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위기 반전 되나 vs 굳히기 가나

특검 “뇌물 수수자에 대한 직접적 신문 필요” 박 전 대통령 증인 소환 사유 밝혀

삼성 측, 朴 증인 신청에 “반드시 이뤄져야” 적극적 동의

이재용 부회장 무죄 확신하는 삼성, 박 전 대통령 강요 이끌어 내면 ‘굳히기’ 가능성

한민철 기자

‘세기의 재판’을 벌이고 있는 박영수(65·사법연수원 10기) 특별검사팀과 이재용(49·구속기소) 삼성전자 부회장 측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증인 신청에 합의했다.

지난 17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 심리로 진행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및 삼성 임원들에 대한 뇌물공여 등 사건 제14차 공판에서 특검 측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증인신청을 재판부에 요청했다.

특검 측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증인 신청 이유에 대해 “특검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출석 거부로 인해 피고인(이재용)으로부터 뇌물을 제공받은 수수자임에도 불구하고 박 전 대통령을 직접 조사할 수 없었다”라며 “따라서 뇌물을 수수하게 된 경위에 관한 개별 면담(독대) 당시의 상황, 부정한 청탁 대상이 되는 피고인의 현안에 대한 인식 또는 이 사건 공소사실의 입증을 위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직접 신문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 특검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사실관계의 많은 부분에 있어서도 피고인과 전혀 다른 진술을 하고 있기 때문에 피고인 측의 검찰 조사에 대한 신문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라며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증인 신청 취지를 밝혔다.

동시에 특검 측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3월 21일 등 서울중앙지검의 조사를 통해 작성됐던 피의자 신문 조서를 추가 증거로 신청했다.

다음 날 같은 심리로 진행된 제15차 공판에서 삼성 측 변호인단은 특검의 박 전 대통령 증인 신청에 대한 피고인 측 입장을 내놨다.

삼성 측 변호인단은 특검 측의 요청을 받아들이겠다는 의견을 보내며 오히려 박 전 대통령을 해당 재판의 증인으로 반드시 세워야 한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삼성 측 변호인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증인신청에 대해서는 피고인 측에서도 특검과 의견이 같다”라며 “반드시 증인 신문이 이뤄져야 한다는 데 피고인들도 같은 의견”이라고 밝혔다.

이에 재판부는 “특검의 전날 증인 신청은 관련 재판 일정 등을 봐서 적절하게 기일을 고려하겠다”고 답했다.

삼성 측 변호인단은 전날 특검 측의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피의자 신문 조서 증거 채택 요청은 인용하지 않았다. 변호인 측이 해당 자료 등의 검토시간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보류한다는 입장이었다.

박 전 대통령이 증인으로 채택된다면, 이미 증인신청이 예정된 이들의 신문이 끝나는 다음달 중순 이후 출석이 유력하다. 물론 박 전 대통령이 지난 19일 열린 이영선(38) 청와대 경호관의 재판에서도 본인 재판 준비 및 건강상의 이유로 불출석 사유를 밝힌 만큼,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에 모습을 드러낼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삼성 측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된 핵심 피의자이며, 박 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의 독대 당시의 진실에 따라 삼성을 비롯해 박 전 대통령 자신의 재판 향방이 결정되는 만큼 증인으로 출석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특검과 삼성 측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증인 채택을 동의한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박 전 대통령 증인 신청의 의미가 특검에게는 ‘분위기 반전 위한 강수’ 그리고 삼성에게는 ‘굳히기 기회’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재판 초기 “증거가 차고 넘친다”고 말했던 박영수 특검의 자신감과는 다르게, 재판이 14차까지 진행되면서 삼성 측의 혐의를 입증할 만한 결정적 증거가 나오지 않고 정황상 증거만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실제로 삼성 측 변호인은 특검 측의 ‘정황상 비춰보면’ 또는 ‘상식적으로 판단했을 때’라는 내용이 포함된 신문에 맞서 보다 객관적인 증거를 제시하거나 특검 측의 주장을 비웃듯 확증이 없다며 대응하고 있다.

특히 증인들도 특검 측 박자에 맞춰주지 않고 있다. 삼성이 거액의 자금을 지원한 최순실(61·구속기소)씨의 실소유사 코어스포츠와 비덱이 ‘페이퍼 컴퍼니’였다는 특검 측 주장과 노승일 전 K스포츠재단 부장의 재판 증언과는 다르게, 증인으로 참석한 비덱 전 직원들은 이 회사가 법인 계좌를 통해 급여를 지급받았고 세금과 보험료를 납부, 직원들 모두가 정당히 취업비자를 받아 근무했다고 밝히면서 페이퍼 컴퍼니 주장을 일축했다.

또 삼성이 지원했던 ‘함부르크 프로젝트’가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 단독 지원을 위한 것이라는 특검 측 주장과는 다르게, 다른 지원 예정 선수가 있었고 함부르크 프로젝트의 예산서 작성 과정에서 정유라 혼자만을 위한 예산이 아닌 것으로 생각했다는 재판 증언이 나왔다.

때문에 재판장 내에서는 초기 ‘대단한 증거’를 가지고 있었을 것만 같았던 특검 측에서 삼성으로 분위기가 점점 기울고 있다는 목소리가 주를 이루고 있다.

이에 특검팀 측 입장에서는 청와대 압수수색마저 실패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부정 청탁과 뇌물 수수 사건을 둘러싼 핵심 인물임에도 직접적으로 수사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의 증인 출석이 기울어져 가는 여론을 되돌려 놓을 수 있는 새로운 돌파구임에 분명하다는 설명이다.

반면 삼성 측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증인 신청을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설명이다. 삼성 측 관계자들은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재판이 장기화가 될지라도 이재용 부회장의 무죄를 확신하고 있는 분위기다.

오히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이 박 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의 독대에서 청탁과 뇌물수수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여부를 밝히는 것이므로, 당사자인 박 전 대통령이 직접 나와 이재용 부회장의 혐의를 직접적으로 해명하며 삼성 측으로 기울어만 가는 재판의 분위기를 ‘굳히기’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물론 삼성 측에서는 정유라의 승마 훈련을 위해 보낸 돈과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보낸 지원금 역시, 다른 목적이 있어서가 아닌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질책과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강요에 의해 줬다고 밝힌 만큼 이 부분을 박 전 대통령이 부정하고 나올 가능성이 높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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