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무리한 요구, ‘보복 인사’ 만들었나

佛 순방 앞뒀던 박 전 대통령, ‘엎질러진 물 못 담았다’며 문책성 인사했나

프랑스 측 무리한 요구 있었던 장식미술전… ‘정도 지켰던’ 국립중앙박물관

청와대 압력에 양보 거듭했던 문체부, 결국 관계자 ‘살생부’에 올라

한민철 기자

소문으로만 무성했던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 인사들과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들의 대한 ‘보복성 인사조치’의 전말이 밝혀졌다. 박근혜(65ㆍ구속기소) 전 대통령의 지나친 프랑스 사랑에서 비롯된 인사 농단 중 하나로 해석되고 있다.

지난 2015년 말 한국ㆍ프랑스 수교 13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프랑스 장식미술전’이 추진됐다. 이는 파리 루브르 국립장식미술관과 콜베르재단이 공동으로 주최해 지난해 5월 12일부터 8월 28일까지 국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다.

행사는 프랑스 장식미술의 전통과 현대적 계승 양상 등을 주제로 프랑스 명품 업체의 연합체인 콜베르재단의 특성 상 프랑스 명품 등 총 270점의 장식 미술품을 전시하는 내용이었다.

지난 2013년 1월 해당 미술전에 대한 첫 제안이 나온 뒤, 행사 개최를 위해 약 2년에 걸쳐 국내 국립중앙박물관과 프랑스 파리장식미술관 측의 협상이 이어졌다.

2015년 12월 말 주한 프랑스 대사와 루브르 박물관 원장 등이 8차례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막바지 협상 단계에 달했지만, 미술전 개최를 3개월 앞둔 지난해 2월 17일 국립중앙박물관과 프랑스 측이 의견을 좁히지 못한 채 최종 무산됐다.

당시 국립중앙박물관과 프랑스 측은 콜베르 재단에서 프랑스산 명품인 루이비통까지 전시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하며 이를 수용할지의 여부를 두고 마찰을 빚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측은 시판 중인 루이비통 상품의 전시는 전통과 현대적 계승이라는 주제에 맞지 않았고, 대규모 행사가 자칫 상업적 성격이 짙은 전시회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내 파리 장식미술관에서도 루이비통 등 명품의 전시가 이뤄지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시판 중이지 않은 안티크(Antique) 성격의 전시품에 제한됐을 뿐 당시 프랑스 측의 요구를 전적으로 받아들였다면 국가를 대표하는 공공박물관이 명품 판매장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상당했다.

결국 2015년 12월 말 전시회가 무산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들려왔고, 갑자기 청와대 측으로부터 문화체육관광부와 소속부서인 박물관 정책과에 압력이 들어왔다.

지난 10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이영훈) 심리로 열린 우병우(50ㆍ불구속기소)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국회에서의 위증 등 혐의에 관한 4차 공판에서 그에 대한 전말이 밝혀졌다.

당시 전시회 무산에 대해 청와대가 민감하게 반응한 이유는 사실상 박근혜 전 대통령의 프랑스 사랑에서 비롯됐다는 설명이다.

이날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박 모 전 문체부 체육국장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박 전 대통령은 프랑스 순방을 앞두고 있었다.

앞서 지난 2015년 9월 10일부터 지난해 2월 3일까지 프랑스 장식미술관에는 한국 공예전이 열리고 있었고, 프랑수아 올랑드 전 프랑스 대통령이 공예전 내 한복 전시관을 방문했었다는 사실에 박 전 대통령 역시 순방 전 프랑스와 관련된 무언가를 접할 예정으로 청와대 교문수석실에 연관 행사들을 뽑아올 것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대통령은 교문수석실이 가져온 행사 리스트 중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할 예정이었던 프랑스 장식미술전을 골랐고, 이 행사에 참석한 뒤 순방 길에 오를 계획이었다.

한국ㆍ프랑스 수교 13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이었던 미술전이 한순간에 ‘대통령 관심사업’으로 바뀐 것이었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의 순방을 앞두고 해당 전시회가 무산될 것이라는 소식이 들리자, 청와대 측에서 행사 개최를 강행하기 위한 압력이 들어왔던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김종덕(60ㆍ구속기소) 전 문체부 장관은 박 전 체육국장에게 “청와대 김상률 교문수석이 부탁하니 국립중앙박물관장에게 프랑스 측 요구를 수용하는 것이 좋겠다”라는 취지의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밝혀졌다.

때문에 문체부 차원에서 국립중앙박물관에 프랑스 측의 요구에 대해 양보를 하더라도 전시회가 성사될 수 있도록 중재를 섰고, 대책을 마련해 청와대에 보고를 하도록 지시가 내려졌다.

결국 문체부 측은 문제가 됐던 루이비통은 로비에 전시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절충안을 내놓았지만, 지난해 2월 16일 프랑스 콜베르 재단에서는 전시회를 아예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다음날 행사가 최종 무산됐다.

문제는 이후 관련자들에 대한 보복성 문책이 전개됐다는 점이었다. 당시 12월 말에 박물관 정책과장으로 발령을 받았던 김 모 전 문체부 과장은 지난해 6월 13일 소속기관인 국립현대미술단 기획운영 과장으로 전보조치 통보를 받았다. 그는 상관으로부터 해당 인사가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요구로 이뤄진 것이며, 향후 전보조치 사유에 대해 문체부 관련자들을 통해 대통령의 관심 사업이었던 프랑스 장식미술전의 무산이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앞서 언급한 박 전 국장의 경우에도 장식미술전 무산이 하나의 이유가 돼서 지난해 5월 11일 소속기관인 한국예술종합학교 사무국장으로 좌천성 인사조치를 당했다. 6년차 고참급 국장에게는 굉장히 이례적인 인사임에 분명했다.

두 사람 모두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작성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문체부 살생부’에 올라온 이들이었다.

앞서 지난해 2월 29일 박민권 전 문체부 1차관도 경질됐고, 이어 3월 14일 김영나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그리고 곧바로 노태강 전 국립중앙박물관 교육문화교류단 단장(현 문체부 2차관)이 경질됐다.

때문에 당시 해당 인사가 장식미술전 무산으로 인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보복성 경질이라는 목소리와 함께 청와대가 문화예술계 전시에까지 개입하며 권력을 남용했다는 비판이 거셌다.

이날 재판에서 박 전 국장은 국립중앙박물관과 프랑스 측 간 전시회 개최를 위한 2년여 간의 협의에서 청와대의 지시나 도움은 전혀 없었고, 그저 박 전 대통령의 순방에 맞춰 ‘대통령 관심 사업’으로 갑작스럽게 떠오르다보니 청와대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시회의 특성 상 국립중앙박물관과 프랑스 측이 정부의 개입 없이 100% 독자적으로 추진해 왔던 사업이었다. 박 전 국장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하는 전시회의 경우 전적으로 관장이 독립적으로 결정하는 것이며 전시회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한 본부(문체부)나 청와대가 개입한 사례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특히 청와대가 문체부 측에 해당 전시회의 무산을 막아달라고 압력을 넣기 시작한 시기에 이미 프랑스 측은 전시회를 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상태였기 때문에 ‘엎질러진 물에 청와대가 물을 주워 담으라고 한 것’에 불과했다. 결국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나친 프랑스 사랑과 청와대의 무리한 요구가 문체부 살생부를 만들어 억울한 좌천을 빚어냈고, 국가를 대표하는 공공박물관의 방향성을 지키려 했던 이들을 경질시킨 꼴이었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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