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공모’ 증거 차고 넘치는데… “‘실수’라는 면죄부 주다니”

IDS홀딩스 주요 모집책 ‘지점장들’, 사기 혐의 전원 무죄 선고

피해자들 “지점장들, 사기공모 증거 여럿 있다”… 법원 판결 반박

항소심 염두에 둔 채 판결 내린 재판부… ‘사법 불신’ 파장 커지나

IDS홀딩스 사건의 주요 모집책들에 대한 사기 혐의가 법원으로부터 무죄 판결을 받으며, 상당한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사진=연합)
한민철 기자

‘제2의 조희팔 사건’ IDS홀딩스 사기 사건의 주요 모집책들이 사기 혐의에 대해 법원으로부터 전원 무죄 판결을 받으며, 상당한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다수의 피해자들이 법원의 이번 판결에 납득할 수 없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고, 검찰도 즉각 항소했기 때문이다. 특히 IDS홀딩스 사건이 정관계 연루 게이트로 확대되면서 여론의 관심이 커지고 있고, 이번 재판부의 무죄 판결 사유에 있어 사실과 어긋나는 부분이 여럿 발견됐다. 이에 이번 법원의 판결이 IDS홀딩스 피해자들의 반반을 넘어 국민들의 ‘사법 불신’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 20일 서울동부지방법원 형사2단독(부장판사 이형주) 심리로 열린 남 모씨 등 전직 IDS홀딩스 지점장 15명에 대한 사기 및 방문판매업 등에 관한 법률 위반 선고 공판이 열렸다.

남씨 등 피고인들은 지난 2011년부터 지난해 8월경까지 다단계 유사수신업체인 IDS홀딩스의 지점장 등 임원 직책으로 무려 만 여명이 넘는 투자자들을 모집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들로부터 받은 1조 2000여억원의 투자금을 빼돌려 사기 피해를 일으키는데 가담한 혐의 등으로 지난해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차례대로 기소된 상태였다.

이날 선고 공판에서 재판부는 사기와 방문판매업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모두 무죄를 그리고 피고인 김 모씨의 경우 공문서 위조 혐의로 3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 지점장들과 김성훈 대표와의 녹취록을 봤을 때, 의심을 넘어 사기 혐의를 유죄로 인정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라며 이 사건 핵심 혐의인 사기 부분에 대한 무죄 판결 이유를 밝혔다.

이어 “지점장들도 투자자들이 모르고 있던 이 사업의 실체를 미리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라고 덧붙였다.

방문판매업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재화와 용역과 관련해 규제하는 법으로, 이번 사건과 관련된 금융사기의 경우에 아예 적용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재판부는 망설임 없이 이 부분 무죄를 선고했다.

IDS홀딩스는 지난 2011년 11월부터 홍콩 FX마진(해외통화선물)거래에 투자하면 원금이 보장되고 매달 2~3% 또는 그 이상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며 투자자를 모집했다.

처음에는 투자자들에게 이자와 배당금을 잘 챙겨줬는데,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는 오로지 FX마진거래로 돈을 불린 것이 아닌 기존 투자자나 새로 가입한 투자자들의 투자금을 충당해 원금 및 이익금을 지급한 ‘돌려막기’ 방식이었다.

투자 초기에는 이자와 배당금이 꼬박꼬박 지급됐기 때문에, 입소문을 타서 투자자들이 더욱 늘어나거나 기존 투자자들의 투자 금액이 높아지는 경우도 많았다. 물론 실질적으로 수익이 발생하지 않았고, 장래에도 수익이 발생할 가능성은 희박했다.

검찰은 이 사건 공소사실에 돌려막기 방식에 따른 배당금 및 이자금 지급 등 이 사업의 불법성에 관해 피고인 지점장들이 충분히 인지한 채 사기 행위에 가담했다고 적시했다. 때문에 이들도 김성훈 대표와 사기 혐의에 있어 공범이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재판부는 증거로 제출된 피고인 지점장들과 김 대표와의 녹취록 내용 등을 살펴봤을 때, 이들이 돌려막기 방식 등의 부정행위에 대해 알지 못한 채 투자자 모집에 나섰다고 판단했다.

재판부의 판단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이들 지점장들은 사기 행각에 가담한 것이 아닌 김 대표로부터 속아 넘어가 안타깝게도 ‘실수로’ 피해를 확산시킨 또 다른 피해자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재판부는 선고에 앞서 방청석에 모인 IDS홀딩스 피해자들을 향해 “사람의 신체를 고의가 아닌 실수로라도 다치게 하면 처벌을 하는데, 목숨과도 같은 여러분들의 돈을 ‘실수로’ 잃게 한 것에 대해 왜 법이 처벌하지 않도록 하는지 재판장도 답답하다”라며 “(피해자) 여러분들의 절규를 듣고도 도와드리지 못하는 심정을 헤아려 주시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사건은 1심 판결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며 “피해자들은 단결하고 대응해 좋은 결과를 얻기 바란다”라고 말을 맺으며 선고를 내렸다.

