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시적 청탁’의 선결과제 ‘승계작업’ 인정의 위법성 논란… 항소심 판단은

‘포괄적 현안으로서의 승계작업’ 인정한 1심 재판부… 각종 오류 제기돼

이재용, 경영권 승계작업 필요할 정도로 “지배력 없었나(?)”

승계작업 인정 여부, 묵시적 청탁 혐의 판단에 결정적 영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항소심 재판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또는 승계작업 유무를 두고 치열한 공방이 이뤄지고 있다. (사진=연합)
한민철 기자

이재용(49ㆍ구속기소)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항소심 재판에서 경영권 ‘승계작업’ 존재 유무를 두고 논란이 뜨겁다. 특검 측은 이재용 부회장 측의 경영권 승계작업이 있었다고 주장해왔고, 이 사건 1심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여 유죄 판결에 반영했다. 이에 삼성 측은 이 사건 항소심에서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승계작업은 없었다”라고 반박하고 있다. 특히 삼성 측은 1심 재판부가 ‘포괄적 현안으로서의 승계작업’에 대해 오해를 했다며, 이 부분에 대한 1심 판결 내용의 위법성을 강력히 지적하고 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 사건 1심 재판부는 “포괄적 현안으로서의 ‘승계작업’의 추진사실은 인정된다”라고 밝혔다. 당시 재판부는 지난 2014년 5월 이건희 삼성전자 부회장의 와병에 따른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 확보, 즉 시급한 승계작업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이 필요성에 따라 ‘삼성SDS 및 제일모직의 유가증권 시장 상장’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합병에 따른 신규 순환출자 고리 해소를 위한 삼성물산 주식 처분 최소화’,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등의 네 가지 개별현안을 해결해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전자 또는 삼성생명 등에 대한 지배력 확보가 수월하게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 이 개별현안의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관여한 점 그리고 다수의 금융ㆍ감독기관의 전문가들이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이 이 부회장의 삼성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 확보와 관련이 있다고 분석하고 있었다는 점도 승계작업 추진의 근거라고 판시했다.

특히 이런 개별현안을 해결하는 경영권 승계작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이재용 부회장과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부회장, 장충기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사장,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 등이 공모해 청와대에 부정한 청탁을 한 것으로 바라봤다.

이 부분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듯이 이재용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세 차례 단독면담에서 경영권 승계작업에 따른 개별 현안의 해결을 위해 청와대로부터 도움을 받는 대가로, 비선실세 최순실씨 측에 승마지원 및 영제센터지원 등의 뇌물을 제공했다는 사실이다.

1심 재판부는 삼성 측의 미르ㆍK스포츠 재단 지원 부분을 제외하고 승마지원과 영제센터지원 뇌물공여 여부에 대해 각각 일부 유죄, 전부 유죄 판결을 내렸다.

사실 이 사건 1심 재판의 판결 이후 가장 논란이 됐던 부분은 바로 ‘묵시적 청탁’에 대한 인정이었다. 이재용 부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 사이의 청탁에 대한 명시적 근거 없이, 이재용 부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 간 독대 사실과 그 시점을 전후로 이뤄진 최씨 측에 대한 지원, 그리고 앞서 언급했던 네 가지 개별현안 해결 등으로 뇌물공여 혐의에 대한 유죄 판결이 과연 정당했냐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 사건 묵시적 청탁 부분에 앞서, 숨겨진 논란거리는 바로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작업’의 유무였다.

1심 재판부가 “승계작업에 관해 대통령에 대한 묵시적인 부정한 청탁이 있었음”이라고 판시한 만큼, 원인과 결과의 측면에서 봤을 때 승계작업이 있어야 묵시적 청탁이 인정된다는 의미였다.

만약 실제로 승계작업이란 없었다는 점이 밝혀진다면, 난해하고 모호한 묵시적 청탁 부분에 대한 혐의입증 또는 방어에 굳이 힘을 쏟을 필요가 없었다.

