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의 삼성 현안 관심 증명하는 ‘국정원 보고서’… 여유로운 李

특검, 국정원→청와대 발송한 ‘삼성 현안 관련 보고서’ 확보

1심 재판 ‘장충기 문자’로 활용된 국정원 카드, 항소심은 ‘국정원 보고서’인가

특검 국정원 보고서에 “고급정보 맞아(?)”… 의문 제기하는 삼성

특검 측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에서 또 다른 국정원 카드로, 국정원 보고서를 공개했다. (사진=연합)
한민철 기자

이재용(49·구속기소)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항소심 재판에서 특검 측이 ‘국정원 보고서’라는 새로운 증거를 제시했다. 이는 2015년 당시 청와대가 국정원으로부터 받은 삼성 측 현안과 관련된 정보가 담긴 보고서였다. 특검 측은 이를 통해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 등을 돕기 위해 청와대가 국정원을 동원해 삼성 측 주요 현안에 관심을 가지며, 이를 실제로 적극적으로 도우려 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에 이 사건 1심 재판에서도 ‘국정원 카드’를 통해 재판을 유리하게 끌고 나갔던 특검 측이 항소심에서도 국정원 보고서를 또 다른 국정원 카드로 활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삼성 측은 이 보고서에 과연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의 현안을 해결해주기 위한 ‘고급정보’가 실린 것이 맞는지 의구심이 든다며 반박하고 있다.

박영수(65·사법연수원 10기) 특별검사팀은 지난달 22일 국가정보원 측에 자료 제공요청 공문을 발송해, 같은 달 28일 관련 내용을 회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문서는 지난 2015년 당시 국정원이 삼성그룹의 주요 현안과 관련 내용을 정리해 청와대에 발송한 두 건의 보고서다.

해당 보고서의 내용을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국정원은 지난 2015년 2월 3일 ‘삼성그룹 2차 사업구조 조정 추진 검토(제안)’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청와대 비서실상과 경제수석을 배포대상으로 설정해 보냈다.

이어 같은 해 7월 2일자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무산 가능성 제기(제안)’라는 제목으로 이번에는 배포대상을 청와대 비서실장과 경제수석, 정책조정수석, 민정수석 등으로 한 보고서를 또 한 차례 발송한 것으로 드러났다.

우선 ‘삼성그룹 2차 사업구조 조정 추진 검토(제안)’ 보고서에는 제목 그대로 당시 삼성그룹의 계열사 합병 및 매각 등 사업구조 조정과 관련된 현안들이 정리돼 있었다.

구체적으로 국정원은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은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올해도 구조조정이 가속화될 수 있는 만큼 준비에 차질이 없도록 지시함에 따라 삼성테크윈과 삼성토탈 등 한화그룹과 빅딜이 예상됨”이라는 내용을 보고서에 적시했다.

또 ‘4개사 매각 후속작업 3월까지 완료’, ‘삼성엔지니어링과 삼성중공업 합병 재추진’, ‘삼성정밀과 삼성비피화학 등 화학소재 부문은 글로벌 출시 전망이 불투명할 시, 완전정리 등 처리방안 검토’ 그리고 ‘삼성물산은 건설과 상사 부문을 분리한 뒤, 건설 부문은 엔지니어링과 중공업 등 국내 건설 유관 부문과 합치는 방안 구상에 착수’라는 내용이 기재돼 있었다.

특검 측은 박근혜(65·구속기소) 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 사이의 부정한 청탁의 관계가 2014년 9월 두 사람의 단독면담에서부터 형성됐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 사건 1심 재판의 판결에서도 반영됐듯이 이 단독면담 자리에서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은 부정한 청탁의 발단이 되는 ‘공통의 인식’을 하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에게 삼성그룹 내 당시 주요 현안 해결과 그의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를 위해 힘을 써주겠다는 제안을 했고, 그 대가로 삼성 측으로부터 최순실(61·구속기소)씨 모녀에 대한 승마지원과 미르·K스포츠재단 등에 대한 자금 출연 등의 약속을 받기로 하는 두 사람의 의사가 단독면담 자리에서 협의됐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특검은 당시 삼성그룹 내 주요 현안들에 대해 청와대가 충분히 숙지할 필요성이 있었다고 보고 있다. 두 건의 국정원 보고서는 이를 증명해 줄 수 있는 증거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이 보고서가 국정원으로부터 작성돼 청와대로 보내졌을 2015년 2월 3일경, 앞서 언급한 현안들은 삼성그룹 내 큰 이슈이자 과제로 부상하고 있었다.

