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곶감 빼먹듯’ 삼성 돈 횡령한 崔… 朴이 도왔나

2015년 9월 13일 VIP 지시사항, 崔의 독일 금고지기 이름·연락처 담겨

삼성에서 받은 승마지원 용역비로 호텔 산 최순실… 삼성 계좌에도 손댔나

추가 안종범 수첩 사실로 밝혀질 경우, 박근혜·최순실은 벼랑 끝으로

한민철 기자

검찰이 국정농단 사태의 주역 최순실(61·구속기소)씨의 딸 정유라(21)씨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재검토와 박근혜(65·구속기소) 전 대통령의 재판 등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 가운데, 안종범(58·구속 기소)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새로운 업무수첩을 확보했다. 안 전 수석이 지난 2015년 9월경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이 업무수첩에는 당시 박 전 대통령의 지시사항들이 명시돼 있고, 박 전 대통령이 최씨의 뇌물수수 과정에 직접적으로 개입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부분도 담겨있어 향후 검찰 측의 최씨 및 박 전 대통령 등에 대한 혐의 입증에 결정적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현재 언론에는 이 수첩의 내용 중 지난 2015년 9월 13일 VIP(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사항이 공개된 상태다. 이에 대한 의미를 두고 다양한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박 전 대통령이 최씨의 횡령을 돕기 위한 지시였을 것이라는 정황이 포착됐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본부(지검장 윤석열)는 지난달 말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보좌관이었던 김 모씨를 소환해 조사를 펼쳤다. 그는 이미 지난해 11월과 올해 1월 ‘안종범 수첩’ 56권을 검찰에 제출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수첩은 지난 2015년 9월경의 업무 흔적이 누락돼 있었다. 검찰 측이 김씨에 누락분의 존재 유무 등을 추궁한 결과, 그로부터 안 전 수석의 나머지 업무수첩 7권을 최근 추가로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MBN이 지난 13일 단독 보도한 안 전 수석의 해당 업무수첩 내용 중에는 최순실씨가 대기업들로부터 뇌물을 요구하고 수수하는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직접적으로 개입한 것으로 보이는 지시사항들이 날짜별로 구체적으로 제시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 수첩의 2015년 9월 13일 VIP 지시사항이 기록된 페이지에는 최씨의 독일 현지 금고지기로 알려진 이상화 전 KEB하나·외환은행 독일 프랑크푸르트 지점장의 이름과 그의 독일 연락처가 나타나 있었다.

기존에 제출된 안종범 수첩의 내용이 현재까지 검찰과 특검 조사 그리고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된 재판에서 밝혀지고 있는 사실과 대부분 일치한다는 점을 비춰 봤을 때, 추가로 제출된 7권의 업무수첩의 내용 역시 사실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에 이 수첩 내 2015년 9월 13일의 내용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직접 지시했을 것이라는 주장에 무게가 쏠리고 있다.

만약 박 전 대통령이 그날 안 전 수석에게 이상화 지점장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알려주면서 그에게 연락을 취해보라고 지시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 이유가 무엇이며 이후 어떤 조치가 취해졌는지에 대해 궁금증이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

안종범 전 수석이 이상화 전 지점장의 이름과 연락처를 수첩에 기재한 다음 날인 9월 14일, 삼성전자는 같은 해 8월 26일 213억원 규모의 용역계약을 체결한 최순실씨의 실소유사 독일 승마 컨설팅 업체 ‘코어스포츠’에 81만 5000유로(당시 약 10억 8000만원)를 용역대금 명목으로 송금했다.

우선적으로 주목해볼 점은 당시 삼성 측이 어떤 방식으로 코어스포츠에 해당 용역대금을 송금했냐는 것이었다.

이는 지난달 3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 심리로 진행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그룹 전·현직 임원들의 대한 21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 등에 의해 밝혀진 바 있다.

박 전 전무는 과거 최씨의 딸 정유라씨의 승마코치이자 최씨의 승마계 최측근으로 코어스포츠의 설립 및 초창기 운영에 있어 깊게 관여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사실 삼성전자가 코어스포츠에 보낸 용역대금은 KEB하나·외환은행 프랑크푸르트 지점에 개설돼 있던 코어스포츠의 계좌로 입금됐다.

이 용역대금이 집행되기 며칠 전인 9월 10일, 박원오 전 전무는 황성수 삼성전자 전 전무(전 대한승마협회 부회장)에게 81만 5000유로의 오퍼레이팅 코스트(Operating Cost)등 내용이 담긴 인보이스(Invoice·청구서)를 첨부한 이메일을 보냈다.

박 전 전무는 이 이메일의 본문에 ‘추가 부탁은 마필대금 송금을 이곳 하나외환 은행을 거래해 주시면 저희 팀들이 언어문제 등 편하게 거래할 수 있다고 강력히 부탁 드린다고 말씀하십니다. 운영비는 빠르게 부탁 드리고, 자산 건도 차량 등은 바로 계약을 할 수 있게 부탁 드리며, 차량 등록에 관한 회사 내용을 알려주시거나 현지 직원 소개 부탁 드립니다. 마필은 9월 말까지 도착할 수 있도록 바랍니다’라고 명시했다.

박 전 전무는 이 내용 중 ‘강력히 부탁 드린다고 말씀하십니다’에서 말씀을 하신 주체가 최순실씨라고 증언했다. 삼성전자 측이 코어스포츠에 용역대금을 지불하면서 최씨는 마필과 차량 등의 자산대금과 운영대금을 이원화해 관리했다.

