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한 기억력에 플리바게닝 의혹 남긴 9월 12일 독대설

朴-李 2014년 9월 12일 독대설 말해 줄 안봉근, 삼성재판 증인 출석

안종근, 李 독대 안내해 주며 “명함 받아, 번호 저장”… 특검 주장에 사실상 힘 실어줘

연락처 담기지 않은 李 명함, ‘갑작스러운 檢 협조자’ 안봉근에 플리바게닝 의혹 대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에서 2014년 9월 12일 독대, 즉 0차독대 설전은 사실상 무의미함만 남긴 채 마무리 됐다. (사진=연합)
한민철 기자

이재용(49·구속기소)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항소심 재판에서 특검 측 마지막 카드인 ‘숨겨진 독대’에 대한 증언이 나왔다. 이는 기존에 밝혀진 이재용 부회장과 박근혜(65·구속기소) 전 대통령의 세 차례 단독면담에 앞서 청와대 안가에서 한 차례 더 독대가 있었다는 주장이다. 특검 측은 이 숨겨진 독대를 두 사람의 부정한 청탁이 최초로 형성된 시기를 말해 줄 중요한 단서로 보고 있다. 관련 증언에서는 실제로 이재용 부회장이 당시 청와대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단독면담을 나눴다는 폭로가 나왔다. 그러나 증인의 불분명한 기억에 요란했던 초반 의혹 제기보다, 오히려 일종의 말맞추기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난 18일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부장판사 정형식) 심리로 열린 이재용 부회장 등 삼성 전현직 임원들에 대한 항소심 14차 공판에서는 안봉근(51·구속기소)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날 박영수(65·사법연수원 10기) 특별검사팀은 안봉근 전 비서관에 대한 증인신문을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 사이의 ‘숨겨진 단독면담’을 밝힐 목적이었다.

앞서 특검 측은 지난달 29일 이 사건 항소심 9차 공판에서 2014년 9월 12일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이 청와대 안가에서 한 차례 더 단독면담을 가졌다고 지적했다.

이는 안 전 비서관이 검찰 조사 과정에서 지난 2014년 11월경 정윤회 문건 유출 사태로 떠들썩해지기 전인 같은 해 하반기,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들과 청와대에서 단독면담을 가진 적이 있다고 진술한 것에서 비롯됐다.

특검 측은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증언해줄 안봉근 전 비서관에 대한 증인신청을 재판부에 요청했다. 이후 이 숨겨진 단독면담은 언론 등으로부터 ‘9월 12일 독대’ 또는 ‘0차독대’ 등의 명칭이 붙기 시작했다.

특검 조사 및 이 사건 1심 재판 과정 등에서 드러난 바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단독면담은 총 세 차례다. 우선 지난 2014년 9월 15일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에 이어 2015년 7월 25일 청와대 안가, 2016년 2월 15일 청와대 안가에서 두 사람의 단독면담이 있었다.

특검은 이 단독면담에서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의 ‘부정한 청탁’이 이뤄졌다고 보고, 이 사건 뇌물공여 혐의를 입증하는 데 중요한 부분으로 판단하고 있다.

특검 측은 2014년 9월 단독면담에서 박 전 대통령의 청와대가 이 부회장의 삼성 경영권 승계에 힘을 써주는 대신, 삼성이 국정농단 사태의 주역 최순실(61·구속기소)씨 모녀에 승마지원을 하기로 두 사람 간 공통인식이 형성되기 시작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후인 2015년 7월 25일 독대에서부터는 삼성 측의 승마지원과 더불어 미르·K스포츠재단 지원 등이 본격적으로 이뤄졌다는 설명이다.

물론 삼성 측은 이 사건 1심 재판 때부터 특검의 이런 주장을 반박해 나갔다. 이재용 부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경영권 승계를 도와달라는 부탁을 한 적이 없으며, 승마지원 등 역시 오로지 강요에 의한 것이었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특히 특검 측이 2014년 9월 15일 부정한 청탁에 대한 협의가 이뤄졌다고 하지만, 당시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에서 두 사람이 독대한 시간은 약 5분이었다.

때문에 이 짧은 시간 동안 그리고 주변에 보는 눈이 많은 상태에서 대통령과 대기업 총수 사이의 부정한 청탁이 이뤄지는 것이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만약 2014년 9월 15일 이전에 두 사람의 단독면담이 또 있었다면, 특검은 삼성 측 대응논리를 반박하며 자신들의 목소리에 보다 힘을 실을 수 있었다.

