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응문건 없었다’는 우병우… 민정수석실, ‘위증 방관’ 정황 포착

禹의 ‘법적검토’ 보고서, 안종범 감찰 빠지고 최순실 개인비리에 선 그어

민정수석실 법적검토 통해 작성된 정책조정실 자료, ‘위증 방관’ 내용도 담겨

검찰, ‘대응문건을 작성한 적이 없다’는 禹 위증 밝혀낼 수 있나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모르쇠' 작전을 계획하며,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등의 위증을 사실상 방관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연합)
한민철 기자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돼 재판을 받고 있는 우병우(50ㆍ불구속기소)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안종범(57·구속기소)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등의 ‘모르쇠’ 답변을 사전에 검토하며 사실상 위증을 방관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사실은 당시 국정감사가 있기 전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법적 검토를 마친 뒤 안종범 전 수석에 전달해 작성된 자료에서 밝혀졌다. 여기에는 ‘대응문건’과 ‘증거인멸’에 대해 부정해 왔던 우병우 전 수석의 입장과 배치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지난해 12월 22일 ‘최순실 게이트’ 국회 국정조사 특위 청문회에서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게 같은 해 10월 20일 청와대에서 열렸던 대통령 수석 비서관 회의(이하 대수비)에 관해 질의했다.

이는 당시 미르ㆍK스포츠재단 관련 비선실세 최순실(61ㆍ구속기소)씨의 개입 의혹을 두고 JTBC와 경향신문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하자, 박근혜(65ㆍ구속기소) 전 대통령 주재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우병우 전 민정수석, 김성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 등 청와대 참모진이 진행한 대책회의였다.

그런데 이날 회의가 있기 약 일주일 전인 10월 12일, 박 전 대통령을 제외한 나머지 3명의 수석들이 면담 자리를 마련해 미르ㆍK스포츠재단 관련 의혹보도에 대한 대응방안과 비선실세 존재 인정 여부 등 대통령의 대수비 말씀자료에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지 의견을 나눴다.

우병우 전 수석도 이를 국조특위 청문회에서 인정한 바 있다. 이날 청문회에서 김한정 의원이 “대수비 전에 대통령과 상의를 한 적이 있는가”라고 묻자, 우 전 수석은 “관련 수석들끼리 회의를 했던 것 같다”라며 “제가 검토회의에 간 적이 있다”고 답했다.

3명의 수석들 간의 검토회의 이후 정책조정수석실을 통해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미르ㆍK스포츠재단 관련 비선실세 언급에 대한 검토의견’ 제하의 대통령 말씀자료 준비 문건이었다.

현재까지 검찰 수사 등을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여기에는 ‘대수비 시 비선실세 논란 관련 적극적 언급 필요’라는 문건의 작성 취지가 나타나 있었다.

또 그 이유에 대해 ‘JTBC와 경향신문 보도 이후 새로운 이슈가 부각돼 비선실세에 대한 공세가 더 거세질 것으로 예상, 이런 새로운 논란을 조기에 차단할 필요’ 그리고 ‘야당과 언론의 공세를 막고 국민여론을 전환, BH(청와대)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여당(당시 새누리당)에 명분과 힘을 실어줄 필요’ 등의 내용이 적시돼 있었다.

안종범 전 수석은 이 검토의견서를 정리한 파일을 대통령의 확인을 받기 위해 정호성(48ㆍ구속기소)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의 휴대전화에 전송했다.

향후 국정농단 사태가 검찰 조사로까지 크게 번지자, 검찰 측은 정 전 비서관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면서 그의 휴대전화를 압수해 해당 문건을 확보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2월 국회 국조특위 청문회에서 질의하는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연합)
그런데 국조특위 청문회에서 김한정 의원은 검찰 측 정 전 비서관에 휴대전화에서 확보한 10월 20일 대수비 당시의 문건은 한 가지가 아니었고, 대통령 말씀자료를 위한 법률검토 보고서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 의원은 우 전 수석에게 “(수석들 간 회의에서) 법률의견은 냈었는가”라고 질의했다. 동시에 김 의원은 이 법률검토 보고서가 민정수석실에서 작성했는지의 여부와 대수비 당시 민정수석실에서 청와대의 법적 대응이나 증거인멸 관련 내용을 문건에 담았는지에 대해 집중 추궁했다.

