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기회로 입증 가능했던 정유라 혐의… 검찰 후폭풍 넘길 방안은?

사실상 ‘노림수’였던 검찰 첫 번째 구속영장 청구, 정유라에 ‘도주 우려’ 없애준 꼴

정유라 받아온 고액 급여, 이미 한 달 전 밝혀진 사실… ‘뒷북’ 지적

4개 방에서 생활했던 비덱 직원들 “최순실의 전횡, ‘정유라 포함해’ 모를 수 없어”

한민철 기자

국정농단 사태의 주역 최순실(61ㆍ구속기소)씨의 딸 정유라(21)씨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이 재차 기각되면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여론은 그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시킨 법원 영장전담 판사에 비난의 날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정씨에 대한 첫 번째 구속영장 청구가 최씨 모녀에 대한 의혹을 한꺼번에 풀 수 있는 범죄수익은닉 혐의 적용을 위해 ‘버린 카드’라는 주장이 힘을 얻으며, 두 번째 구속영장에서도 고배를 마신 검찰 측의 아쉬운 수사 과정에 대한 지적 역시 만만치 않다. 동시에 향후 재판에서 검찰이 완벽히 밝혀내지 못했던 부분들에 대해 보다 철저한 수사와 판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2일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본부(지검장 윤석열)는 정유라씨에 대해 학사관리 특혜와 입시비리에 대한 업무방해 및 위계공무집행방해 등을 적용해 첫 번째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나 법원은 정씨의 범죄사실 가담 경위와 정도 그리고 검찰이 수집한 증거자료들이 기본적인 수준에 그친 점 등에 비춰 구속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그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곧바로 여론의 비난은 법원의 판단에 향했지만, 검찰 측이 제기한 ‘부족한’ 공소사실로 인해 정씨의 구속영장이 기각됐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게 나왔다.

사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중 청담고 학사 특혜와 이화여대 입시비리를 둘러싼 의혹은 대부분이 드러났고, 혐의 당사자들도 재판에 넘어가 당시 일부는 구형까지 내려진 상태였다.

관련 재판이 마무리 단계에 이르기까지 최순실씨가 전적으로 기획하고 이대 측에 압력을 넣어 부정이 확산됐다는 점만이 나타났을 뿐, 정씨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법원의 판단대로 그가 입시비리를 충분히 인지하고 적극적으로 가담했다는 사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또 정씨가 귀국 전후부터 “엄마(최순실)가 시키는 대로 했다”고 모르쇠로 일관하며, 업무방해 및 위계공무집행방해 사유만으로 법원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는 지적이 일었다.

검찰은 정씨의 주요 혐의에 대한 보강조사를 통해 구속영장 재청구를 계획했고, 지난 7일 전격 귀국한 정씨의 아들과 보모 그리고 정씨의 유럽 도피생활 등을 도운 마필관리사 이 모씨를 곧바로 소환해 조사를 벌였다. 또 같은 날 정씨의 전 남편 신 모씨도 소환해 조사를 진행했다. 이들에게 집중된 조사 내용은 삼성의 최씨 모녀에 대한 승마지원 및 말 세탁 여부 그리고 정씨가 이를 알고 있는지에 대한 부분이었다.

