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삼성, ‘혐의 입증’ 사활 건 승부, 종반 돌입

재판 결과 따라 요동칠 정치권… 李 무죄 나오면, 벼랑 끝 몰릴 與

최대 핵심증인 朴 불출석, 이재용 운명의 주사위는 崔에게로

이재용 무죄 판결 이후 후폭풍, 野의 국정감사 집중 공세 예상

정유라 폭탄 발언·삼성 경영권 승계 내용 담긴 청와대 캐비닛 문건, 재판 결과에 영향 주나

정황상 증거·관련자 진술만으로도 유죄 판결 가능성 있어

‘잡음만 심한’ 청와대 캐비닛 문건, 삼성 재판에 증거 활용될 가능성 낮아

간접증거 채택된 안종범 수첩, 증거수집 절차 논란에 재판부 관심 멀어지나

삼성에 불리한 진술했던 정유라 증언, 여러 허점 발견에 큰 의미 없어

삼성 재판 최대 핵심증인 박근혜 증언 누락에 재판 결과 오리무중

‘딸을 살리느냐, 마느냐’ 최순실 선택에 달린 이재용 운명

한민철 기자

‘세기의 재판’으로 불리는 이재용(50·구속기소) 삼성전자 부회장 등 전·현직 임원들에 대한 뇌물공여 사건의 결심공판이 내달 4일로 결정됐다. 이 부회장에 대한 1심 구속기간 만료가 같은 달 28일로 다가온 만큼, 재판부와 특검 그리고 삼성 측 모두가 중순을 넘기기 전에 재판을 마무리하겠다는 의지다. 지난 4월 7일 첫 재판 이후 이달 21일까지 총 43회 공판 동안 무려 175명의 증인이 출석했고, 이중 안종범(58·구속기소) 전 청와대 경제수석과 홍완선(61·구속기소)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그리고 국정농단 사태의 주역 최순실(61·구속기소)씨의 딸 정유라(21)씨 등 주요 인물들이 증언에 나서며 특검과 삼성 간 치열한 공방이 이뤄졌다. 그동안 재판에서 특검 측 주장이 정황상 증거에 머물거나 삼성 측 변호인들의 반론에 번번이 막히는 등 혐의 입증에 부족하다는 지적이 이어졌고, 이에 재판 초기 “증거가 차고 넘친다”라고 말했던 박영수(65·사법연수원 10기) 특별검사의 자신감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는 목소리가 점점 늘어났다. 또 지난 36차 공판에서 특검 측 ‘최후의 보루’였던 안종범 전 수석의 업무수첩이 재판부로부터 간접증거로 채택되며 증거능력이 사실상 무력화되자 재판의 승기가 삼성 측으로 기울어 갔다. 그러나 최근 재판의 양상은 급반전을 맞았다.

특검 측 증인 신청에 불출석 의사를 밝혀왔던 정유라씨는 재판 당일이었던 지난 12일 새벽, 특검 관계자와 만난 뒤 마음을 바꿔 증언대에 섰다.

이날 정씨는 삼성 재판의 핵심 쟁점 중 하나인 승마지원 관련 의혹에 대해 삼성 측에 다소 불리한 진술을 펼쳤고, 이후 삼성 측의 최씨 모녀에 대한 명마 지원 및 ‘말 세탁’과 관련된 정씨의 증언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며 여론의 분위기를 뒤집었다.

특히 최근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한 캐비닛에서 박근혜(65·구속기소) 정부 시절 작성된 문건 수백여개가 발견되면서 삼성 측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해당 문건에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경영권 승계 지원 방안 검토 그리고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국민연금의 의결권 사안을 논의한 내용의 메모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 사건 재판에서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 청와대의 개입이 없었다고 줄곧 주장해온 삼성 측에 의혹만이 증폭되고 있고, 특검 측이 이 부분을 남은 공판에 반영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예측 불허의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의 운명을 두고 다양한 추측만이 난무하는 가운데, 재판의 결과가 정치권의 ‘전략적 이유’로 주목을 받고 있고 이로 인해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삼성 재판 1심 선고 후… ‘국정감사’ 벼르는 野

지난해 국정농단 사태가 터진 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에 대한 전국민적 비난이 일었고, 이후 촛불민심에 따른 탄핵정국에 이어 문재인 정부로의 정권교체까지 이뤄졌다.

