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 ‘전략적 침묵’에 삼성 측 한숨만 푹푹… 정유라마저 난감한 상황에

삼성 재판 등장한 최순실 “특검 신뢰 못해 증언 거부”

증언거부 전략 짠 최순실, 삼성 측 변호인에도 증언 못하게 돼

승마지원 관련 삼성 측 의혹 소명 못해주며, 삼성만 곤란한 상황으로

한민철 기자

국정농단 사태의 주역 최순실(61·구속기소)씨가 이재용(50·구속기소) 삼성전자 부회장 등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침묵 작전’을 들고 나왔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이에 자신뿐만 아니라 딸 정유라(21)씨와 삼성 재판 피고인들마저도 궁지에 몰아넣었다. 차라리 나오지 않았다면 좋았을 최씨의 작전 실패와 법적인 무지(無知) 탓에 삼성 측 피고인들의 승마지원 의혹과 관련된 특검의 혐의 입증이 유리한 고지에 서게 됐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2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 심리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뇌물공여 사건의 45차 공판에는 최순실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본래 지난달 28일 이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나올 예정이었지만 건강상 이유로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었고, 딸 정유라(21)씨의 갑작스러운 증인 출석 등으로 일정에 차질을 빚은 바 있다.

최씨는 국정농단 사건 관련 혐의자들 중 정점인 인물로, 공소사실에 삼성 등으로부터 뇌물을 수수했다는 내용이 들어있는 만큼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는 이 사건 재판에 있어 마지막 핵심증인으로 주목을 받았다.

최씨는 이 사건 재판의 피고인 중 박상진(65) 전 삼성전자 사장(전 대한승마협회 회장), 황성수(55) 전 삼성전자 전무(전 대한승마협회 부회장)와 직접적인 접촉이 있었다.

또 두 사람도 검찰 및 특검 조사 과정에서 최씨의 영향력을 알고 있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밝혀진 만큼, 최씨가 이날 재판정에서 이들에 대해 어떻게 증언을 해주느냐에 따라 재판 결과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이 분명했다.

특히 정유라씨가 지난 12일 이 재판 증인신청에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재판 당일 새벽 특검 측 관계자와 만난 뒤 증인으로 출석해 삼성 측과 최씨에 불리한 증언을 한 바 있다.

최씨의 이날 증언에 따라 이재용 부회장 등 삼성 재판의 피고인들뿐만 아니라, 자신과 딸 정씨에게도 파장이 미칠 수 있었다.

때문에 최씨에게 있어 최상의 시나리오는 삼성에게 유리한 증언을 해주며 자신의 뇌물혐의를 부정하는 동시에 정씨에 대해서도 그의 증언이 누군가의 강요에 의한 것이었다는 점을 부각시켜 둘을 모두 살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에 재판정 내 모든 이들의 눈과 귀가 최씨의 입을 향하며, 그가 어떤 계획을 세우고 나왔는지 주목했다.

최씨는 등장부터 요란했다. 이날 재판정에 들어와 선서를 하기도 전에 “한 말씀을 드려도 되겠는가”라고 말하며 방청석을 술렁이게 했다.

재판부는 선서를 먼저 한 뒤 그가 하고 싶은 말을 듣겠다고 했고, 최씨는 대충 선서를 마친 뒤 발언권을 얻었다.

최씨는 “제가 지난번에 참석을 하려고 했는데 아무런 통보가 없어서 못 나왔고, 오늘 갑자기 나오라고 했는데 구인장을 발부하셨다”라며 “저는 자진해서 출석을 하려고 했고, 구인장을 제시를 해서 좀 당황했다. 저는 오늘 자진출석한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구인장 발부에 대해 혹시 모를 사정에 대비했던 것이라며 오해가 없었다는 취지의 말을 전하며 재판 진행을 이어갔다.

그런데 최씨는 검사 측이 제시한 조서의 진정성립 과정에서 자신이 지난해 11월 27일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받은 조서 내용을 본 뒤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라며 또 다시 재판부에 발언권을 요청했다.

