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에서 더 이상 용 안 난다…금수저 현상 고착화

돌 지나지 않은 영아 304명, 평균 5천만원 가까이 증여받아

부동산 임대로 월 1억 버는 미성년자 대표도 24명

한미약품 회장 손자 8명 주식 총 4233억원…회사 관련성 높아

로스쿨 재학생 10명 중 7명은 고소득층

전문가 “10여 년 만에 기회불평등 4배 증가”

최근 시작된 2017년 국정감사에서 금수저 현상이 갈수록 두드러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만 1세 미만의 갓난아이 304명이 평균 4934만원을 증여받는가 하면, 사업장 대표로 돼있는 미성년자 24명은 평균 연봉이 1억 원이 넘었다. 주식을 100억 원 이상 보유한 미성년자도 10명에 달하는 수준이다.

부의 대물림은 성인이 돼서도 이어진다. 로스쿨 재학생의 약 70%는 고소득층 자제로 나타나는 등 경제 격차의 악순환 고리가 고착화되는 모습이다. 교육을 통한 신분상승보다는 집안 환경인 ‘수저’의 색깔이 성공의 주요 요인이 됐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됐다.

태어나자마자 수천만 원 보유하는 아기

최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의원은 국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했다. 서민들에게는 힘이 빠지는 결과였다. 2008년부터 2016년 등 최근 8년간 만 18세 이하 미성년자 46,542명이 총 5조2473억 원을 증여받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1인당 평균 증여재산은 1억 1274만원에 달했다.

자식에게 자산을 증여하는 수단으로는 예금 등 금융자산이 2조818억 원(39.7%)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뒤 이어 ▦부동산 32.3%(1조6893억원) ▦주식 등 유가증권 24%(1조2585억원) ▦기타자산 4.1%(2177억 원) 순이다.

생애주기별로는 만 2세 이하 3988명은 3338억 원을 증여받아 1인당 평균 8370만원으로 집계됐다. 특히 돌이 지나지 않은 만 1세 미만 304명은 150억 원을 증여받아 평균 4934만원을 증여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만 3~5세 아동의 경우 5274명이 5346억 원, 1인당 평균 1억 136만원을 부모로부터 받았다. 만 6~12세에 해당하는 초등학생 1만647명의 1인 평균 증여액은 1억1052만원이었다.

조사 결과, 미성년자 연령대 가운데 집중적으로 증여가 이뤄지는 시기는 중·고등학교 때로 나타났다. 만 13~18세 중고등학생 2만1233명은 2조653억 원을 증여받았다. 1인 평균 증여액은 1억2270만원이다.

미성년 시절부터 증여를 시도하는 이유는 증여세 누진 과세 회피가 가장 큰 것으로 분석된다. 재산을 한꺼번에 물려줄 때보다 어려서부터 나눠 주면 세금을 적게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세법을 악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박광온 의원은 “부모가 정당하게 재산을 늘리고 법의 테두리에서 자녀에게 증여를 하는 것은 비판받을 일이 아니다”라면서 “부모가 누진세율을 피하기 위해 자녀에게 재산을 분산시키거나 편법증여 등의 목적으로 악용되는 것은 엄격하게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동산 임대로 돈 버는 217명 미성년 대표님

박 의원은 “미성년자 236명이 사업장 대표로 등록돼 있으며 이들 가운데 90% 이상에 부동산 임대업을 하고 있다”고도 발표했다.

박 의원이 최근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직장가입자 부과액’을 받아 분석한 결과 18세 미만 직장가입자 수는 총 6244명(올해 8월말 기준)으로 이 중 236명이 사업장 대표로 등록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중 2개 이상 사업장을 가지고 있는 대표자는 6명이다.

236명 중 217명(92%)은 부동산 임대업 사업장 대표로 등록돼 있었다. 이들 중 85명(36%)은 서울 강남3구(강남ㆍ서초·송파)에 사업장을 두고 있다.

미성년자 사업장 대표들의 월평균 소득은 357만5921원으로 평균 연봉은 4291만1050원에 달했다. 특히 24명은 평균 연봉이 1억 원 이상이며, 62명은 평균 연봉 5000만 원 이상이었다. 연봉 1억 원 이상 중 23명이 부동산 임대업이다.