만약 이재용 부회장 등에 대한 재판 결과가 무죄가 나온다면, 이는 단순히 특검과 삼성 양측만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해당 재판 결과는 국정농단 사태와 연관된 다른 재판에도 파장을 몰고 오며, 무엇보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씨의 재판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특검 측 기소 내용에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씨는 기능적 행위를 분담한 공범으로서 박 전 대통령이 뇌물을 요구했고, 최씨는 이를 수수한 것으로 명시돼 있다.

이 사이에서 삼성 측은 박 전 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최씨 측에 미르재단 자금 출현 및 승마지원 그리고 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 등의 뇌물을 제공했고, 그 반대급부로 청와대의 영향력을 통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을 이뤄나갔다는 설명이다.

이는 곧 삼성 측의 무죄가 밝혀진다면 박 전 대통령과 최씨에 대한 혐의 입증이 난관에 부딪힐 수 있음은 물론, 정권교체까지 이뤄낸 현재 여당을 향해 보수 여론 및 야당으로부터 후폭풍이 불 수 있다는 의미였다.

정치권과 법조계 일각에서는 그 후폭풍 중 하나가 바로 삼성 재판의 1심 선고 직후인 오는 9월 초로 예정된 국회 국정감사라는 지적이다.

본지의 취재에 응해준 국정감사 관련 법률단체 관계자에 따르면, 이미 국회 내 야당 법제사법위원회를 주축으로 한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 삼성 재판의 결과에 따라 이를 올해 국정감사에 집중 거론할 움직임이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만약 삼성 재판의 무죄 판결이 이뤄진다면, 야당 측은 현재 여당의 정권쟁취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및 대통령 탄핵을 이용했을 뿐만 아니라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까지 무리하게 압박한 결과라는 비난의 날을 세우겠다는 계획이다.

나아가 재판 과정에서 잡음으로까지 번진 특검 측의 정황상 증거 및 전문(專門)증거 위주의 혐의 입증에 대한 실패를 지적하고,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을 감행한 특검 및 사법부에 까지 공세를 펼칠 것이라는 목소리다.

법률단체 관계자는 “그동안 여러 법조인들 사이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이 정치권과 여론에 떠밀려 무리하게 추진됐다는 이야기가 많았고, 재판부가 1심에서 삼성 측 손을 들어주면 곧바로 다음 달 열리는 국감에서 야당 측이 관련 이슈를 크게 거론할 예정인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이재용 부회장이 정말 잘못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당사자들만이 알겠지만, 특정인에 대한 구속기소와 재판이란 도덕적 잣대가 우선이 아닌 철저한 법리적 부분으로만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만약 그에게 무죄 결과가 나온다면 특검 측의 무리한 기소였다는 비난을 면하기 힘들고 이는 곧 국감에서 야당 측의 여당 압박용 무기로 쓰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물론 삼성 측이 1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는다고 할지라도 야당 측은 특검 측의 정황상 증거 및 전문증거가 주를 이룬 혐의 입증 과정과 주요 증거의 간접증거 채택 그리고 이를 판결에 반영한 재판부에도 ‘여론과 집권 여당의 눈치를 못이긴 결과’라며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때문에 사법부가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 결정 때 어느 정도 국민여론을 반영했다면, 이번 재판의 1심 판결은 국민여론만큼 정치권의 ‘보이지 않는 감시’로 보다 객관성을 갖출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다.

반면, 특검 측은 향후 재판 결과에 잡음이 일지 않도록 마지막까지 이 부회장 등에 대한 혐의 입증에 총력을 다하겠다는 분위기다.