최씨는 “지난번 재판에 나와서 진술을 전부 하려고 했지만, 갑자기 딸 (정)유라가 나오는 바람에 제가 굉장히 혼선을 빚었고, 그 아이를 새벽 2시부터 9시까지 어디에서 유치를 했는지를 제가 부모로서 물어봤어야 했을 상황이었다”라며 “검찰에서는 이야기를 안 했고, 본인이 자진해서 나왔다고 해도 그것은 위법한 증인 채택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제가 검찰에서 특검에서 조사를 받을 때 두 가지 질문을 집중적으로 받았다. 하나는 박 대통령과의 경제 공동체를 인정하라는 것이었고, 하나는 내가 (인정)안 하면 삼족을 멸하고, 우리 손자까지 가만 안 두겠다는 것이었다”라며 “저는 제 대가를 받고, 영원히 나라에서 죄인으로 살게 하겠다는 옛날에 임금님도 함부로 못하는 그런 무지막지한 이야기를 1시간 넘게 들었다”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최씨는 정씨가 이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것도 특검 측이 정씨에게 자신이 들었던 것과 같은 위협을 하며 강제로 데리고 나온 것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때문에 그는 특검의 질문에 증언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증언을 거부한다는 최씨의 말에 재판부와 특검 그리고 이재용 부회장마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심지어 김진동 판사는 “증언을 안 하시겠다는 말인가”라는 같은 말을 4번이나 반복할 정도였다. 이어 김 판사는 “그럼 왜 나오셨는가”라고 물었고, 최씨는 “나오라고 하시니까 나왔다”고 말하며 재판부를 한숨짓게 했다.

김 판사는 “이 자리는 본인이 하고 싶은 말씀을 듣는 자리는 아니다”라며 “일단 신문을 진행하며, 우선 질문을 들어보고 증언을 거부할지 여부에 대해 별도로 판단하시기 바란다”라며 재판을 진행시켰다.

그러나 최씨는 증언을 거부하기로 이미 작정한 상태였다. 특검 측의 이어진 조서의 진정성립에 대해 연달아 증언을 거부한다며 입을 닫았다.

이에 특검 측 박주성 검사는 “증언 거부권이란 본인의 형사사건에서 유죄 판결을 선고받을 우려가 있을 때만 인정되는 권리”라며 “본인의 재판에서 본인의 조서에 대해 증거 동의를 했으면서 이 사건 재판의 진정성립 여부에 대해서 증언을 거부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라며 최씨의 증언 거부를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최씨는 특검을 신뢰할 수 없고, 자신이 특검으로부터 협박과 회유를 받아 현재 패닉 상태라며 다시 한 번 증언을 거부할 수밖에 없는 사유를 밝혔다.

그는 “특검이 저의 딸을 데리고 가서 먼저 신문을 강행한 것은 딸로 하여금 저를 압박하기 위한 제2의 장시호를 만들기 위한 수법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제가 지금 코마 상태에 빠질 지경이고, 특검의 이런 비정상적이고 회유와 압박의 방법에 제가 일일이 대답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라고 밝혔다.

사실 최씨의 증언 거부 사유는 법적·상식적으로도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앞서 박주성 검사가 언급한 대로 본인의 형사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선고받을 우려가 있을 때만 증언 거부가 인정되며, 특검과 소송관계인을 불신한다는 사유만으로는 증언을 거부할 수 없다.

또 형사소송법 상 포괄적 증언거부권이 인정되는 대신 개별적 사유에 대한 증언 거부는 그 사유에 대한 소명이 재판부로부터 받아들여진 뒤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최씨의 증언 거부는 해당되는 사항에 없었다.

물론 최씨의 입장에서 특검 측의 증인신문에 증언을 거부하는 작전은 자신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판단 중 하나였다.

신문 과정에서 유도신문에 휩싸일 수 있고, 삼성 측과 정씨를 동시에 살려야 자신도 살 수 있는 상황에서 특검이 정씨를 강제로 데리고 가서 협박해 증언을 얻어냈다는 점을 활용해 증언을 거부하는 것은 그에게 최선의 선택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최씨는 특검 측의 질문에는 증언을 거부할 생각이었지만, 삼성 측의 신문에는 증언을 할 생각이 있었다.

특검 측이 “증언을 거부하신다면, 변호인 측 질문에 대해서도 모두 증언을 거부할 것인가”라고 묻자, 최씨는 “변호인의 생각에 따라 저에게 질문할지 안 할지도 모르겠다”라고 말을 흐렸다.

최씨가 특검에 증언을 거부하면서 삼성 측의 질문에 일일이 답해, 뇌물혐의와 관련된 사항에 대해 부정하는 등 삼성 측에 유리하게 증언한다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자신도 이날 재판에서 “법적인 것은 잘 모르겠다”라고 수차례 밝혔듯이, 최씨의 법에 대한 무지가 한 가지 큰 실수를 빚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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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의 증언 거부로 두 차례의 무의미한 휴정 후 특검 측은 그의 증언 거부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특검 측 양재식 검사는 “증인이 전체적으로 증언거부를 한 상태에서 변호인 반대신문이 이뤄지고 증인이 거기에 대해 증언을 한다면 그것은 주신문”이라며 “만약 증인이 주신문의 증언에 응한다면 그 반대신문이 공식적인 재주신문이 되기 때문에 특검 측의 재주신문에 증언거부를 할 수 없다는 점을 숙지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재판부도 “일반적으로는 반대신문에 응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검찰 측의 형식적 재주신문 사항에 대해서는 증언을 거부할 수 없다”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최씨가 특검 측 증언을 거부한 채 변호인들의 신문에만 답하게 된다면 변호인 측의 신문이 주신문이 된다. 최씨가 이 주신문에 증언을 했다면, 특검 측의 반대신문에도 반드시 답을 해야만 한다.

