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우 지시한 ‘삼성 보고서’ , 朴정부-삼성 커넥션 밝히는데 역부족

여론 관심 다시 집중된 우병우, 살얼음 판 위에서 여유로운 태도

문건 작성자, 禹 지시 인정… 합법적 경영권 승계 ‘감시’목적 보고서 가능성

‘우병우 지시’ 외에 삼성-朴정부 뇌물공여 위한 의혹 밝혀내지 못해

한민철 기자

박근혜(65ㆍ구속기소) 정부 시절,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작성된 것으로 밝혀진 캐비닛 문건이 정치권과 국정농단 사태 재판에 상당한 파장을 몰고 오고 있다. 특히 해당 문건의 작성을 지시·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우병우(50ㆍ불구속기소)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다시 한 번 큰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그런데 우 전 수석은 재수사까지 거론되는 이 소용돌이 속에서 여유만만한 태도로 수차례 미소까지 보이며, 자신의 재판에 임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우병우 전 수석은 지난 24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이영훈) 심리로 열린 자신의 국회에서의 위증 등 혐의에 관한 6차 공판에 모습을 보였다.

이날 우 전 수석은 법원 1층에서 취재진들로부터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청와대 캐비닛 문건 작성 지시 여부에 대한 질문 공세를 받았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무표정한 얼굴로 재판정에 향했다.

그런데 개정 후 우 전 수석은 예상 외로 여유만만한 분위기였다. 변호인들과 밝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는가 하면, 증인의 증언 중간 중간이나 검사 측이 추가로 증인 신문을 이어가려 하자 어이가 없다는 듯 수차례 미소를 보이기도 했다.

당시 1주일 전부터 청와대가 박근혜 정부 시기 민정수석비서관실 내에서 생산된 문건 300여종의 사본을 공개했고, 여기에는 우 전 수석이 민정비서관으로 재직 중이던 2014년 5월부터 2015년 1월까지의 관련 내용이 다수 담겨 있던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해당 문건 가운데는 삼성물산ㆍ제일모직 합병 등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에 대한 정부의 지원방안을 검토한 자필 메모가 포함돼 있어, 이재용(50ㆍ구속기소)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에 끼칠 영향과 국정농단 사태 재수사 등을 둘러싸고 여러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우 전 수석은 청와대의 문건 공개 발표 3일 후인 지난 17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캐비닛 문건의 존재를 묻는 취재진들의 질문에 “언론 보도를 봤지만, 무슨 상황인지,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6차 공판 다음날인 25일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에 청와대 캐비닛 문건 일부를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 선임행정관이 증인으로 출석해 관련 증언을 하기로 예정돼 있었던 만큼, 이날 우 전 수석은 재판정에서 여유만만 태도로 미소 짓는 모습을 보일 상황이 절대 아니었다.

결국 우 전 수석의 미소의 이유는 다음날 삼성 재판에서 파악해볼 수 있었다.

이재용 경영권 승계 위한 청와대 역할 담은 문건(?)

지난 2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 심리로 열린 이재용 부회장 등에 대한 44차 공판에는 예정대로 이 모 전 민정수석실 선임행정관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그는 지난 2014년 6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민정수석실 선임행정관으로 근무했고, 최근 청와대에서 발견된 캐비닛 문건 중 일부를 작성했다고 밝혔다.

특검 측은 이 전 행정관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문건 10여종을 청와대로부터 넘겨받아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했다. 물론 재판부는 이날 재판에서 해당 문건을 증거로 채택한 상태였다.

이날 재판에서 특검은 이 전 행정관이 A4용지에 자필로 작성한 메모 2장을 제시했다. 그가 보고서 초안을 위해 수기로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해당 메모의 첫 번째 장에는 ‘삼성 경영권 승계 국면→기회로 활용’, ‘우리 경제 절대적 영향력, 삼성 경영권 승계 가시화 활용’, ‘삼성 당면 과제는 이재용 체제로 안착’ ‘경영권 승계 국면에서 삼성이 뭘 필요로 하는지 파악’, ‘도와줄 건 도와주면서 삼성이 국가 경제 기여할 방안 모색’, ‘승계 관련 정부 영향력 활용’, ‘구체적 요망사항 파악’ 등 기존 청와대가 발표한 대로 삼성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내용이 기재돼 있었다.

특검 측 증인신문 내용과 이 전 행정관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지난 2014년 7월에서 9월 사이 당시 민정비서관이었던 우병우 전 수석이 ‘삼성에 대해 검토해 보라’라며 관련 보고서 작성을 지시해 해당 메모를 기재한 것으로 밝혀졌다.

