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질책이 ‘지시’로 받아들여져… 김종 증언, 항소심에선 판결에 영향 못 줄 가능성 높아

“승마지원 좀 잘하라”는 이재용의 질책, 재판부는 ‘지시’로 받아들여 유죄판결에 반영

불필요한 내용까지 진술했던 장충기 전 사장… 삼성 측 변호인단의 전략적 아쉬움 남아

‘법리싸움’ 예고한 항소심 재판부… 법적 증거능력 결여되는 김종 증언, 뒤집히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항소심 재판이 본격적 시작을 앞둔 가운데, 1심 재판에서 이뤄진 삼성 측 변호인단의 아쉬운 작전 그리고 항소심에서 뒤질힐 가능성이 높은 1심 재판의 증거들을 두고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
한민철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항소심 첫 정식재판을 앞두고, 이 사건 1심 재판에서 이뤄졌던 삼성 측 변호인단의 전략에 대한 지적 그리고 항소심에서 뒤집힐 1심 재판부의 아쉬운 판단을 두고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8월 25일 ‘세기의 재판’의 1심 선고가 끝난 지 벌써 한 달 이상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법원의 해당 판결을 두고 여전히 설왕설래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는 1심 재판부가 지난 2015년 7월 25일 이재용(49·구속기소) 부회장과 박근혜(65·구속기소) 전 대통령과의 청와대 단독면담 이후 이뤄진 최순실(61·구속기소)씨 측에 대한 삼성의 승마지원 등이 뇌물공여에 해당한다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특히 당시 재판부는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 뇌물을 약속하는 대신, 그 대가로 자신의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에 청와대가 힘을 써달라고 요청했다는 쟁점에 대해 청탁 요구가 실제로 이뤄졌는지 알 수 있는 증거는 없지만, 앞뒤 정황에 따라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는 모호한 해석을 하면서 삼성 측뿐만 아니라, 정치권·법조계·언론계 사이에 상당한 잡음을 불러 일으켰다.

물론 1심 재판부의 판단이 아쉽다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지만, 판결 내용 곳곳에 영향을 미쳤던 삼성 측 변호인단의 전략적 아쉬움도 유죄판결에 기여를 했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그에 대해 가장 많은 지적을 나오는 부분은 바로 이재용 부회장이 최순실씨 측에 대한 승마지원이 이뤄질 당시 이를 인지했는지 여부였다.

이는 본지의 지난 보도에서도 수차례 다뤘던 내용으로, 2015년 7월 25일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의 단독면담에서 시작된다.

삼성 측 피고인들의 법정 증언 및 변호인 의견 내용 등에 따르면, 당시 독대자리에서 이재용 부회장은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올림픽 승마지원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며 심한 질책을 받았다.

이재용 부회장은 자신의 피고인 신문 과정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아버님(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께 야단을 맞은 것 빼고는 야단맞은 기억이 없다”라며 “여자분에게 싫은 소리를 들은 것도 처음이라서 제가 당황했던 것 같다”라고 증언할 정도로 그에게는 굉장히 충격적인 일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이재용 부회장은 당일 오후 4시 30분 삼성 서초사옥에서 최지성(66·구속기소) 전 삼성미래전략실 부회장과 장충기(63·구속기소) 전 삼성미래전략실 사장 그리고 박상진(64) 전 삼성전자 사장(전 대한승마협회 회장)과 긴급회의를 열었다.

박상진 전 사장의 피고인 신문 중에 나온 증언에 따르면, 당시 긴급회의에서 이 부회장은 박 전 사장에게 “왜 대통령에게 야단을 맞게 하느냐, 승마지원 좀 잘 해달라”라고 강하게 질책했다.

이에 장충기 전 사장은 안종범(58·구속기소) 전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연락해 올림픽 승마지원 방법에 대해 문의했다. 이후 안 전 수석이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김종(56·구속기소)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과 김종찬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를 통해 알아보면 된다는 지시를 받았고 이를 장충기 전 사장 및 박상진 전 사장에게 전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연히 박상진 전 사장은 장 전 사장의 지시대로 김종 전 차관과 김종찬 전 전무를 만나 승마협회 문제와 올림픽 승마지원에 대해 상의했고 이들로부터 “박원오라는 사람이 열쇠를 쥐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됐다.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는 최순실씨의 승마계 측근으로 당시 최씨 및 그의 딸 정유라(21)씨와 함께 독일로 건너가 정씨의 승마훈련을 돕고 있었다.