그만큼 이 숨겨진 단독면담을 밝혀줄 안봉근 전 비서관의 증언은 특검 측에게 꼭 필요한 부분이었다.

이날 항소심 14차 공판에서 특검 측 증인신문 내용과 안봉근 전 비서관의 증언에 따르면, 지난 2014년 하반기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들을 청와대 안가로 불러 비공개 단독면담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안봉근 전 비서관은 당시 정윤회 문건 사태가 터지기 전인 2014년 하반기 박 전 대통령이 여러 날에 걸쳐 하루에 한 명 이상의 대기업 총수들을 독대했다고 증언했다.

안봉근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 (사진=연합)
또 그는 단독면담의 일정을 잡는 등 이를 추진하는 부서는 청와대 경제수석실이었고, 자신은 청와대에 방문한 대기업 총수 등 관계자들의 출입차량 확인과 면담장소 안내 등의 업무를 맡았다고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특히 안 전 비서관은 9월 12일이라는 정확한 날짜는 기억해내지 않았지만, 2014년 하반기 당시 이재용 부회장 역시 청와대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독대한 대기업 총수 중 한명이었다는 취지의 증언을 했다.

安 “李에게 명함 받아 번호 저장”(?) 이재용 명함 들여다보면…

이날 특검 측은 이재용 부회장의 전화번호가 저장된 안봉근 전 비서관의 휴대폰 전화번호부를 제시했다.

안 전 비서관은 당시 이재용 부회장과 단독면담 장소 안내를 하는 과정에서 인사를 나눴고, 이 부회장으로부터 ‘연락처가 기재된’ 명함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 연락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명함에 있는 이 부회장의 연락처를 저장했다는 설명이었다.

안 전 비서관은 대통령과 단독면담을 가진 다른 총수들로부터는 명함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이재용 부회장으로부터 받은 명함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는 입장이었다.

특검은 이날 안봉근 전 비서관의 증언 그리고 안종범(58·구속기소) 전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을 보좌했던 김건훈 전 청와대 행정관이 지난해 10월 김 전 행정관이 국회 상임위 청와대 국정감사 질의에 대비해 작성한 문건 메모 내용을 근거로, 2014년 9월 12일 이재용 부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단독면담을 가졌다고 재차 강조했다.

실제로 김건훈 전 행정관이 작성한 문건 내에는 2014년 대기업별 대통령 단독면담 날짜가 기록돼 있었고, 삼성의 경우 2014년 9월 12일로 기재돼 있었다.

다만 당시 김 전 행정관은 이 사건 1심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2014년 독대 준비를 한 것은 맞지만, 어떤 내용을 대통령 말씀참고자료에 담았는지 그리고 실제로 독대가 이뤄진 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증언했다.

삼성 측 역시 특검 주장에 강하게 반박하고 나섰다. 우선 김건훈 전 비서관이 문건에 작성한 대통령과 두산그룹 대표자와의 단독면담 일정이 (2014년) 10월 15일로 돼 있지만, 당시 박 전 대통령은 이탈리아 순방 중이었다는 점 그리고 김 전 비서관 스스로가 검찰 조사 과정에서 해당 메모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검찰이 안종범 전 수석의 업무수첩과 스마트폰을 압수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안 전 수석은 2014년 9월 8일 자신의 업무 수첩 중 ‘VIP’, 즉 대통령 지시사항에 ‘그룹총수’라고 기재했고 2014년 9월 9일부터 11일까지 대기업 관계자들과 연락을 취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안 전 수석은 당시 9월 9일 LG그룹 관계자로부터 ‘금(요일) 오후 면담에 대해 회신드리겠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수신했다. 9월 9일로부터 가장 가까운 금요일은 특검 측이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단독면담을 했다는 9월 12일이었다.

때문에 이 메모 내용을 토대로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2014년 9월 12일 청와대에서 단독면담을 했다는 주장을 100% 신뢰할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특히 안봉근 전 비서관의 증언 내용 역시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다.

재계 관계자들이나 기업 관련 취재 기자들 사이에서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기업 총수들은 개인 명함을 만들지 않는다. 설령 명함을 만들지라도 여기에 이름과 직책, 근무지 및 이메일 주소 등을 간단히 제시할 뿐, 개인 휴대폰 번호까지는 넣지 않고 있다.