정황상 증거 등에 대한 지적과 안종범 수첩의 간접증거 채택의 상황일지라도 해당 증거들을 통한 인과관계와 관련자 진술 및 증언이 삼성 측 혐의 입증에 충분히 작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법조계 일각에서도 정황상 증거와 관련자 진술만으로도 이재용 부회장에 유죄를 물을 가능성 역시 있다는 주장이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의원도 작년에 ‘성완종 리스트’에 연루돼 받은 정치자금법 위반 재판에서 정황상 증거와 관련자 진술밖에 없다며 자신의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지만 결국 1년 6개월 실형이 선고됐다”라며 “물론 항소심에서 무죄가 나왔지만, 삼성 측의 경우에도 재판부에서 인과관계 상 설득력이 있다고 판단하면 정황상 증거가 유죄 판결에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특히 그동안 삼성 재판에 대한 언급을 되도록 자제해 왔던 여당 측은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캐비닛에서 삼성 관련 문건이 발견된 뒤 여론 형성에 나서고 있다.

실제로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7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이번에 발견된 청와대 문건이 삼성 경영권 승계를 박근혜 정부에서 도운 정황을 보여주는 자료라며 특검 측에 힘을 실어줬다.

박범계 의원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한 시점이 2015년 12월 17일이고 이후에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이 만났다”라며 “뇌물죄를 유죄로 입증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특검 생각과 다르게 ‘큰 영향력 없는’ 증거·증언

삼성 재판에서 캐비닛 문건 대한 증거 채택은 재판부의 재량에 따라 가능하겠지만, 이에 대한 증거 능력 부여에 있어서는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만약 특검 측이 올해 초 청와대 압수수색 과정에서 해당 문건을 확보했거나 조사 과정 중 적법한 절차에 따라 입수를 했다면 충분히 증거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청와대에서 발견돼 즉시 검찰 또는 특검 측에 제출한 것이 아닌 자체 확인 절차를 거친 뒤 현재 일부만 공개된 자료로, 중간 과정에서 내용물의 흠결이 없다는 점에 신빙성을 의심받을 수 있다.

또 작성 주체 및 내용 확인 절차에 시간이 걸려 서두르더라도 시기상 항소심에서 주요 증거로 채택될 가능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야당 측에서 이번 청와대의 캐비닛 문건 발표를 두고 대통령기록물법 위반이라며 이를 공개한 청와대 대변인을 고발하는 등 잡음이 심한 상황이다.

때문에 캐비닛 문건이 삼성 재판에 결정적 증거가 될 것이라는 박범계 의원의 주장은 실현될 가능성이 높지 않고, 재판부 역시 이를 주요 증거로 보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이번 재판에서 특검 측이 중요시 여기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재판부가 큰 비중 두지 못할 수밖에 없는 증거와 증언은 다수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안종범 업무수첩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이미 해당 증거는 재판부가 간접증거로 채택하며 증거로서의 비중이 많이 떨어진 상태다.

물론 특검 측은 지난 19일 진행된 42회 공판에서도 안종범 수첩의 증거능력 및 이번 재판에서의 역할에 대해 강조한 바 있다.

특검 측은 박 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 간 두 차례 독대 자리에서 오고 갔던 이야기를 토대로 작성된 해당 수첩이 뇌물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안종범 수첩은 기재 내용의 신빙성을 떠나 청와대 캐비닛 문건의 경우처럼 증거 수집절차부터 위법성이 짙다는 이유로 논란이 일고 있기 때문에 재판부가 이를 판결을 위한 주요 증거로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안종범 전 수석은 지난 4일 열린 삼성 재판 35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자신의 업무수첩이 국정농단 사태의 진실을 규명하는 데 증거로 사용되는 것에 대해 찬성을 하는 입장을 밝혔지만, 검찰 측의 증거수집 절차가 적법하지 못했다는 점은 분명히 했다.

검찰 측이 자신에게 업무수첩 39권을 제출하면 이를 열람한 뒤 돌려주겠다고 밝혔지만, 약속과는 다르게 수첩 전부를 압수해 갔다는 주장이었다.

삼성 측 변호인들은 42차 공판에서 안 전 수석이 해당 업무수첩의 소유권을 그의 전 보좌관이었던 김 모씨에게 넘긴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해당 수첩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비(非) 소유권자인 김 전 보좌관에게 제시하며 이를 압수해 갔기 때문에 이는 증거로서 효력이 없다고 강조했다.