재판장의 이 말은 오히려 피해자들의 화를 키웠다.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사기 피해의 공범들을 ‘실수로’ 피해를 입힌 또 다른 피해자로 포장하는가 하면, 항소심이 당연히 이뤄질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방청석에서 이를 지켜보던 피해자들은 재판부의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소란이 일으켰다. 일부 흥분한 피해자들은 방청석에 앉아있던 피고인들의 가족들과도 충돌할 정도였다.

신중하고 공정한 판결로써 국민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국가의 근간인 법치주의를 지킬 의무가 있는 사법부가 자신들의 판결에 얼마나 자신이 없었으면, 항소심을 미리 염두에 둔 채 결정을 내렸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날 피해자들의 절규는 한동안 법원 주변에서 떠나지 않았다.

IDS홀딩스 대표가 인정한 지점장들과의 ‘사기 공모’

이날 선고 이후 IDS홀딩스 피해자들을 중심으로 재판부의 판결과 재판 과정에서의 문제점에 비판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우선 선고 공판에 앞서 검찰 측이 선고 연기를 요청한 것에 대해 재판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점에 대한 지적이 제기됐다.

지난달 30일 검찰이 피고인 지점장들에게 징역 5년에서 12년까지를 구형한 이후, 피고인 측 변호인들은 지난 12일 녹취록 및 서면 증거를 보강해 재판부에 제출했다.

만약 증거가 제출됐다면 이를 정식 증거로 받아들이기 위해 증거채택 동의 여부를 검찰 측에 사전에 묻는 것이 일반적이며, 당연히 해당 증거가 검찰 측에도 전달된 뒤 증거조사가 공정하게 이뤄져야 마땅했다.

그런데 검찰 측은 해당 증거를 사전에 확인하지 못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제출된 녹취록의 음성파일에 담긴 목소리가 피고인의 것이 맞는지 전문기관에 해당 증거의 진위여부에 대한 판단을 의뢰하는 등의 절차가 필요했다.

이에 검찰 측은 재판부에 선고 연기를 요청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재차 연기를 강력히 촉구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해당 녹취록을 제출한 피고인에 대한 증인신문이 이뤄졌지만, 검찰 측 반론 기회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실제로 검찰은 재판부에 녹취록 음성파일이 피고인들에 유리한 부분만 따로 제출된 것이며, 녹취록에 대한 피고인의 신문 기회를 달라는 취지로 재판부에 요청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재판장이 공판에서 증거의 진정성을 확인하고 조사할 수 있다고 본다”라는 이유로 검찰 측 요청을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 피고인 지점장 측이 제출한 해당 녹취록은 이들의 무죄 판결을 이끌어 내는 데, 큰 역할을 한 새로운 증거였다.

선고 공판 이후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해당 녹취록에는 지난해 4월 IDS홀딩스의 고문 변호사의 강연 그리고 지난해 6월경 피고인 지점장 등의 회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녹취록이 재판부에 증거로 받아들여지자 변호인 측은 피고인들이 단지 김성훈 대표의 말만 믿고 돌려막기 방식 등 사기행위가 이뤄졌는지 알지 못했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쳐 나갔다.

이에 재판부는 피고인 지점장들의 사기 혐의에 대한 무죄 판결을 내리며, 앞서 언급한 녹취록 등의 증거를 토대로 봤을 때 이들이 돌려막기 방식 등 부정행위에 대해 알지 못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이들 지점장들이 돌려막기 등의 행위를 충분히 인지한 채 투자자 모집에 나섰다는 합리적인 근거는 차고 넘치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김성훈 대표는 지난 2014년 9월 25일경 검찰로부터 IDS홀딩스 투자자들에 대한 672억원 사기죄로 기소돼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 과정에서 김 대표가 투자자들에게 배당금 및 이자금을 지급한 것이 돌려막기 방식에서 비롯됐다는 점도 밝혀진 상태였다. 당연히 당시 피고인 지점장들은 이런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는, 아니 알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김성훈 대표가 재판을 받는 중에도 꾸준히 투자금을 유치해왔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피고인 지점장들이 김 대표의 재판을 신경쓰지 못해 여전히 돌려막기 방식 등을 몰랐다는 설득력이 결여된 해명을 할지라도, 최소한 사기 혐의에 대한 미필적 고의를 인정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김성훈 대표가 사기 등의 혐의로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지난 2015년 6월 19일 이후에도 피고인 지점장들 중에서는 “집행유예는 무죄나 다름이 없다”라며 투자금을 받은 이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경우 사기의 확정적 고의에 해당함이 분명했다.