이후 검찰 측은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안종범(58ㆍ구속기소)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업무수첩 7권을 추가 확보했다는 사실을 밝히며, 업무 수첩에 나타난 KEB하나은행 독일 푸랑크푸르트 지점 이상화 지점장을 소환해 정씨 역시 삼성 측의 승마지원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검찰은 마필관리사 이씨의 휴대전화를 압수해 정씨가 덴마크 구치소에 수감됐을 당시 자필로 작성한 편지의 사진파일을 확보, 여기에는 정씨가 삼성의 승마지원에 대한 전례 그리고 몰타 국적 취득 등을 물어보는 내용이 명시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법조계 일각에서는 검찰 측의 정씨에 대한 첫 번째 구속영장 청구가 범죄수익은닉 혐의 보강 조사를 통한 재청구 승부를 위해 일부러 ‘버리는 카드’였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지난 3일 정씨는 법원으로부터 구속영장이 기각되자마자 덴마크에 체류하고 있던 보모 등에게 신속히 귀국하라고 연락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씨가 불구속 상태라면 아들의 귀국을 서두를 것이고, 동시에 검찰이 바라는 시나리오대로 최순실씨 모녀의 독일 승마지원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던 이씨마저 한국에 돌아와 삼성의 승마지원을 통한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보다 확실히 파악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이에 검찰은 지난 12일부터 이틀 간 정씨를 추가 소환해 18일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보강한 정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청구 했다. 그러나 20일 서울중앙지법의 권순호(47·사법연수원 26기)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그에 대한 두 번째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법원은 정씨의 범죄사실 내용과 구체적 행위나 가담 정도가 구속 사유의 필요성을 인정하기 힘들고, 정씨가 아들과 같이 살고 있는 주거상황 등을 고려하면 도주 우려 역시 없다는 설명이었다.

검찰이 일각에서 제기된 버리는 카드라는 노림수를 써가며 정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청구 했지만, 이것마저 기각되면서 사실상 정씨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세 번째 구속영장 청구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혐의를 발견하거나 기존 혐의에 대한 결정적 증거자료가 필요하지만, 현 상황에서는 힘들다는 지적이다. 때문에 검찰이 자충수를 뒀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심지어 검찰은 버리는 카드를 통해 정씨의 아들과 보모, 특히 마필관리사 이씨를 귀국시켜 보강 조사를 벌였지만, 오히려 정씨에게 “제 아들이 지금 들어와 있고, 전혀 도주할 생각도 없다”라는 방어논리를 갖추도록 했다. 이에 법원이 영장실질심사에서 중요하게 검토하는 부분 중 하나인 정씨의 도주 우려마저 검찰이 없애준 꼴이었다.

물론 법조계 일각에서는 권순호 부장판사의 구속영장 기각에 대해 의문을 나타내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법원과 정씨가 밝힌 대로 그는 아들로 인해 도주의 우려가 없지만, 증거 인멸의 우려를 여전히 안고 있다는 지적이다.

본지의 취재에 응해준 법률시민단체 관계자는 “최순실의 공소장에 정유라가 공범으로 적시돼 있고 현재 두 사람이 같은 변호인으로부터 조력을 받고 있다”라며 “정유라가 직접적인 접견으로 최순실과 통하지 않더라도 자신들의 유죄 판결에 영향을 줄 우려가 있는 증거를 충분히 없앨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정유라도 알 수밖에 없었던’ 최순실의 범죄수익은닉 계좌는 따로 있었나

검찰이 공개해 언론을 통해 밝혀진 안종범 전 수석 업무수첩의 KEB하나은행 독일 푸랑크푸르트 지점 이상화 지점장에 관한 내용은 박근혜(65ㆍ구속기소) 전 대통령이 최씨의 독일 승마지원에 대해 관여했다는 증거에 불과할 뿐, 정씨에 대한 혐의 입증에 다가가기에는 부족한 부분이었다.

최씨는 삼성 측과 용역계약을 맺기 위해 독일 승마컨설팅 업체 코어스포츠를 설립했고, KEB하나은행 독일 푸랑크푸르트 지점에서 법인 계좌를 개설했다.

이번에 안종범 수첩이 큰 논란이 되는 이유는 수첩에 VIP(박근혜) 지시사항으로 이상화 지점장의 이름과 연락처가 적힌 다음날인 2015년 9월 14일, 삼성이 해당 계좌에 10억 8000만원의 용역대금을 송금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씨와 직접적으로 연관시켜 볼 수 있는 계좌는 따로 있었다. 그동안 언론 등에서 크게 다루지 않아왔던 코어스포츠의 독일 현지 계좌다.

특검 조사결과 및 국정농단 사태와 연루된 이들의 재판 내용에 따르면, 코어스포츠(2015년 11월 비덱스포츠로 사명 변경)는 삼성전자의 용역대금만을 전용으로 받기 위해 KEB하나은행 독일 계좌를 개설했다.