또 안종범 수첩의 기재 내용은 엄밀히 말해 제3자의 이야기를 누군가로부터 들은 ‘재전문증거’에 해당하기 때문에 형사소송법 310조 2항에 따라 증거능력을 인정받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안 전 수석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의 독대에 배석해 두 사람의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듣고 수첩에 이를 기재했거나, 이 부회장이 기재 내용을 증명해 줄 수 있는 표시를 한 것도 아니어서 해당 수첩은 재전문증거에 속하는 것이 명백하다는 설명이다.

특히 최근 삼성 재판의 38차 공판에 ‘깜짝 출석’하며 한바탕 이슈를 몰고 왔던 정유라씨의 증언 역시 혐의 입증에 큰 의미가 없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씨의 증언도 자신이 최씨 등 제3자에게 들은 이야기에 불과한 전문증거에 해당하며, 그의 증언에 여러 오류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특검 측은 최씨가 설립한 독일 승마 컨설팅 업체 코어스포츠와 삼성전자 측이 지난 2015년 8월 26일 체결한 거액의 용역계약 그리고 삼성 측의 정씨에 대한 마필 지원 모두 뇌물적 성격이 강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또 지난해 국내 언론을 통해 삼성 측의 승마지원 문제로 시끄러워지자 삼성과 최씨가 말 지원 사실을 숨기기 위해 삼성, 비덱스포츠(코어스포츠의 바뀐 이름) 그리고 말 중개업자인 안드레아스 헬그스트란드 간 마필 교환계약, 소위 ‘말 세탁’이 이뤄졌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날 재판에서도 특검 측은 최씨가 지난해 1월 삼성 측이 지원한 명마(名馬) ‘살시도’에 대해 “네 것처럼 타면 된다. 굳이 돈 주고 사지 않아도 된다”라고 말했다는 정씨의 증언 그리고 삼성 관계자가 살시도의 매입 과정 및 마필 관리에 전혀 관여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통해 삼성이 최씨 측에 뇌물로서 해당 마필의 소유권을 넘겼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삼성 측은 코어스포츠와의 용역계약서 내용에 따라 마필 관리는 최씨 측에 전적으로 위탁하기로 했기 때문에 삼성이 해당 업무에 관여하지 않더라고 문제가 없었고, 마필 매입과 관리 등의 책임 역시 코어스포츠에 있었기 때문에 삼성 측이 매번 한국과 독일을 오갈 필요가 없었다고 반박했다.

이어 정씨는 최씨가 “국제승마협회 홈페이지에 살시도가 삼성 소유로 등재돼 있어 시끄러워질 수 있다”라며 삼성 측이 최씨에 살시도의 이름 변경을 요구했다고 증언했지만, 국제승마협회 홈페이지에는 살시도의 소유주가 삼성으로 등재된 적이 없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특히 정씨는 지난달 마지막 검찰 조사를 받은 후 자신의 독일 승마코치이자 비덱스포츠의 대표로도 있던 크리스티앙 캄플라데와 국제 전화통화를 통해 말 세탁 의혹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증언했다.

정씨는 캄플라데에게 삼성 측이 말 교환계약에 대해 최씨가 독단적으로 진행했다고 주장한다고 말하자, 그로부터 “말이 바뀌기 전날 코펜하겐에서 최씨와 황성수(55) 전 삼성전자 전무(전 대한승마협회 부회장) 그리고 박상진(65) 전 삼성전자 사장(전 대한승마협회 회장)이 만났고, 삼성 측이 말 교환에 직전에서 해당 사실을 모를 수가 없다”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특검 측이 원한다면 당시 통화녹음 파일을 제출하겠다며, 삼성 측에 상당히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증언을 퍼부었다.

그러나 캄플라데가 지난 1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미 밝힌 바 있지만, 그는 말 교환계약을 포함한 삼성과의 계약 전 과정에 관여한 적이 없었다.

때문에 정씨의 증언 속 캄플라데와의 통화내용 역시 그의 개인적 의견에 불과해 결정적 증거로 작용할 가능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말 교환 계약이 있기 전날인 지난해 9월 28일 코펜하겐 공항에는 최씨와 황성수 전 전무, 안드레아스 등이 만났을 뿐 박상진 전 사장은 그 자리에 없었기 때문에 캄플라데의 말에 신빙성이 결여된다는 지적이다.

