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심 앞둔 이 시기, 왜 하필… 아리랑TV 사장 추천 문건 둘러싼 의혹도

최근 공개된 최순실의 국정농단 관련 새로운 증거, 장시호가 법원에 제출한 것

그동안 잠잠했던 장시호의 폭탄, 왜 항소심 앞둔 이제야

장시호, 최순실 가방에서 자료 꺼냈다는 시점 일관성 없어

항소심을 앞둔 장시호씨가 이모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사실과 관련된 새로운 증거를 제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연합)
한민철 기자

국정농단 사태의 주역 최순실(62·구속기소)씨의 조카 장시호(39·구속기소)가 최근 최씨의 국정농단 관련 증거들을 추가로 법원에 제출하면서 의혹을 키우고 있다. 이 의혹은 최씨가 국정농단에 개입된 또 다른 증거가 발견된 점이 아닌, 왜 하필 장씨 자신의 항소심을 앞둔 이 시기 관련 증거들이 공개됐냐는 점에서 비롯되고 있다.

최근 채널A와 중앙일보 등의 단독보도에 따르면, 장시호씨는 자신의 1심 재판에서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은 뒤 법원에 최순실씨의 국정 사업·인사 개입과 관련된 증거들을 추가로 제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장씨가 지난 2016년 3월 18일 최씨의 가방에서 발견한 문화체육관광부 업무조정에 관여한 정황으로 추정되는 메모지, 이어 장관후보 추천 메모가 붙어있는 인사정보 문건과 ‘아리랑TV 사장 추천’이라는 제목의 문건이 있었다.

또 지난 2016년 5월경 역시 장씨가 최씨의 가방에서 발견한 조윤선(52·구속기소) 전 문체부 장관 내정을 암시하는 내용의 메모도 법원에 제출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언급한 대로 장씨는 이를 전부 최씨의 가방에서 꺼냈고, 휴대전화로 촬영해 자신의 이메일에 보관해 놓고 있었다. 그동안 이메일 내 다른 파일에 섞여 발견되지 않았지만 최근 이를 발견해 법원에 제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싶이 장시호씨는 수사과정에서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사실을 거침없이 폭로했고, 관련 증거들을 검찰 및 특검 측에 제출하며 ‘특검도우미’로도 불린바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설득력이 떨어지는 진술 및 증거들이 나오며, ‘플리바게닝(Plea Bargaining)’ 의혹에도 휩싸인 바 있다.

실제로 장씨는 특검 수사 과정에서 지난 2015년 7월 24일 최씨의 방에서 발견한 박근혜 전 대통령과 대기업 총수들의 독대 일정표를 본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그러면서 장씨는 당시 봤던 일정표를 떠올려 서면으로 작성했고 이를 증거로 제출했다.

약 1년 6개월 전에 지나쳤던 일정표에 적시된 다수의 대기업 총수들의 이름과 대통령 독대일정 및 시간, 순서까지 초인적 기억력을 발휘해 작성해냈다는 점에 있어서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상당했다.

무엇보다 한 개인의 기억력에 의존해 재구성된 일정표를 증거로 받아들여 재판부에 제출한 특검 측도 무리한 결정을 한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었다.

검찰과 특검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며, 한 때 석방의 자유를 만끽했던 장시호씨는 자신의 바람과는 다르게 2년 6개월을 선고받아 현재 구속수감된 상태다.

물론 재판부는 이 역시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부분까지 반영해 판결한 형량이라고 밝혔다.

최근 장시호씨가 뒤늦게나마 이모의 국정농단과 관련된 추가 증거를 법원에 제출하는데 동의하면서, 이 점이 항소심에서 장씨에게 긍정적으로 반영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왜 이제야 이런 증거들을 공개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장시호씨의 각종 법정위증 및 태블릿PC 의혹을 지적했던 <주간한국>은 이번에 장씨 측이 새롭게 제출했다는 문건들 중 수상한 점을 몇 가지 발견했다.

바로 앞서 언급한 ‘아리랑TV 사장 추천’이라는 제목의 문건이었다. 이는 최순실씨가 아리랑TV의 사장 인사에까지도 개입하려 했다는 정황을 보여준다.

채널A 측이 보도한 이 문건에는 해당 인사의 이름과 출생지, 주요경력 등 세부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장씨는 이미 지난해 6월 2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이영훈) 심리로 열린 우병우(51·구속기소)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2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아리랑TV 사장 추천과 관련된 의혹에 대해 증언한 바 있다.