이에 우병우 전 수석은 “법률적으로 문제가 있는지 검토는 해봤다”라며 “(미르·K스포츠)재단의 실체를 알고 문제가 있다 없다고 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말씀자료를 쓰는 것이 어떤지 같이 봐줬다”라고 말했다.

또 김 의원이 언급한 법률검토 보고서에 대해 우 전 수석은 해당 사실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어떤 것 말씀하시는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최순실 개인문제로 선 그으려 했던 우병우의 법적 검토 보고서

국조특위 청문회 당시 정호성 전 비서관에 대한 검찰 조사가 한창으로 검찰 측은 이 문건에 대해 외부로의 노출을 제한했었다.

때문에 이날 청문회에서 김한정 의원도 해당 보고서 중 ‘재단 설립과정과 대기업 모금은 문제가 없지만, 재단의 자금 유용이 있다면 문제가 있다’ 그리고 ‘법적 문제가 없으니 전면 부정하는 취지로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대응해야’ 등의 내용만을 간단히 언급한 채, 해당 문건의 구체적 부분과 이것의 작성 경위 등에 대해서는 밝혀내지 못했다.

이에 우 전 수석은 고개를 저으며 “대응문건이나 증거인멸 문건은 작성한 적 없다”라고 부정했다.

국조특위 청문회 당시 김한정 의원이 문제를 제기한 해당 보고서를 살펴보는 우병우 전 민정수석. (사진=연합)
사실 이날 국조특위 청문회 이후 박영수(65ㆍ사법연수원 10기) 특별검사팀의 조사가 진행된 뒤, 해당 법률검토 보고서는 한 유력매체에서 확보해 그 내용이 보도된 바 있다. 이 문건의 정확한 명칭은 법률검토가 아닌, ‘법적 검토’라는 이름의 보고서로 제시돼 있었다.

지난 3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이영훈) 심리로 열린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국회에서의 위증 등 혐의에 관한 3차 공판에서는 이 보고서에 대한 전문 내용이 공개됐다.

여기에는 앞서 언급한 검토의견 문건 중 ‘대수비 시 비선실세 논란 관련 적극적 언급 필요’의 세 번째 이유를 제시하는 부분에 ‘향후 법적인 문제까지 예방할 수 있음(민정수석 검토의견)’이라는 내용이 적시돼 있었다.

또 같은 문건의 말미에는 ‘말씀하신 것에 대한 법적 검토도 완료해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되며 법적검토 내용은 별첨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나타나 있었다.

이어 검토의견 문건 다음 페이지에는 법적 검토 보고서가 첨부돼 있었다. 물론 이는 검토의견 세 번째 이유에 나온 대로 민정수석실, 즉 우병우 전 수석 측이 검토해 작성한 것이 분명했다.

이날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정호성 전 비서관도 “(안종범)정책조정수석이 말씀자료 관련해서 보고를 올리는데 법적으로 필요한 검토를 민정수석께 의뢰해서 민정수석실에서 검토해 안종범 수석에게 준 것”이라고 증언했다.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 (사진=연합)
여기에는 앞서 김한정 의원이 지적한대로 최순실씨의 미르ㆍK스포츠재단 설립과 모금 과정이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고, 형법상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의 경우 공무원이 주체가 되기 때문에 민간인인 최순실씨는 해당 죄가 성립이 되지 않는다는 설명이 나타나 있었다.