특히 정씨는 황성수 전 전무가 2015년 8월 말경 자신의 말 시승을 보기 위해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근 예거호프 승마장에 방문했을 때, 삼성 측이 2020년 도쿄올림픽을 목표로 지원할 선수 선발에 대해 자신에게 반드시 대표에 뽑히는 것이 아닌 ‘뽑힐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는 증언했다.

이는 그동안 특검 측이 주장해 온 삼성이 정씨만을 단독으로 지원하려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정씨 스스로가 증명해 줬다며, 오히려 특검 측에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그 외에도 본지 제2686호 ‘이재용 마주한 정유라 증언, 허점 발견에 역풍 부나’ 제하의 기사에서 집중적으로 다뤘듯이 정씨의 법정 증언 중에는 앞뒤가 맞지 않거나 전문증거 및 추측 그리고 기존에 출석한 다른 증인들의 증언과 충돌하는 부분이 곳곳에서 나타났다. 때문에 요란했던 등장과는 달리 정씨의 증언과 그가 제출하고자 하는 통화 내역 등의 증거자료들은 이 사건 재판 결과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목소리다.

위기 몰린 4명의 전직 임원들… 이재용만 살리나

현재 삼성 재판은 구속기소된 이재용 부회장과 함께 박상진 전 사장, 황성수 전 전무 그리고 장충기(63) 전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 최지성(66)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 등의 전직 임원들이 불구속기소 상태에서 이뤄지고 있다.

특검 측의 최대 목표는 삼성의 최순실씨 측에 대한 자금 지원에 있어서 이재용 부회장의 직접적인 지시가 있었고 이로 인해 청와대로부터 경영권 승계 과정상의 도움을 받았다는 점을 밝혀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부회장이 이번 사건을 충분히 인지한 채 주도적 역할을 하면서 불구속 상태의 나머지 4명의 전직 임원들은 이를 따랐을 뿐이라는 의혹이다.

물론 삼성 측은 이를 강하게 부정하고 있다. 이 부회장이 당연히 최씨의 존재 자체를 모른 채 청와대 측의 강요가 있었지만 단지 좋은 취지를 가지고 지원에 나섰을 뿐이며, 특히 청와대로부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그리고 삼성생명의 금융지주사 전환 등 경영권 승계 과정으로 의심받는 일들에 관해 반대급부를 바라거나 요구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재판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분명히 드러나고 있는 부분이 있다. 삼성 측이 이번 사건에 있어 이재용 부회장이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이 4명의 전직 임원들은 매우 불리한 상황에 놓여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특검 조사 결과 박상진 전 사장과 황성수 전 전무의 경우 최씨의 존재와 함께 그가 대통령의 비선실세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동시에 최씨 모녀에 대한 삼성의 승마지원 의혹에 있어 충분히 의심받을 만한 여러 가지 정황이 드러난 것도 사실이었다. 이는 지난 5월 31일 이 사건 재판의 증인으로 출석했던 최씨의 승마계 측근이자 코어스포츠 설립 등을 도왔던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의 증언 등에 의해 구체적으로 밝혀졌다.

우선 지난 2015년 8월 26일 코어스포츠와 삼성전자 사이에 맺어진 승마 컨설팅 용역 계약과 관련된 의혹이다.

재판에서 드러난 삼성 측 황성수 전 전무와 박원오 전 전무가 같은 해 8월 21일 이메일을 통해 주고받았던 계약서 초안 내용에 따르면, 실제 계약이 이뤄지기 5일 전까지도 삼성 측은 코어스포츠라는 법인명에 대해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코어스포츠는 계약이 이뤄지기 전인 8월 3일 최씨가 독일 페이퍼컴퍼니로 추정되는 ‘마인제’라는 법인을 인수해 급조한 회사로, 같은 달 13일경 ‘코어스포츠 인터내셔널’로 법인명이 확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황성수 전 전무가 이런 실체도 불분명한 회사와 213억원에 달하는 거액의 용역계약을 추진했고, 계약을 앞두고 법인명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면 충분히 의심을 살 수밖에 없었다.