그만큼 승계작업의 유무를 둘러싸고 특검과 삼성 측은 치열한 공방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특검 측은 1심 재판부와 같이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승계작업은 존재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삼성 측은 “승계는 있었지만, 승계작업은 없었다”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렇게 청탁 여부를 결정지을 수 있는 근본적인 부분이자 검찰과 변호인 측 사이의 논란거리인 승계작업 유무를 두고, 이 사건 1심 재판부는 승계작업이 존재했다고 판결하면서 상당히 모호한 해석을 포함시켰다.

앞서 언급했듯이 1심 재판부는 ‘포괄적 현안으로서의 승계작업 추진사실’ 그리고 ‘승계작업이 곧 포괄적 현안이며, 이를 구성하는 것이 개별적 현안’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그런데 부정한 청탁의 존재 유무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개별적 현안에 대한 청탁’은 인정하지 않았다.

다시말해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SDS 및 제일모직의 유가증권 시장 상장’ 등 네 가지 개별적 현안이 아닌, 포괄적 현안의 해결을 위해 박 전 대통령 측에 부정한 청탁을 했고, 동시에 승계작업을 추진했다는 의미였다.

1심 재판부, ‘포괄적 승계작업 = 개별적 현안 + 순차적 작업진행 + 최종 목표’ 몰랐나

이 사건 1심 재판부의 위와 같은 해석이 모호하며 분분한 결과를 낼 수밖에 없다는 근거를 살펴보기 위해, 우선 승계와 승계작업 간의 차이 그리고 개별적 현안과 포괄적 현안의 차이에 대해 명확히 구분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결과적으로 1심 재판부는 이들 각각의 차이점에 대해 오해를 한 채 판결을 내렸을 가능성이 높았다.

사실 경영권 승계와 승계작업이란 명확히 구분되는 개념이다. 경영권 승계는 한 기업의 경영권 또는 그 기업에 대한 지배력이 공정거래법상 지위가 동일한 상태에서 다음 세대로 넘어간다는 의미다.

보다 구체적으로 승계는 다음 세대가 전 세대로부터 재산이나 기업 지분을 상속 또는 증여를 받거나 경영권을 이전 받을 때 이뤄지게 된다. 회사의 주요 현안이나 의사결정에 대한 영향력을 지배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승계작업은 승계에서 ‘인위성’이라는 것을 덧붙이게 된다. 전 세대가 다음 세대가 가지고 있는 기업 집단 내에서의 ‘부족한 지배력’을 인위적으로 보완·강화시키기 위한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작업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국내 대기업들은 승계를 하게 되지만, 다음 세대가 부족한 지배력을 가지고 있는 등의 문제가 없는 이상 승계작업을 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삼성 측은 이재용 부회장이 아버지 이건희 회장으로부터의 경영권 승계는 있었지만, 승계작업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연합)
특검 측 공소사실과 1심 재판부는 다음 세대 즉,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전자 또는 삼성생명 등 그룹 내 주요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 확보 수준이 미미했고, 이에 안정적 승계를 위한 포괄적 승계작업이 필요했다는 입장이었다. 무엇보다 이재용 부회장이 이건희 회장의 와병으로 승계작업을 서둘러야 할 필요성도 있다고 바라봤다.

아쉽게도 특검 측 공소장이나 1심 판결문에는 이재용 부회장이 당시 삼성그룹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 확보 수준이 미미하거나 부족했다는 부분에 대한 명확한 근거는 나타나 있지 않았다.

사실 당시 이재용 부회장의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를 위한 그룹 내 지배력은 추가적 작업이 필요하거나 부족할 정도가 아닌 충분히 갖춰진 상황이었다.

실제로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그룹 내 최대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에 지난 1991년 입사해 2009년 부사장으로 그리고 2012년에는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이미 이건희 회장의 와병 이전부터 삼성전자라는 그룹 내 핵심 계열사의 부회장이라는 직함으로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물론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승계가 이뤄지는 시점에서도 기업집단 내에서의 실질적 영향력을 판단하는 잣대인 지분 또는 의결권 규모에 있어서도 부족하다는 근거는 없었다. 당시 삼성전자의 지분구조는 이건희 회장이 건재할 시기와 크게 변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 삼성전자의 지분구조는 외국인 지분율이 약 54%로 총수일가와 계열사 및 특수관계인 등의 내부 지분율은 약 18%를 유지했다. 오히려 지난 1998년 삼성전자의 내부 지분율은 약 16.5%로 지난해 말보다 낮은 상태였다.