이날 재판에서 삼성 측 변호인들의 반대신문 과정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재용 부회장 역시 자신의 명함에 개인 휴대폰 번호를 적시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 9월 하반기에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기업 총수들과 청와대 안가에서 단독면담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연합)
삼성 측 변호인이 “이재용 부회장의 명함에는 휴대 전화번호가 기재돼 있지 않은데, 그건 기억나지 않는가”라고 묻자, 안 전 비서관은 조용히 “그렇다”고 답변했다.

안 전 비서관 개인의 휴대전화에 이재용 부회장의 번호가 저장돼 있고, 명함을 받았다는 두 가지 사실만으로 2014년 9월 12일 청와대 단독면담에 이 부회장이 참석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었다.

이어 며칠 후인 9월 15일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에서도 안 전 비서관이 이재용 부회장으로부터 명함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안 전 비서관은 침묵했다.

국정원 특활비로 구속된 安… 증인 채택한 특검 속내는

사실 이날 2014년 9월 12일 0차독대 설전은 특검 측에도 큰 의미는 없었다. 일각에서는 오히려 시간낭비로 보일 정도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는 상태다.

안봉근 전 비서관의 증언 그리고 김건훈 전 행정관 메모의 신빙성 문제를 제쳐 두고, 실제로 당시 0차독대가 청와대 안가에서 있었다고 할지라도 그 안에서 과연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알 수 있는 ‘최소한의 물증’이 없다는 설명이다.

이 사건 1심 재판에서 법원이 뇌물공여 혐의에 대해 유죄로 판결하며 그 증거 중 하나로 참고한 것이 바로 안종범 전 수석의 업무수첩이었다.

안 전 수석은 2015년 7월 25일 그리고 2016년 2월 15일 각각 이뤄진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의 단독면담이 끝난 뒤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독대 자리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듣고 그 핵심 내용만을 업무수첩에 기재했다.

안종범 업무수첩은 엄밀히 말해 재전문증거로서 그 증거능력에 대한 논란이 이 사건 항소심에서도 끊이지 않고 있다. 다만 수첩 기재 내용과 쟁점인 사건의 앞뒤 정황을 통해 봤을 때 간접증거로서 가치가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런데 2014년 9월 12일 0차독대가 실제로 있었다고 할지라도, 독대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나눈 이야기를 증명할 근거는 정황 또는 추정밖에 없는 상태다.

안 전 비서관의 증언과 김 전 행정관의 메모가 특검이 주장하는 당시 단독면담에서의 이야기, 즉 부정한 청탁에 대한 두 사람 간 공통의사의 형성을 증명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그 밖에도 안종범 업무수첩의 기재 내용과 같은 최소한의 물증 또한 없다.

더욱 주목해 볼 부분은 안봉근 전 비서관이 이번 삼성 재판의 증인으로 나서는 등 특검 및 검찰 측에 협조적인 방향으로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안 전 비서관은 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의 특수활동비 수십억원을 상납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된 상태다.

그런데 검찰 측은 안 전 비서관을 소환해 국정원 특활비와는 관련없는 0차독대 관련 조사를 벌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안 전 비서관은 “구속 후 참고인 조사 형태인지는 모르겠지만, 검사님이 불렀다”라고 밝혔다.

이에 재판 후 일각에서는 특검·검찰 측과 안 전 비서관이 플리바게닝(Plea bargaining)을 의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이미 국정원 특활비와 관련된 원인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로 떠넘기고 있는 안 전 비서관이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돼 특검 및 검찰 측 수사에 협조한 다른 인물들처럼 이 사건 0차독대에 대해 특검 측에 유리한 증언을 해주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설명이다.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항소심 재판도 막마지에 이르고 있다. (사진=연합)
물론 특검이 0차독대와 관련돼 어느 정도 신빙성 있는 물증을 가지고 있거나, 안 전 비서관이 확실한 기억을 가진 상태에서 이번 증인신문에 임했다면 효과가 있었겠지만, 재판 결과 두 가지 모두 충족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큰 의미가 없었다는 지적이다.

한편, 이 사건 항소심 재판부는 오는 27일 박근혜 전 대통령을 증인으로 소환해 신문을 진행하고, 같은 날 피고인 신문과 변호인 최후진술 그리고 특검 측 구형까지 마치겠다고 밝혔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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