비덱스포츠 재무담당 직원이었던 장 모씨의 특검 진술 및 재판 증언에 따르면 해당 계좌는 인터넷 뱅킹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지점에 들러 입금을 하거나, ‘최씨의 자필서명이 된’ 송금증을 들고 송금 등을 의뢰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최씨는 장씨를 통해 KEB하나은행 독일 계좌에서 삼성 측으로부터 받은 용역대금을 출금해 해당 자금을 다른 곳으로 옮겼는데, 그곳이 바로 코어스포츠(비덱스포츠) 독일 현지은행 계좌였다.

최씨는 코어스포츠 법인 계좌를 처음에 독일 스파르카세 은행에 개설했지만, 이를 해약하고 커머스뱅크로 변경, 이후 최종적으로 도이치 은행 계좌를 개설해 사용했다. 최씨는 직원들에 지시해 KEB하나은행 독일 계좌에 있던 용역대금 일부를 출금해 이곳 독일 현지은행 계좌에 수시로 넣었다. 은행 계좌를 여러 번 바꾼 이유는 향후 금융당국의 추적을 피하기 위한 목적이었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장씨는 재판에서 최씨가 독일 현지은행 계좌에 자금을 넣어둔 목적에 대해 의외의 증언을 해줬다. 최씨가 KEB하나은행 독일 계좌로는 할 수 없었던 인터넷 뱅킹과 법인카드 사용을 사용하기 위함이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코어스포츠는 KEB하나은행 독일 계좌를 마필 관리나 숙소 운영 등 오로지 승마용역을 위해 필요한 경비를 위해 사용했다.

반면, 굳이 삼성 측에 지출내역을 보고할 필요가 없었던 독일 현지 계좌로는 식비와 직원들의 개인 생활비로 사용했고, 이 통장으로 법인카드를 개설해 정유라씨가 2015년 10월부터 출전했던 프랑스, 폴란드, 덴마크 등 다른 국가에서 개최된 승마대회를 위해 출국했을 때 사용할 목적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때문에 검찰에서 이야기하는 범죄수익을 은닉하거나 사적으로 취득할 목적으로 이 독일 현지 계좌와 법인카드가 사용됐을 가능성이 높았다. 물론 정씨의 혐의를 묻기 위해서는 그가 이런 부분을 인지할 수 있었는지의 여부다.

2015년 11월 18일 장씨는 최씨의 지시로 코어스포츠 계좌에서 최씨 개인계좌에 5만 4786.35유로를 송금했다. 그는 이것이 최씨가 코어스포츠 법인 설립 전에 개인자금으로 사용했던 돈을 코어스포츠 용역대금을 통해 보전받기 위한 목적으로 지시를 내렸다고 증언한 바 있었다.

또 최씨는 2015년 9월 14일 삼성 측으로부터 받은 용역대금 10억 8800만원을 숙소 명목으로 개인 명의의 비덱 타우누스 호텔을 사들였다.

코어스포츠에 약 8명의 직원밖에 있지 않았고, 숙소였던 비덱 타우누스 호텔 4개방에서는 회사 안에서 이뤄지는 거의 모든 이야기가 오고 갔다.

코어스포츠(비덱스포츠) 전 관계자들의 재판 증언에 따르면, 정씨를 포함한 직원들이 삼성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았고 최씨가 회사 계좌를 통해 개인자금 용도로 사용했다는 점 그리고 호텔을 구입했다는 이야기가 자신들 사이에서 오르내리고 있었다.

말세탁 이뤄지기 직전까지 승마대회 나갔던 정유라… 檢ㆍ法, 설득력 떨어지는 변명에 넘어갔나

정씨의 두 번째 구속영장 청구를 위한 소환 조사가 펼쳐지며, 검찰이 언론 등을 통해 새롭게 밝힌 사실은 삼성으로부터 송금 받은 코어스포츠 용역대금으로 정씨가 매달 급여를 수령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급여 수령 문제는 전혀 새로운 사실이 아니었다. 이는 지난달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제14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비덱 타우누스 호텔 커피숍 운영 및 영수증 관리 업무를 담당했던 김 모씨와 앞서 언급했던 비덱스포츠 재무담당 직원이었던 장씨의 재판 증언 등에서 이미 다 밝혀진 상태였다.