물론 “이재용의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 확보가 부족해서 내부 지분율이 ‘겨우 18%’로 유지되는 것 아닌가”라는 반론을 할 수도 있다. 겉으로 보기에 내부 지분율 18%는 충분한 경영권을 확보하고 있다고 말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공정거래법상 해임·정관 변경 등 예외적인 경우를 포함하고서라도 총수일가와 계열사 및 특수관계인 등에 대해서는 15%까지만 의결권 행사가 가능하다.

지난 11일 기준 코스피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354조 5275억원을 기록했다. 여기서 약 1%인 3조 5000억원의 거금을 들여 지분을 추가로 확보한다고 해도, 공정거래법상 제한으로 사실상 기업집단 내에서 지배력을 의미하는 의결권을 더 늘릴 방법은 없었다.

그룹 내 또 다른 핵심 계열사인 삼성생명의 경우에는 내부 지분율이 무려 52%로, 국내 다수의 상장 보험사 및 기타 금융사가 20% 남짓한 내부 지분율을 보유하고 있는 것에 비교하면 압도적인 수치인 것이 사실이다.

통상 총수일가와 특수관계인 등의 내부 지분율이 50% 이상이면 ‘확고한 지배’에 포함되는 만큼 삼성생명의 내부 의결권 지분은 충분하고도 확고한 상태였다.

52% 중 20.7%가 이건희 회장의 지분으로, 이재용 부회장은 여기서 20%의 지분을 매각하더라도 여전히 30% 이상의 내부 지분율을 보유하면서, 최대치까지 의결권 행사가 가능했다.

삼성 측 변호인은 이 사건 항소심 재판에서 “현재 삼성전자의 지분구조의 근본적 변경은 불가능하고, 현재 지분구조를 그대로 받아들인 채 경영실적과 주주 정책으로 특히 외국인 주주의 신뢰를 얻는 길밖에 없다”라며 “이재용 피고인은 승계 이후에도 현재와 같은 지분구조를 유지해왔다”라고 설명했다.

사실 이 사건 1심 재판부가 판시한 ‘포괄적 현안으로서의 승계작업’은 앞서 언급했던 네 가지의 개별현안의 합계만으로 충족시킬 수 없다.

동네 구멍가게가 아닌, 삼성 주요 계열사에 대한 전반적인 지배력을 확보해 나가는 작업이 이뤄진다면 상식적으로 각종 현안들을 뒤죽박죽 진행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당연히 승계작업은 일정한 순서에 따라 진행돼야 하며, 이에 따른 최종 목표를 담은 마스터플랜이 제시돼야 한다.

특검 측은 이 사건 공소사실에 이 부분에 대해 언급을 했다. 각 개별현안들이 이재용 부회장의 필요성에 의해 순차적으로 진행됐다는 점을 분명히 했고, 승계작업의 목표로 ‘삼성생명의 중간금융지주사 전환’과 이것의 전제가 되는 ‘삼성전자의 일반지주회사 전환’을 제시했다.

공교롭게도 포괄적 현안으로서의 승계작업을 인정했던 1심 재판부는 이 부분에 대해 인정하지 않았다.

실제로 1심 재판부는 “특검이 제시한 개별적 현안들 사이의 진행 순서에까지 그 개념(승계작업)의 범위가 미치지는 않는다고 보았음”이라고 판시했다. 승계작업의 최종 목표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이 사건 항소심 재판부가 경영권 승계와 승계작업을 제대로 구분한 판결을 내릴지 벌써부터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사진=연합)
때문에 묵시적 청탁의 유죄 여부를 판가름할 수 있는 포괄적 현안을 통한 승계작업이 진행됐다는 판단은 논란을 낳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는 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을 옹호하기 위한 측면이 아니다. 당시 그가 경영권 승계를 위한 그룹 내 지배력이 충분히 확보된 상황이었다는 사실이자, 경영권 승계작업의 필요성이 없었을 가능성이 높여주는 근거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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