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라 입’에 달린 삼성 재판… 특검 ‘단독지원 주장’ 무너질 수도

사실상 종결 난 이대 학사비리 재판… 정유라 입에 주목하는 삼성 재판

정유라 입장 변화 없다면… 재판 분위기, 삼성 측에 ‘확실히’ 기울 수 있어

‘정유라 단독 지원’ 반대주장 속출, 정씨 등장으로 특검의 삼성 혐의 입증, 난항 예고

한민철 기자

국정농단 사태의 주역 최순실(61ㆍ구속기소)의 딸 정유라(21)씨의 한국 송환이 사실상 확정됐다. 덴마크 현지 보도에 따르면 지난 24일(현지시각) 구금 중이던 정씨가 지난달 19일 덴마크 올보르 법원이 내린 범죄인 인도 결정에 대한 항소심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정씨는 올보르 지방법원 1심에서 본국 송환 결정이 내려진 것에 대해 항소한지 한 달이 넘어 백기를 들게 됐다.

정씨의 국내 송환으로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된 주요 재판들이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그에게 승마 특혜 지원을 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이재용(49ㆍ구속기소)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 관계자들의 재판의 향방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덴마크 검찰은 아직 정유라씨의 송환 일자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상태지만, 우리 검찰과 협의해 현지법에 따라 30일 이내에 그를 본국으로 보낸다는 입장인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박영수(65ㆍ사법연수원 10기) 특별검사팀이 정씨에 대해 발부한 체포영장이 유효한 만큼, 정씨는 체포된 상태에서 귀국길에 오를 전망이다.

이후 정씨가 곧바로 검찰에 소환되면 관련 혐의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가 이뤄질 예정이다. 현재 국정농단 사태와 연관된 주요 인물들 중 그가 유일하게 우리 검찰의 조사를 받지 않았고, 도주의 우려도 있는 만큼 구속영장이 청구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때문에 정씨의 본국 송환이 결정된 사실보다도 향후 그의 검찰 조사 내용이 국정농단 사태 재판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대해서도 이목이 쏠리고 있다.

우선 지난 몇 달간 정씨에게 가장 집중된 혐의 중 하나였던 이화여대 입학ㆍ학사 특혜 비리로 인한 ‘업무방해’ 혐의 조사는 비교적 깊은 조사가 행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고 있다.

특검 측의 가장 큰 성과 중 하나가 바로 이대 비리에 연루된 이들의 구속 기소였던 만큼 관련 의혹이 이미 충분히 밝혀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특히 정유라의 이대 특혜 비리의 중심에 서 있던 김경숙(62) 전 이화여대 체육대학장 그리고 정씨에게 학점 특혜를 준 혐의를 받고 있는 류철균(51ㆍ필명 이인화) 교수과 이원준 교수 등이 최근 실형을 구형받았다. 또 최경희(55) 전 총장 등 나머지 관련자들의 재판이 이달 내에 마무리될 예정이다.

때문에 관련 재판이 막바지에 이른 이대 비리에 관한 정씨의 조사는 보다 강도 높게 이뤄지지 않을 전망이다.

반면, 어머니 최순실씨의 재판 그리고 ‘세기의 재판’으로 불리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및 삼성 임원들에 대한 뇌물공여 등 재판이 현재 한창 진행 중인 만큼, 관련 조사가 정씨에 집중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특검은 삼성전자가 최순실씨의 실소유사로 알려진 독일 현지 법인 코어스포츠(비덱스포츠의 전신)와 뇌물 성격이 짙은 220억원대 컨설팅 용역 계약을 체결했고, 이 법인을 통해 정씨의 승마훈련을 단독으로 지원하는 동시에 시가 30억원을 호가하는 스웨덴산 명마(名馬) ‘블라디미르’와 ‘스타샤’를 제공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삼성 측으로부터 승마지원과 관련된 뇌물을 받은 당사자로 지목받고 있는 이들이 최씨 모녀인 만큼, 정씨의 송환 후 그의 검찰 조사 결과와 향후 삼성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밝혀질 수 있는 증언에 따라 논란에 방점이 찍힐 수 있다는 분석이다.

재판 초반 여론의 뭇매를 맞으며 최순실 게이트의 주요 부역자 취급을 받았던 삼성 측은 매회의 공판에서 반복되는 특검 측의 정황상 증거가 주를 이룬 주장에 객관적 증거를 제시하며 반박해 나가고 있다.

일부 삼성 관계자들은 재판이 장기화되더라도 이재용 부회장 등의 무죄를 확신하고 있다. 또 법조계 일각에서는 특검 측의 초반 “증거가 차고 넘친다”라는 자신감과는 정반대로 재판의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것에 ‘무리한 기소가 아니었나’라는 지적도 일고 있다.