지난 2014년 11월 한화그룹은 삼성그룹 내 방위산업 부문 계열사인 삼성테크윈과 삼성탈레스 그리고 석유화학 부문 계열사인 삼성토탈과 삼성종합화학 인수라는 ‘빅딜’을 추진했다.

당시 삼성그룹 내에서는 이 빅딜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후속 작업에 정신이 없었고, 노조 반발 등으로 잡음이 있었지만 이 빅딜은 다음해인 2015년 4월 성사됐다.

또 이와 같은 빅딜이 한창 추진되고 있을 시기, 삼성엔지니어링과 삼성중공업의 합병 움직임이 있었고 이는 당시 삼성그룹 내 가장 큰 현안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전부터 두 회사의 주요 주주였던 국민연금 내에서 합병 반대기류가 형성됐었다. 이어 2014년 11월 국민연금은 삼성엔지니어링과 삼성중공업에 대한 대규모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면서, 사실상 합병 무산의 결과를 낳게 했다.

특검 측은 당시 그룹 계열사의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주체가 삼성 미래전략실인 점 그리고 이재용 부회장의 지시가 있었다는 보고서 기재 부분에 대해 크게 주목하고 있다.

朴, 삼성 현안 챙기기 위해 청와대 참모진 ‘총동원’ 했나

나머지 한 건인 2015년 7월 2일자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무산 가능성 제기(제안)’ 보고서에 국정원은 삼성그룹이 2015년 7월 17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대한 주주총회 계획이 있다는 점 그리고 삼성물산의 합병을 위해 필요한 지분에 비해 확보된 지분이 부족하다는 점, 합병을 위해 국내기관과 외국인 투자자들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 등을 기재했다.

국정원이 청와대에 두 차례 보낸 삼성관련 보고서에는 당시 삼성 측의 각종 현안들이 담겨 있었다. (사진=연합)
특히 이 보고서에서는 두 회사 간 합병에 대한 외국계 대주주들의 반응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었다.

이들이 최치훈 삼성물산 대표이사의 합병 설득에 냉소적이며, 그 냉소의 이유에 대해 삼성물산이 평소 외국인 주주들에 무관심했지만 이재용 부회장에 유리한 지배구조 확립에 급해 주주권익 보호를 운운한다는 불신의 목소리가 있다고 적시돼 있었다.

보다 구체적으로 그동안 양사 합병을 부인하던 삼성 측이 삼성물산의 주가가 크게 하락했을 때 합병을 성사시켜, 외국인 주주들에게는 합병 비율이 상대적으로 불공정해지지만 이 부회장만은 큰 혜택을 볼 수 있어 불만이 크다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합병 전 이재용 부회장은 제일모직의 개인 최대주주로서 주식 23.2%를 보유하고 있었을 뿐, 삼성물산 주식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삼성물산 주가가 다소 저평가된 시점에서 합병이 결정된 후, 이 부회장은 한 번에 삼성물산의 최대주주로 오르게 됐다.

또 이 보고서에는 당시 두 회사 합병에 키(key)를 쥐고 있었던 국민연금의 동향에 대해서도 나타나 있었다.

합병 전 삼성물산의 대주주였던 국민연금 내에 합병에 부정적 기류가 형성돼 있었고, 연금 내 기금운용위원회가 삼성 측에 합병비율 재검토 및 삼성물산 중간 배당안 등을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는 내용 등도 기재돼 있었다.