당시 장씨의 증언 내용에 따르면, 과거 최순실씨는 김종(57·구속기소) 전 문체부 2차관에게 아리랑TV 사장 자리에 앉힐 사람을 추천해 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마땅한 사람이 없었던 김종 전 차관은 장씨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최씨에게는 자신이 추천한 것으로 하고 실제로는 장씨가 아는 사람을 소개해 달라고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장씨는 자신이 평소 알고 지내던 SBS 방송국 소속 A씨를 최씨에게 김종 전 차관이 추천한 인물이라며 소개했다. 최씨는 A씨와 같이 술자리를 가지기도 하면서, 그에게 아리랑TV 사장 자리에 추천해 주겠다고 말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최씨는 A씨의 인사파일을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보냈는데, 민정수석실로부터 그가 과거 땅 투기를 해서 문제가 있다는 검증 결과를 받았다.

최씨는 장씨에게 해당 서류를 보여주며 아리랑TV 사장에 추천할 수 없다는 사유를 알려줬고, 장씨는 곧바로 그 사유를 A씨에 전달했다.

물론 당시 최씨는 장씨에게 해당 서류가 민정수석실에서 왔기 때문에, 가지고 가면 안 되며 땅 투기라는 사유만을 숙지해 전달하라고 지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국정농단 사태의 주역 최순실씨. (사진=연합)
앞서 언급한 내용은 전부 장씨의 법정증언에서 나온 사실들이다. 장씨의 말에 따르면 결과적으로 아리랑TV 사장 추천 문건은 최씨로부터 장씨나 A씨에게 넘어가지 않았다. 특히 장씨는 이 서류에 대해 사진을 찍었다고 증언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해당 문건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었던 시점과 정황에 대해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장씨는 당시 민정으로부터 검증을 받고 최씨에게도 돌아온 아리랑TV 사장 추천 문건에 ‘민정검증’이라고 적힌 포스트잇이 붙어있었다고 법정증언했다.

그렇지만 최근 공개된 해당 문건에는 관련 포스트잇의 흔적이 없었다. 중간에 포스트잇이 떨어져 나갔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면 이 문건이 민정수석실로부터 검증받고 돌아왔다는 주장 및 최씨가 개입됐다는 점에 대한 증거능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앞서 언급한 장씨가 지난 2016년 3월 18일 최씨의 가방에서 아리랑TV 사장 추천 문건과 조윤선 전 차관의 내정 암시 메모 등을 발견해 사진을 찍었다는 점도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

현재까지 장씨의 법정증언 등을 통해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가 최씨의 가방에서 국정농단과 관련된 서류를 꺼내서 사진을 찍은 것은 지난 2016년 3월 18일이 아닌 2016년 7월 21일경이었다.

당시 장씨는 최씨의 대치동 자택에서 평소 최씨가 다량의 문서를 넣어놨던 명품 에르메스 가방에서 20여장의 서류를 꺼내 휴대전화로 찍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서류들은 민정수석실로부터 받은 세평들로 그 중에는 이철성 경찰청장과 KGC인삼공사 대표 후보 박 모씨, K스포츠재단 추천 후보였던 헬스장 트레이너 김 모씨, 미르재단 이사장 후보 조 모씨 등이 있었고, ‘검찰청장 후보 OK’, ‘체육재단 추천(보류)’, ‘민정에서 검증 중’ 등의 내용이 적힌 포스트잇이 서류 앞면에 붙어있었다.

장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장씨는 2016년 3월 18일과 2016년 5월경 그리고 아리랑TV 사장 문건을 발견한 또 어느 날까지 무려 세 차례나 최씨의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사진을 찍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물론 장씨가 평소 최씨의 가방에 관심이 많아 이모의 가방을 뒤져 여러 서류들을 꺼내봤을 경우도 배제할 수 없었다.

주목해 볼 점은 그동안 발견하지 못했던 중요 문건들을 왜 이제야 공개가 됐냐는 부분이다. 때문에 장씨가 항소심을 앞두고 또 다른 플리바게닝을 시도한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한편, 장시호씨는 영재센터를 운영하며 국가보조금 2억 4000만원을 가로채고, 영재센터 자금 3억여원을 횡령한 혐의 등이 유죄로 인정돼 2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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