때문에 특검과 삼성 간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주요 쟁점에 대해 정씨가 직접 나와 ‘그동안 유지해 온 자신의 입장’만을 일관되게 밝혀준다면, ‘세기의 재판’의 무게추가 삼성 측으로 확실히 기울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유라 단독 지원’ 쟁점인 함부르크 프로젝트… 정유라 입장은 “이미 나왔다”

사실 그동안 정씨의 삼성 승마지원에 대한 설명은 지난 1월 2일(현지시각) 덴마크 현지 경찰에 의해 체포됐던 시기 현지 법정에서 국내 기자들과 나눈 인터뷰와 지난달 덴마크 현지 언론매체인 엑스타블렛과의 옥중 인터뷰 그리고 <연합뉴스>와의 인터뷰 내용이 전부다.

1월 당시 정유라씨는 자신을 둘러싼 기자들에 덴마크에는 지난해 9월 말에 왔고, 독일 슈미텐에는 잠깐 방문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측이 구입해준 말에 대해서는 삼성이 차와 말을 전부 가지고 가 자신은 전혀 모르는 상태로, 어린 말과 한국에서 가지고 온 말 한 필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특히 자신은 최씨의 승마계 측근인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로부터 “삼성이 승마선수 6명을 뽑아서 말을 지원해주니 타보지 않겠느냐”라는 말을 듣고, 독일에서 승마훈련을 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지난달 옥중 인터뷰에서도 삼성이 지원하는 승마훈련에 대해서도 언급했는데 당시 정씨는 “삼성이 승마선수 6명을 후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삼성이 항상 선수들을 후원하고 말을 사주기 때문에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현재까지 나타난 삼성 측의 승마 지원에 대한 정씨의 간략한 입장으로만 본다면, 과연 그가 향후 검찰 조사와 재판 증언에서 특검과 삼성을 위해 어떤 말을 할지 예측 불가능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삼성 측의 재판에서 중요하게 반영될 수 있는 정씨의 핵심 입장은 이미 전부 나왔다는 설명이다.

정씨의 인터뷰는 삼성으로부터 지원받은 차와 말은 자신들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것과 한국에서 자신의 말을 가지고 왔다는 것 그리고 삼성과 대한승마협회가 주도해 승마선수 6명을 뽑아 훈련을 지원한다는 ‘함부르크 프로젝트’가 특정 선수의 단독 지원이 아닌 다른 승마선수도 공동으로 후원하는 계획이었다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씨는 삼성전자의 승마선수에 대한 지원이 흔하게 있기 때문에 무엇이 논란거리가 되는지 이해할 수 없으며, 함부르크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6명의 승마선수를 후원’하는 줄로만 알고 있는 정도였다.

이 함부르크 프로젝트의 실체는 현재 특검과 삼성 간의 재판에서 치열하게 공방이 오가고 있는 논란거리다.

해당 프로젝트는 삼성전자 측이 정유라씨를 포함한 국내 마장마술 승마 유망주들과 장애물 선수 등을 선발하고, 이들을 독일 함부르크에 있는 임대 마장에 전지훈련을 보내 2018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을 목표로 훈련시키는 프로그램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경 언론보도 등을 통해 삼성이 함부르크 프로젝트를 명목으로 정유라의 독일 전지훈련을 단독으로 지원하고 있었고, 코어스포츠와의 컨설팅 용역 계약 및 정유라에 명마를 제공했다는 소식이 퍼지며 잡음이 일었다.

특검 측은 관련 문제가 언론을 통해 불거지자 삼성 측이 사태 수습을 위해 다른 선수를 부랴부랴 독일 전지훈련에 포함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때문에 이 프로젝트가 삼성이 다른 승마선수를 지원하는 것처럼 가장하며, 사실은 다른 선수는 배제한 채 최씨 모녀에 우회적 지원을 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정씨의 현재 입장으로만 본다면, 함부르크 프로젝트가 정씨의 단독 지원이었다는 특검 측의 주장과 정반대로 향하고 있다.

오히려 함부르크 프로젝트를 단순히 삼성이 ‘6명의 승마선수를 지원’하는 것으로만 알고 있는 정씨의 입장이, “정유라만을 단독으로 지원하려 하지 않았고, 다른 선수들도 지원하려 했다”라는 삼성 측의 주장과 상응하고 있다.

정씨와 같이 함부르크 프로젝트에 대해 특검 측의 주장과 배치되는 증언은 재판 과정에서 속출하고 있다.

우선 지난달 18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2형사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열린 ‘최서원(최순실) 뇌물수수 혐의 제3회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종(55ㆍ구속기소)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의 증언은 특검 측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지 못하고 있다.