이어 보고서에는 합병 무산 시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 경영권 승계 및 지배구조가 흔들릴 수 있고, 국가경제의 불확실성이 가중될 수 있다는 금융권의 반응에 대해서도 나타나 있었다.

특히 국정원은 당시 금융권의 반응 중 국민연금의 동의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성공하더라도 삼성 특혜설(說)과 관련된 공세가 예상된다는 점 그리고 ‘정부 입장을 곤혹스럽게 할 소지가 있다’는 점을 강조해 보고서에 실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특검 측은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부정한 청탁을 실행하기 위해 삼성그룹 현안의 세밀한 부분 그리고 향후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에 대해서도 국정원으로부터 보고받았다고 파악하고 있다.

무엇보다 앞서 2015년 2월 3일자 국정원 보고서의 배포라인이 청와대 비서실장과 경제수석이었다면, 이번 7월 2일자 보고서는 비서실장과 경제수석뿐만 아니라 정책조정수석과 민정수석으로까지 배포대상이 확대된 점도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정원 측이 삼성그룹과 관련돼 기업 관계자들 및 정부 행정부처 및 기관 그리고 국민연금 등을 통해 정보를 취합해서 청와대에 보고하면, 이를 민정수석실이 접수해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문제와 청와대의 지원 그리고 그 대가로 받을 수 있는 부분들을 파악했다고 보고 있다.

이어 정책조정수석실이 국정원 보고서 내에 적시된 삼성그룹 현안에 대한 각 수석실의 역할을 조정하고 각종 정보를 취합 및 정리했다는 설명이다.

때문에 이들 두 수석실이 국정원 보고서의 배포대상에 추가됐고 그만큼 이 보고서는 단순히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 수행이나 의사결정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닌,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부정한 청탁을 실천하기 위해 청와대 내 다수의 참모진을 조직적으로 동원했다는 주장의 근거라는 입장이다.

삼성 현안 담긴 국정원 보고서… 과연 ‘고급정보’였을까(?)

사실 특검은 이재용 부회장 등에 대한 1심 재판에서 ‘국정원 카드’를 통해 재판의 향방을 유리하게 이끈 적이 있다.

실제로 특검 측은 1심 재판에서 이 사건의 또 다른 피고인인 장충기(63·구속기소) 전 삼성 미전실 사장의 2015년 7월 3일자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공개했다. 장충기 전 사장은 당시 국정원 정보관(IO)인 김 모씨로부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국민연금이 찬성표를 주는 것에 반대하는 단체가 어느 곳인지 관련 메시지를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또 특검은 지난 8월 1일 장충기 전 사장의 피의자 신문 과정에서 그가 중학교 선배이자 당시 국정원 비서실장이었던 이 모씨와 나눴던 전화통화 녹취 내용도 공개한 바 있다.

특검 측은 삼성 재판 1심에서 국정원 관련 내용이 담긴 장충기 전 삼성 사장의 문자메시지와 전화통화 내용을 공개하며, 재판을 유리하게 끌고 나갔다. (사진=연합)
특검 측은 이를 통해 삼성 미전실이 국정원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장충기 문자메시지’라는 내용으로 언론을 통해 널리 퍼지며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사실 이 문자메시지 내용들이 이 사건 공소사실과 큰 관련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여과없이 공개되면서 여론은 삼성 측에 불리하게 작용했고 당연히 재판부에 판단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다.

이에 특검 측이 이 사건 항소심 재판이 마무리돼 가는 현 시점에서, 앞서 언급한 국정원 보고서를 공개하는 것도 1심 재판에서 소위 ‘재미를 봤던’ 국정원 카드를 또 다시 꺼내려 하는 의도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다만 특검 측의 주장대로 이 국정원 보고서가 청와대에 보고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재용 부회장의 현안 해결에 도움을 주기위한 목적이었다면, 단순히 보고서가 작성돼 청와대에 보내진 사실 자체보다도 보고서 내 정보가 얼마나 가치가 있었는지 여부가 더 중요했다.

