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에 의존한 족벌체제 재벌 집중 사정… 친이ㆍ친박 기업 1차 타깃

지난 정부 때 ‘특별’ 대우 받은 기업 사정 칼날 못 피해

검찰ㆍ공정위 사정 적임자 발탁… “기업 수사 다시 시작”

공정거래위원장, 서울중앙지검장 등 문재인 대통령의 사정라인이 윤곽을 드러내면서 향후 재계 사정시나리오에 재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재계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재벌에 대한 부정적인 의식이 강한 만큼 사정라인이 개편 되는대로 권력에 의존했던 족벌체제의 재벌기업을 대대적으로 사정할 것이라고 관측한다. 청와대 주변에서는 이미 청와대가 재계에 대해 사정작업을 지시한 것 아니냐고 조심스럽게 추측한다.

일각에서는 검찰의 대대적인 인적 쇄신의 배경에 대해 “앞으로 이어질 전 정권 비리사정의 출발점으로 쇄신 이후 정경유착 기업 척결 전단계 작업”이라고 입을 모은다.

뿐만 아니라 윤석열 중앙지검을 비롯해 현재 임명된 사정라인 관계자들은 대부분 기업 비리에 대해 추가 수사를 해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입장에 동의하고 있어 기업수사는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재계의 관측이다.

특히 이명박ㆍ박근혜 정부 때 유착 의혹이 불거진 기업들은 거의 대부분 수사선상에 오를 것이라는 전망에 점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재계 저승사자들 행보에 관심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로 지난 17일 ‘재벌개혁 전도사’로 불려 온 김상조 한성대 교수에 이어 다른 재계 사정라인에도 재벌개혁 적임자들이 내정되면서 향후 재계에 대한 사정광풍이 불 것이라는데 이견이 없다.

공정위는 대기업조사국 부활, 상습적인 불공정행위 기업에 대한 과징금 강화 등 국회 동의가 필요 없는 사안부터 추진할 계획이다. 김 후보자는 새로운 법과 제도 신설에 앞서 총수일가 일감 몰아주기 조사 강화 등 기존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권도 초긴장하긴 마찬가지다. 재벌 저격수ㆍ정무위 저승사자 등 文 경제 브레인 면면을 살펴보면 재계는 최근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을 지경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지난 8일 사표를 낸 후 금융권의 정책 컨트롤 타워가 사라진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의 싱크탱크 더미래연구소가 발표한 정부조직개편에는 금융위원회 해체, 금융감독체제 개편을 통한 금융감독위원회 신설, 금융소비자보호원 설립 등이 담겨있어 개혁의 칼날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삼성 등 재벌 저격수로 불리는 김상조 교수가 공정거래위원장에 내정되면서 금융권의 긴장감도 고조되고 있다.

벌써부터 삼성, SK, 롯데 등 재벌 대기업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재벌에 부정적인 인사들이 재계 사정라인에 연달아 임명 되고 있어서다.

여기에 김상조 교수의 참여연대 동료였던 김기식 전 의원은 금융위원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그는 참여연대 창립멤버로 19대 국회에 비례대표로 입성, 국회정무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치밀한 분석력과 해박한 금융지식으로 금융권을 긴장시켰다. 이로 인해 그는 ‘정무위 저승사자’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는 현재 더미래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면서 문재인 정부가 개혁 밑그림을 그리는데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3월 쿠키뉴스가 주최한 미래금융전략포럼에도 참석해 가계부체 문제애 대한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당시 그는 “가계부채는 총량적인 측면과 동시에 가계부채 문제가 나타나는 각 소득 계층별ㆍ분위별, 직업군별 등 질적 요소들을 모두 들여다 봐야 한다”면서 “서민금융과 관련해서는 전반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또 금융감독원장 후보에는 지난해 박근혜ㆍ최순실 게이트 관련 국회 청문회에 나서 삼성 합병과 관련해 폭로한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사장이 거론되고 있다. 그는 청문회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진행될 때 관련 보고서를 합병 찬성에 유리하게 작성하라고 부당한 압력을 받았다는 내용을 폭로한 바 있다.

주 전 대표는 삼성전자, 삼성증권, 삼성생명, 한화투자증권 등 현업에서 잔뼈가 굵은 경제학 박사 출신인 금융전문가다. 그는 문재인 후보의 대선 캠프에 영입된 후 경제관련 주요 보직을 맡았다.

또 홍종학 전 의원과도 재계 사정라인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 홍종학 전 의원은 19대 국회에서 비례대표로 정계입문, 대표적인 친문인사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연구소 소장 출신의 경제통으로 문재인 경제 정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융당국 유력 후보군인 김기식ㆍ홍종학 전 국회의원,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사장, 이동걸 전 금융위연구원장 등 모두 진보적이고 개혁 성향이 강한 인물들이 이어서 누가 되든 재계사정은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의 독한 기업정책