물론 우 전 수석이 해당 지시를 내린 이유에 대해서는 이 전 행정관에게 말해주지 않았지만, 당시 언론에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와병(臥病)의 장기화와 삼성그룹 내 승계 문제가 최대 현안이었기 때문에 초안 수기 메모에는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 문제를 중심으로 관련 내용이 맞춰졌던 것으로 나타났다.

메모 작성 과정은 삼성 관련 언론기사를 검색한 뒤 민정비서관 행정관들과 의견을 나누고 우 전 수석에게 보고한 뒤 피드백(Feed-Back)을 받으면서 내용을 수집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기 메모 첫 번째 장 말미에는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 대응’, ‘규제 완화 지원’, ‘이재용 간접 우회적 시그널 전달’ 그리고 두 번째 장에는 ‘지배구조 흔들 수 있는 법안’, ‘규제개혁’, ‘국민연금 지분’, ‘재계 중요 파트너 인정해 줄 수 있는 모습’ 등의 내용이 기재돼 있었다.

우 전 수석으로부터 피드백을 받은 뒤 작성한 메모 내용은 삼성의 경영권 승계와 이를 위한 청와대의 역할을 중심으로 틀이 잡혀나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이 전 행정관은 해당 메모를 바탕으로 최종적으로 보고자료를 완성했고, 우 전 수석이 최종 승인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원’뿐만 아니라 ‘감시’ 목적의 가능성도 높았던 문건

우 전 수석은 자신의 재판에서 여유만만한 태도를 보이며 미소를 보일 만했다. 결국 청와대가 터트린 해당 문건만으로 삼성과 박근혜 정부 간 은밀히 이뤄진 커넥션의 증거라고 보기에 부족한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우 전 수석의 지시 내용 중에는 삼성의 경영권 승계에 관한 구체적 검토지시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단지 메모에 경영권 승계가 주요 내용으로 다뤄졌던 이유는 당시 경영권 승계문제가 언론 등에서 비춰지던 삼성 측의 현안이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과거 우 전 수석이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 부장 시절 삼성의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증여 사건을 수사했던 만큼, 당시 삼성의 최대 현안인 경영권 승계가 불법적으로 이뤄지지 않도록 정부가 도와주고 또 감시도 해야 한다는 취지였다면 크게 문제시 될 부분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삼성 측 변호인도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검사 때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 발행 사건 수사에 참여한 사람”이라며 “당연히 우병우 전 수석은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에 우호적일 수가 없다”라고 강조했다.

물론 이 문건이 작성된 진짜 경위가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삼성에 경영권 승계를 도와주고 이재용 부회장으로부터 뇌물을 받기 위해 큰 그림을 그리며 민정수석실에 지시를 내렸고, 우 전 수석 역시 검찰에서 청와대로 자리를 옮긴 만큼 윗선으로부터 지시를 받았다면, ‘우병우 전 수석이 삼성의 경영권 승계에 우호적일 수가 없어 경영권 승계 관련 보고서를 작성하려 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라는 삼성 측 변호인들의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러나 지난 26일 이재용 부회장 등의 45회 공판에서 김진동 판사는 해당 메모 내용의 전반적 흐름에 대해 “삼성이 국가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이건희 회장의 입원이 장기화돼 경영권 승계에 차질이 생기면 당연히 정부도 관여할 부분이 생기고, 그 과정에서 삼성이 흔들리면 국가 경제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고 승계 과정에서 불법적 방법이 동원돼서는 안 된다는 기조였다”라고 말했다.

때문에 당시 우 전 수석은 삼성의 경영권 승계를 돕기 위한 의도뿐만 아니라, 경영권 승계 과정 중에 불법적 방법이 자행되지 않도록 정부 차원에서 감시하기 위한 목적의 보고서를 지시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 전 행정관도 당시 삼성 관련 메모와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민정수석실과 삼성 측이 접촉하지 않았고, 보고서 내용대로 실제 삼성에 지원을 하라는 지시를 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또 그는 메모에 기재한 ‘승계 관련 정부 영향력 활용’ 등 정부 지원 사항에 대해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이뤄져야 하는 것을 항상 전제로 하며 지시를 받았다고 전했다.

특히 이번 청와대 캐비닛 문건 중에는 삼성뿐만 아니라 다른 국내 대기업들의 현안 관련 문건도 다수 발견된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이날 재판 후에는 재판 전 떠돌았던 의혹 중 ‘청와대 캐비닛 문건, 우병우가 삼성 검토 지시했다’라는 단순한 사실만이 밝혀졌을 뿐, 지시의 목적과 내용만 비춰봤을 때 큰 문제가 드러나지 않아 우 전 수석이 여유를 보이기에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한민철 기자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