이에 박 전 사장은 독일에 가서 박원오 전 전무를 접촉해 이야기를 들었고, 대한승마협회 부회장을 맡게 된 황성수(55) 전 전무도 독일에 건너가 박 전 전무의 소개로 정유라씨의 승마훈련 장면을 봤다. 귀국 후인 2015년 8월 3일 박 전 사장과 최지성 전 부회장과 장충기 전 사장 등의 임원들은 삼성 서초사옥에서 관련 대책회의를 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재용 부회장의 입장에서 눈엣가시같을 박근혜(왼쪽) 전 대통령과 국정농단 사태의 주역 최순실. (사진=연합)
이날 대책회의에서 박상진 전 사장은 독일에서 박원오 전 전무를 만나 최순실씨의 존재, 그와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관계 그리고 그의 영향력에 대해 설명했고, 이재용 부회장이 대통령으로부터 질책을 받은 것도 모두 최씨가 대통령에 삼성의 승마지원이 부실하다고 험담을 했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최지성 전 부회장이 “이 요구는 수용할 수밖에 없다”라면서 최씨의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여기서 최씨의 요구란 삼성이 박 전 대통령의 올림픽 승마지원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박원오 전 전무가 제시한 한국승마중장기로드맵에 따라 우수선수를 선발해 독일에 승마훈련을 보내고, 이중 정유라씨를 포함시켜 달라는 내용이었다.

특히 삼성 측은 당시 대책회의에서 이재용 부회장은 참석하지 않았고, 모든 것이 최지성 전 실장의 판단 하에 이뤄졌기 때문에 이 부회장은 삼성의 최씨 측에 대한 승마지원을 몰랐을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이재용 부회장도 미리 이런 입장에 동조하듯 지난해 12월 6일 국회 국조특위 청문회에서 최씨의 존재를 인식한 시점에 대해 지난해 2월경 정도 알게 됐다고 했고, 당시까지 최씨 측에 대한 승마지원 역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재판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도 이런 이재용 부회장의 입장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당시 이를 두고 최지성 전 부회장이 모든 것을 안고 가려는 전략을 짰다는 추측도 나왔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은 당시 재판을 지켜보던 기자들 및 기타 법조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삼성 측 주장을 쉽게 받아들이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는 점이다.

박상진 전 사장이 독일에 가서 박원오 전 전무를 만나고 돌아와, 최지성 전 부회장이 최씨 측에 대한 승마지원을 정하는 모든 과정은 엄밀히 말해서 대통령 독대 뒤 가진 긴급회의에서 “왜 대통령에게 야단을 맞게 하느냐, 승마지원 좀 잘 해달라”라는 이재용 부회장의 질책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재용 부회장은 자신의 피고인 신문에서 당시 승마지원에 대해 인지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실무 레벨에서 해결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라고 증언했다.

그러나 난생처음 여자에게 싫은 소리를 들어서 충격을 받을 정도, 특히 다른 사람도 아닌 대통령의 질책이자 지시였음에도 불구하고 “승마지원 좀 잘 해달라”고 자신이 박상진 전 사장 등에 질책, 아니 사실상 ‘지시’한 부분에 대해 사후 보고를 받지 못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최지성 전 부회장은 자신의 피고인 신문 과정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이재용) 부회장에게 괜히 이런 이야기를 해서 부회장이 알아 봤자 하지 못하게 할 수도 없었을 것이고,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인데 부회장이 알아서 뭐 하겠는가라고 생각해 이야기를 안 했던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앞서 언급한 대로 최지성 전 부회장 자신이 모든 것을 짊어지고 가겠다는 전략은 분명히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이재용 부회장이 대책회의에서 박 전 사장 등에 승마지원을 제대로 하라며 질책했다는 상황을 전략으로 세운 것은 오히려 이 부회장이 국회 위증 혐의에 대해 유죄판결을 받게 하는 역효과를 초래했다는 설명이다.

왼쪽부터 이재용 부회장, 최지성 전 삼성미전실 부회장, 장충기 전 삼성미전실 사장,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 (사진=연합)
물론 당시 이재용 부회장이 승마지원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주장이 전적으로 사실이었다고 할지라도, 이 부회장이 “승마지원 좀 잘 해달라”라고 질책했다 것은 사실상의 지시였고 보고를 못 받았다면 정황상 증거에 중점을 줬던 재판부에 받아들여지지 않는 게 당연했다.

때문에 실제로 이 부회장이 이런 말을 했을지라도 차라리 재판에서 꺼내지 않거나 달리 말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짜는 게 더 옳은 선택이었다며, 삼성 측 변호인단의 전략에 아쉬움을 나타내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朴-崔 공모관계 인정을 자초했던 삼성 측 전략

재판부는 승마지원 부분에서 최씨와 박 전 대통령이 공모해 삼성 측으로부터 뇌물을 제공받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이 부분 혐의에 대한 삼성 측의 유죄를 인정했다.