그런데 운영대금은 코어스포츠가 마음대로 관리할 수 있었지만, 자산대금으로 구입한 마필과 차량의 경우 소유권이 삼성 측에 있었기 때문에 코어스포츠가 마필과 차량 등의 대금을 지원받기 위해 삼성에 매번 요청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발생할 수 있었다.

또 삼성 측이 한국에서 독일에까지 외환송금을 하는데 시간 상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최씨 입장에서 용역대금을 코어스포츠 독일 계좌로 받는 것이 편의상 바람직했다.

박원오 전 전무는 “최순실씨가 말을 사려고 했는데 (삼성 측에 요청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게 되고, 그러면 원하던 말이 다른 사람들에게 팔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라며 “자신이 원하는 외환은행 구좌를 신설해 거기에 돈을 입금시켜 달라 그렇게 부탁을 하라고 했다”며 당시 마필 대금의 송금을 독일 하나외환은행 코어스포츠 계좌에 해달라고 요청한 경위에 대해 설명했다.

당시 최씨가 단순히 마필을 구입하기 위해 삼성 측에 요청을 하면 시간이 오래 걸렸고, 그 과정에서 원하는 마필을 다른 사람이 먼저 살 수 있어 이를 방지하기 위해 독일 계좌를 개설하려 했다면 그 목적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러나 최씨가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까지 이상화 지점장의 이름과 연락처를 알려주며, ‘최순실의 민원 해결사’ 역할을 했던 안종범 전 수석을 통해 해결하고자 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았던 문제는 따로 있었다.

9월 13일 VIP 지시사항, 삼성 돈 빼먹기 위한 崔의 요청?

이날 재판에서 특검 측은 박원오 전 전무가 황성수 전 전무에게 이메일을 통해 인보이스를 보내기 3일 전인 9월 7일, 두 사람이 주고받았던 이메일 내용을 공개했다.

당시 박원오 전 전무는 이메일에서 코어스포츠가 삼성 측에 요청하는 3가지 내용을 적어 전송했다. 박 전 전무는 코어스포츠 측의 요청이 신속한 송금과 차량구매가격 재검토라고 말했다. 또 그는 마필 대금 송금에 대해 직접 마주에 송금하면 결재 및 송금기간이 지연돼 독일 현지 KEB하나·외환은행에 삼성전자 계좌를 신설하는 방법과 공증·신탁하는 안을 ‘원하신다’라고 적시했다. 삼성의 독일 계좌 개설 역시 최씨의 요청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삼성 측은 안종범 수첩에 이상화 지점장의 이름이 적히고 나서 KEB하나·외환은행 독일 푸랑크푸르트 지점에 삼성전자 계좌를 개설했고, 한국 삼성전자 계좌에서 해당 독일 삼성전자 계좌로 용역대금을 보낸 뒤 코어스포츠 측에 마필 대금을 지급했다.

이 계좌는 삼성이 코어스포츠 측에 지원을 하기 위해 개설됐고, 엄밀히 말해 최씨는 그곳에 있는 자금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물론 코어 측 요청하고, 삼성 측과 KEB하나·외환은행 프랑크푸르트 지점의 승낙 및 승인이 있다면 최씨는 삼성 측 독일 계좌에서 마필 대금 등의 명목으로 돈을 빼서 사용할 수 있었다.

때문에 이 과정에서 최씨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없었던 KEB하나·외환은행 프랑크푸르트 지점 단계를 박 전 대통령과 안 전 수석의 입김을 통해 조용히 해결하려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최씨가 삼성 측으로부터 받은 대금을 자신의 돈처럼 사용하려고 했다는 정황이 여러 증거와 증언을 통해 밝혀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씨는 2015년 9월 14일 삼성 측으로부터 받은 81만 5000유로 중 우리 돈 8억원 가량을 빼내 독일 프랑크푸르트 헤센주(州)에 위치한 최씨 모녀 소유의 부동산 4채 중 유일한 비(非)주택인 ‘비덱 타우누스 호텔’을 곧바로 사들인 것으로 밝혀졌다.

박원오 전 전무가 같은 달 말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국제 승마경기 심판을 보고 29일 이후 독일로 돌아왔는데, 최씨가 호텔을 구입해 모녀가 기존 독일 거처를 옮겨 비덱 타우누스 호텔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박 전 전무는 당시 최씨에게 무슨 돈을 호텔을 매입했는지 물어봤고, 이에 최씨는 ‘회삿돈으로 샀다’라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삼성 측이 코어스포츠에 보낸 81만 5000유로는 계약 상 지출 명목이 오로지 승마 컨설팅을 위해 사용해야 하는 공금으로, 이를 최씨 개인의 명의로 비덱 타우누스 호텔을 구매하는데 썼다면 명백한 횡령죄에 해당했다.

이날 재판에서 특검 측 김영철(44·사법연수원 33기) 특검보가 “최서원(최순실)은 삼성에서 보내준 돈을 자기 돈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이처럼 자기 마음대로 호텔을 구입한 것인가”라고 묻자, 박 전 전무는 “그렇다”라고 답했다.

이에 안종범 수첩에 적힌 9월 13일 VIP 지시사항을 두고 삼성 측의 돈을 자신의 돈으로 생각했던 최씨가 삼성전자의 독일 계좌 역시 마음대로 사용하기 위해 청와대를 이용하려 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다행히도 검찰 측은 새롭게 제출된 안종범 수첩을 토대로, 법원에 독일 삼성전자 계좌의 전체 거래내역을 받을 수 있도록 요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만약 최씨가 독일 삼성전자 계좌에서 자금을 빼간 것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최씨의 추가 횡령과 박 전 대통령의 최씨와의 뇌물수수 공모 관계에 대한 혐의 입증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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