특히 최씨의 의사를 반영해 운영 용역비를 기존 10%에서 15%로 수정해 계약서 내용을 변경시키는 등 삼성 측 입장에서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있었을지라도, 박상진 전 사장과 황성수 전 전무는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채 8월 26일 독일 인터콘티넨털 호텔에서 최씨 측과 용역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그날 두 사람의 행동은 이번 계약이 삼성과 코어스포츠 간 동등한 위치에서 맺어진 것이 아니었다는 가능성을 높여줬다. 계약 자리에 참석한 삼성 측 법무팀 관계자는 계약 관련 서류를 검토하던 중 코어스포츠의 등기일을 문제 삼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코어스포츠의 독일 상업 등기부 문서에서 이 회사의 등기일자는 2015년 8월 25일이었다. 즉, 계약이 이뤄지기 바로 전날에서야 정식으로 등기를 마쳤다는 의미였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두 회사는 8월 25일에 계약을 체결하기로 했지만 코어스포츠의 등기가 늦어지면서 최씨의 요청으로 계약일자를 하루 늦췄다.

박원오 전 전무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박상진 사장은 코어스포츠의 등기 날짜를 지적한 삼성 법무팀 관계자에게 ‘신경쓰지 말라’는 듯한 표현으로 넘어가자고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계약 체결 이후 용역비 송금 과정도 석연치 않다. 두 회사의 계약 조건에는 코어스포츠는 앞서 지급받은 분기별 용역대금의 사용한 증빙내역을 삼성 측에 제출한 뒤 다음 분기 대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삼성 측은 이 과정 역시 거치지 않은 채 코어스포츠 측 박 전 전무가 삼성 측 황성수 전 전무에게 2016년 오퍼레이팅 코스트(Operating Cost·영업비)를 보냈고, 삼성은 2016년 2분기까지 이 용역대금을 송금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앞서 언급한 말 교환계약이 있기 바로 직전에 황성수 전 전무가 코펜하겐에서 최씨, 안드레아스와 만났다는 것도 상식적으로 의심을 살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정유라씨도 이 사건 법정에서 말 교환계약이 이뤄지고 한 달 뒤인 지난해 10월 20일 덴마크 오덴제에서 열릴 마장마술 대회를 앞두고 안드레아스가 자신에게 “Samsung needs to pay me(삼성이 나에게 돈을 줘야 한다)”라며 짜증을 냈다고 증언했다.

특검 측은 안드레아스가 언급한 돈이 말 교환계약이 이뤄지면서 최씨가 안드레아스에 지급할 차액을 의미하며, 이를 삼성 측이 최씨를 대신해 지불하려 했고 또 다른 뇌물제공의 증거라는 입장이다.

전직 임원들에 불리한 정황은 또 있다. 장충기 전 사장의 특검 진술과 삼성 측 변호인들의 신문 내용에 따르면, 지난해 2월 이재용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3차 독대를 마친 뒤 영재센터 사업계획서가 담긴 서류봉투를 하나 건네 받았다. 장 전 사장은 이를 최지성 전 실장과 협의했고, 영재센터에 거액의 후원금을 전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 측은 미래전략실이 이 후원 사실을 이재용 부회장에게는 보고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장충기 사장은 해당 영재센터 사업계획서를 특검 측에 직접 제출하며 의심을 더욱 키웠다.

특히 미르·K스포츠재단에 204억원의 자금을 출연하기로 결정한 삼성 측 부서는 장 전 사장과 최 전 실장이 속한 미래전략실이었기 때문에, 두 사람 역시 납득할 만한 소명이 없다면 사실상 벼랑 끝에 몰리게 된다.

물론 이재용 부회장이 승마지원과 영재센터 지원 등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직접 지시를 했다는 명백한 증거는 현재까지도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삼성 측은 여전히 이 부회장이 독일 승마지원과 영재센터 등의 자금 지출이 자신도 보고 받지 못한 채, 실무진들의 선에서 결정됐다는 입장이다.

이 사건 재판에서 이들 전직 임원들의 증인 신문 과정도 남아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씨의 재판에서 줄곧 증언을 거부한 이들이 ‘부회장께서 전부 시킨 일’이라고 말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기 때문에 특검 측이 원하는 최대 목표를 실현하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못나가” 버틴 박근혜… 이재용 운명의 최대 변수는 ‘최순실 선택’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19일 이 사건 재판의 42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었지만, 건강상 이유로 재판 불출석 사유서를 자필로 적어 제출했다.