본래 단순뇌물죄가 인정이 되기 위해서는 공무원이 비신분자로부터 직무와 관련해 금품 등을 제공받아야 하지만, 최씨와 박 전 대통령의 공모관계가 인정되면서 뇌물죄 혐의가 받아들여졌다.

재판부는 “공무원이 비신분자와 뇌물수수를 공모해 공동정범인 비신분자로 하여금 뇌물을 받게 하는 경우라도 자기 자신이 받는 것과 동일하게 평가할 수 있어 단순수뢰죄를 구성하며, 비신분자도 형법 제33조에 의해 공동정범이 된다”고 판단했다.

정리해 보자면, 최씨와 박 전 대통령의 공모관계가 인정되면서 삼성 측 뇌물공여 혐의의 유죄판결까지 이어졌다는 설명이었다. 그런데 삼성 측은 이런 재판부의 판단에 일정 부분 ‘자초’한 점이 있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재판에 대해 판결 중 최씨와 박 전 대통령과의 공모관계를 인정하며 “대통령이 승마지원이 이뤄진 후, 피고인 측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 점”을 그 근거 중 하나로 들었다.

실제로 장충기 전 사장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지난 2015년 5월경 박 전 대통령의 에티오피아 순방을 했을 당시, 박상진 전 사장이 삼성그룹 대표로 수행했던 상황에 대해 전부 진술한 바 있다.

검찰 측은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박상진 전 사장을 헤드테이블에 앉도록 해줬고, 악수까지 한 점에 대해 장 전 사장에 질문했고, 그는 박 전 사장으로부터 이와 같은 사실을 모두 전해 들었다고 진술했다.

장충기 전 사장의 검찰진술은 재판부가 최순실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공모관계를 인정하는데 영향을 끼쳤다. 물론 결과적으로 삼성 입장에서는 '불필요한' 말이었다. (사진=연합)
특히 이후 박상진 전 사장이 최씨와 만났을 때 “대통령과 악수는 잘 했는가”라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결과적으로 장 전 사장은 ‘솔직히’ 그리고 ‘전부’ 말했을 뿐이었지만 역효과를 낳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검찰 진술에서 거짓말을 하면 절대로 안 될 일이지만, 피고인들이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던 것’까지 털어놓게 한 점 역시 삼성 측 법무팀과 재판 후 변호인들의 전략이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사건 1심 재판부의 판결에 대해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 있는 가운데, 판결에 영향을 끼친 여러 증거들이 항소심에서 뒤집힐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28일 서울고법 형사13부(부장판사 정형식) 심리로 열린 삼성 재판 항소심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재판부는 증인신문을 최대한 지양하고 ‘법리싸움’에 집중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때문에 전문(傳聞)증거나 다툼의 여지가 있는 증거는 항소심에서 과감히 배제하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1심 재판 증인신문 과정에서 삼성 측 변호인단과 가장 많은 의견 충돌을 빚었던 한 사람인 김종 전 문체부 차관의 증언 부분도 항소심에서는 증거능력을 상실할 가능성도 높다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사실상 증거능력 없었던 김종 진술

1심 재판부는 최씨와 박 전 대통령의 공모관계를 인정하면서 “대통령은 김종에게 승마선수 정유라를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는 점을 그 근거 중 하나로 들었다.

이는 김종 전 차관이 이 사건 재판 및 지난 4월 최순실씨의 3회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증언한 내용에 담겨 있었다.

김종 전 차관의 법정증언에 따르면, 지난 2015년 1월 9일 김종덕(61·구속기소) 전 문체부 장관과 청와대에 방문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40분에서 50분 가량 면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은 문체부 주요 인사들이 특정 대학출신들에 편중돼 있다는 점 그리고 정치인들의 공직 추천의 문제점에 대해 살펴볼 것을 당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대통령 면담에서 나왔던 내용들 대부분은 김종덕 전 장관이 특검 조사과정에서 제출한 업무 수첩에도 분명히 적시돼 있었다. 그런데 김종 전 차관은 A4용지에 당시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적었고, 그 종이는 현재 폐기한 상태라고 법정증언했다.