더불어민주당은 19대 대선 공약집의 12개 중분류 공약 중 2번째로 ‘공정한 대한민국’ 파트를 두고 경제민주화 관련 11개 과제를 제안했다. 여기에는 △불공정거래 관행에 대한 규제강화 등 ‘갑질 근절’ △재벌 지배구조 투명성 강화 △집단소송제 전면도입 등 소비자 구제대책 강화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 공정위 역할강화 △중소기업, 소상공인, 자영업자 보호방안 등이 포함돼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문재인 정부의 ‘갑질 근절’ ‘투명한 기업지배구조’ 관련 공약이 현실화 될 경우 재계는 그야말로 사정광풍에 휩싸이게 될 수도 있다. 전속고발권 폐지,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권 강화 등 공약들도 마찬가지다. 경제 전문가들은 문 대통령이 후보시절 내놓은 공약들이 현실화될 경우 과거 행정조치 정도로 끝났을 사안 중 상당 부분이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적만 우선시하고 실적을 취득하는 과정의 준법성을 간과하던 기존의 경영행위는 기업의 리스크를 증폭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재계가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공약집에 명시된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다. 현재는 카르텔 사안 중 입찰담합죄 등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공정거래 사건에 대해 공정위가 독점적으로 고발권한을 가지고 있다. 이는 공정위의 고발이 없으면 검찰이 독자적으로 수사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은 “공정거래법 등 법 위반행위로 피해를 입은 자는 누구든지 자유롭게 (기업 등을) 고발할 수 있도록 해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가능성을 높이고 상대적 약자들의 보호를 강화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에 청와대 안팎과 재계에서는 공정위 대기업 전담부서를 확대하는 등 역할을 강화하고 기업들의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공정위의 조사권한을 확대하는 등 법집행 역량을 강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전속고발권이 폐지될 경우 사실상 기업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경영행위가 형사처벌 대상으로 간주될 수 있어 기업이 법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 사소한 사안으로도 검찰 등 사정기관에 시달릴 수 있다.

전속고발권이 완전히 폐지될 경우 전국의 검찰·경찰 관서가 고발이나 자체인지를 통해 전국 모든 기업을 수사·기소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공정거래법과 그 시행령은 △부당한 거래거절 △가격·거래조건 등에서의 차별대우 △상대사업 방해행위 △부당한 고객유인행위 △끼워팔기, 사원판매 등 거래강제 행위 △이익제공을 강요하거나 불이익을 가하는 등 거래상 지위남용 행위 등 유형을 불공정거래 행위의 유형으로 명시했다. 이같은 불공정거래에 해당할 경우 위반항목이 무엇인지에 따라 2~3년 이하 징역 또는 1억5000만원~2억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이외에도 ‘갑질근절’ ‘재벌 지배구조 개선’ ‘일감 몰아주기 규제’ 등 공약들은 현재 제도의 틀에서도 충분히 집행이 가능한 부분이다. 상대적으로 규제방향이 이른 시일 내에 가시화될 수 있다. 공정거래법(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과 그 시행령은 법이 금지하는 불공정거래 유형을 28개로 규정하고 있다.

최순실 협조한 기업 위기설

윤 지검장이 박영수 특별검사팀 수사팀장 시절 미르ㆍK스포츠 재단 출연 기업들에 뇌물공여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혀온 점도 재계가 주목하는 부분이다.

또 ‘최순실 게이트 추가 수사’는 삼성 외에 아직 마무리하지 못했거나 의혹이 제기된 다른 기업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겠다는 의미다. 이에 이름이 오르내렸던 기업들은 긴장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달 19일 윤 지검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9)의 4차 공판에 직접 출석해 대기업의 재단 출연금에 뇌물 혐의 적용 가능성을 드러냈다.

특히 ‘왜 다른 대기업과 달리 삼성의 재단 출연금에만 뇌물을 적용했냐’는 변호인 측의 주장에 윤 지검장이 사건 수사를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이에 검찰 주변과 정치권에서는 윤 지검장이 수사가 미진하다고 판단한 기업들에 대해 추가 수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재벌인 A그룹 오너의 경우 사면을 받는 대가로 재단 출연금을 건넸다는 의혹이 대상이다. 검찰은 최근 A그룹 오너와 관련, 추가 재조사가 충분히 가능할 정도의 여러 첩보를 입수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특사를 앞두고 A그룹 오너와 전 정권 실세 B씨와의 관계성, 그리고 여러 의혹이 아직 풀리지 않고 있는 오너의 해외 자금 문제 등은 검찰이 조사를 신중하게 고려하고 있는 부분이다.

CJ도 이재현 회장(57)도 특별사면을 계기로 재단 출연금을 냈다는 의혹과 관련해 다시 수사를 받게 될 수도 있다. 앞서 특검은 삼성과 롯데, SK에 더해 CJ까지 수사를 검토한 바 있다.

한편 국내 4대 로펌 중 한 곳인 A로펌에는 최근 대기업들의 자문 요구가 크게 늘고 있다. 내부거래나 협력사 납품단가 인하, 골목상권과 관련된 가맹점·대리점법 등을 둘러싼 궁금증들이다.

이 로펌 관계자는 “지금까지 관행대로 해오던 것이 문재인 정부에서는 안 되는 것 아니냐는 문의가 많다”며 “새 정부 초기에 ‘시범 케이스’로 걸리면 안 된다는 절박감도 깔려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최순실 국정농단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사태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검찰은 이미 주요 기업의 수사에 필요한 첩보를 상당량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이미 수집된 검찰 자료로도 언제든 별건수사가 가능해 윤 지검장이 이에 대한 사건 분배를 시작할 것이라는 말이 무성하다.

4대강 사업과 삼성물산 위장 계열사 논란 등 과거에 조사가 끝난 사안도 언제든 조사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이야기다.



윤지환기자 musas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