이날 재판에서 특검 측은 당시 코어스포츠의 독일 현지 회계사무실에서 김씨와 장씨 등에 보냈던 코어스포츠 직원들의 세전ㆍ후 급여 자료를 공개했다. 여기에서 장씨 등은 월 급여로 1500유로에서 1800유로를 받았던 반면, 최씨는 8000유로로 가장 많은 급여를 받고 있었고 다음으로 정씨가 5000유로를 받고 있었다. 정씨가 받았던 5000유로는 현재 한화 약 630만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당시 직원들의 급여는 모두 계좌를 통해 지급되고 있었다고 밝혀진 만큼, 정씨 역시 자신의 개인 계좌에 이 거액의 급여를 받고 있던 사실을 모를 수 없었다.

정씨 역시 검찰 조사에서 급여를 받았다는 부분을 인정했고, 자신과 최씨에게 거액의 급여를 제공한 출처가 어딘지 정말 몰랐는지 그리고 이에 대한 정씨의 방어논리가 설득력이 있었는지에 대한 보다 강력한 검찰 조사와 법원의 현명한 판단이 필요했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 정씨가 ‘말 세탁’ 의혹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고 밝힌 부분에 대해 재반박을 하지 못하고 법원의 판단에 넘긴 것 또한 아쉽다는 목소리다.

이 말 세탁은 지난 2016년 10월 최씨 모녀에 대한 삼성 측의 지원이 국내에서 문제로 불거지자 최씨 측 사람들과 삼성 측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전 대한승마협회 부회장)가 만나 정씨가 타고 있던 삼성이 지원한 마필인 살시도와 비나타V를 각각 스타샤와 블라디미르로 교환하는 계약을 체결한 것과 관련된 의혹이다.

당시 정씨는 이미 같은 해 9월 경 독일 슈미텐에서 덴마크 올보르로 거주지를 옮긴 상태였다. 만약 정씨가 장시간 말에 관심을 놓고 있었다면, 이 말 세탁 부분에 관해서는 모를 수 있었지만 정씨는 8월 27일부터 이틀 간 오스트리아와 9월 22일 독일에서 개최된 국제 마장마술대회에서 여전히 살시도와 비타나V 그리고 라우싱을 탄 채 참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말 교환 계약이 이뤄지기 바로 직전까지도 정씨는 이 말들로 대회에 출전했던 상태였고, 공교롭게도 특검 측이 확보한 최씨의 당시 항공권 발권 내역을 보면 말 교환 계약이 끝난 뒤 정씨가 있는 덴마크 올보르로 돌아와 정씨와 만났던 것으로 나타났다.

약 10일 전까지 자신이 타고 있던 말이 다른 말과 교환됐고, 정씨가 최씨로부터 그 이유를 접하지 못했다면 이 역시 납득할 수 없는 변명에 불과했다.

특히 최근 박재홍 전 한국마사회 승마팀 감독이 법정에서 증언한 새로운 내용에 따르면, 2015년 11월 독일 경매행사인 PSI 옥션(Auction) 행사장에서 정씨와 우연히 마주쳐 전 남편 신씨 그리고 마필관리사 이씨와 함께 마장마술용 마필의 경매를 알아보고 있었다. “엄마가 알아서 했다”라는 정씨의 해명과는 다르게 그가 자신이 탈 마필에 대해 주도적으로 알아보거나 결정을 하려 했다는 사실로도 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두 번째 구속영장 청구 실패에 대해 법원뿐만 아니라 검찰 측에 비난이 일며, 부족한 수사 과정에 대해 아쉬움을 지적하고 있다. 그만큼 향후 정씨에 대한 재판과 추가 혐의 입증에 대해서는 정씨의 설득력 떨어지는 방어논리에 대비해 보다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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