특검 측은 앞서 지난 17일 박 전 대통령이 수감돼 있는 서울구치소에 구인영장 집행을 감행하면서 증인 소환의 의지를 보였지만, 박 전 대통령 측은 영장 집행에 완강한 거부의사를 보였으며 물리력 동원까지 갈 수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특검 측은 삼성 재판의 혐의 입증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증인을 신문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삼성과 최순실씨 간 뇌물공여 및 수수의 시발점이 바로 박 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이 가졌던 세 차례의 독대였던 만큼, 그 자리에 있었던 박 전 대통령의 증언은 다른 어떤 증거와 증언보다도 특검 측에게 절실한 것이 분명했다.

특검 측은 박 전 대통령을 증인대에 세워 이 부회장과의 독대 때 정말로 최씨로부터 부탁을 받고 정씨의 2020년 도쿄올림픽 대비 승마지원을 요구했는지 그리고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사업계획서를 전달하며 후원을 약속 받았는지, 최씨가 설립한 미르재단 등에 대한 자금 출현을 강조했는지 등을 집중적으로 신문해야 했다.

특히 동시에 이 부회장으로부터 그 반대급부로 자신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청와대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대한 국민연금 등 관련 기관에 입김을 불어넣고, 삼성그룹 계열사에 대한 정부 차원의 특혜를 요구한 적이 있었는지 박 전 대통령의 신문을 통해 입증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의 증언이 불발된 상황에서 결국 특검의 마지막 카드와 이재용 부회장의 운명은 이번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인 최순실씨의 입에 달려 있다는 설명이다.

최씨는 오는 26일 삼성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예정이다. 그는 지난달 28일 이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나올 예정이었지만, 건강상 이유로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한 바 있다.

물론 최씨는 박 전 대통령과는 다르게 이 재판의 증인 출석에 대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만큼, 그의 증언이 특검과 삼성 측 모두에게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재용 부회장 측에게 있어 최씨가 100% 사실만을 증언해 줄 가능성이 높지 않은 상황에서 그가 어떤 입장을 취해줄 것인가는 최대의 고민거리다.

딸 정유라씨가 갑작스럽게 삼성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면서 자신뿐만 아니라 삼성 측에게도 불리한 증언을 쏟아낸 만큼, 최씨가 정씨에게 등을 돌려 삼성 측과의 관련성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증언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만약 최씨가 삼성과의 승마지원 문제와 재단 및 영재센터 자금 지원 등에 대해 인정한다면, 이는 삼성뿐만 아니라 자신의 형사재판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씨가 정씨의 삼성 재판 증인 출석으로 그에게 “인연을 끊겠다”라며 격노한 것으로 알려졌고, 변호인들마저 정씨와의 결별을 심각하게 고려하거나 심지어 최씨가 소유한 미승빌딩에 머물고 있는 정씨를 내보내자고 제안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만큼 사실상 모녀가 다른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와는 전혀 다르게 최씨가 정씨와 완전히 등을 돌리지는 못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최씨는 지난 12일 자신의 재판에서 정씨의 삼성 재판 증인 출석에 대해 “특검이 애(정유라)를 새벽 2시에 데리고 나가는 것은 정말 잘못이었다”라고 말하는 등 모든 것을 특검 측의 잘못으로 돌렸다.

또 정씨를 미승빌딩에서 내보내자는 변호인들의 제안에 자신의 딸과 손자를 버릴 수 없다는 취지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최씨 측이 정씨와 따로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미 최씨는 이화여대 입시비리 의혹과 관련돼 실형을 선고받았고, 현재 다른 혐의의 재판에 있어서도 유죄를 피하지 못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특히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주축으로 정치권에서 최씨의 재산을 몰수하는 특별법이 추진되고 있는 만큼, 이미 여러 혐의에 대한 유죄를 피할 수 없는 자신의 상황에 있어 상속인 정씨를 지키는 것이 곧 자신의 재산도 지킬 수 있다는 최상의 판단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물론 최씨가 정씨를 지키겠다는 입장을 취하게 된다면, 이는 분명 이재용 부회장 측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때문에 이재용 부회장의 운명은 오는 26일 최씨의 입을 주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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