소득이 가장 높은 대표자는 사업장이 강남구에 위치한 만 5세의 부동산 임대업자로 월 소득이 3342만 원으로 연봉 4억 원에 해당하는 수익을 벌어들이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형태에 대해 ‘쪼개기 증여’와 함께 ‘소득세 쪼개기’라고 지적한다. 유령 대표자 형태는 자식을 공동대표로 임명한 뒤 월급을 지출하고 존재하지 않는 ‘경비’를 만들어내는 식이다. 이는 발생한 임대 소득을 여러 명에게 분산해 누진세율을 회피하면서 세금을 적게 낼 수 있는, 합법적인 편법인 셈이다.

지난 17일 박 의원은 국회 기재위 국정감사에서 “한 살짜리 미성년자가 대표로 있는 것이 정상적인 경영형태가 아니다. 법의 허점을 이용한 편법적인 증여”라며 “우리가 법의 허점을 찾아서 막아야지 있는 법만 들여다보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김희철 서울지방국세청장이 경영능력이 전무한 미성년 건물주들에 대해 탈법적 탈루행위가 있었는지 강력히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특히 현행 제도에서 미처 관리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지도 유관기관과 협의 하에 검토하겠다고도 밝혔다.

주식 증여로 부 이전시키는 재벌…한미약품 회장 손자8명 주식 총 4233억원

우리 사회의 대표적 금수저는 재벌가 자제들이다. 재벌들은 3·4세들에게 어린 나이부터 주식을 증여하며 부를 조금씩 이전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거래소는 유가증권시장의 만 18세 이하 대주주, 친인척 등 특수관계인의 주식 보유 현황을 조사한 결과, 1억원 이상의 주식을 보유한 미성년자는 총 110명으로 이 중 100억 원 이상 보유한 미성년자는 10명으로 집계됐다고 지난 9일 밝혔다. 10명 중 상당수는 재벌가 3세다.

미성년자 주식 부자 1위는 임성기 한미사이언스 회장의 친손자 임모(14)군으로, 보유액이 617억 원에 달했다. 임 회장의 다른 손자녀 6명도 각각 602억 원씩의 주식을 보유해 미성년자 주식 부자 2~7위에 올랐다. 이들은 한미사이언스가 지주사로 전환한 2012년 주식을 증여받거나 이 회사의 무상 신주를 취득하면서 상위권을 휩쓸었다.

이어 허창수 GS 회장의 친인척으로 알려진 허모(16)군과 그 동생(13)이 각각 548억 원, 217억 원의 주식을 보유해 뒤를 이었다.

시가총액 기준으로도 미성년자가 가장 많이 보유한 기업은 한미사이언스였다. 임 회장의 손자녀 8명이 총 4233억 원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GS는 미성년자 4명이 987억 원을, 한샘은 2명이 112억 원을 보유했다.

재벌가 3세 주식 증여에 대해 꾸준히 문제제기를 해온 민주당 민병두 의원은 작년 국감에서 “대기업에 미성년 주식부자가 많은 건 이들이 해당 회사와 직접 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라며 “금융감독당국이 주식 취득 과정의 불법이나 편법, 탈법이 없도록 관리 감독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성인이 돼도 부의 대물림은 지속

부의 대물림 현상은 20~30대로 넓혀 봐도 큰 차이는 없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재학생 10명 중 7명은 월소득 804만 원 이상인 고소득층에 속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고소득층이 많다 보니 로스쿨 장학금 지급률도 감소하고 있어 로스쿨이 고소득층을 위한 전형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다.

지난 17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민주당 유은혜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2016~2017 로스쿨 재학생 소득분위 현황’ 자료에 따르면 전체 25개 로스쿨 재학생 중 67.8%가 고소득층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 대비 0.9% 상승했다.

고소득층은 2017년 기준 월소득 804만원 이상인 소득분위 8~10분위에 속하는 인원이다. 고소득층으로 분류되는 장학금 미신청 인원은 전년 대비 1.1% 증가한 반면 중산층은 1.1% 감소했다.