쉽게 말해 국정원에서 오는 정보이자 대통령이 국내 최대기업 총수와의 부정한 청탁을 성사시키기 위해 그의 현안 해결을 돕고자 하는 정보라면, 일반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고급정보’이자 현안 해결책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담겨 있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두 건의 보고서 내용들은 사실 언론 등을 통해 이미 진부할 정도로 잘 알려진 내용이었다.

실제로 2015년 2월 3일 ‘삼성그룹 2차 사업구조 조정 추진 검토(제안)’에 담긴 삼성테크윈 및 삼성토탈 등과 한화그룹과의 빅딜의 경우 이미 2014년도에 성사가 확실시 됐고, 이는 오히려 삼성 측이 아닌 한화그룹 쪽에 더 중요한 현안이었다.

또 삼성엔지니어링과 삼성중공업 합병 무산 역시 이미 보고서가 청와대에 발송되기 훨씬 전인 2014년 11월에 기정사실화 됐었고, 삼성 측 역시 두 회사의 합병에 대해 더 이상 무리하게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없었다.

2015년 2월 3일을 기점으로 했을 때 당시 삼성 관련 이슈를 취재하던 언론사 기자들과 업계 관계자들 그리고 경제 및 산업 관련 학도들, 심지어 삼성 현안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있던 이들이라면 이 국정원 보고서에 기재된 현안들은 이미 잘 알려진 내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국정원이 해당 보고서를 언론기사를 취합해 정리했다는 판단이 들 정도로 상당히 철이 지났거나 잘 알려진 이슈였고, 삼성 역시 청와대의 힘을 빌려 해결해야 할 정도의 주요 현안도 아니었다는 설명이다.

물론 보고서에는 청와대가 삼성의 관련 현안을 위해 뭔가를 해줘야 한다는 구체적 내용도 적시돼 있지 않았다.

2015년 7월 2일자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무산 가능성 제기(제안)’ 보고서 내용 역시 마찬가지였다. 두 회사의 합병 관련 이슈는 이미 수개월 전부터 언론보도 등을 통해 자세히 알려진 사실이었다.

무엇보다 2월 3일 보고서 내용은 엄밀히 말해 그룹 내 주조조정과 관련된 사항들일 뿐, 이 사건 재판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현안 또는 지배구조 개편과는 크게 상관이 없었다.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의 현안 해결을 위한 정보를 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이 인터넷 검색만을 해보면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기존 내용들을 취합해 청와대에 올렸다는 말도 안 되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국정원 주요 임원들 중 장충기 전 사장과 같은 삼성 고위직과 안면이 있는 이들이 있는 만큼, 청와대가 국정원에 특별히 주문한 삼성의 현안과 관련된 보고서에는 언론보도를 통해 나타나지 않는 삼성 고위직만이 알고 있는 ‘고급정보’가 담겨 있어야 상식선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청와대가 삼성 측 현안을 정말 적극적으로 그리고 은밀하게 도와주고 싶었다면, 특검 측 주장대로 안종범(58·구속기소)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나 정호성(48·구속기소)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이 각각 이재용 부회장이나 장충기 전 사장의 휴대 전화번호를 알고 있었던 만큼, 국정원으로부터 보고서를 받는 불필요한 과정을 생략하고 전화로 직접 물어봤으면 그만이었다.

때문에 특검 측이 이 국정원 보고서를 통해 보다 확실한 혐의 입증을 하기를 바란다면, 단순한 의심을 말하기보다 당시 이 보고서가 어떤 경위로 작성이 됐는지 확실히 밝힐 필요가 있었다.

특검의 또 다른 국정원 카드에도 이재용 부회장은 크게 동요하지 않는 모양새였다. (사진=연합)
사실 이 문건이 청와대 측이 굳이 삼성만이 아닌 주요 대기업들의 현안에 대해 파악하기 위해 국정원에 요청한 내용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삼성관련 해당 보고서가 작성된 시기에 다른 기업에 대한 보고서도 작성된 사실이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파악해야지만, 특검의 국정원 카드가 이번에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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