뤄졌다. 때문에 최씨는 이와 관련된 한글파일 자료들을 전혀 열어볼 수 없었고, 해당 자료들을 다운받았을 때 downloadfile.bin으로 저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는 의미였다.

‘정황상 증거’ 비판에도 쉽게 찾을 수 있는 ‘확증’ 제시 못하는 특검

본지가 지난 보도에서도 언급했듯이 장씨가 특검에 제출한 제2태블릿PC에는 이를 명백한 증거로 보기에는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혹이 여러 가지 남아 있다.

실제로 재판 과정에서 장씨의 증언을 통해 드러났듯이 그가 최씨에게 전화를 걸어 대통령 말씀 자료 등 중요ㆍ극비 문서가 포함된 태블릿PC의 처분을 묻자 “알아서 하라”고 말을 했다는 부분과 함께, 장씨 자신이 보관하고 있었던 줄로만 알았던 이 기기를 사실은 장씨 아들의 친구가 약 두 달 가량이나 비밀번호도 풀지 못하는 ‘식물 기기’로 보관하고 있었다는 점 등은 누가 보더라도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제2태블릿PC의 개통과 계약ㆍ계좌 명의에 대한 특검 측 발표는 더욱 신빙성을 떨어뜨리며 ‘확증’ 제시 요구의 목소리가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지난달 11일 최순실씨의 뇌물사건 재판에서 특검 측은 최씨가 제2태블릿PC를 직접 개통했다는 휴대전화 대리점 직원의 진술서를 공개한 바 있다.

당시 이 진술서 내용에 따르면 최순실씨가 직접 대리점에 찾아와 태블릿PC를 주며 개통해달라고 요구했고, 직원이 전산을 통해 확인해 본 결과 개통일은 2015년 10월 12일로 최씨는 계약 명의자로 자신이 소유한 빌딩의 청소관리인을 그리고 계좌번호는 자신의 회사 직원의 것을 기재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특검은 “개통한 휴대전화 번호는 (최씨) 태블릿PC 전화번호와 일치한다”라며 “이것으로 인해 장씨가 제출한 태블릿PC는 최씨가 사용한 태블릿인 것이 확인됐다”라고 단정했다.

물론 최씨 변호인 측은 최씨가 태블릿PC를 전혀 사용할 수 없고, 특검의 일방적 주장에 불과하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사실 당시 특검 측의 주장에는 평소 최씨의 행실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 상당수 발견됐다. 우선 개통을 2015년 10월 12일에 했다는 사실은 특검 측이 발표한 최씨의 제2태블릿PC 사용기간 2015년 7월부터 11월 중 무려 3개월 동안 전화통화 없이 휴대용 무선인터넷만을 사용했다는 의미로 사용 중지 약 한 달여를 앞두고 굳이 개통을 한 상당히 의아한 꼴이 된다.

특히 재판상 증언과 특검 측 진술조서 등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최씨는 평소 필요한 일에 대해 자신의 운전기사인 방 모씨나 비서인 안 모씨에 심부름을 시키는 편이다. 굳이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될 일이라면 언제나 이들을 통해 일을 해결했다.

때문에 타인의 명의와 계좌번호로 태블릿PC의 개통을 할 생각이었다면 굳이 자신이 직접 개통을 하러갈 필요가 없었다.

무엇보다 제3자 명의로 단말기를 개통하는 행위는 명백히 개인정보법 위반을 통한 명의도용 및 사문서위조 및 위조사문서행사죄 등을 물을 수 있고, 해당 대리점 역시 영업정지 처분을 당할 수 있는 만큼 향후 문제가 될 소지가 있어 최씨 스스로가 대리점에 가서 ‘불법 개통’을 했다는 주장의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만약 특검 측이 “이것으로 인해 장씨가 제출한 태블릿PC는 최씨가 사용한 태블릿인 것이 확인됐다”라는 말에 잡음이 나오지 않게 하며, 최순실씨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측 변호인들이 특검에 매번 강조하는 ‘정황상 증거가 아닌 확증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당시 최씨가 제2태블릿PC 개통을 위해 작성했던 가입신청서 등의 서류를 확보해 필적대조를 해 본다면 간단히 해결될 일이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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