또 김종 전 차관은 검찰 조사 및 법정에서 당시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정유연(정유라의 개명 전 이름)과 같이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잘하는 선수를 정책적으로 잘 키워야 한다. 왜 이런 선수들을 자꾸 기를 죽이느냐”라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김종 전 문체부 2차관의 법정증언의 신빙성을 두고, 삼성재판뿐만 아니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판 등에서도 잡음은 상당하다. (사진=연합)
물론 김종덕 전 장관의 업무수첩에는 이런 말이 전혀 나와 있지 않았지만, 김종 전 차관은 “정유연이라는 선수가 있다고 정확히 말하셔서, 하나의 충격적으로 다가왔다”고 증언했다.

특히 김종 전 차관은 지난 2015년 7월 23일 올림픽 파크텔에서 열린 스포츠 산업 포럼에 참석한 날, 박상진 전 사장과 전화통화를 하며 “대통령께서 이재용 부회장에게 정유라 선수를 2020년 도쿄올림픽에 나갔을 때 지원하라고 했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김종 전 차관은 충격을 받았고 대통령 지시사항이라는 부분도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수첩에 ‘VIP’, ‘이재용 부회장’, ‘정유연’, ‘올림픽 지원’이라는 키워드만 적어놨다고 법정증언했다.

또 김 전 차관은 당시 박상진 전 사장의 전화통화 내용에 대해서도 “대통령 말씀이라는 중요성 때문에 제 기억 속에 90% 이상 워딩이 맞다”라며 “기업의 사장이 기업의 부회장까지 들먹이면서 이야기하는 것은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라고 증언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해 7월 말 최순실씨를 만나고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해당 수첩을 잃어버려 이를 보다 객관적으로 증명해주기에는 불가능했다.

물론 김종 전 차관의 해당 진술과 증언은 굳이 객관적 증거로 들어가지 않고, 1심 재판부가 선호했던 정황상으로만 보더라도 사실상 증거능력을 상실한 수준이었다.

앞서 언급한 대로 2015년 1월 청와대 대통령 면담 자리에서 박 전 대통령이 정유라를 직접 지목하면서 기를 죽이지 말라고 했다는 부분은 김종덕 전 장관의 업무수첩에도 나와 있지 않았고, 김 전 장관 역시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냐는 질문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법정증언한 바 있다.

무엇보다 대통령 면담을 가는 문체부 차관이 장관도 가지고 가서 필기에 활용했던 업무수첩을 지참하지 않고, A4용지에 대통령 지시사항을 적었다는 점은 의문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또 2015년 7월 23일 박상진 전 사장과의 전화통화에 대해서도 정황상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상당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재용 부회장을 직접 만나 올림픽 승마지원에 대해 질책하기 이틀 전에 번호를 어떻게 알아냈을지 모를 이 부회장에 전화를 걸어, 정유라씨의 올림픽 승마지원을 요청했다는 주장은 당연히 설득력이 떨어진다.

설령 실제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재용 부회장에 전화해 정유라씨의 승마지원을 요청해 이 부회장이 이를 인지하고 있었다면, 이틀 후 독대자리에서 이 부회장에게 생애 첫 충격으로 다가왔을 정도의 질책을 받을 가능성이 없었다.

또 김종 전 차관도 당시 일이 충격으로 다가와 관련 내용의 키워드를 메모했고 그 메모를 한 수첩을 잃어버렸다고 할지라도, 또 다른 업무수첩에 이를 받아 적지 않았다는 점도 신빙성을 떨어뜨리는 부분이다.

김 전 차관 자신의 진술대로 대통령 지시사항이라는 부분이 커서 당시 메모를 했고, 비록 이를 잃어버렸다고 할지라도 다른 업무수첩을 마련해 ‘충격적’ 그리고 ‘대통령 지시사항’이었던 이 내용을 옮겨 적었어야 정황상 설득력이 있었다.

재판부가 오로지 법리싸움에 초점을 맞춘다면, 오히려 이재용 부회장 측에 유리하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
물론 박상진 전 사장은 당시 김종 전 차관에게 “대통령께서 이재용 부회장에게 정유라 선수를 2020년 도쿄올림픽에 나갔을 때 지원하라고 했다”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때문에 이런 이야기가 실제로 오갔는지 입증해줄 만한 법적증거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1심 재판부는 이를 판결에 적용한 셈이었다.

삼성 측은 당연하게도 항소심에서 김종 전 차관은 증인으로 재신청 했다. 법리싸움 위주로 이뤄질 항소심에서 김종 전 차관의 증언의 증거능력을 뒤집을 수 있다는 삼성 측의 의지가 그 어떤 것보다 높다는 점을 의미하고 있다. 무엇보다 재판부가 법리싸움에 맞춰 재판을 끌고 간다면, 삼성 측에 오히려 유리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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