결국 최씨가 삼성 측 변호인들의 질문에 자신과 삼성 측에 유리한 방향으로 답변하려 했지만, 어느 쪽에도 증언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삼성 측 변호인들도 “현 상태에서는 변호인 반대신문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변호인 반대신문을 하지 않겠다”라며 최씨에 대한 증인신문을 포기했다.

이미 증언을 거부한 상태였기 때문에 정씨가 이 사건 재판에서 증언한 자신과 삼성 측에 불리한 발언에 대해도 소명을 할 수 없게 됐다.

이날 특검 측이 제시한 핵심증거들에 대해 최씨가 답변을 하지 못하자, 삼성 측 관계자들의 표정은 상당히 난감해진 상태였다. 재판부로서는 혐의 입증과 연루된 증인의 증언 거부는 향후 재판 결과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검 측은 박근혜(65·구속기소) 전 대통령과 최씨가 지난해 차명폰으로 통화한 내역을 제시했다. 두 사람은 지난해 박 전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개헌 발언을 하고, JTBC가 최씨의 태블릿PC 의혹을 보도했던 10월 24일과 25일 해당 차명폰으로 각각 10차례와 3차례 그리고 다음날인 25일에는 6차례나 통화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두 사람이 지난 2015년 2월 15일 박 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의 소위 ‘2차 독대’가 있던 날에도 수차례 통화한 사실도 밝혀졌다. 2월 14일에 5차례, 15일에는 9차례나 통화를 가졌다.

특검 측은 이날 최씨가 박 전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를 통해 이재용 부회장에 승마지원과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건립 등에 대해 지원을 해줄 것으로 요구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검과 삼성 측 모두 이날 최씨가 박 전 대통령과 나눈 전화통화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증언해주기를 원했고, 삼성 측의 경우에는 그가 “별다른 통화를 하지 않았다”라고 증언해주길 바랐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최씨의 침묵으로 ‘전화→독대→지원’으로 이어지는 정황상 고리에 대해 재판부가 신뢰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이날 박상진 전 사장이 지난해 9월 28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근에 있는 캠피스키(FALKENSTEINER GRAND KEMPISKI) 호텔에서 황성수 전 전무와 최씨와 만나 정씨의 승마지원 관련 이야기를 하며 적었던 수첩 내용이 공개됐다.

특검 측은 해당 수첩의 내용에 대해 삼성 측이 최씨와 둘러싼 의혹 중 ‘말 세탁’ 부분 등을 입증해줄 수 있는 중요 증거로 보고 했다.

실제로 해당 수첩에는 ‘vitana 성적이 잘 안나온다→대체마?’, ‘vitana / salcido x’, ‘2. 정황 / 야당 공세, 이번 ok→그러나 정권교체 시’, ‘대체 말 취득확인→과연 성적이 나오겠는가?(유라→자질부족)’ ‘送金’, ‘유소년 유망주 (유라배제)’, ‘Andreas와 program 돌려 말 값 정산’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여기서 ‘Andreas와 program 돌려 말 값 정산’ 부분은 최씨 측과 말 교환 계약을 했던 독일 말 중개상 안드레아스(Andreas) 헬그스트란드를 뜻하며 프로그램(program)을 돌려 말 값을 정산하겠다는 말은 삼성 측이 최씨를 대신해 말 교환계약에 따른 차액을 지불하겠다는 내용으로 의심받고 있다.

정씨는 이 사건 재판에서 말 세탁이 실제 이뤄졌던 것으로 알고 있고, 삼성 측의 주장과는 다르게 이 과정에서 삼성이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때문에 해당 메모에 대한 최씨 측의 입장이 필요했다.

그러나 최씨는 한 손에 볼펜을 돌리면서 해당 수첩 내용만을 빤히 쳐다보고 있을 뿐 역시 증언을 거부했다.

이날 최씨의 증언거부로 인해 삼성 측은 상당히 난처한 입장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재판부가 삼성 측과의 뇌물혐의와 관련된 핵심 인물인 최씨가 침묵으로 일관한 만큼, 삼성 측에 불리한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정씨에 대해서도 특검이 회유하고 납치했다는 주장을 펼치며 언론플레이는 가능했겠지만, 정씨의 증언 상 나타난 오류가 오해였다는 점을 밝혀주지 못하며 정씨 역시 위증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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