소득 8분위 이상 고소득층은 수도권이 72.5%로 지방(61.9%)보다 10.6%p 높았다. 소득 2분위 이하 저소득층 비율은 지방(21.3%)보다 수도권 로스쿨(14.6%)이 적었다. 또 국립(64.5%)보다는 사립(70%) 로스쿨에 고소득층 재학생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별 고소득층 비율은 고려대가 81.9%로 가장 높았다. 이어 ▦한양대 78.8% ▦이화여대 78.8% ▦연세대 77.4% ▦▲서울대 77.4% 등의 순이었다.

유 의원은 "저소득층과 중산층이 비싼 로스쿨 등록금을 감당하려면 장학금 지원이 절실한데 대학은 오히려 장학금 비율을 줄이고 있다”며 “정부는 대학에서 장학금 지급 비율을 늘릴 수 있도록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장학금 수혜 범위를 늘리면서 로스쿨 등록금을 줄이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평등ㆍ양극화 심화…교육으로 신분상승 희망 사라져”

한국 사회에서 사회경제적 환경의 차이로 인해 금수저가 득세하고 개천에서 용 나기가 어려워 지고 있다는 인식은 최근 통계로 입증되기도 했다.

지난달 25일 재정학연구 최근호에 실린 서울대 경제학부 박사과정 오성재 씨와 같은 학부 주병기 교수의 ‘한국의 소득기회불평등에 대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부모의 직업과 학력에 따라 기회 불평등이 심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논문은 한국노동패널 1차(1998년)에서 18차(2015년) 자료를 바탕으로 1998년, 2003년, 2008년, 2014년 가구주 연령 30∼50대 가구의 가처분소득을 중심으로 분석했다. 사회·경제적 환경변수로는 가구주 부친의 교육 수준과 직업을 택했다. 직업은 고숙련자(고위임직원·관리자·전문가 등), 중숙련자(사무ㆍ서비스ㆍ판매업 단순노무 종사자), 저숙련자(농림어업 종사자)로 범주를 나눴다.

그 결과 가구주 부친의 직업과 학력에 따라 기회불평등이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든 조사 기간에서 고숙련 집단과 저숙련 집단 간 기회불평등이 나타났다. 특히, 기회불평등은 부모의 직업이 저숙련일 때 집중됐다.

논문은 자체 개발한 ‘개천용불평등지수’도 분석했다. 지수가 0이면 최상위소득을 얻는 사람 중에서 최하위 환경을 가진 사람의 비율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과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천용불평등지수가 1이면 최상위소득을 얻는 사람 중 최하위 환경을 가진 사람이 전혀 없다는 것을 나타낸다. 기회 불평등이 가장 높다는 의미다.

조사 결과 이 지수는 조사기간 꾸준히 상승했다. 특히 가구주 부친의 직업환경을 분석한 결과 기회불평등도는 2001년 10%대에서 2014년 40% 가까이 증가했다. 2001년 최저 환경에서 성공할 수 있는 10명 중 1, 2명이 기회 불평등 탓에 성공하지 못했다면 2014년에는 4명 가까이 성공하지 못했던 셈이다. ‘개천에서 용 나기 어려워졌다’는 인식이 연구 결과에서도 입증된 것이다. 성공을 위해서는 그만큼 ‘수저’(주어진 환경)가 주요한 요인이 됐다는 의미다.

논문은 “한국 사회는 2000년대 들어와 높은 불평등과 양극화로 기회평등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크게 악화했고 자녀 교육을 통한 신분상승 희망도 사라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중앙대 사회학과 이병훈 교수는 지난달 26일 한 인터뷰에서 “서구 사회에서도 부모의 조건이 자녀들에 대한 교육 투자를 매개로 자녀들의 계층이나 계층 유지라는 측면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 이미 밝혀진 사회학적 연구”라면서 “우리나라는 매우 심각하게 부모의 능력에 따라 자녀의 대학진학, 자기 능력 계발에 차이가 난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이어 “그것이 취업 시장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들이 갈수록 드문 사회로 바뀌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허인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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