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필관리사를 더 이상 죽이지 말라”… 수수방관 마사회 책임 규탄

본래 마사회 소속…93년 개인 마주제 도입 후 마필관리사 신분 불안해져

현재까지 사고와 자결한 사람10여 명…“제도 바뀌지 않으면 비극 또 발생”

마필관리사들이 잇따라 자살하면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높은 스트레스와 열악한 처우가 자살의 원인으로 밝혀지면서 한국마사회의 책임 논란과 함께 마필관리사들을 죽음으로 내몬 구조적 문제가 집중 조명받고 있다.

본지는 신동원 전국경마장마필관리사노동조합 위원장을 만나 마필관리사들이 처해있는 상황과 이들을 자살에 이르게 한 원인 등에 대해 들었다.

마필관리사들의 잇따른 죽음

최근 마필관리사 3명이 사망했다. 5월 27일 故 박경근 마필관리사가 자살했고 6월 24일에는 마필관리사 국 모씨가 자신의 차를 타고 강변북로를 달리다 한남대교를 200m 앞둔 지점에서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차에서 내려 10m 아래 한강공원 자전거 도로로 떨어져 사망했다. 이달 1일에는 부산경마장 소속 마필관리사 이현준 씨가 자살했다.

마필관리사는 이름 그대로 말을 관리하는 사람이다. 경주마 훈련, 사료를 주는 ‘사양관리’, 말이 사는 마방을 관리하고 청소하는 ‘구사관리’, 말의 건강을 살피는 등의 ‘보건관리’, 말발굽을 관리하는 ‘장제관리’ 등을 맡는다.

부산지역 마필관리사들이 연이어 자살하고 있는 최대 이유는 열악한 처우다. 부산지역 마필관리사들이 홀대받는 이유는 마필관리사를 고용하는 조교사가 이익을 독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교사는 말의 관리ㆍ사육·훈련을 총괄하는 사람이다. 조교사들의 출신을 보면 마사회 교관, 마필관리사 출신, 기수 출신이 있다.

신동원 전국경마장마필관리사노동조합 위원장은 “부산 마필관리사들 같은 경우에는 기본급을 최저임금에 맞춰주고 성과급이 들쑥날쑥하다”며 “조교사가 주고 싶은 대로 준다. 평가는 조교사가 하고 정확한 잣대가 없다. 서울은 기본급이 70%인데 부산은 20~30%가 기본급이고, 나머지는 성과급이라고 말했다.

마필관리사들 중에는 새벽 3시 30분이나 4시에도 출근하는 이들도 있고 대개 4시 20분이면 출근한다. 토요일에는 야간경마가 있다. 마지막 경주가 저녁 9시에 열리며 이를 정리하고 퇴근하면 밤 11시가 된다. 이들은 이렇게 늦게 까지 일하고도 다음날 새벽에 출근한다.

마필관리사들이 쉬는 날은 월요일과 화요일이다. 월요일도 4시간 근무한다. 주 44시간 근무를 한다. 월요일 오전 근무하고 퇴근하는 것이다. 또 돌아가면서 휴일에 한 달에 한번 꼴로 당직을 서야 한다.

서울과 부산은 마필관리사 고용 구조가 다르다. 우선 조교사와 마필관리사는 마사회 직원이 아니다.

조교사는 서울이나 부산 모두 개인사업자다. 서울은 조교사협회에서 마필관리사를 공채로 뽑는다. 반면 부산이나 제주는 조교사들이 개인적으로 선발한다.

서울, 부산, 제주경마장 모두 말 주인(마주)들이 말을 사서 자신이 원하는 조교사에게 말을 위탁하는 구조다. 조교사는 마필관리사들을 지휘하면서 위탁받은 말들을 훈련시킨다.

서울 마필관리사들은 조교사협회에서 공채로 뽑고 정년이 보장돼 있다. 반면 부산, 제주는 조교사들이 개인적으로 채용한다. 부산과 제주지역 마필관리사들은 계약직이다.

마필관리사 급여를 보면 마주가 말을 조교사에게 맡길 때 내는 ‘위탁관리비’라는 돈 중에 마필관리사 인건비가 어느 정도 포함돼 있다. 또 마사회가 주는 경마 상금에 마필관리사들의 몫이 들어 있다. 이 두 가지가 합쳐져 마필관리사들의 급여가 만들어진다.

문제는 부산 마필관리사들의 경우 마필관리사들의 몫까지 조교사들이 독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마필관리사들은 자신들을 마사회가 직접 고용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마필관리사 문제 낳은 ‘개인마주제’

신동원 위원장은 “1993년도 이전에는 단일 마주제였다”며 “그때는 마필관리사가 마사회직원이었다”고 말했다.