김종 전 차관은 지난 2015년 10월 5일 박상진(64) 전 삼성전자 사장(전 승마협회 회장)을 만나 “정유라가 있는 독일에 가서 정유라 승마훈련 지원에 대한 계약을 코어스포츠와 체결했다. 정유라만 지원한다면 너무 티가 나서 다른 선수들도 함께 지원 하겠다”라는 이야기를 들은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재판에서 밝혀진 김종 전 차관의 특검 진술조사와 증언 내용에 따르면, 삼성 측이 해외 전지훈련 지원을 위해 다른 선수들을 같이 뽑았지만 최순실씨 측의 반대로 나머지 선수들을 독일행 대신 한국에서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위해 보류 중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16년 9월 말 경, 박상진 사장은 언론에서 제기한 의혹으로 인해 삼성 내부가 발칵 뒤집히자, 독일에 가서 최순실씨를 만났고 정유라 지원 전반에 대해 상의하면서 “정유라 지원은 올해까지만 하겠고, 삼성이 사줬던 말을 다른 것으로 바꾸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 측 입장에서도 독일 승마훈련 지원이 정유라 단독 지원이라고 비춰지는 것에 상당한 거부감을 느꼈고, 함부르크 프로젝트에 일부 최순실씨의 입김이 작용했을 지라도 적어도 삼성이 전적으로 최씨에게 휘둘리려 하지는 않았다는 설명이었다.

또 지난 2일 삼성 측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최준상 전 국가대표 승마선수도 지난해 6월 황성수(55) 전 삼성전자 전무(전 승마협회 부회장)로부터 함부르크 프로젝트에 대해 제안을 받았고, 같은 해 10월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자 황성수 전무로부터 “삼성이 (함부르크 프로젝트의)지원을 잘 준비하려고 했는데 (언론보도가)억울하다”라는 연락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최준상씨는 황 전무로부터 “언론에서 제기하는 의혹이 억울하니 일전에 이야기했던 해외전지훈련 프로그램을 진행하려고 한다”며 “위에서 결정했으니 2016년 12월 1일 독일에 가서 삼성이 지원해주는 전지훈련을 받을 수 있겠는가, 마장마술 선수인 김00와 최00에게도 이야기를 해놨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특검 측이 이를 두고 삼성의 정유라에 대한 단독 지원 사실이 크게 알려지면 문제가 될 수 있어 이를 막기 위해 여러 명의 승마선수를 지원하는 것처럼 가장하기 위함이 아니었는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자, 최준상씨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최순실과 같은 주장 펼칠 정유라, 특검의 삼성 혐의 입증도 ‘난항’ 예고

정유라씨가 지난 1월 덴마크 법정에서 기자들에게 지난해 9월 덴마크에 왔다고 밝힌 부분도 현재까지 함부르크 프로젝트에 관해 나온 재판 상 증언에서 ‘자연스럽게 들어맞는 대목’이다.

지난 17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제14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최씨 소유의 독일 비덱 타우누스 호텔에서 커피숍 운영 및 영수증 관리 업무를 담당했던 김 모씨의 증언에서 이를 살펴볼 수 있다.

김씨는 당시 재판에서 자신이 함부르크 프로젝트에 대한 예산서 작성 업무를 담당했던 일에 대해 밝히며, 이 프로젝트가 정씨를 위한 단독 지원처럼 보이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김씨는 “2016년 3분기와 4분기 예산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함부르크 프로젝트를 본 적이 있고, 두 예산서를 동시에 수정했었다”라며 “함부르크 프로젝트의 계약관련 부분은 직접적으로 모르지만, 예산서 내용에는 선수들의 말 비용, 숙소비 등의 항목이 나열돼 있었는데 정유라씨는 ‘이미 덴마크에 훈련을 갈 계획이었기 때문에’ 함부르크의 또 다른 곳에서 다른 선수들의 훈련을 진행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만약 정씨가 검찰 조사와 재판에서 자신의 지난 9월부터의 덴마크 행에 대해 “이미 계획돼 있던 훈련 때문”이라고 밝힌다면, 함부르크 프로젝트가 자신의 단독지원이라는 특검 측이 관련 주장을 입증하기 곤란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함부르크 프로젝트가 특검 측의 주장대로 자신만을 특별하게 지원하는 것이었다면, 이를 놔두고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기 전부터 다른 지역으로 훈련갈 계획을 세울 이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최순실씨는 자신의 재판에서 정씨가 이미 독일에 자주 훈련을 갔었고, 삼성과 승마협회가 지원하는 해외 전지훈련 프로젝트에 마장마술 대표선수로서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기 때문에 포함되는 것이 당연할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 정씨가 독일에 훈련을 가면서 이미 자신의 말 3마리를 가져갔고, 삼성의 지원을 통해 훈련용으로 사용한 마필(비타나V, 라우싱1233, 살시도)도 삼성에 소유권이 있었으며 실질 소유권이 최씨 모녀에게 있다는 의혹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 주장이다.

정씨 역시 검찰 조사와 재판 증언에서 자신의 어머니와 같은 논리를 펼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만약 그가 함부르크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다른 선수들도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국가대표로서 당연히 참가한다고 밝히거나, 마필 소유권에 대해서는 “모르겠다, 어머니가 결정했다”라고 말한다면 삼성 측의 최씨 모녀에 대한 대가성 승마지원 의혹은 더욱 입증하기 힘들어질 뿐만 아니라, 재판의 향방이 전적으로 삼성 측에 쏠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한민철 기자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