또 최씨가 재단에서 지원받은 자금을 유용했다면 횡령죄가 성립할 여지가 있지만, 현재까지 재단에서 최순실씨 측에 자금을 임의로 지원한 정황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당시까지 언론을 통해 드러난 해당 보고서의 내용만을 파악해 봤을 때, 우 전 수석이 민정수석으로서 미르ㆍK스포츠재단에 대한 안종범 전 수석 등 청와대 인물들의 개입에 대해 밝혀내려 하지 않고 이를 최씨의 개인적 비리 또는 재단 내부의 문제로 선을 그으려 했을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은 충분히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만을 두고 우병우 전 수석이 최순실씨를 비호하고 박 전 대통령의 보호막 역할을 하기 위해 해당 법적 검토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보기에는 지나친 해석이 될 수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정호성 전 비서관의 법정진술대로 민정수석실에서 대통령 말씀자료를 위한 법률자문을 하는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고, 우 전 수석의 청문회 해명대로 그가 대응문건 또는 증거인멸 문건을 작성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후 해당 법적 검토 보고서를 토대로 안종범 전 수석 측 김 모 보좌관이 추가적으로 작성해 미르ㆍK스포츠재단 관련자 등에게 전달한 ‘현재상황 및 법적검토’라는 자료에는 당시 민정수석실에서 해당 법적검토 문건을 통해 향후 대응책을 제시한 정황이 담겨있었다.

민정수석실에서 나온 “애매하거나 답변하기 곤란한 사항에 대해 ‘모르쇠’”

‘현재상황 및 법적검토’ 자료의 법적검토 부분에는 미르ㆍK스포츠재단 자금에 대한 불법적 유용이 없는 상황으로 재단의 인선과정에도 법적인 문제가 없다는 내용과 함께 ‘완료’라는 글씨가 기재돼 있었다.

검찰 측에 따르면 해당 자료를 작성한 김 보좌관이 법적검토 부분에 대해 ‘민정수석실 의견’이라며 ‘완료’라는 글씨 역시 민정수석실의 확인이 완료된 의미라고 진술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안종범 전 수석도 해당 자료의 작성을 최종 지시했다.

특히 여기에는 “애매하거나 답변하기 곤란한 사항에 대해 ‘기억 못함’, ‘잘 모름’으로 답변해도 무방”이라는 내용도 적시돼 있었다.

검찰 측은 우 전 수석의 재판에서 해당 자료를 두고 “당시까지만 해도 청와대에서 미르ㆍK스포츠재단, 최순실 관련 의혹에 대해 비선실세의 존재를 공개하지 않고, 각 재단도 전경련 주도로 설립돼 출연금을 자발적으로 낸 것이라고 ‘대응기조’를 정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검찰 측은 안종범 전 수석이 김 보좌관을 통해 재단 관계자 등에게 해당 자료를 전달하면서, 자료에 나온 내용을 토대로 허위진술 등의 대응을 하라고 요청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또 안종범 전 수석이 이승철 전 전경련 부회장 등에게 대수비 다음날인 10월 21일 국회 국정감사와 향후 검찰 조사에서 전경련 주도로 두 재단이 설립된 것으로 허위 진술을 해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현재상황 및 법적검토’ 자료의 작성을 비롯해 안 전 수석의 이런 대응 역시 법적검토를 완료해준 민정수석실 즉 우병우 전 수석 측을 통해 이뤄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10월 21일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그가 이날 국감에서 국회의원들의 질문에 모르쇠로 일관한 것이 민정수석실의 법적검토를 통해 나온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연합)
실제로 안종범 전 수석과 이승철 전 부회장은 10월 21일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해당 자료에 담긴 ‘기억 못함’ 또는 ‘잘 모름’이라는 작전을 그대로 이행하듯, 국회의원들의 청와대와 미르ㆍK스포츠 그리고 최순실과의 연루에 대해 추궁하자 “수사과정이라 말을 할 수 없다”라고 입을 모으는 등 모르쇠로 일관했다.

전혀 모르는 사항이 아닌 ‘애매하거나 답변하기 곤란한 사항’, 즉 알고는 있지만 말해서는 안 되는 질문에 대해 ‘모른다’라고 답변하라는 우병우 전 수석 측의 작전에 대해 합법적 위증 또는 위증을 방관했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사진=연합)
특히 이는 국조특위 청문회에서 우 전 수석의 ‘대응문건을 작성한 적이 없다’라는 해명이 거짓일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중요한 단서가 되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우 전 수석 측 변호인은 재판에서 “피고인(우병우)은 당시 정책조정실에서 대통령에게 말씀자료를 보고해야 한다며 법적문제에 관해 검토를 해달라고 해 민정비서관과 행정관에게 언론보도를 토대로 법적 내용을 검토해 정책조정실에 전하라고 지시했다”라며 우 전 수석 측이 대응문건 작성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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