단일 마주제는 한국 마사회가 말 주인(마주)인 제도다. 말 훈련을 총괄하는 조교사에게 말을 나눠주고 그 말들을 갖고 경주를 한 것이다.

신 위원장은 “경마라는 게 네 말이 좋네, 내 말이 좋네 하다가 만들어진 게 경마”라며 “세계적으로 말 주인들은 다 개인들”이라고 설명했다.

개인마주제가 도입되면서 마필관리사들이 고용불안을 느끼게 됐다. 그래서 이들은 마사회 잔류를 요청하게 된다.

신 위원장은 “마사회는 마필관리사들의 불안을 해소해주기 위해 조교사협회라는 사단법인을 만들었다”며 “마필관리사들의 임금안정을 위해 마사회 기능직에 준하는 대우를 해주겠다고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나온 합의각서가 제도전환 합의각서다.

신 위원장은 “(마필관리사들을) 기능직에 준하는 대우를 해줘야 하니까 마사회는 혹 같이 생각을 했다”며 “2000년도에 미뤄지고 체납된 돈을 정당한 노동활동으로 인해서 총회를 거치고 경마를 세 번 정도 중단했다가 네 번째 경주를 복귀하려고 하는데, 마사회는 일방적으로 우리가 경마를 중단했다고 고객들에게 발표를 하면서 손해배상 청구를 했다”며 그때 집행부가 합의각서를 파기했다.

이 합의각서를 파기하는 조건으로 마사회가 소송을 취하했다는 것이 신 위원장의 주장이다. 신 위원장은 “서울 마필관리사들은 사단법인 조교사협회 소속으로, 예전에 같은 마사회 직원이었어서 제도가 살아남았다”라며 “부산은 2004년도에 개장을 했는데 조교사협회를 못 만들게 하고 개별조교사들 밑에 마필관리사들이 적게는 4~5명 많게는 15명까지 배치됐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은 노조도 활성화돼 있고, 사단법인으로 돼 있어서 노동법을 다 지키면서 하는데, 부산은 그렇지 못하고 개별조교사들이 임금착취와 노동착취를 해가며 지금까지 해왔다”며 “이런 문제가 누적돼왔고 2011년도에도 박영석 조합원이 유서를 남기고 자결을 했지만 마사회에서는 지금같이 똑같이 재발방지와 대책마련을 약속했는데 하나도 나아진 것이 없다”고 질타했다.

신 위원장은 “마사회는 을지로위원회에서 적극적으로 개입을 해서 해결을 하겠다고 해서 교섭에 임했는데 교섭 마지막 날(7월 30일) 오후 10시 12분쯤 마사회나 마사회 조교사들이 협상을 하다가 협상결렬을 선언하고 나갔다”고 말했다.

마필관리사 노동조합원들이 이를 알고 실망을 많이 했고 그 이후 이현준 씨가 자결을 했다.

신 위원장은 “부산 친구(부산 마필관리사)들을 많이 아는데 그들이 집단 우울증 증세를 보이는 것 같다”며 “5월 말에 부산에 갔을 때 부산경마장에서 새벽에 일한 친구들이 ‘형님 이게 구조적으로 해결 안 되면 제가 죽습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어 “부산 마필관리사들이 다음에는 내가 죽어야 해결되느냐, 이번 기회에는 서울 부산 제주가 합심해서 문제 해결 좀 해달라고 제안했다”고 덧붙였다.

부산처럼 나빠지고 있는 제주 마필관리사 근로환경

신 위원장은 “제주도는 서울과 상황이 예전에는 비슷했다”며 “개별사업장인데 20개 조교사들이 대표로 한 두 명 뽑아서, 이 대표가 노조와 대표교섭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것이 2015년도에 개별교섭으로 다 바뀌었다. 2년 뒤 단협(단체협약)을 올해 체결하려고 갔더니 20개 중에 11개 조교사는 단협을 체결했는데 9개 조교사가 단협을 해태했다.

신 위원장은 “단협이 체결 안 된 팀이 9개 팀이 있다”며 “그러면서 단협이 기간이 만료돼서 근로계약서도 다시 쓰자고 하고 부산과 똑같은 시스템으로 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부산은 경마 경쟁이 심하다”라며 “부산만 자살율이 높고 몇 년 전에는 여자 기수 2명도 자살했다”고 말했다.