무엇보다 이들 지점장들이 돌려막기 방식 등을 의논하고 이에 대해 충분히 인지한 채 모집에 나섰다는 점은 김성훈 대표의 진술 등에서 드러났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번 재판 피고인 지점장 중 한 명인 남 모씨의 검찰 진술서 일부. 이미 김성훈 IDS홀딩스 대표는 돌려막기 등 부정행위에 대해 지점장들이 이미 알고 있었다는 취지의 진술을 검찰에 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제보자 제공)
실제로 김성훈 대표는 검찰조사 과정에서 “하도 언론에서 돌려막기를 한다고 문제가 되길래 제가 아예 약정서에 돌려막기를 한다고 기재하자고 했었는데, 지점장들이 반대해 하지 못했다”라고 진술한 것으로 밝혀졌다.

전직 금융전문가로 구성된 지점장들, 유사수신행위 여부 몰랐나(?)

이번 재판 이후 IDS홀딩스 피해자 모임 및 약탈경제반대행동 등 단체 인원들은 피고인 지점장들이 돌려막기 방식 등 부정행위에 대해 인지하지 못했다면 ‘완벽한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언급한대로 김성훈 대표가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과정에서 이미 돌려막기 방식이 밝혀진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지점장들의 투자 유치는 계속됐다.

또 김성훈 대표 스스로가 이들 지점장들과 돌려막기에 대해 공개하자고 의논했다는 진술을 한 바 있다.

이처럼 정황상 증거가 충분함에도, 거기에 더욱 신빙성을 더해줄 수 있는 증거 역시 남아있다.

이들 지점장들 대부분은 전직 보험설계사 등 금융계통에서 전문적으로 활동하던 이들이었다. 원금을 보장하는 데 고수익까지 낼 수 있는 상품에 투자하는 행위가 유사수신으로 문제가 될 것이라는 점을 사실상 모를 수가 없는 입장이었다.

그것도 수십 퍼센트의 연간 이익이 수년 동안 발생했다면, IDS홀딩스 자산운용 부서의 탁월한 투자능력이 있다며 가볍게 보기보다, 유사수신행위 또는 기타 부정한 방법을 통한 부풀리기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다는 점을 합리적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이런 부분을 전부 배제하고서라도 만약 재판부의 판결대로 이들 지점장들이 돌려막기 방식 등 부정행위를 모른 채 충실히 투자금 모집행위를 한 것에 불과하다면, 피해 규모만 약 1조 2000억원의 사기를 15명의 전직 금융전문가인 지점장들 모르게 김성훈 대표 혼자서 계획했다는 말도 안 되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 외에도 피해자들은 법원의 이번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는 합리적 이유를 다수 제기하고 나섰다.

본지의 취재에 응해준 한 피해자는 “저를 모집한 지점장은 IDS홀딩스 투자 유치 일에 뛰어들고 나서 재산을 불려 큰 집을 마련했다”라며 “지점장들이 돌려막기에 대해 몰랐다는 것도 이해는 간다. 주머니에 그렇게 많은 돈이 들어오니 사기 행위임을 알고 있음에도 그게 머릿속에 들어 왔겠는가”라고 한숨을 쉬었다.

이어 “재판부가 선고를 내리기 전에 피해자들을 생각해주는 말을 했지만, 오히려 염장을 지른 꼴”이라며 “증거에 입각해 판결을 내리는 것은 당연하지만, 지점장들이 사기 공범이라는 증거도 많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판결을 내리는 데 국민들이 어떻게 사법부를 믿고 이 나라에 살 수 있겠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단계 유사수신 업체인 'IDS 홀딩스' 피해자들과 약탈경제반대행동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17일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앞에서 IDS홀딩스와 관련한 법조계, 정관계 배후세력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
검찰 측은 이번 판결에 대해 즉각 항소 의사를 밝힌 상태이며, 피해자들 역시 이번 사건에 대한 공론화를 더욱 활발하게 펼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IDS홀딩스 사기 사건의 주범인 김성훈 대표는 지난 9월 서울고등법원 항소심 재판에서 사기 등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지난달에는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IDS홀딩스 측으로부터 경찰관 인사 및 수사 관련 청탁과 함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 되며, 이번 사건이 정관계 연루 게이트로 확산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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