신 위원장은 마사회의 A본부장이 경마 중장기계획이라는 것을 2007년도에 발표를 했는데 마주들의 반발로 인해서 경마가 중단됐다며 경마 중장기계획이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가 경쟁구도로 가려고 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부산경마장이 개장되면서 선진경마라는 미명하에 경쟁 위주의 경마제도를 시행해오다가 곪아서 2011년도에 한번 터지고, 썩어나가다 도려내야 할 정도까지 곪아버린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주는 2015년도부터 문제가 시작됐다는 것이 신 위원장의 주장이다. 그는 은 “서울 시스템과 부산 시스템의 중간단계로 제주도가 운영되고 있었다”라며 “조교사들은 개별사업장으로 관리사들을 고용하고 있지만 조교사협회라는 것을 친목단체로 구성하면서 거기서 대표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단체교섭을 계속 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자살 잇따라도 움직이지 않는 마사회 회장들

사정이 이렇게 되는 동안 역대 한국마사회 회장들은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신 위원장은 현 이양호 회장 전임자인 현명관 회장 때 문제가 많았다고 회고하면서 대표적인 문제로 ‘위니월드’를 꼽았다. 위니월드는 한국마사회가 만들었던 테마파크다.

신 위원장은 “위니월드를 만드는데 700~800억 예산이 들어갔는데 올해 6월 16일에 폐장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양호 회장에 대해 “황교안 총리가 마지막으로 할 때 임명한 회장이라, 이 사태를 해결할 의지가 전혀 없다”며 “회장이 바뀌어야 문제가 해결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마사회는 마필관리사들을 더 이상 죽이지 말라”며 “93년도부터 지금까지 사고와 자결한 사람들이 열 세 네 명(기수와 마필관리사 합쳐서)된다. 더 이상 산재나 자살이 안 벌어지면 좋겠다. 전국 산재율 평균이 영점 몇 퍼센트인데 우리가 20배가 넘는다”고 강조했다.

신 위원장은 “단위사업장 최대의 산재율을 갖고 있고 매일 죽음의 위협을 감수해가며 일을 하고 있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하는 제도는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마사회장은 임기만 채우면 떠나버리고 실무자들은 자신들이 만든 제도가 맞다고 끌고 간다. 이런 이유로 경마장 내 제도는 기존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마사회 회장은 낙하산 인사만 온다는 것이 신 위원장의 생각이다.

신 위원장은 “마사회가 부산의 조교사들 제대로 관리 안하고, 마사회가 부산 조교사들에게 지급하는 돈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며 “서울 조교사는 그나마 관리사 인건비 정확히 주고 관리사 몫이 따로 있다. 부산은 조교사 몫 안에 관리사 몫이 들어 있다. 관리사들이 원하는 것은 관리사 몫 상금을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 위원장은 “자결한 분들 빈소에 마사회 회장은 한 번도 안 갔고 부산본부장은 조문을 왔었고, 부산 경마관계자 몇 명 조문 왔었다”고 말했다.

그는 “마사회 회장은 해결의 의지가 없는 듯하다”며 “3개 경마장을 총괄하는 A본부장에게 모든 것을 다 맡겨놓고 있는 듯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마사회 측은 마필관리사들을 마사회가 직접 고용해달라는 주장을 수용할 수는 없지만 전반적 특별감사를 실시하고 대책을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마사회 관계자는 “경마는 마사회가 상금을 걸어 주최하는 경주에 마주ㆍ조교사ㆍ기수 등 경주마관계자들이 출전하여 성립되는 프로스포츠”라며 “경마경기를 주최하는 마사회가 관리사를 직접 고용해 각 조교사에게 파견할 경우 이는 파견법상 불법 파견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이어 “법적 문제를 논외로 하더라도 이는 마치 프로야구를 주관하는 KBO에서 트레이너를 직접 고용하여 각 구단에 파견하는 것과 같아 치열한 경쟁과 공정성을 생명으로 하는 프로스포츠의 원리에 위배된다”며 “또 마필관리사는 이미 근로계약 기간의 정함이 없고, 조교사의 자의적 해고가 불가능한 정규직 신분”이라고 말했다.

다만 마사회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적극적 의지를 갖고 전향적 대책을 준비하면서 재발방지 대책을 강구할 예정이다.

마사회 관계자는 “우선 경마시행체계에 대한 전반적인 특별감사를 실시하고 부경 근로감독 결과가 나오는 대로 조치 대책 등을 마련하여 시행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곽호성 기자

*사진

-메인 : 고 이현준, 박경근 마필관리사 유가족,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회원들이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관계자들과 마필관리사의 죽음과 관련해 한국마사회 경영진 퇴진과 렛츠런파크 부산경남 경영진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7.8.2

- 민주노총과 공공운수노조원들이 7월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공원에서 부산 경마장에서 일하다 최근 목숨을 끊은 마필관리사 박모(38)씨를 추모하고 한국마사회를 규탄하고 있다

- 신동원 전국경마장마필관리사노동조합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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